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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12-06 22:13:47

팻 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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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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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rence Patrick David Gillick
생년월일 : 1937년 8월 22일
1964~65년 휴스턴 콜트 45s. 어시스턴트 팜 디렉터
1974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스카우팅 디렉터
1975~76년 뉴욕 양키스 스카우팅 디렉터
1977년 토론토 블루 제이스 부단장
1978~94년 토론토 블루 제이스 단장
1996~98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단장
2000~03년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
2004~05년 시애틀 매리너스 특별 단장 보좌
2006~0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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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길릭
헌액 연도 2011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1. 소개2. 젊은 시절 ~ 토론토 블루 제이스3. 볼티모어 오리올스4. 시애틀 매리너스5. 필라델피아 필리스6.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7. 평가

1. 소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명단장으로, 빅마켓 클럽을 운영하는데 매우 뛰어난 단장이었고 통산 3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인물이다. 2008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이젠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지금도 경험과 결단력에서 그를 뛰어넘는 인물이 마땅치 않기에 여러 강팀들이 추파를 던지고 있어서 현역 복귀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 젊은 시절 ~ 토론토 블루 제이스


젊은 시절엔 나름 이름을 날린 좌완투수로서 대학리그 월드시리즈를 제패하기도 했으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마이너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빅리그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대신 은퇴한 뒤 스카우트로 일하면서 구단 프런트 업무를 익혔다.[1] 그리고 캐나다에 새로 창단한 토론토 블루 제이스로 건너가 GM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신생팀들이 다 그렇듯이 고전하긴 했지만, 명장 바비 콕스 감독을 데려와서 처음으로 디비전 우승을 따냈고, 시토 개스턴 감독을 데려온 뒤 라지에타가 터져버렸다. 블루제이스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 디비전 우승 5회와 92~93 백투백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내며 역사에 남을 GM이 되었다. 데이브 윈필드, 데이빗 콘, 잭 모리스 등을 데려오며 92년 우승을 따냈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폴 몰리터, 리키 헨더슨 등을 영입하는 등 질러야 할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내며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꺾는 조 카터의 6차전 끝내기 홈런으로 월드시리즈를 2년 연속으로 우승한다. 그리고 94년 파업시즌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2]

그리고 93년이 2015년이 오기 전까지 토론토 블루 제이스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었다.

3. 볼티모어 오리올스

94년 파업으로 시즌이 중단된 뒤 단장으로서 은퇴를 선언한 길릭은 뜬금없이 현역 복귀를 선언, 96년부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단장으로 취임하고 데이비 존슨 감독을 영입한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오리올스를 ALCS까지 이끄는 등 전년도 71승 73패 팀 오리올스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4년간 5할 승률을 달성하지못했다.

4. 시애틀 매리너스


은퇴를 선언했던 길릭은 다시 은퇴를 번복하여 2000년부터 시애틀 매리너스의 단장으로 취임한다.

문제는, 이 때의 매리너스는 켄 그리피 주니어와 랜디 존슨이 모두 나가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절대 잡을 수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리피도 없고 빅유닛도 없고

그런 매리너스의 암울한 상황에서 길릭은 신의 한 수를 내렸다. 1999년 79승 83패를 찍은 매리너스를 2000년 91승 71패 팀으로 만들더니, A-ROD를 잡지 못해서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패배의식에 쩔어있던 매리너스에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한 스즈키 이치로 등을 데려와서 116승 46패 팀으로 만든 것. 2001년 신인왕-MVP-실버슬러거-골드글러브를 석권한 이치로의 충격적인 활약과 이후의 커리어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일본프로야구의 "대마신" 사사키 카즈히로를 데려오고 당대 준수한 공격형 2루수로 손꼽히던 브렛 분[3], 양키 왕조의 셋업맨 제프 넬슨 등을 영입하는 등 선수 보는 안목에 있어서도 탁월한 눈을 드러냈다. 특히 감히 이치로 영입보다 크다 할 수 있는 최대의 스카우팅은, 16살의 한 베네수엘라 소년과 계약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2010년 사이영상에 빛나는 현역 최강의 에이스 중 하나인 펠릭스 에르난데스.

하지만 매리너스는 03년 이후 어떤 대인배에게 단장 자리를 내주고 길릭을 일선에서 퇴진시켰다. 그리고 그 대인배는 2003년 93승 69패[4]의 팀을 63승 99패의 팀으로 만들어놨다.

이후 매리너스는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90승 시즌을 다시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5. 필라델피아 필리스


그간 아메리칸리그에서만 주로 활동하였던 길릭은 나이도 많이 들었음에도 은퇴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을 느껴 06년부터 내셔널리그의 고비용 저효율 빅마켓 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으로 취임했다. 극성스러운 만패 필라델피아 팬들은 93년 자신들을 엿먹였던 그 팀의 수장을 모셔오다니 자존심도 없냐며 분통을 터뜨려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만.

