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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6-04 21:46:37

알버트 벨


파일:dkGcf98.jpg
파일:attachment/알버트 벨/벨.jpg
인상 한번 죽인다. 뭐 임마? 싸울래?
이름 알베르 조주앙 벨[1] (Albert Jojuan Belle)
생년월일 1966년 8월 25일
국적 미국
신체 188cm , 110kg
출신지 루이지애나 주 슈리브포트
포지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라운드 지명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89~1996)
시카고 화이트삭스(1997~1998)
볼티모어 오리올스(1999~2003)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크 맥과이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프랭크 토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시애틀 매리너스)

1. 개요2. 커리어3. 기타4. 사건사고 겸 기행5. 알버트 벨에 대한 말말말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뛰었던 파이터 겸 야구 선수.

홈런왕 1회, 타점왕 3회, 역사상 최초의 50홈런-50 2루타 기록과, 실버슬러거 수상 5회에 빛나는 등 199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오른손 타자 중 하나였지만, 그놈의 사건사고를 몰고다니던 성질머리(...)와 더불어 말년의 심각한 엉덩이 부상으로 인한 먹튀 이미지 때문에, 오늘날에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메이저리그 최악의 악동이자 파이터'로 먼저 회자되는 선수가 되었다.

2. 커리어

# 통산 1539경기 1726안타 381홈런 1239타점 .295 .369 .564(타/출/장) fWAR 41.0

벨은 1987년 2라운드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아마추어 시절부터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파워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출장정지와 출중한 싸움 실력으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루키임에도 불같은 성격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악동으로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벨은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잡기 시작한 1991년부터 인디언스의 좌익수를 꿰차고 .282 28홈런 96타점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때마침 영화 메이저 리그(영화) 시리즈의 대 히트로 엉뚱하게 인디언스가 큰 수혜를 받았는데, 악동 벨의 캐릭터 역시 은근히 영화 속 개성넘치는 인디언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90년대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오른손 타자로 꼽힐만큼 무시무시한 슬러거였기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91년 풀타임 첫해부터 28홈런을 치더니 92년부터는 무시무시한 타격능력을 과시하면서 8년 연속 30홈런 100타점 이상 행진을 벌이게 되었다. 특히 1994년 파업으로 인해 고작 106경기만 출전하였음에도 타율 0.357, 출루율 0.438, 장타율 0.714, OPS 1.152, 147안타, 2루타 35개, 36홈런, 101타점, 90득점의 괴물같은 성적을 올렸다. 벨은 이 시즌 MVP였던 프랭크 토마스와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엄청난 성적을 올렸지만, 평소 사이가 험악했던 기자들은 투표에서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95년 역시 파업으로 143경기에만 출장했는데도, 벨은 무려 50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을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50(홈런)- 50(2루타) 클럽을 달성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시즌 성적은 타율 0.317, 출루율 0.401, 장타율 0.690, OPS 1.091,173안타, 2루타 52개, 50홈런, 377루타, 126타점, 121득점으로 거의 전부문 메이저리그 1위였다. [2] 그러나 그 해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MVP는 보스턴 레드삭스모 본에게 돌아갔다. 모 본의 시즌 성적은 타율 .300 39홈런 126타점으로, 벨과 타점 공동 1위를 제외하면 현격하게 차이가 날 만큼 경쟁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단축시즌 50홈런의 엄청난 가치, 역대 최초 50-50 기록, 타격 대부분 지표에서 MLB 1위를 기록한 시즌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벨의 MVP 등극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모 본은 보스턴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며 유명한 스타급 선수이기는 했으나, 이 해에 최초로 올스타에 뽑혔을만큼 인지도 역시 벨에 한참이나 모자랐다. 즉 모 본은 좋은 쪽 이던 안 좋은 쪽이던 당시 벨이 리그에서 차지하던 압도적인 위상에는 한참 못 미치는 존재였다. 무엇보다 알버트 벨은 1995년 40년 만에 인디언스를 월드시리즈로 이끈 1등 공신으로 팀 공헌도 역시 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런 수 많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MVP는 근소한 차이로 모 본에게 돌아가고야 말았는데, 기자들이 표면적으로 아무리 궁색한 이유를 같다 붙이더라도 결국은 기자들이 벨을 싫어한다는 사적 원한을 노골적으로 투표에 담은 꼴불견일 뿐 이었다. 어느 나라든지 기레기들이란 [3] [4] 사실 지금 시점에서 1995 시즌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이 해의 최고 타자는 오히려 에드가 마르티네즈 였다. 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고,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지명 타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벨이 수상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5]

