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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2:59:10

피터 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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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시카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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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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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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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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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타 오브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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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코 크로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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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erts.jpg
이름 피터 아츠
(Peter Aerts)
생년월일 1970년 10월 25일 ([age(1970-10-25)]세)
노르트브라반트에인트호번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입식 전적 145전 108승 35패 2무 (81KO)
종합격투기 전적 3전 1승 2패
1KO
1SUB, 1판정
체격 192cm / 103kg / 213cm
링네임 The Dutch Lumberjack
주요 타이틀 K-1 1994 월드 그랑프리 우승
K-1 1995 월드 그랑프리 우승
K-1 1998 월드 그랑프리 우승
기타 K-1 1997 월드 그랑프리 3위
K-1 2003 월드 그랑프리 3위
K-1 2006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K-1 2007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K-1 2010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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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평가3. 경력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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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킥복싱 선수.

2. 평가

네덜란드가 낳은 불세출의 킥복서로 닉네임부터 20세기 최강의 킥복서다. 빈말이 아니라 그만한 활약을 보여 주었고 전성기 시절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보여지는 하이킥 장면들은 아직도 명장면이라고 K-1팬들에게 회자되곤 한다. 피터 아츠와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업적을 세운 사람은 어네스트 후스트세미 슐트뿐이다.[1][2]

어네스트 후스트, 앤디 훅,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함께 4대 천왕으로 불렸으며 K-1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선수로 맹활약했다.

창에 비견되는 라이트 스트레이트와 도끼질에 비견되는 하이킥이 전매 특허로 보통 격투기에서 하이킥 하면 미르코 크로캅을 많이 생각하지만, 그 이전엔 아츠가 하이킥의 대명사로 자주 회자되었다.[3] 아츠의 경기 영상을 보면 상당히 어정쩡해보이지만 상대방은 그것조차 마치 짜놓은 영상처럼 하이킥을 맞게 되는 마법같은 실력의 소유자.

링네임인 럼버잭은 벌목꾼이라는 뜻인데, 아츠의 킥을 맞은 상대방이 도끼에 맞은 고목처럼 쓰러진다는데서 유래했다. 이 별명이 붙은 유래는 1994년 4월 30일 같은 네덜란드 국적 2m의 거구인 롭 반 에스동크(Rob van Esdonk)와의 경기로, 경기 내내 다운까지 허용당하는 등 밀리던 중 전세를 뒤집은 결정적인 하이킥이 에스동크의 턱을 강타해 2m의 거구 에스동크가 머리를 잡고 휘청거리다가 아츠의 스트레이트까지 맞고 쓰러지면서 일본과 해외 격투기팬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고 지금까지도 입식 격투기 최고의 하이킥 KO로 회자되고 있다. UFC벤 아스크렌호르헤 마스비달에게 5초 KO당한거 이상급으로 매번 소환된다. 이 에스동크는 절치부심해서 아츠에게 리벤지를 신청하여 재대결하나 1차전 때보다 기량이 성장한 아츠에게 시종일관 얻어맞다 보기 좋게 또 실신 KO당했다.

3. 경력

IKBF 세계 헤비급 챔피언.
WMT 세계 무에타이 헤비급 챔피언.
K-1 월드그랑프리 94년, 95년, 98년 챔피언.

1993년 K-1 WGP 첫 대회에 참전하여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패배했지만 94년에는 사타케 마사아키, 95년에는 제롬 르 밴너를 이겨 WGP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96년에 마이크 베르나르도에게 3번 연속 KO패하고 97년에는 앤디 훅에게 판정패하여 슬럼프를 겪는다.

하지만 1998년 K-1 WGP에서 사타케 마사아키, 마이크 베르나르도, 앤디 훅을 모두 1라운드에 KO로 이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4]

K-1 WGP 1999 final 8강에서 제롬 르 밴너와 맞붙는데 극초반 오른발 하이킥을 적중시키며 완벽히 승기를 잡은듯 했지만 제롬 르 밴너가 비틀거리면서도 압박해오는 과정에서 레프트 훅을 턱에 제대로 허용하며 그대로 1라운드 KO패 당했다. 짧지만 임팩트가 엄청났던 경기로 K-1 명경기 하면 꼭 회자되는 경기 중 하나. 실제로 레미 본야스키는 이 경기를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경기로 꼽았다.

마지막 K-1 WGP 우승을 차지한 98년 이후 2000년 시릴 아비디와의 경기에서 입은 허리부상 여파로 꾸준히 하락세를 타다가 2005년 오사카 개막전에서 마이티 모와 맞붙는다. 대부분 피터 아츠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츠는 마이티 모에게 로우킥 피해를 누적시키며 승리를 거둔다. 이 날 아츠가 등장할 때 나온 음악의 엘비스 프레슬리의 MY BOY였는데 평소 등장 음악인 Dick Dale - Misirlou와 달리 꽤 우울한 등장이었다.

