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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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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lephone[1]

1. 개요2. 역사
2.1. 최초 제작자 논란2.2. 한국에서의 전화기
3. 방식4. 호칭5. 전화와 방송6. 기타
6.1. 언어별 전화 인사말
7. 관련 문서
7.1. 용어7.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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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신 수단의 한 종류.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먼 곳으로 전송하고, 이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사람 간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또는 기계를 말한다.

그 원리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선 전화기를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송화기에 대고 말을 하면 내부의 자석이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전선을 통해 상대의 수화기에 전달한다. 상대의 수화기는 전달받은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시켜 들려주게 된다. 이는 어릴 때 가지고 논 적이 있을 법한 '실 전화기'의 원리와 유사한데, 실 전화기가 실의 진동으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면 전화기는 전파를 매개체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 때문에 전화기를 사용하려면 전화하려는 기기들을 미리 전선 혹은 전파로 연결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화의 보급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국가적 범위의 통신망을 구축해야 하며, 이 모든 통신망을 관리하는 중앙 시스템과 시스템 관리 업체 역시 요구된다. 그것이 오늘날의 통신 서비스 업체.

누군가의 집을 찾아갈 때 주소를 알아야 하듯, 전화를 걸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아야 한다. 물론 카카오톡이나 라인 등등의 어플의 경우 서로 친구가 되어있다면 전화번호를 몰라도 음성통화나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2]

본 문서에서는 통신 네트워크와 유선으로 연결되는 유선전화, 소위 지상선(landline) 전화에 대해 주로 다룬다. 휴대전화는 별도의 문서가 있다. 피처폰, 스마트폰도 자세한 별도 문서가 있으니 참조하자.

2. 역사

최초의 전화기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부품을 만들 능력이 떨어져서[3] 부품들을 큼직큼직하게 만들다보니 그 사이즈가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당시의 가정용 전화기는 현재의 공중전화기 수준으로 거대했는데, 결제 시스템 등의 자잘한 기기들이 많이 들어가서 사이즈가 큰 공중전화기와 달리 순수하게 전화 기능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크기가 필요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아래와 같이 전화기가 발전했다.이미지로 보는 전화의 역사

우리가 잘 아는 집전화 사이즈의 작은 전화가 나온 것은 20세기 중반인 1931년으로, 약 반세기가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이 바로 에릭슨 1001 모델(개요 상단의 이미지). 갈수록 전화의 수요는 증가하기만 했고 실내를 넘어 실외에서도 전화의 수요가 발생할 정도가 되자, 많은 국가들은 거리에 공중전화를 설치해 이용료를 받는 대신 바깥에서도 통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자 모뎀을 통해 컴퓨터끼리 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전화기는 계속 경량화되어 오늘날의 휴대 전화로 이어진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휴대 전화를 통해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당시 한국에서는 휴대 전화 자체가 가격이 어지간한 차량 1대 정도로 매우 비싼데다가 수신률도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부유층이나 회사 중역들 정도나 들고다니는 물건 취급이었고 삐삐 정도나 들고다니면 그나마 최신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삐삐의 시대를 거친 후부터 보급률이 점차 상승하였고, 19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에 완전히 대중화되어 1인 1휴대전화가 기본이 되었다. 그래서 공중전화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져 점점 철거되다가 2010년 이후론 최소한의 명맥만 잇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제한되는 군 부대에선 많이 쓰였지만 2020년 7월부로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이제는 군대에서도 공중전화를 거의 안 쓰게 됐다.

휴대 전화의 폭발적인 발달과 보급으로 집전화 또한 정말 극도의 기계치인 사람이 아닌 이상 거의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기계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노인이라도 대다수가 휴대 전화를 사용한 지 20년이 지나 최소 기능은 다 활용하는지라 이제는 칠순 이상 노인들이 많은 시골에서조차도 집전화는 안 쓰는 추세다. 다만 사업체나 가게 등 영업목적이나 공공기관 등 유선전화 자체는 여전히 그 쓸모가 많기 때문에 집전화의 수요가 줄어든 거지 유선전화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는 아니다.

