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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깁슨

커크 깁슨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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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4 1988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4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마이크 보디커
(볼티모어 오리올스)
커크 깁슨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조지 브렛
(캔자스시티 로열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안드레 도슨
(시카고 컵스)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1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올해의 감독 상
버드 블랙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커크 깁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데이비 존슨
(워싱턴 내셔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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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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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대
1대
벅 쇼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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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2000
2대
밥 브렌리
파일:미국 국기.svg

2001~2004
3대
알 페드리크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004
4대
밥 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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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9
5대
A.J. 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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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6대
커크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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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4
7대
앨런 트래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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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대
칩 헤일
파일:미국 국기.svg
2015~2016
9대
토리 러벨로
파일:미국 국기.svg
2017~
파일: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엠블럼.svg
: 월드 시리즈 우승
}}}}}}}}}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3번
윌리 호튼
(1964~1977)
커크 깁슨
(1979~1986)
해리 스필먼
(1986)
해리 스필먼
(1986)
커크 깁슨
(1986~1987)
토리 러벨로
(1988~1989)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3번
팀 리리
(1987)
커크 깁슨
(1988~1990)
에릭 캐로스
(1991~2002)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30번
팻 태블러
(1988~1990)
커크 깁슨
(1991)
커트 윌커슨
(1992)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번호 25번
바비 보니야
(1986~1990)
커크 깁슨
(1992)
윌 페니피더
(1992~199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23번
마크 레이터
(1991~1992)
커크 깁슨
(1993~1995)
게이브 캐플러
(1999)
}}} ||
파일:kirk-gibson-tigers.jpg
<colbgcolor=#182d55> FanDuel Sports Detroit
커크 헤럴드 깁슨
Kirk Harold Gibson
출신 1957년 5월 28일 ([age(1957-05-28)]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미시간 주 폰티악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신체 190cm, 97kg
소속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79~198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8~1990)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1)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3~1995)
지도자 경력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벤치코치 (2003~2005)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벤치코치 (2007~201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2010~2014)
1. 개요2. 경력3. 감독 성적4. 여담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현재는 친정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지역방송 채널에서 해설자로 일하고 있다.

2. 경력

가장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 1984년 ALCS[1], WS[2] 맹활약으로 앨런 트래멀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으로도 알려졌지만, 선수 시절 가장 유명했던 것은 다저스가 우승한 시리즈이기도 한 1988년 월드 시리즈에서의 1차전 끝내기 홈런.

깁슨은 1987 시즌이 끝나고 FA로 다저스[3]로 이적했는데, 이적 후 스프링캠프에서 같은 팀의 제시 오로스코[4]가 깁슨의 모자에 구두약을 발라놨는데, 깁슨은 이에 크게 분노하여 연습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도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 버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깁슨의 성격은 팀에 좋은 영향을 주며 이적 첫 해부터 팀의 리더 수준의 입지를 확보하면서 팀을 이끌었고, 본인 또한 팀 내 최고 타격으로 맹활약하며 팀은 투타 양면에서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NL 서부 1위를 차지, 동부 지구 1위 팀 뉴욕 메츠를 상대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모두 메츠의 승리를 예측[5]했으나 4경기에 3번 선발로 등판해 7차전 완봉승과 세이브 1개를 거둔 오렐 허샤이저의 맹활약과 2선발 팀 벨처, 포수 마이크 소시아의 지원 덕에 7차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6]와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된다.

