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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8 23:53:15

클로드 섀넌

<colbgcolor=#187FC3,#00001b><colcolor=#fff> Claude Shannon
클로드 섀넌
파일:external/www.peoples.ru/shannon_3.jpg
본명 클로드 엘우드 섀넌
Claude Elwood Shannon
출생 1916년 4월 30일
미국 미시간 주 페토스키
사망 2001년 2월 24일 (향년 84세)
미국 매사추세츠 주 메드퍼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학자, 교수
분야 수학, 컴퓨터과학, 전자공학, 암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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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7FC3,#00001b><colcolor=#fff> 별명 정보이론의 아버지
디지털의 아버지
학력 미시간 대학교 (전기공학 · 수학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 / 석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수학 / 박사)
소속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벨 연구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수상 스튜어트 발렌타인 메달 (1955)
IEEE 명예 훈장 (1966)
미국 국가 과학상 (1966)
하비 상 (1972)
클로드 E. 섀넌 상 (1972)
해롤드 펜더 상 (1978)
존 프리츠 메달 (1983)
교토 상 (1985)
마르코니 소사이어티 평생 공로상 (2000)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2004)
배우자 노마 바즈만 (1940년 ~ 1941년, 이혼)
베티 섀넌 (1949년 결혼)
취미 저글링, 외발자전거, 체스
종교 무종교(무신론) }}}}}}}}}

1. 개요2. 생애3. 업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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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지털 회로, 디지털 통신, 데이터 압축의 기반 이론을 거의 혼자서 다 만들어낸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 디지털 회로 이론과 정보이론의 창시자이다. 정보 엔트로피 개념과 비트라는 단어는 이 사람이 창안한 것이다. 디지털 회로 이론, 정보 이론 등 이전에 없던 중요한 학문 분야들을 여럿 창시했고, 신호처리, 이동통신, 유선통신, 데이터 압축, 암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현대 문명을 설계한 천재 수학자,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2. 생애

섀넌은 미시간 대학교에서 전기공학과 수학을 전공했고, MIT와 미시간 대학교에서 복수학위제로 전기공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섀넌이 대학원에 다니던 1930년대의 컴퓨터는 대부분 기계식 계산기 수준이었으며, 전자 컴퓨터는 특정한 종류의 계산만 수행할 수 있는 아날로그 컴퓨터밖에 없었다. 섀넌은 석사과정으로 아날로그 컴퓨터를 연구하다가, 부울 대수와 전자회로를 결합시켜 디지털 논리회로의 이론을 창시하여 석사논문으로 제출한다. 이때가 만 21세. (역사상 최고의 석사논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현대인들이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를 사용하고, 이진수를 사용하는 것은 이 논문의 영향이 크다.

이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폰 노이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쿠르트 괴델과 같은 대가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으며, 2차대전의 발발로 벨 연구소에서 화기제어 및 암호해석가로 일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앨런 튜링과 매일 차를 마시며 교류하여 큰 영감을 받게 된다. 또한, One-Time Pad를 이용한 암호 시스템은 도청만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1]

섀넌은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중에 연구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구글 학술검색 기준으로 세상에서 4번째로 많이 인용된 논문인 <정보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논문에서 엔트로피의 개념이 나온다. 쉽게 설명하면 정보이론이란 필요한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며, 엔트로피는 그 정보를 전달하는데 필요한 최소 비트 수에 해당한다. 확률론을 사용해서 정보라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정립한 섀넌의 연구는 정보 이론이라는 하나의 학문 분야가 되어 현대 디지털 통신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고, 샘플링 이론을 창안하여 이전까지 아날로그로 이루어지던 정보통신의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후 벨 연구소를 떠나 MIT 교수직을 맡게 된다.

섀넌은 체스에도 관심이 많았다. 아직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인 1950년 체스를 두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창시한다. 비록 이때는 아직 실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어 이론뿐인 알고리즘이었지만, 이후 딥 블루가 인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길 때 사용한 알고리즘도 이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담이지만 정보 이론의 창시자답게 주식에도 매우 뛰어나 큰 돈을 벌었다. 1950~1986 연 평균 복리수익율이 28% 이었으며 워렌 버핏(21.6%)보다 수익률이 높았다.[2]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해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3]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기계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최초는 아니다. 섀넌은 여가로 해괴한 기계들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기계 외에도 저글링하는 로봇, 불을 뿜는 트럼펫, 지하 실험실에서 부엌의 아내를 호출하는 손가락기계, 카지노 룰렛 휠을 도는 공의 속도와 계적을 분석해 배팅 방법을 알려주는 기계 등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축제공연자가 되고 싶어했고, 저글링에 상당히 몰두해 있었다. 그래서 저글링하는 로봇을 설계 제작하며 스스로 저글링을 익혔고, 외발자전거를 타는 법을 익히고 외발자전거 위에서 저글링 하는 법을 익히고, 강철 줄 위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며 저글링 하는 법을 익히기까지 한다.

1960년 쯤부터 대외활동을 줄이다가 1970년부터는 정보이론 회의 참석도 멈추었다 그러다 1985년 69세가 되었을 때, 브라이트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정보이론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다른 참석자들이 섀넌을 알아보고 그가 참석했다는 말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는데 그 모습을 회의 주체자인 로버트 멕엘리스는 "마치 뉴턴이 물리학 학회에 나타난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회의 주체자들이 만찬연설을 부탁하자 섀넌은 모두를 지루하게 할까봐 걱정해 짧게 말하고는 저글링 공을 꺼내 저글링을 했고 그날 섀넌의 사인을 받기위해 참석자들이 긴 줄을 섰다.

말년에 수년간 알츠하이머병을 앓다가 2001년 2월 24일 사망한다.

3. 업적

4. 기타



[1] 비밀 메시지를 얻는 것만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다른 보안 구멍이 있을 경우는 당연히 소용이 없다[2] 사실 워렌 버핏은 돈이 너무 많아서 수익률이 엄청나게 높을 수가 없다.[3] 휴렛 팩커드, 모토로라, 텔레다인(Teledyne)의 초기 주주였다. MIT동기들이나 연구소 동료 등 신뢰하는 지인들이 창업한 회사에 꾸준히 투자했다.[4] One-Time Pad이다 이 OTP가 아니다.[5] 인류를 위한다는 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