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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2 23:57:04

추석양

추석양
秋夕陽
파일:20240117_125201.jpg
본명 이종철(李鐘澈)
출생 1925년 6월 12일
경기도 경성부 누하동
사망 2000년 5월 22일
학력 경성영창중학교 - 졸업
가족관계 슬하 7남매

1. 개요2. 생애3. 출연작
3.1. 영화3.2. 연극3.3. 드라마
4. 수상 경력5.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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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남성 배우.

2. 생애

파일:추석양1.jpg
1940년 15살의 추석양
1925년 경기도 경성부 누하동에서 출판업을 하던 이원규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소년기 때 인현공립보통학교(현 서울광희초등학교)를 거쳐 영창중학교(현 성동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재학 당시인 1945년에는 일본군의 징집이 성행하자 그도 해군에 지원하고 말았으나, 입대일을 8일 앞두게 되는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했다. 부친은 당시 출판업을 하는 터라 김영만, 안종화 등의 연극/영화계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고, 이에 따라 그를 예능계로 보내고자 하여 극작가 김영수에게 맡겨져 초기에는 원고 심부름 등을 하다 KBS 성우로 연기에 입문해 김 작가로부터 '추석양'이란 예명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수 밑에서 혹독한 대사 암기 등의 훈련을 받았고, 1947년 극단 '신청년'의 연구생으로 입단하여 배우 생활을 시작한 뒤 이듬해 <혈맥>으로 데뷔했다. 1949년 상록극회, 1952년 극예술협회 등지를 전전하며 연극배우로의 입지를 다졌고, 1950년 이경선 감독의 영화 <놀부와 흥부>를 통해 은막에도 처음 발을 디뎌 일생의 상당수에 걸쳐 <막난이비사(1955)>, <춘향전(1957)>, <바람불어 좋은 날(1980)> 등지의 숱한 영화, 연극, 드라마에 다방면으로 나왔는데, 주로 바보 혹은 악역을 맡아 감초 연기를 선보였다. 2000년 5월 22일 새벽 3시 30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3. 출연작

3.1. 영화

3.2. 연극

3.3. 드라마

4. 수상 경력

5. 참고 자료



[A] 제작은 1965년에 했다.[A] 제작은 1965년에 했다.[3] TBC 드라마 <나는 몰랐다>의 극장판.[4] 제작은 1980년에 했다.[5] 한국영화아카데미 제1차 실습작품.[6] 제작은 1984년에 했다.[7] 제작은 1985년에 했다.[8] 제작은 1989년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