辻本憲三 | |
출생 | 1940년 12월 15일 |
가족 | 반려 츠지모토 미사코(辻本美佐子)[1] 첫째 츠지모토 하루히로(辻本春弘)[2] 둘째 츠지모토 요시유키(辻本美之)[3] 셋째 츠지모토 료조(辻本良三)[4] |
1. 개요
일본의 사업가. 게임 제작사인 아이렘과 캡콤의 창업자이자 캡콤의 현 CEO이다. 다만 명목상 CEO직에 있는 것이라고 하며 실제로는 경영 일선에 물러나 있는, 사실상 은퇴한 상태라고 한다. 현재 캡콤의 실질적인 CEO는 직함상 COO이자 후술할 장남 츠지모토 하루히로이다.캡콤 외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북부에 위치한 대규모 와인 생산지 나파 밸리에서 켄조 에스테이트(Kenzo Estate)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켄조 에스테이트는 소믈리에들로부터 캘리포니아 와인답지 않은 농후한 향기와 풍부한 맛을 갖추고 있다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야간학교 학생에서 게임회사 사장까지, 캡콤의 아버지 츠지모토 켄조 上편, 야간학교 학생에서 게임회사 사장까지, 캡콤의 아버지 츠지모토 켄조 下편 참고.2.1. 게임 사업
2010년 8월 2일 TV도쿄에서 방영된 종합토크쇼 '닛케이 스페셜 캄브리아 궁전'의 게스트 코너인 무라카미 류의 경제 토크라이브에 출연[5]하여 밝힌 자신의 성공담은 다음과 같다. 나라현의 빈농[6]의 아들로 태어나 나라 현립 고등학교 졸업 후 1963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의 이름을 딴 잡화점을 창업한다. 상호명은 츠지모토 상점. 그가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무렵으로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파칭코 기계에 손님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게임이 향후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974년에는 아이렘을 창사. 스페이스 인베이더로 유명한 타이토에서 1978년 10월, 타이토 회장으로 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변종 인베이더 게임(IPM 인베이더)을 출시한다. 그러나 최대주주인 나나오와의 불화로 아이렘을 퇴사하고 1983년에 캡콤을 창사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그리고 2001년에는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면서 CEO로 취임, 실질적인 경영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2.2. 와인 산업
미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나파밸리의 와이너리 사업에 뛰어드는 인물은 켄조가 최초였기 때문에 미국 와인 업계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켄조는 나파 밸리[7]에 소재한 자신의 별장과 승마장을 철거하고 토지를 추가 매입해 포도농장과 양조시설을 세웠다. 그리고 15년 동안 은행융자 없이 개인돈으로 백억 엔에 달하는 거금을 쏟아부어 마침내 201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와이너리 켄조 에스테이트(Kenzo Estate)를 열고 와인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켄조의 와인은 출시되자 마자 호평을 받고 고급 레스토랑마다 주문이 쇄도, 샌프란시스코 부유층으로부터도 높은 호응을 얻는다. 켄조 에스테이트 관련한 공식석상에는 노구를 아끼지 않고 직접 나와 홍보하는 놀라운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 때문에 구글에서 辻本憲三로 사진을 검색해보면 대부분 그가 직접 와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게임회사 캡콤의 경영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있기때문에 캡콤의 공식석상에서 노출한 모습이 적어지고 있다.와인 애호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와인만큼은 이해타산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조예도 깊어서 1976년 파리의 심판사건 이후 캘리포니아 와인에 줄곧 연구와 관심을 쏟아왔다고 한다. 10여년동안 1만여병을 마시며 본인이 만든 와인과 비교를 했다고. 와인의 이름을 짓는데도 2년 가까이 고민했다고 한다.# 본인의 평가가 좋아진 만큼 켄조 브랜드 와인을 마셔본 소감도 있을 법 하나 최저가 제품이 10만원 정도고, 생산지 투어를 갈 정도의 본격적인 애호가만 호평을 할 뿐 그리 알려져 있진 않다.
2014년 캘리포니아 강진으로 인해 켄조 와이너리 시설들의 대부분이 박살났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지진 사태 후 하루만에 언론을 통하여 '다행히도 우리 사업체는 지진으로부터 무사했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와인산업 홍보 석상에서도 잘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근황 소식도 잘 들리지 않고 있다.
