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18:18:10

호스틸리아누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로마 제국 제31대 황제
호스틸리아누스
HOSTILIANVS
파일:INC-2038-a_Ауреус._Гостилиан._Ок._251_г._(аверс).pn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가이우스 발렌스 호스틸리아누스 메시우스 퀸투스
Gaius Valens Hostilianus Messius Quintus
출생 미상
로마 제국
사망 251년 7월
로마 제국
재위 기간 로마 황제
251년 6월 ~ 251년 7월 (2개월)
전임자 데키우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후임자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볼루시아누스
부모 아버지 : 데키우스
어머니 :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종교 로마 다신교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제31-2대 황제. 풀네임은 가이우스 발렌스 호스틸리아누스 메시우스 퀸투스(Gaius Valens Hostilianus Messius Quintus)이다. 251년 6월 부친 데키우스와 형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아브리투스 전투에서 전사한 뒤, 새 황제로 즉위한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로부터 공동 황제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251년 11월 로마를 휩쓴 전염병에 걸려 병사했다.

2. 생애

230년경 판노니아의 시르미움 인근에서 출생했다. 그는 도나우 방어선 주둔 로마군에서 장군으로 활동하던 데키우스와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인 헤레니아 에트루킬라의 차남으로, 형으로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가 있었다. 그는 로마에서 평온하게 살다가 249년 9월 부친이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꺾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 역시 신분이 상승했다. 251년 5월 형이 부친과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을 때, 그는 카이사르(부황제)로 지명되었다.

호스틸리아누스가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데키우스와 헤렌니우스는 크니바 왕이 이끄는 고트족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발칸 반도로 향했다. 그러나 251년 6월, 아브리투스 전투에서 로마군은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고, 두 사람 모두 전사했다. 도나우 전선의 로마군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를 새 황제로 선포했지만, 로마의 원로원은 호스틸리아누스를 새 황제로 추대했다.

갈루스는 로마군이 고트족에게 대패당한 상황에서 쓸데없이 내전을 벌이기보다는 원로원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고, 고트족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로마로 돌아온 뒤 호스틸리아누스를 공동 황제로 인정했고, 친아들 볼루시아누스를 카이사르로 임명했다. 또한 갈루스는 데키우스를 신격화했으며, 호스틸리아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251년 11월 전염병이 로마에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고대 역사가 아우렐리우스 빅토르가 집필한 <카이사르의 책>과 익명의 저자가 집필한 <카이사르의 전형>은 이때 호스틸리아누스도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조시무스는 호스틸리아누스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에게 살해되었다고 주장했다. 현대 학계에서는 갈루스와 데키우스 가족과의 사이가 매우 원만했고, 양자로 들인 호스틸리아누스를 굳이 해쳐야 하는 동기를 찾기 힘든 점 등을 들어 호스틸리아누스가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게 맞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