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플라비우스 롱기누스 (Flavius Longinus)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집정관 |
반란 대상 | 아나스타시우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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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레오 왕조의 반란자. 제노 황제의 친동생으로 황위 계승이 유력했으나, 아일리아 아리아드네 황후가 백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그를 제쳐두고 아나스타시우스 1세를 황제로 옹립하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했다.2. 생애
소아시아 이사우리아 출신으로, 제노의 남동생이다. 그는 발레리아와 결혼하여 롱기나라는 딸을 낳았다. 475년 형 제노가 황위에 오른지 1년만에 바실리스쿠스에게 축출되었고, 바실리스쿠스는 일루스에게 제노를 잡으라고 명령했다. 바실리스쿠스는 롱기누스를 잡아서 제노를 유인하려 했다. 그런데 바실리스쿠스가 수도에서 이사우리아 족을 학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루스는 제노의 편으로 돌아섰고, 결국 바실리스쿠스는 476년 폐위당하고 제노가 황위에 복귀했다. 그러나 일루스는 제노를 통제하기 위해 롱기누스를 계속 붙잡았다.484년 일루스가 반란을 일으킨 뒤, 그는 반란군에게 이끌려 파푸리우스 요새에 들어갔다. 485년 협상을 통해 석방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들어갔고, 486년과 490년에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에게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했고, 경마 경기장에 새로운 무용수 4명을 알선하기도 했다. 491년 형 제노가 죽자 황위에 오를 유력 인사로 떠올랐지만, 제노의 황후 아일리아 아리아드네는 이사우리아인을 황제로 세우지 말라는 백성들의 성원에 따라 롱기누스를 제쳐두고 아나스타시우스 1세와 결혼하고 그를 황위로 세웠다.
롱기누스는 이에 불복하여 492년 아사우리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스키타이 출신의 요한네스 장군에 의해 쿼타히아에서 패배했고, 뒤이어 493년 요한네스 갑부스가 이끈 제국군에게 대패했다. 494년부터 산간의 요새에 틀어박혀 해상으로 안티오키아에서 보급을 받으며 제국군의 공세를 버텼으나, 497년에 스키티아 속주의 요한네스 군에게 함락되어 주동자들이 타르수스의 성문에 효수되었다.
롱기누스는 498년에 요한네스 깁부스에게 사로잡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고, 아나스타시우스 황제는 히드포룸에서 포로들에게 절을 받으며 개선식을 치렀고 승리의 기념으로 황궁에 칼케 문 건설을 명하였다. 그 후 롱기누스는 이집트로 유배되었지만,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