1990년대 중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는데, 마치 영화에서처럼 신인 선수들이 쑥쑥 튀어나와 성장하게 되면서 알버트 벨을 필두로 한 공포의 강타선을 구축하게 된 것이다. 최고의 리드오프 케니 로프턴을 필두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불세출의 스위치히터 에디 머레이, 신인 티를 벗고 공포의 하위타선으로 30홈런 100타점을 올리는 듀오 매니 라미레즈, 짐 토미는 50홈런을 날린 리그 최고의 강타자 벨을 보좌했다. 1996년에도 벨은 아메리칸 리그를 호령하는 최고의 타자로 타율 0.311, 출루율 0.410, 장타율 0.623, OPS 1.033, 187안타, 2루타 38개, 48홈런, 148타점으로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2년 연속 타점 1위를 차지했다. 벨과 함께 매니 라미레즈 (.306의 타율과 33홈런 112타점), 좌타 슬러거로 성장한 짐 토미가 (.311 타율과 38홈런 116타점을 올리는 등) 자리잡은 인디언스의 클린업 트리오는 명실공히 메이저리그 최강이자 맞서는 투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그 위세를 떨쳤다.

1997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벨은 FA 자격을 얻게 되면서 자신에게 거액 계약을 안겨주기 어려운 클리블랜드를 떠나려 했다, 그가 시장에 나오자 무수한 사건사고와 무시무시한 악동기질은 차치하고, 야구실력 만큼은 당대 아메리칸리그 넘버원이라 공인된 거포였던 벨을 노리는 팀들이 앞다투어 몸값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우승을 노리고 지름신을 영접한 지구 라이벌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벨 영입전의 최종 승자로 남게되었다. 당시 그의 몸값은 사상 최고인 5년 5500만 달러로, 연 평균 액수에서 1,100만불이라는 기록적인 숫자를 처음 찍은 것이다. 게다가 이 계약이 유명해지게 된 이유는 파격적인 엘리베이터 조항 때문이었다. 계약 이후 다른 선수들의 연봉이 벨의 연봉액을 초과하는 경우, 항상 연봉 랭킹에 들어가도록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지 않으면 FA가 되어 자유롭게 타 팀과 계약할 수 있는 극단적인 꿀 보장이었다. [6] 이렇게 벨은 클리블랜드 팬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당당히 같은 지구 라이벌 팀에 영전하였는데[7]레알 잭 파크맨. 정확성과 선구안을 겸비한 리그 최고 수준의 오른손 강타자 프랭크 토마스와의 시너지 효과에 기대가 폭발했고, 화이트삭스의 97시즌은 수많은 기대와 설레발로 기사거리를 쏟아내곤 했었다. 살인 타선으로 불리던 인디언스에도 전혀 꿀릴게 없었다는 평이었는데, 그 인디언스 살인타선의 최정점이던 벨을 데려왔으니 당연할 수 밖에 없는 평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7 시즌, 생애 최초로 타격왕에 오르며 35홈런 125타점의 여전한 위력을 보인 토마스와 달리, 벨은 화이트삭스 입단 첫 해는 살짝 부진하다는 평을 들었다. 시즌 성적은 타율 .274, 174안타, 2루타 45개, 30홈런, 311루타, 116타점으로 화이트삭스가 거액을 베팅하면서 바란 기대치에는 모자란 느낌이었다. 30홈런 116타점이 기대치에 모자란 결과 ㄷㄷㄷ 이런 기대가 무리도 아닌 것이, 벨은 90년대 최고타자 중 하나인 토마스보다도 더 대접받는, 아메리칸리그의 최고의 우타자이자 클러치 히터였으며, 50홈런과 150타점도 가능한 당대 최강의 슬러거였다. 따라서 화이트삭스는 팀의 얼굴인 토마스가 대놓고 섭섭해하는 것 마저 감수하면서, 벨을 1인자로 대우해 최고 연봉 장기계약과 파격적 조항까지 달아줬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벨의 영입 이후 심사가 뒤틀린 프랭크 토마스는 팀에 자신의 대우 문제를 놓고 툭하면 징징거리길 반복했고, 결국 1997년 시즌 종료 후 지리한 협상 끝에 토마스도 7년 6,44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벨에 비해 연평균 금액은 조금 적어도 계약 기간과 연봉 총액은 당대 최대 규모였던 계약이었으며, 화이트삭스에서 토마스를 최대한 예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계약을 체결 한 뒤 그동안의 구설수는 까맣게 잊은 듯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토마스에 대해, 철부지 같다는 비아냥은 덤으로 따라다녔다.
