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PRISCVS ATTALVS)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로마의 프라이펙투스 우르비, 원로원 의원 |
반란 대상 | 호노리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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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반란자. 알라리크에 의해 꼭두각시 황제로 추대되어 호노리우스와 대적했으나, 얼마 안가 고트족에게 버림받았다.2. 생애
선조가 그리스 사람이었다고 하며, 부친은 발렌티니아누스 1세 때 이탈리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는 로마의 원로원 의원으로, 409년경 로마 시의 프라이펙투스 우르비를 맡아 치안을 이끌었다. 당시 로마시는 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에 포위되어 기근의 위협에 시달렸다. 알라리크는 로마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는 조건으로 노리쿰을 정착할 땅으로 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호노리우스는 이를 받아들이는 듯하다가 알라리크가 철수하자마자 군대를 보내 고트군을 치게 했다. 알라리크는 로마군을 격파한 뒤 로마를 재차 포위했다.알라리크는 호노리우스를 좀더 압박하기로 마음먹고, 로마 원로원에 새 황제를 추대하라고 요구했다. 원로원은 장고 끝에 로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아탈루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하지만 로마 시민들이 별로 호응하지 않았고, 호노리우스가 끝까지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로마로 들어가던 곡물을 함대로 차단하기까지 하자, 결국 알라리크는 410년 아탈루스를 폐위하고 황제의 의복을 벗겨서 호노리우스가 있는 라벤나로 보내 협상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호노리우스와 알라리크는 라벤나에서 12km 떨어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호노리우스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깨고 사루스를 시켜 알라리크를 급습하게 했다. 알라리크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더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로마 약탈을 감행했다. 이후 갈라 플라키디아 등 주요 인사들이 고트족에게 끌려갔는데, 그 중엔 아탈루스도 있었다.
414년 알라리크의 처남이자 새 고트족 지도자인 아타울프는 보르도에서 아탈루스를 로마 황제로 추대했다. 그러나 415년 고트족이 콘스탄티우스 3세에게 패퇴하고 아타울프가 암살당한 뒤, 아탈루스의 입지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고트족은 416년 그를 로마군에 넘겼고, 그는 로마에서 열린 개선식에 참석한 뒤 리파리 제도로 유배되었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