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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피터 셀러스 Peter Sellers CBE | |
본명 | 리처드 헨리 셀러스 Richard Henry Sellers |
출생 | 1925년 9월 8일 |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 포츠머스 사우스씨 | |
사망 | 1980년 7월 24일 (향년 54세)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묘지 | 영국 런던 골더스 그린 납골당 |
신장 | 173cm |
학력 | 성 알로시우스 대학교 |
직업 | 배우, 코미디언, 가수 |
영화 데뷔 | 1950년, '흑장미'[1] |
활동 기간 | 1948년 ~ 1980년 |
배우자 | 앤 호(1951년~1963년 이혼) 브릿 에클랜드(1964년~1968년 이혼) 미란다 쿼리(1970년~1976년 이혼) 린 프레데릭(1977년 결혼) |
자녀 | 아들 마이클 셀러스(1954년생) 딸 사라 셀러스(1958년생) 딸 빅토리아 셀러스(1965년생) |
계급 | 영국 공군 상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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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핑크 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1인 다역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50년대에 라디오 채널 BBC 홈서비스를 통해 송출된 유명 코미디 방송 The Goon Show에서 여러 개그 캐릭터를 놀라운 목소리 연기력으로 소화하며 일약 인기 코미디언으로 도약했다.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비틀즈를 만나기 전에 피터 셀러스의 코미디 앨범 전담 프로듀서였다.
1980년 7월 24일 심장마비로 5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이전부터 심장 건강이 안 좋았다고 한다.[2]
영국 배우지만 유럽내에서도 인지도가 탄탄했던 배우라서, 2004년 그의 전기 영화가 제57회 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 주요 출연작
- The Goon Show 1951 ~ 1960
1951년 5월 28일 부터 1960년 1월 28일 까지 라디오 채널 BBC 홈서비스에서 송출된 코미디 프로그램. 피터 셀러스의 친구인 코미디언 겸 작가 스파이크 밀리건이 주도해서 제작했다. 스파이크 밀리건, 피터 셀러스, 해리 세콤브 라는 3명의 코미디언이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다양한 개그 캐릭터들을 연기하여 약 30분 길이의 단막극을 펼치는 코미디 쇼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초현실 유머를 영국 대중들에게 처음 선보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음향 효과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여류 백만장자 (The Millionairess), 1960
조지 버나드 쇼가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상속녀가 남편으로 만들고 싶은 의사와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파스타 공장에 취직하는 등 애썼는데도 차이자 티베트 수도원에 들어가 속세와 단절되기로 결심한다는 내용. 피터 셀러스는 소피아 로렌의 상대역인 인도인 의사로 나왔다. 셀러스와 로렌이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녹음한 Goodness Gracious Me라는 노래는 1960년에 영국 차트 탑10에 올랐다. 이 곡 외에도 두 사람은 듀오로서 많은 곡들을 같이 불러 히트시켰다. [3]
- 핑크 팬더 시리즈 1963 ~ 1982
피터 셀러스의 대표작. 프랑스 파리 경시청의 경감 자크 클루조(피터 셀러스)가 겪는 일련의 소동을 다룬 코미디 영화 시리즈로 감독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으로 유명한 블레이크 에드워즈. 피터 셀러스는 총 6편의 시리즈에 출연하였는데 그가 출연한 마지막 작품인 <핑크 팬더의 추적(Trail of the Pink Panther>(1982)은 1980년에 셀러스가 사망한 후 제작되었고 전편에서 쓰이지 않은 그의 푸티지들을 어거지로 끼워맞춰 완성시켰다. 그 결과 600만 달러를 들여 9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실패하였다.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로 피터 셀러스가 1인 3역을 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각하,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난다.) 총통 각하, 내가 걷게 되다니! (Sir, I have a plan. Mein Führer, I can walk!)는 피터 셀러스의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 카지노 로얄 1967
007 시리즈의 패러디 영화이자 대놓고 막나가는 미치광이 코미디 영화. 의외로 캐스팅이 무척 화려하다. 피터 셀러스 외에도 주인공인 데이비드 니븐, 할리우드의 천재 감독이자 배우로 명성이 높았던 오슨 웰스, 왕과 나로 유명한 여배우 데보라 카, 프랑스의 명배우 장폴 벨몽도, 심지어 우디 앨런까지 나온다. 원래는 명감독으로 알려진 존 휴스턴이 작업을 시작했으나 제작진과의 불화로 촬영장을 이탈하면서 그 뒤로 감독을 무려 4명을 더 갈아치운 끝에 완성된 영화이다. 게다가 촬영장에서 피터 셀러스와 오슨 웰스의 사이가 굉장히 나빴기에 두 사람이 도박하는 장면은 각각 따로 찍은 다음 편집했다고 한다.
