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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줄리언 슈나벨 Julian Schnabel | |
출생 | 1951년 10월 26일 ([age(1951-10-26)]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휴스턴 대학교 |
직업 | 화가, 영화감독 |
미술사조 | 신표현주의 |
웹사이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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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출신의 화가, 영화감독.20세기 미국 신표현주의 화가의 대표주자로서 1980년대 깨진 세라믹 플레이트를 이용해 대규모 그림을 그린 '접시 회화(Plate paintings)'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1]
2. 생애 및 작품 활동
1951년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 출신인 유대인 가정 집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부터는 텍사스주 브라운스빌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이때부터 평생의 취미가 되는 서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성장 후에는 휴스턴 대학교에 진학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뉴욕의 호크니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독립 연구 프로그램에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공부를 했다. 이때 뉴욕의 예술가들과 친교를 다졌는데, 개중에는 앤디 워홀, 시그마 폴케, 그리고 후일 자신과 함께 신표현주의 화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장미셸 바스키아 등이 있었다. 또 이때 유럽의 각곳을 여행하며 후일 작품을 제작할 때 영감의 원천이 되는 예술적 소양들을 흡수했다.2.1. 미술
뉴욕 예술계에서의 활동과 유럽 여행 이후 휴스턴으로 돌아와 휴스턴 갤버스턴에 있던 미국의 화가 '조셉 글라스코'를 소개 받아 그와 예술에 대한 많은 관심사를 공유하며 친구가 되었고, 휴스턴에 있는 휴스턴 현대 미술관의 관장을 설득해 미술관 중 한자리를 차지해 처음으로 전시를 열게 된다.이 당시에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하여 지역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그림을 계속 그려가던 도중, 80년대 뉴욕 아트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아트 딜러 '메리 분'을 설득해 1979년 그녀의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단독 전시를 열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깨진 세라믹 플레이트를 이용해 대규모 그림을 그린 '접시 회화(Plate paintings)'를 선보여 주목받게 된다. 이 접시 회화에서 초대형 캔버스 위에 소재를 가리지 않고 깨진 접시, 사슴 뿔, 석고, 벨벳, 사진, 왁스, 심지어 서핑보드까지 동원해 다양한 파편들을 빽빽히 붙여 요철이 심한 거대한 캔바스에 거칠고 대담한 필치로 폭력, 죽음, 허무, 신화 등의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는데, 당시 미술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팝 아트,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을 거스르는 스타일을 들고 나옴으로서 당대 뉴욕 미술계에게 주목을 받았다.[2]
이어 1980년에는 안젤름 키퍼 등과 함께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조각 회화로 참석했고, 1981년에는 메리 분과 레오 카스텔리가 공동으로 기획한 쇼에 그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보다 확고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의 거칠고도 표현력 풍부한 독특한 스타일이 매스컴을 타면서 더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고, 미국의 '신표현주의' 화가의 대표주자 중 한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2. 영화
1996년 자신과 친교가 있던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3]의 전기 영화 바스키아를 찍으며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첫 작품임에도 제프리 라이트, 데이비드 보위, 게리 올드만 등 화려한 출연진을 동원해 화제가 되었고 제5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기도 했다.2000년에는 쿠바의 게이 시인 '레이날도 아레나스' 전기 영화인 비포 나잇 폴스로 연이어 제5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본인은 특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주연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에게도 볼피컵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기며 명성을 얻었다.
2007년에는 엘르지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전신마비가 온 말년에 집필한 회고록 '잠수종과 나비'를 마티유 아말릭 주연으로 영화화한 잠수종과 나비로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그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감독상을 받았다. 이어 루 리드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0년에 연출한 제1차 중동전쟁에 휘말린 소녀의 일대기를 다룬 '미랄'이 [4] 제6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았으나,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혹평을 받으며 주목 받지 못했다.
2018년에는 빈센트 반 고흐 전기 영화인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연출해 제7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아 주연을 맡은 윌렘 대포에게도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2024년에는 닉 토시즈의 동명 소설 '단테의 손'을 영화화한 단테의 손을 발표했다.
3. 필모그래피
<rowcolor=#fff> 년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비고 |
1996 | 바스키아 Basquiat | ○ | ○ | 장편 데뷔작 제5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2000 | 비포 나잇 폴스 Before Night Falls | ○ | ○ | 제5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특별 심사위원대상 수상 | |
2007 | 잠수종과 나비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 ○ | 제60회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 ||
2007 | 루 리드의 베를린 Lou Reed's Berlin | ○ | 다큐멘터리 | ||
2010 | 미랄 Miral | ○ | 제6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2018 | 고흐,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 ○ | ○ | 제7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2024 | 단테의 손 In the Hand of Dante | ○ | ○ |
4. 기타
- 일반 대중과 매스컴에게는 대체로 호평 일색인 화가지만 미술계에서는 주목 받은 당시부터 찬반이 오가기도 했던 화가이다. 당시 주류 사조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주로 앤디 워홀 이후 현대 예술가들이 지적받는 비판과 유사하게 '지나치게 상업적인 예술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줄리언 슈나벨은 데미안 허스트처럼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상당히 셀렙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미술가로 유명하다.
- 상술했듯이 사생활이 화려하기로 유명해서 공식적으로 두 번 이혼했으며, 자식이 무려 7명이나 되는 걸로 알려져있다. 아들 중 하나인 비토 슈나벨은 미술상으로 일하고 있다.
- 2002년에는 미국의 락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 By the Way의 커버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려줬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당시 밴드 멤버 존 프루시안테의 여자친구가 슈나벨의 딸 스텔라 슈나벨이었기 때문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