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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1:30:21

집강소

동학농민혁명
東學農民革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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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역할4. 조직 구조


1. 개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측이 농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농민 자치 기구로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 각 고을마다 설치한 접(接)의 수령인 접주를 집강이라고 한 데서 유래 한것으로 알려져있다.

2. 역사

당시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일대를 휩쓸무렵에 치안이 어려운 상황에 치안질서와 지방행정이 마비되었을때 동학농민군과의 협상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으로 말해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민간행정기관으로 생각하면 된다.

동학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을 서둘렀으나 나주, 남원 등에서는 관군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으며 1894년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범궐(犯闕)하여 고종의 신변을 확보하고 친일내각을 세우자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 결국 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사태로 이어진다.

3. 역할

지금으로치면 지방 행정 감독, 민간 소송관리에 교육문화 증진을 맡아서 한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과 관료들의 부정부폐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에 대한 반영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4. 조직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