다소 부진(?)했던 시즌을 뒤로하고 1998년 벨은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이 하면서 최강 슬러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준다.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타율 .328, 200안타, 48홈런, 49 2루타를 올려 또 다시 50-50에 근접하는 대기록을 남겼으며, 무려 152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8년 MVP인 후안 곤잘레스가 기록한 성적 (타율 0.318, 45홈런, 157타점)에서 타점을 제외한 대부분 타격기록에서 우세했음에도, MVP 투표에서 2위 노마 가르시아파라에게도 한 참 밀리는 투표 결과가 나와서, 벨에 대한 노걸적인 기자들의 악감정이 여전하다는 것만 확인시켜줬다. 그러나 정작 화이트삭스는 웃을수가 없었는데, 전년도 불만을 터뜨리면서 계약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토마스가, 스프링캠프부터 130킬로를 훌쩍 넘는 뒤룩뒤룩한 몸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장기 계약 이후 나태함'이라는 똥망 코스를 몸소 보여준 토마스는, 우려한대로 순발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에 한참 못미치는 .267의 타율을 기록했다. 홈런 갯수도 29개로 다소 줄었는데 타고투저가 심화되던 리그 트렌드로 볼 때 더욱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결과적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벨-토마스 조합은 엇박자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조합은 고작 2년만에 끝나 훗날을 더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대로 벨은 화이트삭스와 장기 계약하던 시점에서 엘리베이터 조항을 달았는데, 미국 프로스포츠의 연봉 폭등 흐름때문에 불과 2년만에 조항이 적용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화이트삭스는 당시 최전성기의 벨이 리그 최고의 타격 실력을 계약 기간동안 내내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고, 5년간 5,500만 달러의 파격적인 대우도 벨의 실력과 상품성이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화이트삭스 입장에서 설마 5년 안에 벨의 파격적 연봉보다 더 비싼 선수가 쉽게 나오겠냐는 생각 끝에 조항을 삽입했는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 선수는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였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된 직후 6년 7,500만 달러라는 사상 최고의 금액으로 계약을 하자, 벨은 망설임없이 조항에 따라 연봉 차액만큼 인상을 요구했다. 화이트삭스는 멘탈이 붕괴된 지경에서 고심하다가 결국 거부하는 순간, 벨은 또 다시 아무 조건없이 자유계약선수로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8]

결국 두 시즌만에 화이트삭스 생활을 뒤로 한 알버트 벨은 거포덕후이자 당시 FA의 큰손이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5년 6,5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고 또 다시 MLB 연봉 1위에 당당히 오르게 된다. 볼티모어 이적 첫 해인 1999년, 37홈런, 117타점, .297/.400/.541을 기록하며 여전히 이름 값을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인 2000년에는 부상으로 20경기를 결장하면서 23홈런 103타점 .281/.342/.474로 10년만에 30홈런 달성에 실패하는 등 하향세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때 당한 엉덩이 부상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는데, 합병증으로 고관절의 괴사가 발생해 걷기 힘들 정도로 악화 되었으며, 여러해 동안 엉덩이 부상 재발을 겪는 과정에서 무릎까지 문제가 생겨 선수로 복귀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망가지게 되었다. 2000년도 시즌을 마지막으로 3년 이상 부상치료와 재발, 복귀 시도를 반복하던 벨은 결국 은퇴를 결정하며 허망하게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9]

