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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3 13:56:52

티베리오스(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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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70-2대 황제
티베리오스
Τιβέριο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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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티베리오스
(Τιβέριος)
출생 705년
하자르족의 영역
사망 711년 (향년 6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블라케르나이의 성 마리아 성당
재위 기간 로마 황제
706년 ~ 711년 (5년)
공치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
부모 아버지 : 유스티니아노스 2세
어머니 : 하자르의 테오도라
종교 기독교

1. 개요2. 행적3. 가짜 티베리오스

1. 개요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아들이자 공치제.

2. 행적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702년 또는 703년 유배지인 케르손에서 탈출한 뒤 하자르족의 보호를 받으면서, 장차 제위를 탈환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중 티베리오스 3세가 보낸 동로마 제국의 사절이 이부지르를 찾아가 상당량의 금은보화를 주며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이부지르는 처음엔 거부했지만 제국의 압력을 받자 마침내 굴복했다. 며칠 후, 한 무리의 병사들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있는 파나고리아를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위해 파견된 경호병이라고 밝혔지만,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왔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병사들의 두 지휘관을 따로 자기 집에 초대해 그들이 집 안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그 후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제위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고, 테오도라는 임신한 몸으로 하자르로 돌아갔다.

705년 불가르족의 카간 테르벨의 도움으로 황위를 탈환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레온티오스와 티베리오스 3세를 처단한 뒤, 하자르족에 아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유스티니아노스는 이부지르가 반발할 것을 예상해 상당한 호위 병력을 함선에 태워 파견하였으나, 함대는 폭풍우로 인해 침몰했다. 그러자 이부지르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리석은 자여!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말고 그대의 아내를 2, 3척의 배에 태울 수 없었는가? 당신은 그녀를 전쟁으로 데려가려 하였는가? 보아라, 당신의 아들이 태어났도다. 사신을 보내 그들을 데려가라."

얼마 후 테오도라와 어린 아들 티베리오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했고, 유스티니아노스는 테오도라를 아우구스타로, 티베리오스를 공동 황제로 임명했다. 710년 교황 콘스탄티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먼저 동로마 제국 원로원과 어린 황제 티베리오스의 환영을 받았고, 뒤이어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접견했다.

711년, 아버지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필리피코스의 반란으로 피살되었다. 이때 아나스타시아 황태후는 어린 손자 티베리오스를 데리고 블라케르나이에 있는 성모 성당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필리피코스의 부하 2명이 들이닥쳐 황태자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늙은 태후가 애원했으나, 요한네스 스트로우토스라는 부하가 한 손으로는 제단을, 다른 손으로는 성십자가의 한 조각을 움켜쥔 채 덜덜 떨고 있던 티베리오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소년의 손아귀에서 십자가 조각을 빼앗은 후, 공손하게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황태자의 목에 걸린 성물함을 벗겨 자기 목에 걸었다. 그 다음에는 소년을 이웃 성당의 현관으로 끌고 가서는 옷을 벗기고 목을 베었다. 이리하여 이라클리오스 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3. 가짜 티베리오스

717년 또는 718년, 우마이야 왕조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 공격할 때, 자신을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아들 티베리오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무슬림군에게 자신을 로마 황제로 옹립해달라고 청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곧 사라졌다. 737년, 바시르라는 사람이 티베리오스를 사칭했다. 그는 테오판투스라는 맹인과 함께 음모를 꾸민 뒤, 테오판투스에게 우마이야 칼리파 히샴의 아들이자 무슬림 장성인 술라이만 이븐 히샴에게 가서 티베리오스가 은거 중인 장소를 알고 있다고 알렸다. 술라이만은 그 말에 솔깃해 티베리오스를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테오판투스는 돈을 받고 바시르를 데려왔다.

바시르는 처음엔 정체가 들킨 것에 두려워하는 척하며 자신은 티베리오스가 아니라고 벌벌 떨었다. 이에 술라이만은 그가 정말로 티베리오스라고 확신하고, 자신은 그를 해칠 의도가 없으며, 안전을 보장하고 장차 로마 황제로 복위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바시르는 자기가 티베리오스라고 '자백'했다. 술라이만은 즉시 아버지 히샴에게 서신을 보내 이 사실을 보고했고, 히샴은 티베리오스에게 황제의 복장을 입히고 행렬을 지어 주요 도시를 쭉 돌게 하라고 지시했다. 바시르는 먼저 에데사에 들렀고, 뒤이어 여러 도시를 들러서 영접받았으며, 마지막에 히샴과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다. 히샴은 전임 로마 황제가 살아 돌아왔다고 선포하고, 레온 3세를 폐위하고 그를 옹립할 뜻을 드러냈다. 그러나 '티베리오스'의 정체는 곧 드러났고, 바시르는 에데사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