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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21:29:24

아이밀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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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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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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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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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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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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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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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밀리아누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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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렌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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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32대 황제
아이밀리아누스
AEMILIANVS
파일:Aemilian1.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아이밀리아누스
(Marcus Aemilius Aemilianus)
출생 210년
로마 제국 아프리카 속주 기르바(오늘날의 튀니지 제르바 섬)
사망 253년 9월 (향년43세)
로마 제국 스폴레티움
재위 기간 로마 황제
253년 6월 ~ 253년 9월 (4개월)
전임자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볼루시아누스
후임자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배우자 코르넬리아 수페라
종교 로마 다신교
1. 개요2. 생애
2.1. 황제 즉위 이전2.2. 황제 즉위2.3. 최후
3.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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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제32대 황제. 본명은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제위에 오른 뒤 취한 이름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Marcus Aemilius Aemilianus Augustus)이다. 3개월 동안 로마 황제로 재임한 사람으로, 군인황제시대에 즉위한 황제 중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함께, 미천한 가문 출신 황제로 유명하다.

이름만 보면,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 아이밀리우스 가문 태생 또는 이 가문의 클리엔테스에서 시작된 집안 후손 같다. 그러나 고대 기록들에 따르면 오늘날의 튀니지 제르바 섬 태생의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이 일대의 원주민 출신 로마인이다.

253년 판노니아 및 모이시아 총독으로 있던 중 게르만족의 침략을 격퇴한 후 병사들로부터 황제로 추대된 뒤 로마로 진군하여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를 격파했다. 그러나 3개월여 만에 갈루스의 요청을 받아 라인강 방면 로마군을 이끌고 달려온 발레리아누스에게 패했고 결국 253년 9월 부하들의 배신으로 살해당했다.

2. 생애

2.1. 황제 즉위 이전

이이밀리우스 아이밀리아누스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기록이 엇갈린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등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207년에 튀니지 해안에 인접한 섬인 기르바(오늘날의 제르바 섬)에서 태어났고 무어인이었다고 한다. 반면 12세기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요안니스 조나라스로 대표되는 또다른 기록에서는 아일리아누스는 무어인보다는 오늘날 서이집트와 동리비아 일대에서 건너온 리비아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두 주장 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며, 그가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태생의 비천한 가문 출신이었다는 것은 모든 고대, 중세 기록에서 일관되게 기록되어있다.

13세기 때의 로마사 라틴저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253년 사망 당시 40세였다고 기술되었다. 이에 따른다면 그는 213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밀리아누스는 고대 로마의 아이밀리우스 씨족과 연관되지 않은 아프리카 출신인 건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그의 집안은 비천했다고도 하는 말을 놓고 이야기가 많고, 일각에서는 현지에서 잘 나가는 가문이었다고도 하는데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런 논란 외에도 아이밀리아누스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같은 아프리카 속주 태생의 코르넬리아 수페라와 아프리카 속주를 떠나기 전 결혼했고, 즉위 후 그의 아내는 로마동전에 황후로서 초상화를 남겼다. 또 그가 황제가 되기 직전 속주총독을 역임한 것을 볼 때 학자들은 아마도 아이밀리아누스가 원로원 의석을 가졌고, 선출관직을 역임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아이밀리아누스는 대부분의 속주 출신들이 그렇듯 일찍이 군대에 입대하여 순조롭게 출세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집권 시기였다. 이때 아이밀리아누스는 판노니아와 모이시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의 임무는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발칸 반도를 지키고 게르만족을 격퇴하는 것이었다. 당시 갈루스는 데키우스 황제를 전사시킨 고트족과 평화 조약을 맺었지만, 그 내용이 매우 굴욕적인 데다[1] 다른 게르만 부족들이 고트족의 성공을 부러워하며 다뉴브 강을 건너 발칸 반도를 휩쓸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갈루스 황제에 대한 원망은 극에 달했다. 안티오크의 역사가 요한에 따르면, 아이밀리아누스는 모이시아의 총독으로 부임할 때부터 새황제가 된 갈루스에게 반역할 음모를 일찌감치 꾸몄다고 한다.

2.2. 황제 즉위

253년, 판노니아와 모이시아의 총독 아이밀리아누스는 발칸 반도에 흩어진 로마군을 수습한 후 게르만 부족들에 대한 반격에 착수했다. 이때 그가 이끄는 로마군은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게르만족은 허둥지둥 다뉴브 강을 건너 본토로 도주했다. 이후 아이밀리아누스는 연공금 명목으로 징수한 황금 등을 휘하 병사들에게 은사금 명목으로 지급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래서 그는 곧 판노니아, 모이시아 일대 병사들에게 황제로 추대된 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에게 정식으로 반기를 들고, 도나우 방어선 일대의 로마군을 모아 로마로 진격했다. 하지만 이런 아이밀리아누스의 행동은 물러난 이 일대 게르만족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고, 지불받아야 될 연공금을 받지 못한 고트족은 이 기회를 명분삼아 다뉴브 강을 도하해 기어이 발칸반도를 돌파해 그리스 북부의 테살로니키를 약탈했다.

