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로마 황제에 대한 내용은 콘스탄티노스 3세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름 |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VS III) |
출생 | 미상 |
사망 | 411년 |
직위 | 브리타니아 방면군 사령관 |
반란 대상 | 호노리우스 |
종교 | 기독교 |
[clearfix]
1. 개요
브리타니아에서 황제를 참칭하고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 영향력을 행사한 반란자. 한때 호노리우스로부터 공동 황제로 인정받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내부분열과 게르만족의 침략, 콘스탄티우스 3세의 토벌로 인해 패망했다.2. 행적
406년 12월, 반달족, 알란족, 수에비족, 프랑크족, 부르고뉴족 등 게르만 부족들이 리안강을 건너 로마 제국을 침략했다. 거듭된 내전과 재정 파탄으로 군대를 제대로 갖추기도 어려웠던 데다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일리리아에 거점을 세우고 이탈리아를 수시로 침공하는 걸 막아내야 했던 로마 제국은 이들을 막아내지 못했고,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일대는 혼란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중앙 정부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브리타니아에서는 반란이 종종 일어났다. 406년, 마르쿠스라는 인물이 병사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를 참칭했다. 그는 얼마 안가서 그라티아누스에게 살해당했고, 그라티아누스 역시 4달 후에 살해되었다.이렇듯 황제를 칭한 자들이 얼마 못 버티고 살해당하기 일쑤였지만, 407년 황제를 참칭한 콘스탄티누스는 달랐다. 그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콘스탄티누스'라는 이름이 위대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를 떠올린 병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브라타니아에 주둔한 모든 로마군을 이끌고 영국 해협을 건너 보노니아에 상륙했다. 갈리아 방어를 담당한 총독 리메니우스와 하리오바드 장군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달아났다. 그는 갈리아를 빠르게 장악하고 히스파니아와 라인강 연안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고트족 출신의 장군 사루스를 파견해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사루스는 콘스탄티누스의 두 장군인 이우스티니아누스와 프랑크인 네비오가스테스를 물리쳤다. 네비오가스테스는 처음에 발랑스에 갇혔다가 곧 살해되었다. 하지만 사루스는 곧 알프스를 통과하는 통로를 차단한 바가우다이를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돌려야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에도비쿠스와 게론티우스가 이끄는 다른 부대를 파견해 라인강 연안 일대를 완전히 평정하고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통로에 수비대를 배치했다. 또한 일부 게르만 족을 물리치고 다른 부족과 평화 협약을 맺었으며, 408년 5월 아를을 수도로 삼고 아폴리나리스를 갈리아 총독에 임명했다.
408년 여름, 콘스탄티누스 3세는 히스파니아의 호노리우스 사촌들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선제공격을 하기로 했다. 그는 장남 콘스탄스를 카이사르(부황제)로 삼고, 게론티우스와 함께 히스파니아로 파견했다. 호노리우스의 사촌들은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게론티우스와 콘스탄스에게 패배했다. 디디무스와 베레니아누스는 생포되었고, 테오도시우스와 라고디우스는 이탈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주했다. 그 후 콘스탄스는 카이사아우구스타에 있는 본부에 아내를 두고 아를로 돌아갔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호노리우스 휘하의 로마군이 티키누스에서 봉기를 일으켜 플라비우스 스틸리코의 지지자들을 대거 학살했고, 스틸리코 역시 며칠 후 즉결 처형되었다. 그 후 반야만인으로 취급된 인사들이 대거 살해당하자, 시루스는 무리를 모아 알라리크에게 투항했다. 이제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군이 이탈리아를 압박해들어오자, 호노리우스는 공포에 떨었다. 이때 콘스탄티누스가 보낸 사절들이 라벤나에 찾아와 콘스탄티누스를 동등한 황제로 인정해달라고 청하자, 호노리우스는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409년, 콘스탄티누스는 호노리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출되었고 공동 황제로 승인되었다.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콘스탄티누스는 주화에서 자신과 호노리우스, 아들 콘스탄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2세를 서방과 동방의 동등한 황제로 칭했다.