20세기 중반의 휴대 전화는 음성 기능이 전부였지만 1982년경 문자메시지 기능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휴대 전화의 기능은 갈수록 늘어났고 2010년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포함한 스마트폰이 보급된다.[6]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기존의 휴대 전화를 피처폰이라고 따로 구분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만능 기기라고 불릴 만한 성능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질 정도에 이른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먼 미래에나 대중화됐을 것 같았던 기술이 사람들의 상상보다 빠르게 일상생활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 넓이와 두께의 한계까지 도전하던 휴대 전화의 경량화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정체되었다. 전화만 잘 되면 됐던 피처폰과는 달리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기이고, 따라서 큰 디스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 크기를 줄이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 기술적으로도 고성능화에 따른 배터리 문제로 인해 휴대 전화의 크기를 줄이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용되는 스마트폰은 오히려 후반기의 피처폰보다 커진 상태다.

2.1. 최초 제작자 논란

전화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전화를 제작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재밌게도 전화기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의 발명가가 각자 제작에 성공했고 오히려 벨은 한참 늦게 발명한 편이다.

전화기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말할만한 사람들은 안토니오 무치, 필립 라이스, 엘리샤 그레이 등이었고 그중 안토니오 무치는 돈이 없어서 특허를 신청하지 못하고 임시 특허만 등록했었다. 그 와중 그레이엄 벨이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이다. 무치는 벨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걸었으나 소송 기간 중에 병으로 급사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패소한 건 덤. 그래서 법적으로 전화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벨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안토니오 무치 문서로.[7] 그리고 당시엔 이들 말고도 전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발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2002년까지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되어 있었으나, 미국 하원에서 안토니오 무치가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수정하였다. 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이외에도 벨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한 필립 라이스와 엘리샤 그레이도 개발자로 인정되었다.

2.2. 한국에서의 전화기

동양에 서양 문물이 전래된 조선 개화기에 함께 전래되었다.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설치, 운영된 것은 1898년이며 이때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차해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다. 1896년 궁 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당시 전화기의 사용법은 상대에 따라 달랐는데, 만일 국왕과 전화를 한다면 받는 신하 입장에서는 의관을 똑바로 갖추고 전화를 받기 전(혹은 걸기 전) 큰 절을 3번 올려야 했다. 구한말에는 전화기가 왕의 옥음(玉音)을 전해주는, 왕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행정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1902년부터 부산까지 그 개통이 확대되었다. 한편 그 와중에 전화기를 이용해 왕족임을 사칭하는 거짓 전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보이스피싱인 셈이다.

백범 김구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 고종이 직접 전화로 김구의 사형을 연기하도록 명해서 사형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는 논란이 있는데 김구 문서로.)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내 모든 전화 사업권은 일본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때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통신망이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1935년 기존의 자석식, 공전식을 버리고 자동식인 ST식이 채택되었다.

1945년 광복 후 드디어 모든 통신 사업 주도권이 수복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6.25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통신망들이 대파되어서 다시 복구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이로 인해 전화의 보급이 늦어졌다. 대한민국은 1960년도 복구가 끝마쳐지고 한동안 정부 측에서 체신청에게 사업권을 부여, 1960년대 중반에는 EMD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화의 보급이 시작된다.