그러자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는 원로원을 설득해 아이밀리아누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고, 자신의 지지자였던 라인강 방면군 사령관 발레리아누스에게 자신과 합세하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이후 그는 로마에서 군대를 이끌고 아이밀리아누스를 저지하러 출격했다. 이때 두 군대는 스폴레토 들판에서 맞붙었는데, 아이밀리아누스는 이 전투에서 갈루스를 격파했고, 갈루스는 남쪽으로 도주했다가 253년 8월에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갈루스의 수급을 확인한 아이밀리아누스는 로마로 진군했고 원로원은 그를 황제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당대 기록에 따르면, 아이밀리아누스는 자신이 트라키아와 동방에서 게르만족과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제국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하고 자신의 권력을 원로원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원로원은 그런 그를 자신들의 장군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2.3. 최후

갈루스 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강 방면 로마군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던 발레리아누스는 급히 판노니아 일대에서 다른 로마군 잔여 병력까지 소집했다. 이때 발레리아누스는 남하 중 옛 동료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휘하 병사들에게 황제로 추대됐고, 발레리아누스는 아이밀리아누스를 황제를 살해한 반역자라고 규정한 뒤 국가의 적을 처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로마로 진군했다. 따라서 갈루스를 제거한 아이밀리아누스는 예상보다 빨리 남하하고 있던 발레리아누스를 막기 위해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이에 맞서려 했다. 하지만 양측의 전력 차는너무 컸다. 이에 아이밀리아누스의 부하들은 이 전투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253년 9월 아이밀리아누스를 ‘피의 다리’로 알려진 곳에서 살해하고 수급을 발레리아누스에게 바쳤다. 이렇게 해서 아이밀리아누스는 황제를 칭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죽었다.

3. 평가

매우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능력만으로 로마군 안팎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전직집정관 신분을 거쳐, 모이시아 총독을 역임한 뒤 즉위한, 입지전적의 황제였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미천한 출신으로 로마 황제까지 오른 페르티낙스,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와 달리, 개인능력과 경력 모두 전체적으로 페르티낙스와 비슷한 인물이다. 다만, 페르티낙스처럼 재위 기간은 매우 짧았음에도, 지지 기반 측면에서는 철저히 휘하 로마군이었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아이밀리아누스는 당대부터 평이 갈렸다. 즉위 과정에서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제위를 욕심내고 갈루스가 고트족과 화친 후 사용될 황금을 병사들 은사금으로 지급하고 방어병력을 뺀 뒤 그대로 갈루스를 공격하면서 다뉴브 강 이남의 다른 속주들이 약탈당하도록 했다[2]. 또 석달도 안 된 시점에서 전임자 갈루스도, 후임자도 하필이면 원로원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출신 가문도 공화정 시대부터 노빌레스인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와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부자였기 때문에 막상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던 황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석 달 만에 힘도 못 쓰고 갈루스의 복수를 외치며 라인강 쪽에서 군을 모아 내려온 발레리아누스 부자와 전투도 치르기 전에 허무하게 몰락한 이후, 평가가 상당히 좋지 않다.

이런 이유로 인해 “치세가 더 형편없고 양심없다”라고 조시무스, 에우트로피우스 등 로마인 역사가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이는 조시무스와 에우트로피우스가 그의 전임자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를 “방어할 능력은 없고, 오로지 로마에만 관심을 둔 황제”, “게르만족들이 유럽 속주 도시들을 약탈하고 유린하는 동안 화친을 맺은 통치자” 등으로 씹어댄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후세 로마인들에게 세트로 묶여 비난받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상술했듯 원로원 의석을 갖춘 전직집정관 출신이기도 한 군인황제였고, 상황상 스스로를 군주 대신 그들의 장군으로 자처한 부분이나 전임자보다 책임감있고 절제된 통치를 했다는 기록, 갈루스 통치 중 모이시아 총독으로 있으면서 책임감 있게 게르만족과 전투에서 승리 후 당시 군대의 지지를 얻은 부분 등에서 이런 비난이 과하다는 평가도 받는 황제이다. 그래서 “전임자보다 더 형편없지 않은데?”, “기록처럼 양심없는 건 아니네”라는 말이 나오고 있고, 고대 기록들의 평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도 재평가 속에서 항상 따라 나오는 황제이다. 즉, 아이밀리아누스가 에우트로피우스 등의 말처럼 치세가 전임자보다 더더욱 형편없다고 무작정 저평가받는 것은 걸러 들어야 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4. 여담

'알려지지 않은 황제' 실반나쿠스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내용은 실반나쿠스 문서 참조.


[1] 고트족이 포로와 전리품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가는 걸 허용하고 매년 상당한 양의 황금을 고트족에게 바친다는 내용이었다.[2] 물론 이 부분에서 아이밀리아누스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전 병력을 빼서 내전을 일으킨 것도 아니며 갈루스의 굴욕적 협상방식과 합의내용을 보았을 때, 또 제위에 욕심이 있지 않은 강경파 입장에서는 설령 나쁜 의도로 그렇게 했다고 해도 승리 은사금 지급과 갈루스의 몰락은 필연적이었을 거라고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