인근의 궁궐에 대한 내용은 아카사카 어소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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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아카사카 이궁 [ruby(迎,ruby=げい)][ruby(賓, ruby=ひん)][ruby(館, ruby=かん)][ruby(赤, ruby=あか)][ruby(坂, ruby=さか)][ruby(離宮, ruby=りきゅう)] | State Guest House, Akasaka Palace | |
본관의 후면과 분수대 | |
<colbgcolor=#004498> 형태 | 궁전 |
주소 |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2초메 1-1 東京都港区元赤坂二丁目1-1 |
개장 | 2016년 |
소유주 | 내각부 |
연락처 | +81 3-3478-1111 |
내각부 참관안내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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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ruby(迎,ruby=げい)][ruby(賓, ruby=ひん)][ruby(館, ruby=かん)][ruby(赤, ruby=あか)][ruby(坂, ruby=さか)][ruby(離宮, ruby=りきゅう)])은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일본의 이궁(離宮)이자, 현재 일본에 오는 국빈을 맞이할 때 접대를 위한 영빈관(迎賓館)으로 쓰이는 건물이다.2. 역사
1909년 11월 19일 아카사카궁 원유회의 메이지 천황과 쇼켄 황후 |
아카사카 이궁은 1909년(메이지 42년)에 동궁어소로 사용하고자 건설되었다. 영국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 1852-1920)의 제자였던 궁정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片山東熊, 생몰 1854년~1917년)가 설계하여 기슈 번 도쿠가와 가문의 저택 부지에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으로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메이지 천황이 너무 사치스럽다며 거주하는 것을 꺼렸다고도 한다. 당시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도 거주하기에 불편하였는지 여기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1912년에 요시히토 친왕이 다이쇼 천황으로 즉위한 후로는 이궁으로 취급되어, 그때부터 아카사카 이궁으로 불린다.
이 곳이 동궁어소로서 명실히 기능한 때는 1924년 당시 다이쇼 천황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던 황태자 히로히토 친왕이 나가코 여왕과 혼인한 후 쇼와 천황으로 즉위하기까지 여기서 수 년 동안 살았을 때 뿐이라고 한다.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즈음 친동생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이 쇼와 천황에게 황거를 나와 이곳에서 거주할 것을 제안했으나, 사용하기 불편하여 경비가 늘어날 것이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전후 이 아카사카 이궁과 부지는 황실에서 일본 정부로 소유권이 이관되어 국립국회도서관(1948-61), 재판관 탄핵 재판소(1948-70), 1964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1961-65)으로 사용되었다.
이후로 국제관계가 긴밀해지고 외국의 국빈들을 맞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전까지 영빈관으로 쓰던 곳(아카사노미야 저택, 현 도쿄도정원미술관)이 비좁아지자 1967년(쇼와 42년)에 아카사카 이궁을 개수하여 영빈관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이후 개수가 완료된 197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영빈관으로 쓰인다. 이 새 영빈관에 온 첫 국빈은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었다. 2009년에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고, 2016년부터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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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설
3.1. 대문
3.2. 본관
외관 (정면) | 정면 현관 및 중앙 계단 |
건축 양식이 유럽의 정통 네오 바로크 양식에 가까우며,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영국의 버킹엄 궁전을 참고했다고 한다. 일본 근대 건물들은 크게는 유럽식에 가까워도 세부적인 장식을 보면 나름대로 일본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취한 것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정통 유럽 양식의 건물은 일본에서 보기 드물다. 다만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나가며 서양화와 부국강병을 향해 나아가잔 의미를 담아 정면 현관의 지붕 장식이나 내장 무늬 등에 갑옷 무사의 의장이 있는 등, 부분적으로는 일본풍 장식을 혼합했다.
본관 건물의 정면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이다.
건축 당시에 쓰인 물건들에서 태피스트리는 일본제를 사용했으나, 의자와 같은 가구의 상당수는 프랑스나 독일 등에서 수입한 것을 사용했다. 이들 가구 중 일부는 메이지무라 박물관에 보존 및 전시되고 있다.