409년 9월, 수많은 게르만족이 라인강 전선을 뚫고 갈리아를 통과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같은 시기에 색슨 해적들이 브리타니아를 습격하여 약탈을 자행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들의 침략을 제대로 막지 못했고, 브리타니아 주민들은 자신들을 지키지 못한 그에게 분노해 반기를 들어 그의 관리들을 추방했다. 설상가상으로, 히스파니아에 남겨졌던 게론티우스 장군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에 아들 콘스탄스에 진압군을 보내 게론티우스를 토벌하게 했지만 오히려 참패하여 콘스탄스가 주살되었고, 게론티우스는 막시무스를 황제로 세우며 콘스탄티누스를 적대했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자, 그는 도박을 걸기로 작정했다. 410년 여름, 남은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군해 알프스를 넘어 리구리아에 입성했다. 그는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을 막지 못하여 원성을 사고 있는 호노리우스를 자신이 대신하길 바랬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 3세가 이끄는 군대에게 격퇴되어 갈리아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게론티우스는 히스파니아를 넘어 콘스탄티누스와 차남 율리아누스를 아를에서 포위 공격했고, 갈리아에 흩어진 콘스탄티누스의 부하들은 그를 구하길 거부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부관 에도비쿠스를 갈리아 북부와 라인강 너머로 보내 새로운 군대를 모집하도록 했다.
그러나 에도비쿠스가 오기도 전에 콘스탄티우스 3세가 아를로 진군하여 게론티우스를 물리치고 아를을 포위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에도비쿠스가 도와주길 희망하며 계속 버텼지만, 에도비쿠스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으로부터 용병을 받아낸 뒤 이동하던 중 콘스탄티우스 3세에게 격파당했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항복했다. 그는 항복하기 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콘스탄티우스로부터 신변의 안전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압송된 뒤 411년 9월 18일 라벤나에서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참수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잔당들은 마인츠에서 부르고뉴 왕 군다하르와 알란 왕 고아르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요비누스를 따랐다. 요비누스는 리옹, 트리어, 아를의 갈리아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고, 군다하르는 요비누스로부터 라우터 강과 나헤 강 사이의 라인강 좌안 평원에 거주지를 세울 권리를 '인정'받고, 거기에 부르고뉴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413년 서고트 왕 아타울프가 갈리아로 들어올 때 맞섰다가 발렌티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뒤 나르보로 끌려가 참수되었고, 그의 수급은 8월 말 라벤나에 거주하는 호노리우스에게 보내졌다.
3. 여담
-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낸 'Barbarian Migrations and the Roman West 376-568'이라는 책에는 'The great invasion and Constantine 'III', 406–408'이라는 작은 챕터가 있다. 재위기간이 409년부터 411년으로, 명시된 406년부터 408년에는 공동황제로 승인된 시기가 아니다. III, 곧 '3세'에 따옴표가 붙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땐 정통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 웨일즈 연대기들에서 브리튼인들의 왕(King of the Britons)이라고 기록된 콘스탄티누스 2세랑 동일시되어 혼동하기도 하는데,영어 위키백과 동일인이 아니다. 이 문서의 콘스탄티누스 3세는 로마의 장군으로 브리튼에서 서로마 황제라고 선언한 사람이고, <브리타니아 열왕사> (Historia Regum Britanniae)에 나오는 콘스탄티누스는 브르타뉴(Brittany)의 왕 코나누스(Conanus)의 아들로 브리튼의 왕이다. 코나누스에게는 두명 있었는데, 브르타뉴의 4대 왕인 알드로에누스(Aldroenus)와 브르타뉴와 브리튼의 왕인 콘스탄티누스 2세(Constantine II)가 그들이다. 런던 대주교 가이드리누스(Guithelinus)는 로마군 철수로 인한 이민족의 잦은 침입과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브르타뉴를 찾아와 도움을 청했고 부르타뉴 왕 알드로에누스는 브리튼의 왕위를 약속받고 자신의 동생인 콘스탄티누스에게 병력을 주워 이민족을 물리쳤고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브르타뉴의 왕이자 브리튼의 왕이 되었다. ABE전집에 수록된 청소년 소설 '횃불을 든 사람들'에서는 주인공 아퀼라가 섬기는 군주인 암브로시우스의 아버지이자 보티건의 매부로 언급되는 이도 브리튼의 왕 콘스탄티누스 2세이다.
- 소설 눈 속의 독수리에서 시대 배경적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 막시무스와 사촌 율리아누스의 긴 인연이 하나의 주요한 축인데 당시 브리타니아 속주를 다스렸던 콘스타티누스 3세에 의해 율리아누스 집안은 무너지고 율리아누스는 브리타니아에서 로마군에 반란을 일으켜 검투사가 되고 이민족의 편에 선다. 반면 같은 속주 태생이나 막시무스는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국 로마를 위해 묵묵히 군인의 의무를 수행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