통신망 복구가 끝나고 1960년대에 본격적인 경제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소수의 부유층이나 관료층,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던 전화기의 수요가 점차 늘어났고, 가정집의 전화 수요는 넘쳐나는데 가용회선수는 적었고, 공중전화를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수요가 넘쳐흘러났다. 이쯤 되자 심지어 장관이나 청와대높으신 분들이 전화 좀 놔 달라고 체신청에 압력을 넣는다든가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전화 회선 그 자체가 투기 대상이 되어버려서 이걸 웃돈 주고 사고팔거나 아예 월세 놓듯이 빌려주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아예 체신청에서 전화회선을 왕창 따다가 이런 일을 하는, 일명 "전화상"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전화회선 하나 놓는데 웃돈 얹으면 수십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이 들어가고[8], 기껏 신규회선 뽑았더니 그걸 또 전화상들이 싹쓸이해다가 웃돈을 얹어 파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자[9]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 1971년 7월 전기통신법을 개정하면서 전화 회선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해 버린 것. 단 여기에는 "기존에 가입한 전화에는 이를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되자 법 개정 이전에 가입해서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한 전화는 '백색전화', 양도 불가능한 전화는 '청색전화'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심플하게 전화국에 비치되어 있던 가입내역 기재 원부(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가입자 DB)의 색상이 예전 것은 흰색, 법 개정 후에 나온 양도불가 전화는 파란색이어서였다.

근데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도 여전히 전화회선 공급량은 수요에 한참 못 미쳤고, 정부에서 전화회선을 못 받은 사람들은 기존 백색전화 회선 가입자들의 전화를 매입하는 방법밖에는 전화를 놓을 방법이 없으니 그쪽 수요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급기야는 백색전화 투기질에 나서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이게 한창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에는 전화 회선 한 대 매매가격이 26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참고로 서울에서 50평자리 이 이 가격에 팔리던 시절이다. 이런 일은 1976년 전자교환방식의 교환기가 도입된 뒤 전화 회선 수를 수요만큼 공급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1970년대 후반의 폭발적인 회선공급에 힘입어 일반 가정에서의 전화 보급이 시작되며 1980년대에는 이미 남한 전체에 천만 회선이 깔리게 되었다.

그 뒤 1982년, 체신청의 전화 사업 부분이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이름의 공기업으로 출범하면서 사업권이 분리되고, 이 해에 아예 모든 기계식 전화기를 전자교환기로 교체해버렸다. 전자교환기로 완전히 교체된 시점은 2003년 7월. 바꿔 말하면 2003년 6월까지는 반전자교환기도 사용한 것이다.

북한 역시 6.25 이후 통신망들이 전부 대파되었다가 역시 약 10년의 시간을 거쳐서 복구했으나, 내부용/외부용으로 구분하며 가정용 전화기는 보편화되지 않은지라 개인적인 용무로 전화를 걸거나 받을일이 있으면 전화있는 집에 가서 양해를 구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했다. 1990년 기주능로는 내/외부용 통신망을 전부 합치면 약 80만 회선 정도였다.[10] 그리고 이마저도 해외 통화망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고 그나마 있는 것들은 지정된 국가와의 통화를 목적으로 회선 두세 개만을 제한적으로 개통해놓은 상태였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경제위기로 인해 정전이 잦아서 제때 못쓰는 경우도 많았고, 통신망의 노후화도 심각했다. 북한에서 전화에 대한 접근성이 그나마 높아지게 된것은 2010년대 휴대전화가 보급되고 나서의 일인데, 이것도 지역차가 있어서 대도시는 불편이 덜해졌지만, 농어촌이나 낙후지역에서는 두세가구에 한대씩 가지는 씩이라 1인 1대에 가까운 남한에 비하면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이다.

3. 방식

전화망에는 크게 POTS, ISDN, VoIP, 이동통신망[11]이 있다. POTS은 일반적인 유선 전화망이고, ISDN은 유선 전화망에 디지털을 추가한 형태이고, VoIP는 인터넷 통신을 통해 음성을 전송하는 전화 방식이다. 이동통신망은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인해 개설된 망이다. POTS은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수익이 낮아서 요금이 비싼 편이다. VoIP는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나,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면 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ISDN은 전화망 용도로 상용화된 나라가 얼마 없으며, 인터넷 용도로는 DSL에 밀려서 잊혀졌다.

보통의 통신사에서는 유선과 무선 및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으며,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이들을 서로 통합하여 운용하고 있다. 크게 음성망 중심으로 모든 전화망을 통합하거나 인터넷 망을 중심으로 모든 전화망을 통합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여러 전화 회선이 연결된 네트워크를 공중전화교환망(PSTN)이라고 부른다.

