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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Thielemann
1959년 04월 01일~
클래식 지휘자. 도이치 오퍼 베를린 음악감독,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그리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지휘자를 거쳐, 2024년 9월부터 베를린 슈타츠오퍼 및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1. 생애
195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음대에서 비올라와 피아노를 공부하고, 19살 때 베를린의 도이치오퍼에서 오페라 코치로 데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조수도 했다. 유명해지기 이전, 그는 칼스루헤의 겔젠키르헨, 뒤셀도르프의 라인 도이치오퍼에서 카펠마이스터로 재직하다가, 1991년에 베를린 도이치오퍼로 돌아와서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지휘한다. 이 때 다니엘 바렌보임을 도와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Bayreuth Festspielhaus)에서도 있었다.1991/92시즌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로 미국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뉴욕의 메트 오페라와 계약을 맺어 활동한다. 그러다가 1997년에 다시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로 돌아와 음악감독을 역임하다가, 운영진과 갈등으로 내려와 2004년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되었다. 2011년에도 운영진과의 갈등을 겪고 뮌헨 필하모닉을 떠나,[1] 2012년 하반기부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수석지휘자로 직을 옮겨 현재까지 재직 중이며, 2023/24년 시즌을 끝으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떠날 예정이다.[2]
2000년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정식으로 데뷔한 후, 정기적으로 지휘하다가 2015년에 정식으로 페스티벌 역사상 첫 음악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음악감독 데뷔 두번째 해인 2016년부터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와의 갈등이 논란이 되었다.[3][4] 성격 문제설이 괜히 대두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뉘른베르크 오퍼, 베를린 도이치오퍼, 바이로이트,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등 관계자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곳이 없다. 더 이상 계약 연장 없이 2020년 틸레만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음악감독 계약이 만료되었고, 이후 페스티벌 측은 별도로 음악감독을 선임하지 않았다.
한때 사이먼 래틀 이후의 베를린 필 수석지휘자로 유력하게 거론되었으나, 단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낙선하였다. 결국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인 젊은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가 신임 수석지휘자로 선출되었다.
틸레만은 2013년부터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축제 음악감독을 맡았으나, 축제 경영진과의 갈등 끝에 2022년까지만 음악감독직을 맡기로 하였고, 2023년부터 2025년까지는 매 년 축제 경영진 측에서 해당연도의 지휘자와 악단을 선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5] 2026년부터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키릴 페트렌코가 2025년까지로 예정된 바덴바덴 음악축제 상주 연주자로서의 계약을 마치고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축제의 상주 연주자로 복귀할 예정이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관련해서는 60세 생일을 맞이하는 해인 2019년 신년음악회를 지휘한 바 있으며, 65세를 맞이하는 2024년에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예정이다.
베를린 도이치오퍼, 바이로이트 음악축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을 거친 이력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독일 오페라에서 매우 강점을 보이며, 2010년대 이후에 들어서는 이 분야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거장의 자리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페라와 콘서트에 모두 능통한 지휘자이며, 이러한 점 때문에 오페라와 콘서트 두 분야를 모두 오가는 악단의 대표격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 초청을 자주 받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에는 리카르도 무티 등과 더불어 매년 빈 필하모닉 정기연주회와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지휘를 한 해도 빠짐 없이 모두 임하고 있다.[6]
2023년 9월 27일, 다니엘 바렌보임의 후임으로 2024년 9월 베를린 슈타츠오퍼 및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음악감독에 취임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2004년 베를린 도이치 오퍼를 떠난 이후로, 악단은 달라졌지만 20년만에 자신의 고향인 베를린에서 다시 음악감독 포스트를 맡게 되었다.
2024년 4월 21일, 빈 필하모닉의 명예 단원으로 추대되었다.
2. 레퍼토리
몇 남지 않은 게르만계 혈통의 유명 지휘자이고, 카라얀과 푸르트벵글러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시대악기 연주 경향과 담쌓은 보수적인 해석을 추구하여 보수적 음악팬들에게 인기가 높다. 주로 베토벤, 브람스, 브루크너, 바그너, R.슈트라우스 등 정통 독일 레퍼토리에서 강점을 보인다. 이 중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서의 바그너 녹음, 빈 필하모닉과 남긴 브루크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녹음은 길이 회자될 명반으로 꼽히는 경우가 많다.그의 음반 데뷔는 1992년 EMI에서 출시한 테너 르네 콜로와 함께 한 독일 오페라 아리아 음반이다. 틸레만의 나이 만 33세 때이다.
