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불가렐리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
1968 |
이름 | 자코모 불가렐리 Giacomo Bulgarelli | ||
출생 | 1940년 10월 24일 이탈리아 왕국 에밀리아로마냐주 볼로냐 | ||
사망 | 2009년 2월 12일(향년 68세)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볼로냐 | ||
국적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신체 | 176㎝ | ||
소속 | 볼로냐 FC (1959~1975) 코네티컷 바이센테니얼스 (1975) | ||
국가대표 | 29경기 7골 (이탈리아 / 1962~1967) | ||
정보 더보기 {{{#!folding ▼ | 등번호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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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2. 선수 경력
2.1. 클럽
1959년 볼로냐에 입단, 1975년까지 16년간 볼로냐 FC에서 활동했고 391게임에 출장해 43골을 기록했으며 63-64시즌에 볼로냐 FC의 23년 만의 세리에 우승을 주도했다. 35세 때 코네티컷 바이센테니엘스로 이적했으나 2게임만 출전하고 은퇴했다. 사실상 볼로냐에서 선수 경력을 마감한 원클럽맨이었다.2.2. 대표팀
2.2.1. 1962 월드컵
1962 월드컵은 불가렐리가 처음 출전한 대회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은 2조에 배정되었다. 1차전은 서독전. 치열한 경기를 벌였으나 0:0 무승부를 거뒀다. 2차전 상대는 개최국 칠레. 이 게임에서 이탈리아 대표팀과 칠레 대표팀은 집단 난투극을 벌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은 0:2 패배를 당해 탈락 위기에 봉착했다.불가렐리는 3차전 스위스전에 출전했고 후반 20, 22분에 골을 기록해 3:0 승리를 주도했으나 결국 1승 1무 1패로 2승 1패를 기록한 칠레에 밀려 조 3위로 탈락했다[1].
2.2.2. 1966 월드컵
1966 월드컵에 불가렐리는 주장으로 출전, 이탈리아 대표팀은 4조에 배정되었다. 1차전은 칠레전. 이탈리아 대표팀은 전반 8분 마촐라의 골, 후반 43분 바리손의 골로 2:0 완승을 거둬 설욕에 성공하나 2차전 소련전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1 패배를 당해 또 탈락 위기에 봉착했다.3차전은 북한전.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우승 배당률은 20%로 50%를 차지한 브라질, 25%를 차지한 잉글랜드에 이은 3위였고 북한 대표팀의 우승 배당률은 1%로 16개국 중 16위였다.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모두가 이탈리아 대표팀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계속 북한 대표팀의 골문을 두드렸으나 골을 기록하지 못했고, 전반 34분 북한 대표팀의 역습 찬스에서 불가렐리는 박승진에 태클을 걸어 역습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박승진의 몸이 불가렐리의 다리 위로 떨어졌고, 불가렐리는 부상을 입어 이탈했다[2]. 주장이 빠져 10명이 된 이탈리아 대표팀은 결국 전반 42분 박두익의 골로 0:1 패배를 당해 1승 2패로 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다. 불가렐리는 1년 후 대표팀을 은퇴, 유로 1968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는 않았다.
3. 플레이 스타일
볼로냐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완전체 미드필더로 불리는 선수로 탁월한 오프더볼과 볼키핑, 넓은 시야를 기반으로 한 패스와 압박이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였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기복이 없었다는 것. 리더십도 뛰어나 볼로냐 FC와 대표팀에서 모두 주장이었다.현 세리에 최우수 미드필더상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불가렐리상이고, 카펠로는 '불가렐리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드필더'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