그러나 팬들은 이어질 월드 시리즈에서 더 이상 깁슨의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NLCS 5차전에서 도루를 시도하다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데 이어 7차전에서는 고의사구 후 후속타자 마이크 마셜의 땅볼 때 2루로 슬라이딩하다 오른쪽 무릎까지 다치면서 정상적인 주루나 수비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깁슨이 선발 명단에서 빠지고 치른 1차전에서 1회말 미키 해처가 선제 투런포를 쏘아올리며 기선을 제압하는 듯 했지만 2회초 호세 칸세코가 그랜드슬램으로 화답. 팀 벨처가 부담감 때문인지 2이닝 동안 5사사구를 내주자 불펜만큼은 리그 최고 수준이던 다저스는 선발을 2이닝만에 강판시키는 강수를 두며 오클랜드의 강타선을 잠재웠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선발 데이브 스튜어트도 8회까지 추가실점을 단 1점만 허용하며 리드를 지켜냈고, 9회말 등판한 것은 토니 라 루사 감독의 이론을 실현시키며 마무리 투수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데니스 에커슬리였고, 역시나 에커슬리는 마이크 소시아를 유격수 팝플라이로, 제프 해밀턴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순식간에 2아웃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토미 라소다 감독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직전 시즌까지 오클랜드의 강타자였지만 해당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최악의 성적을 찍은 마이크 데이비스를 대타로 투입했다. 에커슬리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꽂아넣고도 작년까지 같은 팀에서 보아 왔던 그의 타격 능력을 의식해서인지 볼을 계속 빼다 결국 4연속 볼로 볼넷을 내주게 된다. 다음 타석은 투수였으므로 대타 사용은 기정사실이었는데, 라소다 감독은 여기서 다리 부상으로 빠졌지만 타격 능력은 팀에서 최고였던 깁슨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깁슨의 다리 상태를 고려하면 안타성 타구를 날려도 잘못하면 우익수 앞 땅볼 따위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안타를 치고도 아웃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 정도가 있었는데, 깁슨이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1루를 밟을 수 있을만한 좌익수쪽 안타가 나오거나[7], 아예 깊숙한 장타를 치거나, 아니면 끝내기 홈런을 치거나. 그게 아니라면 경기가 끝나는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 해 에커슬리의 활약이 어마어마했고 8월 24일 이후로 단 하나의 홈런도 맞지 않았기에 쉽지 않은 승부. 그렇게 깁슨은 홈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타석으로 들어왔고...

깁슨은 정말로 끝내기 홈런을 치고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를 도는 장면이 압권. 1988년 월드 시리즈에서 깁슨은 이 한 타석에만 들어섰지만, 그 타석 하나가 깁슨을 다저스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1완봉승+2실점 1완투승에 NL 사이영 상+NLCS MVP+WS MVP를 석권한 오렐 허샤이저보다도 훨씬 더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중. 그리고 이 홈런은 36년 이후 월드시리즈프레디 프리먼이 쳐낸 끝내기 홈런으로 재현[8]되었다. 1988년 같은 해에 깁슨은 NL MVP까지 수상했으니 깁슨의 최고의 시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10 ARI 83 34 49 .410 지구 5위 중도 취임
2011 162 94 68 .580 지구 1위 DS 탈락
2012 162 81 81 .500 지구 3위 -
2013 162 81 81 .500 지구 2위 -
2014 159 63 96 .396 지구 5위 중도 경질
<rowcolor=#373A3C> 총계 728 353 375 .485 1DS ­