3. 본업인 게임은 도외시한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암흑기 시절, 주요 스타 디렉터들 및 개발진들이 대거 이탈하고 게임들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으며 DLC 남발로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었던 시절, 유저사이에서는 츠지모토 켄조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았다.[8] 당장 위 짤방만 해도 크리에이터 주도와 매니지먼트 주도의 경우 방향성이 다를 뿐 그 자체는 옳고 그름이 없지만 당시 캡콤에 대한 여론이 워낙 나빠서 우선 까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츠지모토 켄조가 개발자를 천대한다든가 게임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9] 한때 무리한 DLC 남발로 유저들의 원성을 들은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캡콤만큼 일본 업계에서 기술 개발에 열심인 곳 역시 닌텐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과거 스트리트 파이터2 이전 마작 학원을 만들려고 할때 츠지모토는 내일 모레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캡콤은 이런 걸 만들지 않는다'라며 No를 외쳤고, 사원들은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기 위해 일과시간 이외, 휴일에 몰래 만들고 자회사 같은 곳을 만들어 팔아야 했다고 하며 암흑기 시절에는 새로운 게임 엔진 및 새로운 제작 스튜디오 등 새로운 제작환경을 구축하느라 자금이 부족해 DLC 판매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장 시절에는 게임 제작에도 직접 관여하기도 했는데 파이널 파이트 같은 게임의 초기 아이디어를 낸 것도 켄조 본인이고, 초기작의 경우 몇몇 게임들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수치를 튜닝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개발진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장이었는데 단적으로 야스다 아키라 왈, '러쉬 앤 크러쉬'(1986)을 낼 즈음 회사가 많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전사원 연수여행을 가서 전원에게 금일봉을 돌리고, 지금은 세대교체과 신입교육의 시기이니 매출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 앞으로도 기대한다고 하여 엄청나게 일 할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많은 기업이 아웃소싱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요즘 오히려 파견직을 축소하고 정사원을 최대 2,500명까지 늘린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10] 이밖에도 캡콤은 크런치는 있지만 적어도 급여는 제 때 맞춰 준다고 하며 직원들의 자녀와 육아를 위한 유치원집이나, 초등학생 자녀들의 학원을 설립하는 등 직원 복지에 신경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희대의 사기꾼 이나후네 케이지 등 캡콤 출신 크리에이터들이 캡콤을 퇴사한 이후 대부분 캡콤 시절과 달리 제대로 된 작품들과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11] 원성 받던 경영 방침을 대거 수정하고 비판받던 부분을 수용한 현 캡콤의 경영 방침은 나름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 결과 바이오하자드 7을 기점으로 몬스터 헌터: 월드, 록맨 11, 바이오하자드 RE:2, 데빌 메이 크라이 5, 몬스터 헌터 월드: 아이스본 등의 주옥같은 명작들이 잇달아 나와 게이머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2019년의 츠지모토 켄조의 인터뷰를 보면 "캡콤의 경영회의 자료에는 문장은 없고 대부분 숫자이다"라는 언급을 했으나 이는 "경영진의 임무는 숫자를 보고 회사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는 "급여로 직원에게 보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히는 등, 결론적으로 한때의 부진에 잘못이 없지는 않으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영인이라고 할 수 있다.
4. 기타
- 자식농사를 성공적으로 잘 지은 편이다. 특히 아들들이 상당한 게임 개발 및 경영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일단 회사는 탄탄대로인 편.[12] 사내 개발자 출신인 오카모토 요시키는 이러한 가족 경영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였다.영상 이 영상에서는 오카모토가 츠지모토 켄조를 엄청나게 까대지만 다른 영상에선 경영 수완이나 미래를 보는 안목 같은 걸 상당히 칭찬하기도 하고 은인이라 생각한다며 존중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가족 경영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
- 과거 스트리트 파이터 영화에 카메오로 출현한 적이 있다. 가일의 일장연설에서 군인들을 오버랩할 때 아주 잠깐 지나가듯 나온다.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에서는 켄 스테이지 오른쪽 끝에서 수건을 들고 있는 웨이터로 나온다.
- 퀴즈 캡콤 월드에서는 최종 보스로 나온다.
[1] 2015년 7월 2일 사망, 향년 82세. 말년에는 켄조의 문란한 여자관계로 인해 부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아 이혼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재판 중 미사코가 사망함으로 인해 재판이 중단되었다. 재판 당시 첫째와 둘째 아들인 하루히로와 요시유키조차도 어머니의 편에 서서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진술을 했으며 회사의 신용도에 영향이 갈 수 있어 업무 연락에 관해서도 통제가 들어갔었다는 것을 보면 켄조의 여자관계는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관련 기사[2] 캡콤의 COO(사장)이자 츠지모토 켄조의 후계자.[3] 츠지모토 가문의 자산관리회사이자 캡콤의 최대주주사인 유한회사 크로스로드의 사장(대표).[4]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프로듀서로서 게임 개발자.[5] 하단의 '본업인 게임은 도외시한다?' 문단의 사진은 해당 방송의 출연 당시 인터뷰에서 캡쳐한 사진이다.[6] 실제로는 카시하라(橿原) 시에 위치한 조그만 대장간에서 4남으로 태어났다.(#)[7] 캘리포니아 주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 미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30%는 여기서 나온다. Windows XP의 그 유명한 배경화면의 장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8] 자세한 내용은 캡콤/비판 항목 참조.[9] 단적으로 그가 처음 설립한 회사인 아이렘이 어떤 회사인지 생각해보자. 비록 츠지모토가 떠난 이후였지만 아케이드 시절 횡스크롤 슈팅 게임계의 세기의 역작인 R-TYPE 시리즈와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절체절명도시 시리즈를 만든 회사이다.[10] 현재 캡콤의 직원 수는 총 3,000여명이다.[11] 이밖에도 캡콤을 대표하는 유명 스타 개발자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오카모토 요시키는 훗날 몬스터 스트라이크가 대히트를 기록하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하기 전까진 성과가 없었고, 미카미 신지는 디 이블 위딘 이후로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나 그나마 나름의 팬층이 있어 탱고 게임웍스를 이끄는 중이다. 캡콤을 떠난 이후 처음부터 자리를 잡은 스타 개발자는 카미야 히데키 정도가 유일하다.[12] 그의 아들들인 하루히로와 료조는 각각 경영 능력과 개발 능력이 뛰어나며 요시유키는 회사의 재무 자산관리에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