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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 왕국 제20대 국왕 치드키야 צִדְקִיָּהוּ | Zedekiah | |||
<colbgcolor=#0038B8,#467EFF><colcolor=#fff> 출생 | 기원전 618년경 | ||
예루살렘 | |||
사망 | 기원전 550년경 | ||
바벨론 | |||
재위 기간 | 제20대 남유다 왕국 국왕 | ||
기원전 597년 ~ 기원전 586년 (약 1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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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 | 여호야긴 | ||
부모 | 아버지 요시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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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경의 등장인물로 남유다 20대 왕. 제18대 왕 예호야킴의 동생이자 19대 왕 예호야킨의 숙부였다.2. 상세
하지만 신바빌로니아가 세운 왕이었던지라 다들 그를 일종의 섭정으로만 여겼고, 진짜 왕은 당시 관념으로는 예호야킨이었다. 하지만 훗날에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왕으로 취급해주는 편. 전임자들보다 예언자들에게 관대한 편이었기에 그나마 대우 받은 편에 속한다. 당장 예레미야는 치드키야가 천수를 누리고 백성들이 슬퍼하긴 할 거라고 했다.상당히 심약한 왕이었으며[1] 속으로는 그를 왕 취급도 안 해주는 대신들에게 휘둘리는 입장[2]이었고, 이에 즉위 9년, 기어코 이집트와 힘을 합쳐서 신바빌로니아의 성미를 건들게 된다.[3] 이 때 신바빌로니아가 워낙 국력이 큰 대국[4]인지라 문무백관들이 죄다 말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드키야는 고집을 부려가면서 기어이 신바빌로니아를 침공했다. 이에 심기가 불편해진 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이집트 + 남유다 연합군과 맞붙어 전쟁을 치렀다. 지원군이랍시고 믿었던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박살나 도망치듯 철군했고, 치드키야는 혼자서 바빌로니아를 상대해야 할 처지가 된다.
치드키야는 당시 예언자로 활동하던 예레미야를 두 차례 불러 도움을 요청했으나, 예레미야는 모두 항복을 권유했다. 성경에 따르면 애초에 유다가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된 원인은 BC 598년 여호야킴 시기 천벌로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침공해 복속시켰기 때문인데, 바빌로니아에 반기를 들겠다는 것은 하느님의 처벌을 거부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 예레미야는 이 일로 인해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되며[5]우물에 던져져 죽을 뻔하거나 성을 나가다가 붙잡혀 갇히는 등의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이런 예레미아의 의견에도 치드키야는 끝내 항복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587년에 예루살렘 공성전으로 이들은 맞붙었다.
결과는 치드키야 11년 4월 9일, 예루살렘 성 함락.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압승이었다.
치드키야는 가족들을 데리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쳤지만 결국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여리고에서 생포당했다. 그 이후 립나까지 압송된 치드키야 가족은 누구보다도 처참한 신세가 되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치드키야를 기둥에 묶고, 그의 두 아들을 참수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한 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치드키야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끌고갔다.
그래도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그 사건 후로 남유다 전역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건 아니다. 예루살렘 자체는 물론 많은 고초를 겪고 솔로몬 성전도 훼파되고 말았으며 많은 예루살렘 주민이 붙잡혀 갔지만, 이 당시 신바빌로니아로 잡혀간 인구는 최근 고고학적 성과로는 예루살렘 근처 주민 2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꽤 많긴 하지만 많은 이들의 뇌리에 잘못 새겨진 것 마냥 유다 전역이 횅하니 비어버린 결과는 아니었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 부른다. 한편 바로 이 사건 이후 암몬, 모압, 에돔인들이 유다인들이 떠난 자리에 꽤 많이 이주하게 되며, 얄궂게도 유독 암몬 일대가 경제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걸로 관찰된다. 유대인들이 암몬인들과 악감정이 커졌던 건 주로 이것이 원인인데, 실은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유대와 동질성이 커지기도 했기에[6] 암몬, 모압, 에돔이 훗날 하스몬 왕조 때 한꺼번에 유대에게 강제 흡수되어 정체성을 소멸당하는 단초 역시 발생하게 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3. 기타
성경 드라마인 더 바이블 5화에서 치드키야의 최후가 나온다.[1] 다만 예호야킨처럼 사치를 부렸다던가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은 아합처럼 악행을 거의 저지르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해방시킨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이라고 한 정도?[2]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라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3] 성경에서는 막대한 조공에 국정이 바닥을 긁을 지경이 되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정한 일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여년 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도 아시리아에 대한 막대한 조공 때문에 재정이 바닥나자 호세아가 아시리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던게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4]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로마 제국, 원나라, 청나라, 그리고 지금 현재의 미국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의 강대국이 이 시대의 신바빌로니아였다. 한마디로 천조국 소리를 들을 만큼 국력이 강했다.[5] 예레미야라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걸 좋아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단지 하느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예언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며 종교적인 시각을 배제한다고 쳐도 이 당시 남유다는 중동과 오리엔트의 초강대국인 신바빌로니아를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6] 그전부터도 실은 유대, 암몬, 모암, 에돔, 이스라엘 모두 거의 같은 계통인 민족이며, 아람인들 또한 언어 계통은 이들과 거의 비슷하여 현대 한국인들 감각으로는 그냥 같은 족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