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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8:37:50

클로버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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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잡지 광고. 척 봐도 해적판이 많아 보인다.
1. 개요2. 상세3. 주요 작품4. 참고 문헌5. 외부 링크

1. 개요

1972년부터 1984년까지 어문각[1]에서 발행한 만화/아동 도서 전집.

2. 상세

탄생 비화는 이러했다. 1972년 당시 <새소년>의 편집장인 박현재는 '새소년 100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문고를 발간할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새소년의 모토인 '꿈과 용기와 실력을 키워주는 잡지'에 걸맞은 참신하고도 유익한 어린이 문고집을 내고자 구상을 하게 되었다.

우선 만화가 떠올랐다. 당시 <새소년>에는 인기 있는 만화 콘텐츠가 많았다. 이들을 규합하고, 또 외부에서 가져올 수 있는 작품들로 문고를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만화는 잡지에서 게재되는 만화 외에는 만화방이란 특수한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4X6배판의 커다란 만화들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고, 또 부모님들이 만화방에서 보는 만화를 천대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이러한 기준들을 내놓았는데,
첫째, 만화방이 아닌 서점에서 당당하게 판매될 수 있는 최초의 만화 문고를 만들자.
둘째, 부모님에게도 자신 있게 권장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자.
셋째, 만화만의 문고라는 약점을 보완하여 학습과 문예, 교양과 지식, 스포츠를 내용으로 각 방면에 걸친, 글을 위주로 하는 책도 함께 펴내자.
넷째,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정을 하자. 만화는 한번 보면 버린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모으고 아낄 수 있도록 예쁜 장정에, 책을 보호하는 비닐커버도 함께 씌우자.
다섯째, 판형은 4X6판, 분량은 240쪽 정도로 해서 이제까지의 얇고 커다란 만화책과는 구별되게 하자.
여섯째, 문고로 정착하기 위해 매월 정기적으로 내는 시스템을 갖추자.

그 다음은 문고의 이름이었다. 이름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수월하게 떠오른 것 같았다, 문득 떠오른 것은 질긴 생명력과 행운의 상징으로 통하는 다년생 풀 '클로버'. 이때 박현재는,
"그래, 그거야! 행운을 가져다주고, 끈질긴 생명력!"

그렇게 해서 '클로버 문고'라는 이름이 된 것이다.

최초로 나온 작품은 1972년 여름에 와타나베 마사코 원작의 동명의 만화를 정영숙[2]이 다시 그려 새소년에 연재한 인기만화 <유리의 성>으로, 변화무쌍한 이야기에 선과 악을 대표하는 마리사와 이사도라라는 두 캐릭터의 신선함, 그리고 악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전개가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당시 소녀 만화임에도 이야기 전개의 강렬함으로 소년들은 물론 부모님들 역시 열독하면서 처음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여 대성공을 이끌었다. 또 클로버 문고 두 번째 책이자 새소년 연재 명랑 소설을 책으로 엮은 오영민[3]의 작품 <6학년 0반 아이들> 역시 아이들에게 큰 호평을 얻기도 했다. 세 번째 작품은 <유리의 성> 2편, 네 번째는 일본 만화 번안작인 <소년이여 가슴을 펴라>, 5~6번째가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1~2편이었다. 이런 초기 작품들의 인기 롱 런으로 클로버문고는 순항을 거듭하였다.

공상 과학, 명랑, 순정, 탐험, 고전명작, 역사 등의 각종 주제들을 총망라한 만화/아동도서 전집으로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인기를 얻은 만화 문고였으며, 새소년뿐만이 아닌 경쟁 소년잡지였던 어깨동무, 소년생활, 소년중앙 4인방, 그리고 소년한국일보 등 어린이 신문 만화들도 많이 단행본으로 발매하였다. 만화뿐만이 아니라 삽화가 있는 소설이나 '컴퓨우터 이야기' 같은 교양물도 문고판으로 출간되었다.

다만 1996년 베른협약 체결 전까지 외국 저작물이 법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해[4] 일본만화와 외국영화, 드라마 등을 표절하거나 설정을 베낀 만화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저자가 김동명으로 표기되었던 바벨 2세였고, 후자의 경우로는 이원복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등등이 있다. 또 아다치 미츠루의 초기 작품인 <나인>과 <햇살이 좋아>, <첫사랑 갑자원>도 각각 <영광의 9회말(정해방 작)>, <해바라기 대행진(한방울 작)>, <마운드의 별(성영식 작)>로 나온 바 있었다. 클로버 문고의 대표적인 흑역사.