4. 여담

5. 관련 문서



[1] ALCS MVP 수상. WS MVP는 앨런 트래멀이 가져갔다.[2] 첫 4경기에서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지만 마지막 5차전에서 5타석 4타수 3안타 2홈런 1볼넷, 5타점 3득점으로 팀의 8:4 승리를 견인했다. 앨런 트래멀은 반대로 4경기 맹활약 후 해당 경기에선 5타석 4타수에서 1땅볼 2뜬공 1직선타를 쳤는데, 이를 완벽하게 메워버렸다. 트래멀은 타격감 회복이 잘 되지 않자 결국 9회에는 희생번트를 대서 1사 2, 3루를 만들었는데, 다음 타자인 깁슨이 득점권이고 뭐고 상대 마무리 투수 구스 고시지에게 쓰리런 홈런을 쳐 버려서 무안하게 만든 건 덤(원래 샌디에이고는 5차전에서 불타올랐던 깁슨을 고의4구로 거르려고 했는데, 고시지가 그걸 거절하고 정면승부를 택했다가 그대로 홈런을 맞았다.). 그래도 4차전까지 16타수 9안타, 장타율 1.000을 찍은 트래멀이었기에 MVP는 지켜냈다.[3] 당시 다저스는 1970년대와 80년대 초 내셔널리그의 강호로 대접받던 때와는 달리 우승 전력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되던 팀으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밥 웰치, 오렐 허샤이저가 있던 투수진은 강력했으나 타선은 파크팩터를 감안해도 5년간 1985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 리그 평균을 크게 밑돌았으며, 특히 직전 해인 1987년에는 리그 득점, OPS 등 주요 타격 스탯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시즌 다저스는 선발 투수진은 작년 트레이드해온 팀 리어리와 가능성을 보인 신인 팀 벨처까지 있어 문제없다는 판단으로 선발투수 밥 웰치, 맷 영과 유망주 한 명을 떠나보내고 불펜 투수 제이 호웰과 제시 오로스코, 유격수 알프레도 그리핀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뉴욕 메츠와의 삼각 트레이드로 얻어온 뒤, 타선 보강을 위해 마이크 데이비스를 오클랜드에서 데려오는 한편 커크 깁슨을 FA로 잡아온 것. 깁슨은 곧바로 주전 좌익수로 낙점되었고 지난 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던 주전 좌익수 페드로 게레로는 3루로 이동했다가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부진으로 선발진이 예상 외로 삐걱거리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발투수 존 튜더를 상대로 트레이드된다.[4] 2년 전 메츠의 우승에 큰 기여를 했던 불펜 투수이자, 무려 46세까지 현역으로 뛰며 1,252경기 등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투수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전체 1위 기록. 심지어 47세에조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마이너 계약까지 맺어가며 뛰려고 했다가 몸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결국 포기했다.[5] 다저스가 리그 최소 실점 2위를 기록했으나 유일하게 넘지 못한 그 팀이 메츠였으며, 다저스처럼 타격이 약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게 경기당 득점이 7위 (다저스 23위), 홈런, OPS+가 3위(다저스 각각 26, 25위)였다.[6] AL 동부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올라왔는데, 104승 58패 0.642의 오클랜드가 13경기차 1위를 차지한 데 반해 보스턴은 89승 73패, 7개팀 중 지구 1위인데도 승률은 0.549에 2위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1경기 차, 밀워키 브루어스토론토 블루제이스와는 2경기 차에 5위인 뉴욕 양키스조차 3.5경기 차이에 심지어 AL 서부 2위인 미네소타 트윈스가 동부 1위 보스턴을 추월할 지경이었으니 오클랜드가 압승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실제로도 보스턴은 4연패로 박살이 났다. 다만 개별 경기들 자체는 의외로 선전했는데, 결국 계속해서 한 끝 차리로 무너져내리며 그 결과물은 '최초의 1이닝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에게 시리즈 전 경기 세이브라는 진기록 헌납.[7] 특히나 깁슨이 부상 여파로 스윙이 정상적이지 않으리라 예상해서 단타가 나올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고, 그래선지 단타 하나로 홈을 파고들기 위한 다저스 측의 도루 작전 시도와 에이스의 견제가 집요하게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다저스의 도루가 성공했지만, 이후의 상황 덕에 의미가 없어지긴 했다.[8] 좌타자, 부상선수, 심지어 투수의 콧수염, 1차전, 그리고 결정적으로 홈런이 나온 시간의 동시성까지 거의 평행우주라고 봐도 될 정도로 깁슨과 프리먼의 홈런은 거의 같을 정도로 임팩트가 있었다. 괜히 조 데이비스가 "She is Gone. Gibby, Meet Freddie!"이라고 홈런콜을 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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