그의 빈 필하모닉 데뷔 음반은 2000년 녹음을 진행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과 오페라 <장미의 기사> 모음곡이며, 이 레퍼토리로 2000년 10월 빈 필하모닉 실황 지휘 무대 데뷔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7] 이 음반을 필두로 빈 필하모닉과 함께 작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모든 음반도 매우 높이 평가 받는다.
빈 필하모닉과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녹음한 몇 없는 지휘자 중 한 명이며,[8]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서 바그너의 주요 오페라 10편을 모두 지휘한 적 있는 역사상 유이한 지휘자이기도 하다.[9] 그리고 빈 필하모닉 역사상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녹음을 마친 최초의 단일 지휘자이기도 한데,[10] 틸레만은 빈 필하모닉 이전에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이미 남긴 바 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는 1-9번을 녹음했고, 빈 필하모닉과는 1-9번 외에도 00번(혹은 -1번) F단조와 습작(0번) D단조 교향곡까지 11개를 전부 녹음하였다.[11]
그러나 협소한 레버토리로 비판을 많이 받는 편이며, 말러는 교향곡 3번과 8번 및 가곡을 제외하면 연주한 적이 거의 없다. 다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송년음악회와 정기연주회에서는 코른골트나 쇤베르크 등 다른 20세기 독오계 작곡가들의 곡들을 잘 연주하며, 칼 오르프, 한스 피츠너 등 곡도 녹음한 바 있다. 그리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음악회 지휘자로도 2회 이상 초청된 것을 보아, 독오계 왈츠나 폴카 음악 등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최근 비판을 의식해서 점점 레퍼토리를 늘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특이한 것은 독일어권 오페라만 지휘하던 틸레만이 2018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서 푸치니의 토스카를 지휘한 것. 그런데 토스카는 카라얀의 주력 레퍼토리 중 하나였던지라 이마저도 카라얀 따라하기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틸레만이 카라얀과 푸르트벵글러를 존경하기는 하나 레퍼토리에 차이가 많다. 카라얀과 푸르트벵글러 모두 독일권 음악에 강하기는 했지만 카라얀은 이탈리아 오페라나 프랑스, 러시아 음악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푸르트벵글러 역시 동시대 현대음악에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 틸레만의 주력 레퍼토리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 한정되어 있어 확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3. 내한공연 목록
1. 2007년 뮌헨 필하모닉- 일시/장소 : 2007. 11. 11.(일) 17시 / 성남아트센터
- 프로그램 : 돈 주앙(R.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R.슈트라우스), 교향곡 1번(브람스)
- 앵콜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1막 전주곡(바그너)
2. 2019년 빈 필하모닉
- 1일차 : 2019. 11. 1.(금) 20시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프로그램 : 교향곡 8번(브루크너, Haas 판본) / 앵콜 : 천체의 왈츠(요제프 슈트라우스) - 2일차 : 2019. 11. 2.(토) 20시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프로그램 :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 등(전석 초대 공연) 당시 3일차 공연도 있었으나, 해당 공연은 틸레만이 아닌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의 지휘로 대구에서 진행되었다.
3. 2022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 1일차 : 2022. 11. 28.(월) 19시 30분 / 롯데콘서트홀
- 프로그램 : 교향곡 2번(브람스), 교향곡 1번(브람스) / 앵콜 없음 - 2일차 : 2022. 11. 29.(화) 19시 30분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전석 초대)
- 프로그램 : 교향곡 5번(베토벤), 교향곡 2번(브람스) / 앵콜 없음 - 3일차 : 2022. 11. 30.(수) 19시 30분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프로그램 : 교향곡 3번(브람스), 교향곡 4번(브람스) / 앵콜 없음
4. 여담
- 유독 독오계 관현악단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칼라 극장이나 로얄 콘서트헤보우 관현악단과 같은 세계적인 악단들과의 공연을 종종 취소하는데, 독오계 관현악단과의 공연은 웬만해선 취소하지 않는다. 특히 빈 필하모닉 공연의 경우에는 다른 지휘자가 취소하면 틸레만이 도리어 대타로 지휘를 할 정도로 열정을 보인다. 실제로 2020년대에 들어서는 빈 필하모닉의 사운드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투톱 지휘자(나머지 한 명은 리카르도 무티)로 분류되며, 레퍼토리 측면에서나 언어적 관계 등을 고려하면 틸레만과 빈 필하모닉 간의 관계는 과거 칼 뵘과 빈 필하모닉 간의 관계와 유사하게 보일 정도이다.
- 1970년대의 지인들에 따르면 14살 때 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한다. 틸레만의 부모는 그가 절대음감을 가졌음을 그가 한살때 깨달았다고 한다...
모차르트?