클로버문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경쟁사인 중앙일보(소년중앙), 육영재단(어깨동무), 소년생활사(소년생활) 역시 이에 질세라 각각 '소년중앙만화극장', '어깨동무만화문고', '소년생활블루북스' 등의 만화 문고들을 선보였다. 이중 후발주자였던 '소년생활블루북스'는 나름 호평을 얻었지만 클로버 문고의 인기에는 견줄 수는 없었고, 나머지 두 문고들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급속히 사라져 결국 잊혀졌다.

1981년까지 1차로 300권이 나온 클로버 문고는 이후 '새 클로버 문고'로 바뀌어 폐간 때까지 129권이 나와 총 429권이 나올 정도로 꽤 오랫동안 사랑받은 문고였지만 1984년에 새소년이 어문각에서 분리된 뒤 <풍운아 초립동이(NC-129)>를 끝으로 폐간되어 이 전집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발행처인 어문각은 평범한 교양 서적 전문 출판사로 변하고 말았다.[5]

3. 주요 작품

작가 - 작품 이름 순으로 작성.

4. 참고 문헌

5. 외부 링크



[1] 1959년 설립. 1972년 이전까지 새소년사와 함께 미래엔 계열이었다.[2] 배우와는 동명이인.[3] 본명 오영식. 1923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9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남수와 닭>으로 문단 등단. <학원> 및 <주부생활> 편집장 등 역임.[4] 사실 1990년대 이전에 출간된 서적들을 보면 외래어 표기에 있어서 일본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수 있는데 상당수 해외서적의 경우에는 일본판을 중역해서 들여놓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대의 외래어 표기에서도 재플리시의 영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21세기 이후로도 재플리시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당대에는 발음까지도 재플리시 그대로 따라하거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5] 사실 어문각은 클로버 문고 말고도 아동용 동화책인 "재미있는 어문각 픽처북스(1981년 12월 초판 발행)"라는 작품을 내놓은 적이 있었으며 이는 1990년대 초까지 발행되었다.[6]서울신문 스포츠 기자 겸 만화가로, <월간 태권도>에 '고두현의 스코어 가드'란 기획기사를 연재하였고, 이를 통해 K-1이나 UFC등이 국내에 잘 알려지기 전에 소개했다.[7] 유령작가 혹은 단순 기획자 정도로 여겨지지만, 엄연한 실존 인물이자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이며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단, 다른 작가들처럼 혼자 작업한 건 아니고 팀을 구성해 지휘하는 방식으로 제작에 나섰다.[8] 1947년생으로 김종래 화백 문하생 출신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무지개 일러스트'의 회원이며 만화가보다는 어린이 그림책 그림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작화가로 유명하다.[9] 한국아동만화가협회(현 한국만화가협회) 5대 이사 역임.[10] 엄희자 화실 출신의 순정만화가. 1950년생. 본명은 문병천.[11] 김종래 화백의 문하생 출신.[12] 김산호 화백의 문하생 출신이며 주로 미국풍의 그림체를 선보인 만화를 그렸다. 캐릭터 디자인 면에서 당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각종 만화 캐릭터의 외향을 매우 많이 참고했던 이력이 있다. 그나마 스토리는 오리지널로 썼으며 당시 기준으로 매우 참신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현재 미국에서 요식업에 종사중.[13] 한국 1세대 일러스트레이터 모임 '무지개 일러스트' 회원. 클로버문고를 비롯한 여러 어린이 잡지에 감동 위인만화나 명작만화를 주로 그렸다. 1998년에 지병으로 작고.[14] 당시 MBC 미술부 소속 작가.[15] 클로버문고 시절에는 '이성표'로 활동.[16] '까불이'로 유명한 아동만화가이자 '심수회'의 멤버.[17] 고우영 화백의 문하생 출신.[18] 1958년부터 만화가로 활동하다 이후 서울동화에서 우뢰매 시리즈의 메카 디자인 등을 맡음. 2003년에 갑작스런 사고로 타계.[19] 박부길 화백의 문하생 출신. 1984년에 '반도만화영화학원'을 세워 후학들을 양성하여 각 대학에 만화과와 애니메이션과가 신설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만화가로써의 위치도 굳건히 다져 한국만화가협회 협의위원장도 지냈다. 현재도 만평을 가끔 내거나 목회활동에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