4. 호칭

과거에는 전화라 하면 본 문서에서 기술하는 유선식 전화밖에 없었기에 그냥 '전화'라 부르면 되었으며, 휴대전화 등장 후에도 상당 기간 '휴대전화'(셀룰러 폰), '전화'(유선식 전화)로 구분하였으나, 휴대전화의 보급률이 유선식 전화를 넘어선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냥 '전화'라 하면 휴대전화를 지칭하는 호칭이 되었다.

때문에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유선식 전화를 이르는 호칭이 새로 필요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집전화'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며, 미국 등 영어권에서는 단말기가 전화 네트워크에 실제 케이블(구리선이나 광섬유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인 '지상선 전화'(landline phone)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POTS(Plain old telephone service)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어에서는 단말기가 사용자와 함께 이동하는 이동전화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단말기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인 '고정전화'(固定電話)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유선식 전화를 휴대전화나 VoIP와 구분하여 PSTN(Public switched telephone networ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PSTN은 유선전화와 동의어가 아닌 말 그대로 공중의 여러 전화기들이 연결된 전화 교환망으로 엄밀하게는 유선전화와 무관하다. POTS는 물론 휴대전화나 일부 VoIP[12]도 PSTN에 연결되어 있다.

5. 전화와 방송

원래 알렉산더 벨은 ‘통신장치를 발명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달려든 것이 아니었으며 ‘뭔가 전선으로 음악 같은 소리를 원거리 송출하는 장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즉 그가 원래 만들려고 했던 것은 일종의 유선 방송 장치였던 셈이다.

전화는 라디오와 달리 수신 전용 정치가 아니라 송수신기로, 양방향 통신, 즉 음성 신호를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낼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전화의 초창기에는 수신만 되는 서비스도 존재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까지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미국에서 전화를 통한 초보적인 방송시스템이 고안되어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라디오가 퍼지기 이전까지 상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전화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앞서 사상 최초로 등장한 방송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헝가리는 1893년부터 1943년까지 "Telefon Hirmondo"(펠레폰 히르몬도)[13]라는 방송을 전화로 송출했다. 전화 단자에 스피커를 연결하거나 그냥 수화기를 들고 청취하는 방식으로 음악, 뉴스, 증권시황, 오페라, 낭독, 콘서트, 강의,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텔레폰 히르몬도는 1925년에 해당회사가 라디오 방송권을 따내고 라디오 방송으로 중심축이 옮겨지면서 라디오 방송을 재전송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시설파괴로 1943년에 방송이 종료되었다. 텔레폰 히르몬도는 방송편성시간을 정해서 방송을 내보내는 체계적인 방송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점때문에 라디오 방송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전화는 초기 음향기기의 역사와도 함께한다.[14] 초창기 음향기기는 전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음향기기의 라인 입출력 단자(3.5 폰잭, RCA, XLR)의 표준 임피던스인 600옴은 전화선의 임피던스에서 나온 것이다. 오디오의 주파수 특성을 조절하는 이퀄라이저도 통화 음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나온 물건이다. 스피커 제조사인 JBLAT&T 산하 전화기 제조사였던 웨스턴 일렉트릭이 반독점법으로 인해 음향기기 사업을 독립시키면서 설립되었던 알텍 랜싱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악기의 음을 고를 때 이용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있어, 해당 번호를 누르면 특정 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나라도 20세기에는 다양한 서비스를 전화로 제공했으며, 특정 번호에 전화를 걸면 현재 시각, 오늘의 바이오리듬 등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에는 전화로 음악을 송출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오늘날엔 전화선의 대역(bandwidth) 활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전화선을 따라 흐르는 신호를 고도로 압축(compress)하며, 이 압축 알고리듬은 인간의 음성을 압축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과 같이 주파수 폭이 넓은 소리는 잘 압축하지 못한다. 때문에 음악 소리를 전화를 통해 들을 경우 듣기 괴로운 저음질의 소리가 들린다. (오늘날 통화 대기 중에 재생되는 음악의 음질이 형편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6. 기타

6.1. 언어별 전화 인사말

언어
한국어 여보세요?
영어 Hello?[18]
표준 중국어 喂(wéi)?[19]
프랑스어 Allô?
러시아어 Алло?
독일어 Hallo?
스페인어 ¿Diga?[20]
이탈리아어 Si?, Pronto?
일본어 もしもし?