이 시점에 거액의 장기계약 이후 한참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소위 '먹튀' 선수들의 보험처리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벨과 1995년 그의 MVP를 도둑질 했던 모 본이었다. 참 찝찝한 인연이다. [10] 벨 역시 시즌 아웃으로 인한 보험금 지급처리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오리올스와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끝에 3년동안 뛰지도 않았음에도 6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며[11] 총액 4천만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1센트 한푼 안남기고 다 먹고 소리 소문없이 은퇴하는 먹튀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그와 악연인 모 본 역시 비슷한 시기 비슷한 먹튀 행보를 보여, 과연 MVP를 두고 경쟁한 선수들 답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12] 알버트 벨은 이렇게 90년대를 풍미하며 최고의 타자로 명성을 날린 선수 답지않게 허망한 뒷모습을 남기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벨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슬러거였으며, 당대 프랭크 토마스보다 유일하게 우위로 놓을 수도 있는 오른손 타자이기도 했다. [13]

# 올스타 선정 5회 (1993~1997)
# 실버 슬러거 5회 (1993~1996, 1998)
# AL 홈런 1위 1회 (1995)
# AL 타점 1위 3회 (1993, 1995, 1996)
# 1990년대 통산 타점 1위 (1099타점)
# 1990년대 통산 장타 갯수 1위 (711개)
# 1992년~1999년 8년 연속 +30홈런 & +100타점 (9년 연속 +100타점, 10년 연속 + 20홈런)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치명적인 엉덩이 부상이 아니었더라면, 500홈런은 일찌감치 넘어섰을 것이고 600홈런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만한 당대 최고의 슬러거라는 전문가들의 평이 지배적이다. 벨의 마지막 2000년도 시즌 역시 부상에도 기량이 크게 하락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최소한 4,5년만 더 선수생활을 했어도 명예의 전당이 가능한 성적으로 은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산 500홈런을 넘기고 은퇴했다고 가정해도, 선수 시절 내내 기자들과 최악이던 관계에 악동으로 낙인이 찍혀서, 명예의 전당 입회는 가시밭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4]

3. 기타

주먹실력으로는 역대 MLB선수중 최강. '알버트 벨보다 싸움을 잘하는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을 만큼 전설적인 싸움꾼이다. 물론 MLB 역사상 싸움꾼으로 유명하고 선수들을 벌벌떨게 했던 파이터들은 여럿 있었지만, 수많은 전설적 일화를 볼 때, 벨에 위상에 그나마 근접 할 만한 선수는 밥 깁슨 정도가 있을 뿐이다. 깁슨은 아예 빈볼을 주무기로 공공연하게 떠들만큼 불같은 강속구와 함께 싸움꾼 기질이 넘치는 투사였으며, 심기를 건드려도 맞히고, 기분이 좋아도 맞히고, 맞혀야 할때도 맞히는 등 60년대를 실력과 함께 공포로 지배한 대투수였다. 문제는 깁슨에게 빈볼을 맞고도 상대팀 선수들은 함부로 덤벼들거나 보복할 엄두를 못 냈는데, 깁슨에게 공을 맞고 열 받아서 마운드로 달려나갔다가는, 매서운 주먹에 두들겨 맞고 KO당했기 때문이었다. 깁슨은 미국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십에 나가 우승할 정도의 뛰어난 복싱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한 카더라에 그치지 않고, 이미 마이너리그 때부터 벨의 주먹 실력은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의 무시무시한 싸움 실력은 수많은 선수들의 목격담과 증언과 함께, 그보다 덩치가 큰 선수들조차 알버트 벨 앞에서는 감히 덤빌 엄두도 못냈다는 점이 그 증거.

전직 메이저리거 꽃미남 마퀴스 그리솜은 아예 벤치 클리어링 10계명에서 금기사항 1순위로 절대로 알버트 벨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할 정도였다. ("Don't go anywhere near Albert Belle. Just trust us on this one.")

그러나 특이하게도 알버트 벨은 고등학교 때 전교 3위 안에드는 수재였고 대학 때도 운동이 아닌 공부로 장학금 탈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이 있는데 이 쌍둥이 형은 굉장히 온화한 성격이라고 한다.그런데 알버트 벨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다.

은퇴 뒤에도 애인을 폭행하고 입건되는 등 그 성질머리를 못이겨서 사고를 여러번 치고 있다고 한다. 머그샷까지 찍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선수였건만 그 성질머리때문에 야구계에서 복귀하거나 지도자 생활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팬들도 많다. 물론 그 성격과 폭력성을 못 고치면 야구계에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당장 선수들도 반발할테니 말이다.물론 그의 앞에서 반발하는 용자는 없을 것 같지만 응?

