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us Pupienus Africanus Maximus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 |
가족 | 푸피에누스(아버지) 섹티아 세테길라(어머니) 티투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형)[1] 푸피에나 섹티아 파울리나 카테길라(여자형제) 코르넬리아 마룰리나(아내) 푸피에나 섹티아 파울리나 케테길라(딸) 마르쿠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사위) 푸블리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아들) |
경력 | 집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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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세베루스 왕조, 군인황제시대의 원로원 의원, 집정관, 야전 사령관. 군인황제시대의 황제 푸피에누스의 차남이다.2. 생애
원로원 의원, 야전사령관, 프라이펙투스 우르비을 지내고 황제에 오른 푸피에누스와 그 아내인 섹티아 세테길라의 세 자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출생년도는 미상이나, 바로 위의 형 티투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풀케르 막시무스가 195년 즈음에 태어난 점을 볼 때, 못해도 196년 ~20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아버지, 형처럼 오래된 로마귀족으로 원로원 계급이나, 군입대 후 원로원에 들어갔다고 하며, 이런 경력 속에서 236년 군인황제시대를 연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황제의 지명으로 막시미누스 트라쿠스의 동료 집정관을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황제가 됐지만, 안토니아 고르디아나와 손 잡은 일부 프라이토리아니의 궁중 정변으로 공동황제 발비누스와 살해됐다. 이때 할머니쪽 친척 어른과 외가 쪽 친척 피나리우스 발렌스 등도 살해됐다. 이때 그와 형제자매가 함께 살해됐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푸피에누스, 발비누스가 구금된 뒤 고르디아누스 3세 지지자들에게 고문받을 때, 원로원에서 두 황제의 가족, 친척들이 호소를 했고, 가담하지 않은 프라이토리아니와 게르만족 경비대가 두 황제를 구출하려고 한 것을 볼 때, 살해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236년 이후 총독이나 집정관을 지냈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아버지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 사망했다는 추정도 있다. 다만, 푸피에누스 유가족들인 자녀들과 손주들이 푸피에누스 사후에도 원로원에서 활동했고, 이들이 티부르에 은거해 덕망을 쌓았다는 비문이 21세기에 발굴된 까닭에 238년 이후에도 살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일찍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코소니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우스 오르피투스의 딸 코르넬리아 마룰리나와 결혼해, 이혼 없이 평생을 살았고, 사이에 두 자녀를 뒀다. 첫째는 225년생인 딸 푸피에나 섹티아 파울리나 케데길라, 둘째는 출생년도 미상의 아들 푸블리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이다. 딸은 마르쿠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와 결혼했고, 아들은 원로원 의원을 지냈다.
[1] 티베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막시무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