7. 관련 문서

7.1.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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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기타



[1] 이미지는 초창기의 다이얼식 전화기. 영어로는 'Rotary dial'이라고 한다. 참고로 지금도 인터넷전화가 아닌 일반전화 회선이 있다면 이 방식(다이얼 펄스)의 전화기를 사용해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다.[2] 개인의 계정 정보가 전화번호를 대체하기 때문.[3] 무려 19세기다.[4] 이후 'Automatic Electric'가 되며, 이후 GTE에 인수되고, GTE는 Bell Atlantic에서 인수한다. Bell Atlantic는 버라이즌이 되어 명성을 떨치고 있다.[5] AT&T의 전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세운 기업이다.[6] 스마트폰 이전에도 이런 기능을 탑재한 휴대 전화들은 꽤 존재했으나 그 성능이 매우 조악하면서 제한적이었다.[7] 라이스가 살았던 마을에는 '진짜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는 라이스'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카더라[8] 당시에는 평균 연봉이 몇만원 정도했던 시절이었다.[9] 야인시대로 잘 알려진 동대문 정치깡패 이정재도 전화상으로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한다. 이쪽은 곽영주와 친분까지 있었으니...[10] 같은 시기 남한의 회선 총 개수는 1,500만 회선이었다.[11] 모든 전송이 패킷 통신으로 통합된 LTE의 VoLTE의 경우에는 이동통신망보다는 인터넷 전화(VoIP)에 가깝다.[12] 가입자끼리만 전화가 가능한 것이 아닌 스카이프 같이 일반 전화와 연결이 되는 VoIP 서비스[13] 전화 해럴드, 즉 전화 신문이란 의미. 당시엔 라디오도 TV도 없었기에, 당시 대중매체의 대명사였던 신문을 방송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14] 증폭기가 없던 시절의 원시적인 음향기기는 사실상 전화나 다름없었다. 애당초 스피커가 스피커(말하는 장치)라 불리는 이유가 전화기에서 유래한 장치이기 때문이다.[15] 2000년대 초반생까지는 유선전화기를 알고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16] 이외에는 인도나 네팔, 태국 등 외국인이 업주인 식당들의 경우, 직원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니 한국말을 할줄아는 자신이 전화를 받기위해 이렇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식당 전화번호로 기재하거나 식당 전화를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시키곤 한다.[17] 별도의 특수 타자기를 전화기나 휴대전화 단말기에 연결해서 쓰는 방식과(물론 비장애인의 경우 오퍼레이터가 청각장애인이 발신한 문자를 읽어준다.) 실시간으로 텍스트가 전달되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 비상시에 매우 유용해진다.[18] 다만 이는 20세기부터 널리 사용된 인사말이고, 전화가 최초로 발명된 시절에 전화를 받은 사람이 하는 인사말은 “어호이”(ahoy), 또는 “어호이호이”(ahoy-hoy)였다. 이는 전화 인사말로 새로 만들어진 신조어가 아니라 당시 널리 사용되던 인사였기에 전화에서도 사용되었을 뿐이다.[19] 전화를 시작할 때 하는 인사만 2성으로 발음한다. "저기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끄는 용법으로 쓸 때는 4성(wèi)으로 발음한다.[20] 이는 지역마다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Bueno?가 더 많이 쓰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Alo?가 더 많이 쓰이며, ¿Diga?는 회사 등지에서 다른 전화를 넘겨받을 때 많이 쓰인다. 쿠바 등의 일부에서는 ¿Oigo? 가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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