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44대 황제 마르티니아누스 MARTINIANVS | |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마르티니아누스 Martinianus |
출생 | 미상 |
로마 제국 | |
사망 | 325년 |
로마 제국 카파도키아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324년 7월 ~ 324년 9월 18일 (2개월) | |
전임자 | 리키니우스 |
후임자 | 콘스탄티누스 1세 |
종교 | 로마 다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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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44-3대 로마 황제. 324년 7월 리키니우스에 의해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으나 324년 9월 18일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굴복한 리키니우스와 함께 퇴위했고, 이후 가택 연금되었다가 325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2. 생애
마르티니아누스의 황제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주조된 동전에는 그의 성함이 'MAR MARTINIANUS'라고 명기되었다. 여기서 'MAR'는 마리우스와 마르쿠스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기원과 전반적인 생애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나, 리키니우스의 부관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324년 7월 3월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패배한 리키니우스는 마르티니아누스를 서방의 아우구스투스로 지명해 콘스탄티누스와 완전히 단절했다. 고대 사료에서는 마르티니아누스가 카이사르로 지명되었다고 밝혔지만, 그의 이름이 새겨진 주화는 아우구스투스로 지명되었음을 알려준다.리키니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해군을 이용해 트라키아에서 소아시아의 미시아와 비티니아로 건너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마르티니아누스에게 서고트족 보조군을 포함한 해상 병력을 맡겼다. 그러나 헬레스폰트 해전에서 크리스푸스가 이끄는 적 함대에게 참패했다. 그 후 리키니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포위하고 있던 비잔티움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의 아시아 해안가에 있는 칼케돈으로 건너갔다. 콘스탄티누스는 즉각 추격했고, 양측은 324년 9월 18일 크리소폴리스 전투에서 리키니우스를 다시 격파했다.
리키니우스는 니코메디아로 퇴각한 뒤 계속 저항하려 했지만, 그의 아내이자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복 누이인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가 이제 그만 싸우고 항복해야 목숨은 건질 수 있다고 설득하자 결국 항복했다. 리키니우스와 그의 아들 리키니우스 2세, 마르티니아누스는 324년 9월 18일에 동시에 퇴위했다. 리키니우스 부자는 테살로니카에 연금된 채 살아갔고, 마르티니아누스는 카파도키아에 연금되었다. 그러나 325년 고트족과 내통하여 반역을 꾀한 혐의를 뒤집어 쓰고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리키니우스 부자와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