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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 100대 록 음악 최고의 키보디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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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키스 에머슨 | 릭 웨이크먼 | 존 로드 | 레이 만자렉 | 리처드 라이트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토니 뱅크스 | 빌리 프레스턴 | 로드 아르젠트 | 스티브 윈우드 | 알 쿠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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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피셔 | 부커 T. 존스 | 이안 언더우드 | 그레그 올먼[1] | 토니 하이마스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얀 해머 | 니키 홉킨스 | 그렉 롤리 | 브라이언 이노 | 조던 루데스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리처드 탠디 | 데니스 드영[2] | 옌스 요한슨 | 케리 리브그렌[3] | 배리 골드버그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티 라비츠 | 돈 에어리[4] | 가스 허드슨 | 데이비드 샌셔스 | 이안 맥라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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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듀크 | 앨런 자보드 | 스티브 니에브 | 맥스 미들턴 | 빌리 파웰[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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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무어 | 데렉 쉐리니언 | 지미 그린스푼 | 존 카린 | 리 마이클스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켄 헨슬리 | 벤몬트 텐치 | 스티비 원더 | 조나단 케인[6] | 척 리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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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다운스[7] | 레온 러셀 | 패트릭 모라즈 | 위르겐 프리츠 | 하워드 존스 | |||||
<rowcolor=#fff>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마이크 핀더 | 맷 벨라미 | 알렌 라벤스틴 | 앨런 프라이스 | 마이클 맥도날드 | |||||
<rowcolor=#fff>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존 폴 존스 | 밥 마요 | 토니 케이 | 빌 페인 | 로이 비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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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위부터는 링크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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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키보디스트, 작곡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원년 멤버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배저, 배드핑거의 멤버로 활동한 바 있다.2. 생애
케이의 본명은 앤서니 존 셀비지로 1946년 1월 11일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케이의 할아버지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고, 할머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피아노를 물려받아 연주했다고 한다.4살때 부터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재즈와 록, 팝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빅밴드 활동을 주로 하다가 우연히 런던 마키 클럽에서 키보디스트 그레이엄 본드의 연주를 보면서 하몬드 오르간, 콤보 오르간 같은 록 오르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한다.
몇 년뒤 1968년 존 앤더슨과 크리스 스콰이어를 만나 빌 브루포드, 피터 뱅크스와 함께 밴드 예스를 결성했으며, 1971년까지 활동하며 그 사이 1집 부터 3집 즉 Yes, Time and a Word, The Yes Album에서 활약했다. 특히 The Yes Album의 첫곡인 Yours Is No Disgrace은 케이가 첫 작곡 크레딧을 받은 곡이다.
하지만 하몬드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를 선호했던 케이와 당시 moog 신디사이저나 멜로트론 도입을 적극 주장했던 스티브 하우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결국 예스에서 해고 되었다.[1]
예스 탈퇴 이후 같은 예스 원년 멤버인 피터 뱅크스의 밴드 플래시(Flash) 에 잠시 참여했다가, 배저(Badger)라는 밴드를 결성해 당시 예스의 오프닝 밴드로 참여했다. 배저의 1집 음반인 One Live Badger는 라이브 음반인데 당시 예스가 발표한 라이브 음반 Yessongs가 녹음된 런던 레인보우 극장에서 같은 장비로 녹음되었으며, 존 앤더슨이 프로듀싱했다.
배저 해체 이후 1976년 데이비드 보위의 Isolar – 1976 Tour에 참여했으며, 이후 배우이자 팝 가수인 마이클 데 바레스와 Detective라는 밴드를 결성해 키스의 오프닝 밴드로 활동했다. 이후 1979년에는 자살로 세상을 떠난 피트 햄을 대신해 배드핑거의 키보드로 합류해 투어에 참여했고 이후 1981년 음반 Say No More 레코딩에도 참여한다. 훗날 케이는 1998년 이들의 전기를 읽기 전까지 배드핑거의 격동적인 역사를 몰랐다고 훗날 회고했다.
이후 예스의 멤버 였던 크리스 스콰이어의 초대로 드럼 - 엘렌 화이트, 프로듀서 - 트레저 혼, 기타 - 트레버 래빈 으로 구성된 시네마라는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트레저 혼은 최신 키보드 / 신디사이저를 습득하는것을 거부하고 피아노, 하몬드 오르간만 고집하는 케이의 행동에 불만을 품었고, 이후 둘의 갈등으로 케이는 밴드를 탈퇴하고 나머지 키보드 파트는 트레버 래빈이 맡게 되었다. 이후 존 앤더슨이 합류하면서 시네마는 예스의 재결합으로 변경되면서, 음반사 경영진에 설득으로 당시 이들이 준비했던 음반 90125가 발매되기 직전 다시 밴드로 복귀했다. 1971년 탈퇴 이후 약 12년만에 예스로 복귀한 셈. 다만 그가 탈퇴한 사이 음반 프로모션 영상이 제작 되었기 때문에, Owner of a Lonely Heart 뮤직비디오를 포함한 프로모션 자료엔 케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후 예스에서 Big Generator(1987), Union(1991), Talk(1994) 까지 참여했으며, 특히 1991년 Union Tour에선 그의 후임인 릭 웨이크먼과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95년 Talk Tour 직후 트레버 래빈과 함께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음악 비즈니스를 은퇴했지만 간간히 빌리 셔우드[2]와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예스가 헌액될때 케이도 같이 헌액되었지만, 그는 같은 초창기 멤버인 피터 뱅크스가 같이 헌액 안되었다며 불참했다.
2018년 예스가 50주년 기념 투어를 미국에서 진행할때 특별출연해서 Yours Is No Disgrace, Roundabout, Starship Trooper를 같이 연주했다.
3. 음악적 스타일
케이는 비교적 단순하고, 받쳐주는 연주를 선호하며, 복잡하고 즉흥적인 솔로를 피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면은 그가 예스를 탈퇴한 이후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그보다 기교적인 테크닉이 뛰어난) 릭 웨이크먼, 패트릭 모라즈와는 대비되는 점이다. 이러한 스타일에 맞게끔 그의 세팅 또한 당시 동시대 키보디스트 보다 단순한 편이다.
실제 1991년 예스의 Union Tour에서 그의 후임인 릭 웨이크먼과 무대를 같이 올랐는데, 건반만 9기종을 사용한 웨이크먼과는 대조적으로 개인 엔지니어가 조작하는 EX-8000, D-550등 사운드 모듈들로 연결된 야마하 KX76 마스터 키보드 두대만 사용했다.
그는 초창기 피아노와 하몬드 오르간 연주를 고집했으며, 이러한 면은 몇년 뒤 1971년 그가 결성했던 예스에서 쫓겨나는 사유가 되기도 했다.
예스의 오랜 프로듀서였던 에디 오포드는 그를 최고의 하몬드 오르간 연주자라고 표현했으며, 현재 예스에서 키보드 멤버인 제프 다운스는 케이의 연주와 하몬드에서 얻은 사운드를 항상 존경해 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그를 그룹에서 퇴출시키기 까지 했던 스티브 하우는 그를 훌륭한 그룹 멤버라고 표현했다.
3.1. 사용한 악기
- 하몬드 오르간 (B3, C3)
- 그랜드 피아노
- Kawai EP-308 일렉트릭 그랜드 피아노
- KORG BX-3
- E-MU Emulater
- Yamaha DX-7
- Oberheim OB8
- Oberheim DPX-1
- Yamaha KX76
- KORG DW-8000/EX-8000
- Roland D-50/D-550
- Roland Fantom-X7
- Native Instruments B-4
- Roland VK-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