그리고 처음 단행한 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짐 토미를 보내고 애런 로완드와 지오 곤잘레스를 받아오는 딜이었다. 또한 그렇게 바비 아브레우를 트레이드하는 등 고액 연봉자들을 하나 둘씩 정리해나갔고, 셰인 빅토리노, 라이언 하워드, 체이스 어틀리, 콜 해멀스, 카를로스 루이즈, 라이언 매드슨 등 마이너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거나 빅리그에서 자리를 잡은 팜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여 팀을 꾸려나갔고, 외부에서도 LA 다저스에서 부상 우려 때문에 논텐더로 풀린 제이슨 워스를 데려와서 내셔널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키워냈다. 그 외에도 휴스턴에서 예전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던 마무리 브래드 릿지와 이젠 정말 한물 간 것처럼 보였던 선발 제이미 모이어를 데려왔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아담 이튼이라든가... 프레디 가르시아라든가...[5][6]

그 결과는 존 슈어홀츠 단장이 일군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NL 동부 장기 독재를 뒤엎는 New Dynasty의 탄생으로 나타났다.[7] 07년 어메이징 메츠를 뒤엎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여 참으로 오랜만에 필리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8]시켰다. 비록 07년엔 서부지구에서 롹토버를 외치던 산동네에 장렬하게 스윕당했지만, 08년에는 93년 이래 15년만에 90승 시즌을 만들어내더니 탬파베이 레이스를 꺾고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하며 통산 세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하며 명예롭게 루벤 아마로 주니어에게 GM 자리를 물려주며 퇴단했다. 필리스 팬들은 15년 전 우릴 울렸던 사람이 결자해지를 하고 떠났다며 칭송해 마지 않았다.[9]

앞서 길릭 단장 이래 가을야구를 못해본 팀들과 달리 필리스는 다행히도 한동안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뭔가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무시하자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은퇴한 이후에도 필리스 구단에 Senior adviser 자격으로 직함을 갖고 있다. 1937년생의 고령으로 현장에 직접적으로 복귀하긴 어렵겠지만 구단과 관계는 유지하는중 할아버지 돌마로 좀 어떻게 해봐요 2017년에 보면 돌마로는 잘하던 거였다

그렇지만 은퇴하고 나서도 은근히 구단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베테랑들의 계약도 어느정도 주도한것으로 알려졌다.

6.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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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계 투수 통산 최다승을 기록한 버트 블라일레븐, 재임 시절 토론토 블루 제이스의 우승을 함께 이끌었던 최고의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 두 선수와 함께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베테랑 위원회가 결정하는 알로마의 동판 모자에 블루 제이스 마크가 새겨진 데에는 알로마 본인이 원한 것도 있지만 같은 해에 베테랑 위원회의 투표로 헌액된 길릭 단장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7. 평가

흔히 돈만 많이 주면 나라도 우승하겠다는 개념 없는 니트들이 한국에나 미국에나 널리고 널렸는데(...) 그 니트들과 달리 길릭은 선수를 보는 안목이 남다르며 그 많은 자금 지원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적재적소에 타이밍을 맞춰 투자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또한 스카우트 출신으로서 유망한 선수를 보는 안목도 뛰어나서 그간 해외 자유계약 대상자들 중에서 좋은 유망주들을 많이 스카우트했는데 그들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카를로스 델가도,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펠릭스 에르난데스, 그리고 추신수다. 한국의 최동원이 연세대에 재학 중일 때 관심을 보였다는 카더라도 있다.

다만 단점으로는 빅마켓 단장답게 트레이드로 즉시전력감을 데려오는 대신 유망주를 퍼주는 성향 때문에 팜이 황폐해진다는 점이 지적되는데, 실제로 블루제이스, 오리올스, 매리너스 등이 길릭 이후 가을야구와 담을 쌓고 있는 점은 팜의 황폐화와 무관하다 볼 수는 없다.[10]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그렇게 팜을 투자한 대가로 당장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면에 있어서는 그보다 탁월한 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팜을 소모하면서도 끊임없이 원석을 캐낸 후 다듬어서 트레이드 떡밥으로 쓰거나 빅리그 콜업해서 써먹는 것은 팜을 정말로 황폐화시켰다 하기엔 무리가 있다. 꼭 필요한 유망주는 어지간해서는 지켜뒀다가 콜업하여 제대로 기용하면서 좋은 선수로 길러냈기 때문.[11]

무엇보다 길릭이 단장으로 있었던 팀들마다 길릭 후임 단장들의 상태가 대단히 좋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블루제이스는 이후 몇년간 상당한 유망주들을 길러 냈지만 리치아디 단장 시절에 상당한 삽질이 있었으며, 오리올스의 경우 길릭 사임 직후부터 안젤로스 구단주 겸 사장의 깽판이 심해지면서 팀이 무너졌다. 매리너스의 경우 길릭 다음 단장이 대인배 빌 버베이시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필리스 역시 길릭 후임 단장이 루벤 아마로. 루벤 아마로의 경우 부임 직후 11시즌까지는 길릭의 뒤를 이은 신세대 빅마켓 스타일 단장으로 칭송받았지만 라이언 하워드 장기계약을 시작으로 팀이 노령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최악의 단장 후보로 꼽힌다.

