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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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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인물2. 태종 주변 인물3. 충녕 주변 인물4. 양녕 주변 인물5. 백정 및 사당패6. 고려유민7. 교황청 관련8. 그 외 인물9. 특별출연

1. 주요 인물

2. 태종 주변 인물

3. 충녕 주변 인물

4. 양녕 주변 인물

5. 백정 및 사당패

6. 고려유민

7. 교황청 관련

8. 그 외 인물

9. 특별출연



[1] 세종이 일개 신부 따위의 수발을 든다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의 시작인 듯 한데, 만약 실제로 이런 명령을 내릴 일이 있었다면 왕자가 아니라 내금위를 불렀을 것이다.[2] 하필 세종대왕이라 본 작에서의 묘사가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3] 그래서인지 태종, 양녕대군, 벼리의 포스터는 칼을 들고 비장한 모습이지만 충녕대군의 포스터는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생시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4] 생시들을 닥치는대로 죽이려는 아버지 태종과 형 양녕대군과 달리 구마 신부를 도와 구마를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생시의 습격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벼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음에도 살릴 수 있었다며 도리어 벼리를 질책하는 모습을 보인다.[5] 1화에서 강녕대군의 입을 통해 양녕대군이라 불리는데, 양녕은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리를 양보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군호이며 세자 시절에는 세자 저하라고 불러야맞다.[6] 대왕 세종 같은 퓨전 사극 비스무리한 물건에서는 양녕을 무인 비슷하게 묘사했는데, 활쏘기를 잘 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검을 잘 다루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애초에 활쏘기는 무예이기 이전에 정신 수양의 방편으로서 문/무관을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었다. 즉 "활쏘기를 잘 한다 = 무예에 능하다" 라는 것은 엄연히 착각이다.[7] 등장인물 설명 상 태종의 아내로 원경왕후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8] 나이 상 태종과 원경왕후의 막내아들인 성녕대군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9] 실제로 태종은 아들 셋을 어려서 잃었던 탓에 자식 사랑이 끔찍했던 인물로, 만약 생시라는 것이 정말로 있었고 성녕대군이 감염되었더라면 최대한 감싸고 돌면서 명의란 명의는 다 수소문했을 것이다. 서빙고든 궁궐 안이든 감금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태종답지 않은 조치다.[10] 실제로 수신제가는 국왕이 아니라 유학자라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세였으므로 아무리 욕심이 없다고 해도 수신제가까지는 하려고 했을 것이며, 조선 시대에 적장자가 아닌 왕자는 관직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지겸이라는 인물이 출세욕이 강했더라면 충녕대군의 호위무사가 되었다는 시점에서 이미 절망해야지 노심초사를 할 이유가 없다.[11] 임견미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추정된다. 참고로 전노민은 5년 전 임태미와 비슷한 포지션의 캐릭터사돈을 맺는 훌륭한 배우 개그를 달성했다.[12] 양녕대군의 장인 김한로가 모티브. 다만 김한로는 이방원의 과거 동기였으며, 권신과는 거리가 먼 무던한 인물이였다.[13] 태종 18년 이후 좌익위로 그 호칭이 바뀐다[14] 그런데 주요 출연진이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면서 각 캐릭터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한 영상에서 벼리를 연기하는 김동준이 벼리 자신을 혼혈이라고 말한다. 다만 설정상 벼리가 자신의 친부모를 모르는 만큼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 중에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되고 벼리가 이를 알게 될 것으로 보인다.[15] 혹시 수장이라는 것이 "무당과 불교를 탄압" 한 것과 관련이 있다면, 훌륭한 고증 오류다. 조선이 숭유억불을 내걸었던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이것은 불교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지 불교의 씨를 말리자는 것은 아니었으며, 실제로 양반층은 물론이고 왕실에서도 불교를 후원한 사례는 여럿 찾아볼 수 있다. 이 물건에 나오는 실존 인물들로 예를 들면 태종은 태조가 중병에 걸려 앓아 누웠을 때 승려들을 불러다가 기도를 드리게 하고 스스로도 연비를 했으며(이 일화는 용의 눈물에 아주 충실하게 고증되어 나온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듬해에 찍어냈던 책이 하나가 월인천강지곡이다. 하물며 불교 승려라는 이유만으로 처형을 하거나 한 적은 전혀 없었다.[16] 상술했듯이 실제라면 내금위가 했을 일이며, 아들을 "사지로 보내" 는 것은 그야말로 태종답지 않은 짓거리다.[17] 조선구마사의 경쟁작인 KBS의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평원왕으로도 출연 중이다.[18] 공양왕의 친자들은 조선 건국 후 왕씨 몰살 과정에서 부왕 공양왕과 함께 살해당했다. 또한 그의 사위들은 참살당했고 왕씨 핏줄을 잇도록 허가된 동생 귀의군 왕우의 자손들도 1차 왕자의 난때 피살됐다.[19] 미국의 영화 배우, 평론가, 번역가. 영화 기생충의 영어 번역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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