그러나 이처럼 무시무시한 전설의 싸움꾼이긴 하지만, 의외로 클럽하우스의 팀 동료들과는 원만하게 잘 지낸 편이라고 한다. 그와 클리블랜드 시절 함께 했던 오마 비스켈은 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은, 친절한 벨과 지내면서 배려하는 태도와 차분한 모습에 놀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주의 사항이 압권이다. 그날 그가 4타수 무안타를 치거나, 화가 나 있을 때는 절대로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한다. 이 점만 명심하면 그와 아주 잘 지낼 수 있다. 또 그의 팀 동료였던 투수 마크 거스리 역시, 벨은 평소에 정말 유쾌하고 차분한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단지 경기에 들어서면 투쟁심이 너무 격렬해지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는 것뿐이라고. 물론 그 역시 주의사항을 말했는데 그가 불쾌한 상태이거나 흥분해있을때 맞서거나 말리지말고 그가 하고 싶을만큼 하게 내버려둬야 한다.

또한 움직이는 폭탄같은 이미지와 달리, 정당한 이유없이 상대를 두들겨 패거나 달려드는 경우는 없었으며, 반대로 고의 빈볼을 맞았는데 별다른 반응없이 조용히 1루로 걸어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우리팀의 행위에 대해 정당한 응징으로 상대 팀의 중심타자를 공격한다는 일종의 메세지인데, 벨은 무시무시한 이미지와 달리 우리팀 행동 때문에 상대방의 표적이 되어 자신이 맞아야 할 상황으로 인식하면, 아무 탈 없이 그냥 맞고 넘어가곤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복 메세지로 빈볼 투척 임무를 맡은 투수는 그야말로 죽을 맛 이었는데, 양팀과 심판, 팬들까지 빈볼이 나올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는데도 감히 무서워서 벨의 몸에 공을 맞추지 못한 경우도 여러차례 있었다.

한 투수는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으로, 벨의 엉덩이에 빈볼을 맞췄을 때를 꼽았는데, 공을 던지기 전 너무 두려운 나머지 공을 맞추자마자 그대로 덕아웃으로 튀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공을 맞추고 난 후 벨이 자신을 노려보자 다리가 떨려서 뛸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번 노려본 후, 아무일 없다는 듯 1루로 벨이 걸어가자 긴장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고 한다.[15] 이처럼 벨에 대해 기레기들과 악의적인 소문으로 인해 지나치게 그의 폭력성이 과장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러 일화로 고려해볼 때 공통적인 의견이 보이는데, '내가 정한 선을 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 즉, 자신을 화나게 하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타인을 함부로 공격하거나 거칠고 막되먹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는 소리다. 오히려 자신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상대가 존중해 준다면, 친절하고 매너있게 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를 과격하게 실천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 예로 상대팀이 불문율로 인해 빈볼을 던지는 상황에는 의외로 벨이 쿨하게 맞아줬지만, 빈볼을 던질 때 불문율인 엉덩이, 허벅지 쪽을 노리고 던지는 것이 아니라, 허리 위나 머리 근처로 공이 날아오는 경우는 가차없이 달려가 투수에게 지옥을 맛 보여줬다. 게다가 악의적인 기자들로 인해 왜곡된 것과는 달리, 벨은 팀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아낌없이 몸을 날려가며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공격 중 선행 주자인 동료에게 상대팀 수비가 거친 태그플레이를 하자마자, 냅다 달려가 3루수와 유격수를 한 주먹에 때려눕힌 적도 있었으며, 상대팀이 불문율을 어기는 짓을 하면 즉각 응징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만큼 팀 동료들에게 있어서 벨은, 화날만큼 건들지만 않으면 잘 지낼 수 있는 동료에다, 상대팀이 비겁한 행동을 하거나 시비를 걸 때는 즉각 나서서 박살내주는 보스이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벨의 명성이 메이저리그에 단단히 퍼진 이후에는, 그가 두려워서 감히 그의 팀에게 불 필요한 자극을 하거나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는 일도 거의 없어졌고, 설령 난투극이 벌어져도 일당백의 용사 벨 앞에서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되니, 어찌보면 이만큼 든든한 동료도 찾아보기 어려운 셈이다.