3.2.1. 아사히노 마(朝日の間, 조일의 간)
아카사카 이궁에서 가장 격식 높은 방으로, 정면 현관에서 중앙 계단을 올라가 대형 홀을 지나면 볼 수 있다. 명칭은 천장에 그려진 「아침 해를 등진 여신이 채리엇(전쟁용 2륜 마차)을 끌고 달리는 모습」의 그림에서 유래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제1객실'로 불렸으며, 유럽 궁전의 '알현실'에 해당한다. 현재는 귀빈 살롱(객실, 응접실)으로 사용되며, 예방(禮訪)과 정상회담 등도 실시한다.
3.2.2. 사이란노 마(彩鸞の間, 채란의 간)
정면 현관 바로 위에 위치한 방이다. 명칭은 좌우의 큰 거울 위와 난로 양옆에 봉황의 일종인 란(鸞)이라고 불리는 새가 디자인 된 부조에서 유래되었다. 아사히노 마와 대비되어 창건 당시에는 '제2객실'로 불렸으며, 현재는 예방을 위해 방문한 손님들이 최초로 안내되거나 조약의 조인식, 정상회담 등에 사용된다.
3.2.3. 하고로모노 마(羽衣の間, 우의의 간)
건물의 서쪽에 위치한 방으로, 아사히노 마와 같이 고전주의 양식이다. 명칭은 천장의 요쿄쿠(謡曲)[1] '하고로모'에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과 풍취를 그린 대형 그림에서 유래되었다. 정면의 가운데 2층에는 오케스트라 박스가 있는데, 이는 이 곳이 원래 무도회장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곳에 아카사카 이궁에서 가장 큰 샹들리에가 있다. 현재는 우천 시 환영 행사를 하거나 만찬회 초청객에게 식전의 술이 제공되는 곳으로 쓰인다.
3.2.4. 가초노 마(花鳥の間, 화조의 간)
명칭은 천장에 그려진 유화와 벽에 장식된 칠보(七宝)가 꽃과 새를 소재로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다소 중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현재는 주로 공식 만찬회 개최와 기자회견 장소로 사용된다. 최대 130명 분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3.3. 일본식 별관
일본식 별관 '유신테이(游心亭, 유심정)'는 1974년에 건축가 타니구치 요시로의 설계로 건설되었다. 본관에서 열리는 행사가 서양식인 반면, 일본식 의장과 순수 일본식 접대방식으로 귀빈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로 이용된다. 일본의 '주택'과 '정원'이 지닌 아름다운 특성을 느낄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차, 꽃, 일본 요리 등으로 '일본식' 접대를 제공한다.
4. 가는 방법
아카사카 궁전 주변 지도 |
JR 동일본의 츄오 쾌속선과 츄오-소부 완행선 그리고 도쿄메트로 마루노우치선 모두 요츠야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JR은 아카사카 출구에서, 마루노우치는 1번 출구에서 도보로 7분 정도 소요된다.
5. 기타
- 한국어 안내 책자가 구비되어 있다. 한국어 가이드 오디오를 대여 할 수 있으며 가격은 200엔으로 저렴하다. 오디오의 길이는 1시간 정도라 한다.
- 본관과 앞의 정원은 사전 참관 신청 없이 관람이 가능하다. 그런데 막상 갔는데 쉬는 날일 수도 있으니 방문 전에 일반 참관을 시행하는 일정을 미리 여기서 확인하도록 하자.
- 엄연한 정부 시설이고, 현재도 운영 중이기 때문에 밖에 경찰들이 항상 경비를 서고 있다. 또한, 입장 시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하며 물이나 음료수 같은 것을 지참했을 시에는 담당 직원들 앞에서 한 모금 마셔봐야 한다.
- 입장료는 보통 성인 기준 1500엔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세부적인 자세한 가격은 여기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