나이 든 할아버지답게 신세대 단장에 속하는 빌리 빈이나 테오 엡스타인마냥 전화 한 방 때려서 사기치는 나쁜 짓(...)을 즐기기보다는 직접 상대방에게 찾아가서 거래에 대한 성의를 보이며 마음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올드 스쿨 스타일의 거래를 주로 했는데, 실제로 휴대전화를 지금도 젊은이들마냥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근의 대세에도 익숙치 않아 여전히 스카우트 시절처럼 툴이나 선수의 마인드 등 선수를 평가하는데 있어 고전적인 평가요소 위주로 본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역 젊은 GM 중에서도 길릭만큼 빅마켓 프랜차이즈 운영에 있어 통달한 단장은 보기 드문 편으로, 실제 그의 역량을 따라갈 젊은이들이 없어서 아직도 현역 복귀에 대해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던 7월에도 시카고 컵스가 짐 헨드리 단장을 내보내고 단장 자리를 주겠다는 진지한 제안을 했을 정도. 현역 중 길릭의 명성을 따라갈 수 있는 빅마켓 단장으로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부순 걸로 모자라 레드삭스에서 우승과 유망주 육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테오 엡스타인,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와 그 아들내미들의 온갖 병크와 잔소리를 견뎌내며 양키스를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키워낸 브라이언 캐시맨 단장 정도가 꼽히고 있다.
[1] KBO 구단들의 프런트 오피스가 대체로 모기업에서 발령받은 인물들이 대부분인 것과 달리 MLB 구단들의 프런트 오피스는 이렇게 선수로서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역시 선수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로 출발하여 전설이 되었다.[2] 이후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캐나다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단장직을 맡은 후로 시애틀로 이주했다고.[3] 그런데 브렛 분의 1998년 신시내티 레즈 시절, 그리고 저 당시 매리너스 시절의 말도 안 되는 성적은 은퇴 후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을 받았고, 결국 약물 복용 혐의가 드러났다.[4] 2001년 116승을 찍으며 디비전 1위를 찍었지만 2002년에는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시즌이었고 빌리 빈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서부지구를 제패한 시즌이라 93승을 찍고도 포스트시즌에 못나갔다. 2003년에도 93승을 찍었지만 에이스에게 디비전 타이틀을 내주고 와일드카드는 뉴욕과 보스턴에 밀리며 아쉽게도 포스트시즌 탈락[5] 그래도 이튼은 FA였지만, 프레디 가르시아를 얻기 위해 화이트삭스에 가빈 플로이드와 지오 곤잘레스를 다시 내준다. 가빈 플로이드는 화이트삭스 선발진의 한 축이 되었지만 지오 곤잘레스는 그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빌리 빈에 의해 오클랜드로 다시 옮긴다. 트레이드 대가는 닉 스위셔. 최후의 승자는 빌리빈[6] 시카고 외야수 88년생 이튼이 아닌 77년생 투수로 동명이인.[7] 물론 06년 뉴욕 메츠가 디비전 우승을 차지한 것이 있긴 하지만 그 시즌에도 필리스는 지구 2위를 기록하며 브레이브스를 넘어섰다.[8] 공교롭게도 93년 길릭이 이끌던 제이스와의 월드시리즈 패전이 필리스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었다.[9] 우승이 확정된 뒤 장내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하면서 은퇴 여부에 대해 물을 때에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는 쿨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10] 이렇게 쫓겨난 유망주들 중 대성한 선수를 찾는다면, 비교적 옛날인 블루 제이스 시절엔 선발투수 데이빗 콘을 얻기 위해 제프 켄트를 내준 사례가 있고, 최근인 필리스에서는 브래드 릿지 트레이드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내준 마이클 본이 있다.[11] 이 쪽의 예를 들면 숀 그린, 콜 해멀스, 라이언 하워드가 있다. 위에서 내보낸 선수 중 대성한 사례로 지목된 켄트와 본 역시 로베르토 알로마와 셰인 빅토리노라는 더 괜찮은 대안이 존재했기 때문에 쉽게 내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