2000년대 이후에 카일 판스워스라는 새로운 싸움꾼이 등장한 이후 알버트 벨 VS 카일 판스워스 떡밥도 간혹 나오곤 했다. 요즘은 여기에 루그네드 오도어, 매니 마차도가 끼어들었다.

스테로이드 시대에서도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강타자였지만, 특이하게도 약물 의혹이 거의 없는 선수다. 물론 아주 없는 건 아니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약물 복용 의심이 간다는 이야기들도 간혹 나온 적이 있었지만, 그야말로 벨의 안좋은 이미지 때문에 괜히 그런것 아닐까 하는 추측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상으로 몸 상태가 나빠진 게 약물 부작용 때문이라든가(...) 하는 음모론자들의 이야기도 있었으나, 고관절 괴사와 퇴행성 관절염은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경기력 향상 약물과 연관성을 찾을 수 없어, 말 같지도 않은 낭설로 치부되고 있다.

물론 이는 모두 벨의 이미지가 워낙 난폭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받는 불이익이라 할수 있으며, 이런 낭설들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으로 간단하게 일축되었는데 그야말로 아주 걸작이다(...).

4. 사건사고 겸 기행

메이저리그 최고의 악동답게 사건사고와 기행이 많다.

기본적인 벤클 내지 빈볼성 공 때문에 투수한테 달려든 경우 정도를 제외했음에도 저 정도가 나온다.

다만 당시에도 기자들과 언론의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이 잘못 되었다는 증언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40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팀이 끌려가는 분위기에서, 상기 언급한 여자리포터는 공명심에 취해, 신경이 날카로운 벨을 계속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질리게 요구하는 바람에 계속 고사하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계속된 요청과 도가 지나친 질문을 반복하여 마침내 벨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월드 시리즈 기간 중 인디언스의 동료들도 위 여자리포터의 무례할 정도로 집요한 취재에 학을 떼던 상황이라서, 오히려 언론이 비난하자 일제히 벨의 편을 들며 리포터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평소 기행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위에서 자세히 일화를 언급한 것처럼, 동료 선수들은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한다면, 친절하고 든든한 존재라는 증언들도 많다. [22] 실제로 지역사회에 기부한 액수도 상당했으며, 지역 잡지에 칼럼도 쓰는 등 난폭한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지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 팬들에겐 친절하게 대하면서 사인도 잘 해주었고, 팬들을 위해 시까지 쓴 일도 있다.

무엇보다 벨은 벤치 클리어링의 정복자였지만, 불문율과 코드를 지키지 않는 경우에만 폭발하여 응징을 가했을 뿐이지, 상대 팀의 상황을 제대로 읽고 존중할 줄 아는 선수였다.
1995년 9월 28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경기 1회말 때, 클리블랜드의 선발투수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상대팀 타자인 커비 퍼켓의 턱을 정통으로 강타하는 데드볼을 던지며 퍼켓이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물론 정황상 고의성은 전혀 없었고[23] 마르티네즈는 덕아웃에서 퍼켓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는 자책감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괴로워했지만, 불문율에 의거하여, 우리팀의 스타를 맞추면 상대방 스타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인지라, 미네소타의 선발 투수 프랭크 로드리게스는 단단히 작심하고 2회초 마운드에 올랐는데, 아뿔싸 클리블랜드 선두 타자가 하필 악동 오브 더 악동 알버트 벨이었다(...).
그렇다고 벨을 거르고 후속 타자한테 보복구 던지기도 우스꽝스러웠던 지라 로드리게스는 밥숟갈 놓을 각오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초구를 벨의 등짝에 힘껏 꽂았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는 물론 양팀 선수단과 관중들, 기자들 전부 벨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지 ㄷㄷㄷ 기대했는데,

정작 벨은 로드리게스를 한번 째려보고는 쿨하게 1루로 걸어나간 게 전부였다.
그리고 로드리게스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겠지

경기 후 기자들이 벨에게 우르르 달려가서 "왜 그때 마운드로 뛰어가지 않았는가?" 라고 묻자 벨은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약간 쑥스럽다는 듯 대꾸하기를,

"싸움 터지면 제일 먼저 나한테 달려들 퍼켓이 실려갔는데, 뭐 하러 올라가?"