- 전술했다시피,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커리어 초기에 바이로이트에서 다니엘 바렌보임과 같이 일할 때, 그가 바렌보임을 '유대인 얼간이'라고 조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2] 물론 어디까지나 설이니 맹신하지는 말자. 또, 베를린 도이치오퍼와 뮌헨 필하모닉에서 있을 때도 단원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단원들을 신뢰하지 않아 별명이 이 분이었다고 한다(...)
- 측근들에 따르면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광적으로 섬긴다고 한다. 틸레만에게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라고 권유했더니 "카라얀은 그런 거 만든 적 없다"라면서 일축했다고(...)[13] 교우관계도 신통치 않아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설도 있다. 한 지인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14]
- 여담으로 마마보이 및 게이라는 설은 있으나 검증되진 않았다. [15] 게다가 공개적인 극우 발언을 하고 송년음악회에 레하르의 곡 중 나치가 프로파간다에 자주 써먹었던 곡들을 무분별하게 선정하는 등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 후임으로는 로린 마젤이 선임되었으나, 마젤은 건강상의 이유로 취임한지 2년만에 사임하였고, 사임한 지 몇 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2] 후임으로 다니엘레 가티가 선임되었으며, 2024년 9월 취임 예정이다.[3] 2016년 개막작인 파르지팔을 지휘하고, 2020년에는 대망의 반지 4부작을 지휘하기로 한 넬손스였지만, 틸레만과의 갈등으로 중도에 내려가고, 결국 대타로 하르트무트 헨셴이 급작스럽게 섭외되는 사태가 벌어졌다.[4] 연습 세션 도중에 갑자기 틸레만이 나타나 넬손스에게 '강하고 직접적인 조언' 몇 마디를 했다고 한다...[5] 잘츠부르크 부활절 2023년 축제는 안드리스 넬슨스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이, 2024년 축제는 안토니오 파파노 경과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관현악단이 담당하였다. 2025년 메인 지휘자는 에사-페카 살로넨이며, 여러 악단이 함께 하는데 주요 악단은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이다.[6] 2000년대 이후 베르디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최고 거장으로 불리는 리카르도 무티와 더불어 오페라와 콘서트에 모두 능한 지휘자이다.[7] 지금에서의 틸레만이 지닌 명성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빈 필하모닉에 데뷔를 한 나이는 만 41세로 생각보다는 약간 늦은 면이 있다.[8] 한스 슈미트-이세르슈테트, 칼 뵘,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에 이어 6번째 지휘자이고, 틸레만 이후에는 현재까지 안드리스 넬손스 1명 뿐이다.[9] 10편은 니벨룽겐의 반지 시리즈 4편, 트리스탄과 이졸데, 탄호이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로엔그린,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파르지팔 등을 말한다. 19세기에 활동한 지휘자 펠릭스 폰 모틀 이후로 2018년 틸레만이 이 연주 기록을 달성했다.[10] 틸레만이라는 단일 지휘자에 의한 녹음 이전에는, 빈 필하모닉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나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의 지휘로 일부 번호만을 남긴 선집이 있기는 하나, 전집 형태로는 1960-70년대 1-9번까지 번호별로 지휘자를 선정하여 개별 녹음 진행 후 이를 묶은 빈 필하모닉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만이 있었다. 1번 클라우디오 아바도, 2번과 6번 호르스트 슈타인, 3-4번 칼 뵘, 5번 로린 마젤, 7-8번 게오르그 솔티, 9번 주빈 메타.[11] 두 전집 공통적으로 4번과 8번은 로베르트 하스 판본, 3번은 1877년 개정 레오폴트 노박 판본, 2번은 1877년 개정 윌리엄 캐러건 판본, 5-6-7-9번은 단일 레오폴트 노박 판본이 활용되었다. 다만 1번의 경우 드레스덴과는 1868년 세계 초연 토마스 뢰더 판본을, 빈 필과는 1891년 개정 귄터 브로셰 판본을 사용하였다. 1번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1877년 개정 레오폴트 노박 판본을 녹음한 적이 없는 점이 특이하며, 틸레만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남긴 1번 음반은 1868년 토마스 뢰더 판본 세계 최초 녹음이다.[12] 틸레만은 극구 부인했고, 바렌보임은 고소하겠다고까지 했으나, 결국은 잠잠해졌다. 일단 본인이 부정했으니 진실인지는 불명.[13] 이건 말이 안 되는게 카라얀이 활발히 활동하던 6,70년대에는 오늘날과 비슷한 컴퓨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 www이 개발되어 발표된 때가 카라얀이 서거한 다음해인 1990년이다. 매체의 활용에 적극적이었던 카라얀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누구보다도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14] 출처: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 'Let us now praise Thielemann'[15] 사실 지휘자에게 이런 문제가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