- 매직 크리스찬 (The Magic Christian) 1969
비틀즈의 드러머였던 링고 스타[4]와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블랙 코미디 영화. The Goon Show를 제작한 장본인이자 해당 라디오 방송에서 피터 셀러스와 같이 합을 맞췄던 동료 코미디언 스파이크 밀리건, 몬티 파이선의 멤버인 존 클리즈도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다. 존 클리즈와 함께 몬티 파이선을 결성한 멤버 그레이엄 채프먼이 영화의 초기 각본 작업에 참여하였다. 팝 역사상 가장 불운한 밴드로 유명한 배드핑거가 폴 매카트니의 프로듀싱하에 해당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며 데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비록 영화 자체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제작진들의 유명세에 힘입어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
- 정원사 챈스의 외출(Being There) 1979
할 애슈비 감독 영화. 여주인 역의 셜리 맥클레인을 위로해주는 다정한 정원사 역으로 나왔다. 피터 셀라스가 다음해 사망하고 애슈비 커리어도 하향세를 타면서 두 사람 최후의 걸작으로 꼽힌다.
3. 연기 테크닉
피터 셀러스는 1인 다역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였다.피터 셀러스는 1962년 10월 플레이보이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자신이 한 작품에서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목소리부터 시작합니다. 연기 할 캐릭터가 어떻게 들려야하는지 연구하죠. 그가 말하는 방식을 통해 그에 대한 나머지를 알아냅니다. 목소리 다음에 그 사람의 외모가 나옵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그런 다음 메이크업 담당자와 함께 제 그림을 얼굴에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캐릭터의 걸음걸이를 정하죠. 캐릭터 형성에 있어서 걸음걸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걸음걸이까지 정하면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인물이 등장하는 거에요. 당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존재하기 시작하는거죠.
피터 셀러스.
피터 셀러스.
4. 사생활
인성 면에서는 안 좋은 얘기가 많던 사람이었다.피터 셀러스는 유쾌한 코미디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는데 평소 성격이 다혈질에다 까탈스럽기로 유명했고 실제로 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금사빠 기질이 있어서 유부남인데도 불륜을 밥먹듯이 저질렀다.[5] 그래서 4번의 결혼 생활 중 3번의 이혼 모두 셀러스의 정신건강 문제나 불륜으로 아내가 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좋지 않게 끝났다. 또한, 피터 셀러스의 지인들은 셀러스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린 프레더릭이 셀러스의 부인들 중 그에게 가장 안 좋은 대우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6] 자녀들에게도 항상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고 한다.
피터 셀러스와 많은 작품을 함께 작업했던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도 같이 일하기 힘든 배우였다며 영화 촬영 때 마다 그와 충돌이 심각했다고 인증했을 정도.
심지어 The Goon Show 동료들도 피터 셀러스가 사망하자 추모는 했으되 '저녁 식사 비용 지불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사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적절한 순간에 죽었다'는 블랙 유머스러운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1] 타이론 파워, 오슨 웰스 주연작.[2] 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았던 정신적인 문제 외에도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질 때 춘약을 자주 사용해서 약의 부작용 때문에 심장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3] 피터 셀러스는 소피아 로렌과 함께 활동하면서 그녀를 연모하기 시작했고 소피어 로렌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고 한다. 피터 셀러스의 첫번째 부인이 나중에 회고한 바에 의하면 셀러스가 자신에게 "나는 소피아 로렌과 연인 사이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혼하고 싶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셀러스는 소피아 로렌에게 푹 빠져있었다고.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두 사람 사이에 썸씽이 있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소피아 로렌은 남편이자 거물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서둘러서 피터 셀러스와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소피아 로렌은 지금도 피터 셀러스와는 그저 플라토닉한 관계였다고 말하고 있다. 피터 셀러스 전기 영화에서도 소피아 로렌이 피터 셀러스의 고백을 거절하자 셀러스가 소피아 로렌의 대역을 꼬셔서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4] 참고로 피터 셀러스랑 링고 스타는 촬영 기간 동안 많이 친해졌다고 한다.[5] 깉은 유부녀였던 소피아 로렌, 이미 약혼남이 있던 라이자 미넬리에게 찝쩍댄 것이 유명하고 마거릿 로즈와도 염문설이 있었다.[6] 그녀와 결혼할 즈음부터 피터 셀러스의 심장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린 프레데릭은 좋은 연기력과 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올리비아 핫세로 불릴 정도로 상당한 미모로 유명했고 지금도 가끔 옛날 미인으로 언급된다.) 10대 스타로 떴던 배우였으나 피터 셀러스와의 불화로 골드 디거 낙인이 찍힌데다 유언장 변경 논란, 셀러스의 자녀들과의 불화, 핑크 팬더 제작진과의 송사, 미묘한 타이밍의 재혼 때문에 언론의 먹잇감과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