최훈은 이 사건을 박재홍 vs 김일엽 벤치 클리어링 사건[24]이 터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웹툰으로 그리면서 박재홍을 디스하기도 했다.링크

2018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는 그곳 노출 2회, 술과 약물, 물담배 관련 위법 1회, 혈중 알콜농도 0.08 이상인 상태로 음주운전 적발 1회 등으로 인해 체포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5. 알버트 벨에 대한 말말말

알버트에게는 경기를 준비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것이 알버트의 방식이라면 나는 그것을 존중할 것이다.
제프 배그웰. 알버트 벨이 1996년 올스타 인터뷰를 거절했을 때
나는 경기에 뛰고 싶지 않은 녀석을 위해 자리(1998년 올스타)를 낭비하지 않겠다.
마이크 하그로브
그는 2살짜리 아기이다. 5분마다 마음이 바뀐다.
존 마룬
그는 이곳에 와서 매일 경기한다. 그는 전사이며 나는 그가 최고이길 바란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쁜 녀석이 아니다.
프랭크 토마스
사람들은 내가 알버트를 좋은 녀석이라고 말하면 충격을 받곤 한다. 그의 유일한 문제점은 그가 너무 투쟁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벨이 경기하면 투쟁심은 그를 지배해버리고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마크 거드리
당신은 이해 못 할 것이다. 그는 미쳤다.
샌디 알로마
야구 카드(Bubble-gum cards)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는 특별하다.
찰스 존슨
그냥 그의 성적을 보라. 그는 나가서 열심히 플레이한다. 언론에 묘사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당신들은 그에게 기회를 준 적이 없다.
켄 그리피 주니어
그가 최고일 때, 그는 이 게임에서 가장 아웃시키기 어려운 타자 중 한 명이다.
윌 클락
그는 정말 부드러운 남자이며 마치 12살 소년과 같다. 하지만 그가 경기에 나서서 3타수 0안타를 기록했을 때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추천한다.
종종 아이스박스를 던지거나, 클럽하우스의 전화기를 부숴버리곤 했다. 쿠키가 사방에 널려 있기도 했다.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다. 3타수 3안타를 치고도 마지막 타석에서 팝플라이 아웃을 당할 때 역시 물건을 집어던진다.
오마 비즈켈
절대로 알버트 벨 근처에는 가지 마라. 선수생활 끝장나는 수가 있다.
마퀴스 그리솜, 메이저리그 벤치클리어링 10계명 중 8번째


[1] 루이지애나 주 출신으로, 성과 이름 모두가 프랑스식이다. 영어로 읽으면 알버트 조주안 벨.[2] 1995년 장타율 1위, 최다 2루타, 홈런왕, 최다루타, 타점왕, 최다 득점[3] 윌리엄스가 더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도 기자단과 극도로 사이가 나빠 조 디마지오에게 MVP를 뺏긴 경우와 비슷하지만 성격은 좀 다르다. 디마지오는 윌리엄스가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것과 별개인,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위치였는데, 그야말로 베이브 루스이후 전 미국인이 사랑하고 경배하는 반쯤 신격화된 우상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자들은 윌리엄스가 싫어서 표를 주지 않는 이유보다, 디마지오를 너무 사랑해서 그에게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4] 반면 1995년 벨과 모 본의 경우는 그냥 벨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보다 성적과 명분은 물론, 위상마저 떨어지는 본에게 표를 떠 넘긴 것인 만큼, 악감정으로 두 선수 모두에게 엄청난 결례를 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질이 훨씬 더 나쁜 짓이다.[5] MVP가 투타 종합으로 시상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1995년 최고의 선수는 세이버 기록으로 따질 때 랜디 존슨으로 나타난다.[6] 이 계약 때문에 안 그래도 철부지 같다는 평을 듣곤 했던 토마스가 본격적으로 삐져서, 자신의 대우를 놓고 공개적으로 툭하면 입을 삐죽거리곤 했다. 여기에 더해 벨의 입단 이후, 토마스는 사실상 클럽하우스와 팀에서 위상이 2인자로 밀려났는데, 감히 벨에게 대들 생각은 못할테니 원만하게 지낸 듯 보이지만, 언론에 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늘어났다.[7] 그리고 화이트삭스 이적 첫해에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그가 소개될 때 클리블랜드 팬들은 야유 소리와 그가 받은 거액의 돈에 관련되어 비꼬는 문구로 환영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올스타전처럼 즐기는 경기에서 상대팀 선수에게조차 야유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경우를 생각하면 그만큼 배신감이 대단했다는 뜻. 물론 딱 20년 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긴 했다. 반면에 바로 그 다음 소개의 클리블랜드 소속의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박수를 보냈고, 심지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하고 내셔널리그 올스타에 선정된 케니 로프턴에게는 대조적으로 기립박수와 환호, 우리는 당신이 그리웠다는 문구로 열렬히 환영해주었다.[8] 벨은 2년간 성적으로 돈값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의 영입으로 서운하고 상심해 소녀 감성이 된 토마스가 장기계약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계약 이후 팀의 리더답지 못한 모습으로 잉여화 되어버리는 나비효과였던 것이다.[9] 고관절 부상은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중 하나라는 점에서 약물의혹이 전혀 없지는 않다. 알렉스 로드리게스[10] 모 본은 벨의 7,500만달러 계약을 능가하는, 무려 6년간 8천만 달러의 계약으로 에인절스에 입성한 후, 2년간 그럭저럭 성적을 내다가 부상으로 팀에 아무 도움을 못주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본은 계륵으로 전락해 뉴욕 메츠로 쫒겨나듯이 트레이드 되었으며, 그곳에서도 반복되는 부상과 추락한 기량으로 먹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즌 아웃으로 보험금 지급 처리를 놓고, 부상자 명단에 올라 게속 연봉을 보장받는 모습을 보여 그야말로 먹튀의 대명사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게 된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깔깔이 패션으로 많은 국내 MLB팬들의 필수요소이자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11] 훗날 이를 답습하는 선수가 나타나게 된다.[12] 모 본은 이후 미첼리포트에 약물복용 사실마저 밝혀졌고 사상 최악의 먹튀 + 스테로이드 복용자라는 불명예 2관왕을 달성한다.[13] 후안 곤잘레스 역시 칼춤을 추듯 8자로 휘둘러대는 특이한 타격폼과, 사상 최고 수준의 타점 생산 능력을 보인 1990년대 최고의 우타 슬러거였으며, 알버트 벨과 동급으로 놓을 만한 위치였으나, 미첼리포트에 이름이 올라가면서 약물복용자로 낙인이 찍혀 제외.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는 스테로이드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데다 내셔널리그에서 대폭발했으니 논외.[14] 기자단이 정상적으로 투표했다면 1995년 MVP는 당연히 벨의 것이었으며, 1996년과 1998년 역시 수상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15] 당시 경기에서 먼저 클리블랜드 투수가 상대편 타자에게 데드볼을 날렸기에 보복으로 빈볼을 한 것이었다. 물론 벨은 이걸 알고 있는 듯 그냥 힐끗 보더니 그냥 가버렸다.[16] 더 무서운 건 이게 무려 데뷔 시즌 때 터진 사건이다(...) 이미 루키때부터 싹수가 보였다[17] 벨의 별명이자 예전 이름인 '조이'라고 계속 불렀다는 이유로...별명이라며?[18] 할로윈에는 일종의 전통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은 그냥 웃고 넘기는 정도의 일이다.[19]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은 기레기의 지나친 취재 강요로 밝혀짐[20] 피트 로즈가 어찌 된걸 생각하면... 다만 로즈는 감독이라는 사람이 자기 팀 경기에 돈을 걸고 도박을 하며 승부조작을 한 게 걸려서 영구제명을 당한 것이라 벨과 비교하는 건 벨이 억울한 수준이다.[21] 아이러니하게도 5년 연속 팬투표로 선발되었고, 최고의 스타 그리피에 이어 득표수 2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그의 강렬한 캐릭터성과 무시무시한 성격에 반해, 실력 하나는 최고인 독고다이 배드 애스 이미지 덕분에 꽤나 스타성이 높았다. 메이저리그(영화) 덕분에 90년대 중반 인디언스의 인기가 엄청나 전국구였던 영향도 있었다.[22] 특히 사람 좋기로 소문난 켄 그리피 주니어는 벨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23] 퍼켓 자신도 병상에서 "데니스가 일부러 그런 공을 던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퍼켓은 이듬해인 1996년 시즌 초반 갑작스런 녹내장 발병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해야 했는데, 그 당시의 빈볼이 그의 녹내장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기는 하다.[24] 자세한 내막은 박재홍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