2005년 K-1 WGP final 도쿄 결승전에서는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를 상대해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다가 판정승을 거두지만 늑골 부상 때문에 토너먼트 진출을 포기하고 대신 리저브 매치의 승자인 글라우베 페이토자가 4강에 오르게 된다.[5] 그해 12월 K-1다이너마이트에서 종합격투기 룰로 오야마 슌고랑 맞붙지만 힐 홀드에 패배한다.

2006년에는 오클랜드 대회 슈퍼 파이트에서 세미 슐트를 상대하여 판정승을 거두었는데 슐트가 K-1으로 진출한 이후 처음 당한 패배였다. 서울 대회에서는[6] 호리 히라쿠와 맞붙었는데 2라운드 왼발 하이킥으로 KO승을 거둔다. 몇 년 동안 허리 부상 때문에 나오지 못했던 피터 아츠의 하이킥 KO승이었다. WGP 오사카 개막전에서는 레미 본야스키와 맞붙을 예정이었지만 부상으로 결장하였다.

다음 06 WGP final에서는 슈퍼 파이트로 무사시와 맞붙는데 2라운드 펀치 연타로 압도적인 KO승을 따낸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지만 8강전 레미 본야스키 vs 스테판 레코 경기에서 본야스키가 레코에게 로우 블로우를 당해 기권하였고 결국 피터 아츠는 본야스키 대신 토너먼트에 합류하게 된다. 곧바로 글라우베 페이토자와 시합을 치르는데 1라운드에는 페이토자가 킥으로 압박하여 피터 아츠를 위기에 몰아넣는 등 페이토자의 우세였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 피터 아츠가 페이토자에게 근접하여 펀치 연타로 다운을 받아내고 페이토자가 일어나지 못하자 심판은 경기를 종료시킨다.

이렇게 피터 아츠는 결승전에서 세미 슐트를 상대하게 되는데 이때 아츠가 슐트를 이기는 것은 어려울듯 했지만 그래도 모든 K-1팬들은 아츠를 응원했고 밴너가 아츠를 응원하는 모습도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세미 슐트에게 판정패를 당해 준우승에 그쳤는데 그래도 팬들에게는 우승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경기 시작과 경기 중에도 K-1 관중들 모두가 아츠를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신체조건과 체력적인 한계를 보이면서 세미 슐트가 이겼지만 아츠는 K-1 팬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다. 우승을 했으면 엄청난 감동적인 시나리오가 되었겠지만 패배를 했어도 아츠를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아츠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WGP 2007에서는 본야스키에게 판정승을 거둬 결승에 진출하였고 또다시 세미 슐트를 상대하지만 안타깝게 넘어지면서 발목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또 준우승에 그쳤다.

K-1 WGP 2008 16강 서울대회에서 세미 슐트를 상대로 맞아도 계속 밀어붙이는 전술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를 16강에서 탈락시키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이후 WGP final 8강에서 바다 하리와 대결하게 되었다. 경기 전에는 피터 아츠가 노련한 운영으로 우세를 점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제법 많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바다 하리의 스피드에 전혀 대처를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TKO패를 당한다. 심지어 플라잉 프론트킥까지 맞았다.

K-1 WGP 2009 16강 서울대회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상대했다. 당시 오브레임은 약물을 사용한 육체개조에 성공해 바다 하리를 KO시키고 레미 본야스키에게 접전끝에 판정패하는 등 본업이 아닌 입식격투기에서도 굉장한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아츠는 사전 인터뷰에서 '하리와 본야스키는 영리하지 못했다. 오브레임 같은 파이터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여주겠다.'라며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를 했지만 오브레임의 파워에 밀리며 판정패하고 만다.

2010년 4월 K-1 WGP in 요코하마 대회에서 체급을 낮춰 일본의 교타로가 가지고 있는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했다. 이날 아츠는 커리어 최대의 오점이라 할만한 패배를 당한다. 교타로의 아웃복싱에 말려들어 전혀 흐름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2라운드에 KO패 당했다.

K-1 WGP 2010 16강에서 에베르톤 테세이라와 경기를 가졌다. 이전까지의 테세이라는 극진가라데 베이스 특유의 단단함은 있었으나 K-1 경기룰에 맞는 경기운영을 함에 있어서는 미숙함을 보이고 있었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아츠는 경기 전에 '킥복싱이란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시합 당일 테세이라는 복싱 스킬이 굉장히 향상된 상태로 나타났고 아츠는 이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결국 연장 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츠가 아슬아슬한 판정승을 거둔다. 이렇듯 2010년 들어 아츠가 보여준 경기력이 영 신통치 않았기에 파이널 토너먼트에서 아츠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망의 K-1 WGP final 8강에서 마이티 모를 손쉽게 KO시키고 4강에 진출했다. 문제는 4강 상대가 세미 슐트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결승 대진은 슐트와 오브레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피터 아츠는 이런 예상을 뒤엎고 투혼의 전진으로 세미 슐트를 잡아냈다. 1라운드에 슐트의 원거리 타격을 계속 허용하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았고 꾸준히 로우킥을 시도했다. 2라운드 들어서 로우킥 데미지가 축적된 탓인지 슐트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고 아츠의 압박이 슐트를 밀어내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3라운드 역시 비슷하게 아츠가 따내며 기적과도 같은 판정승을 거둔다. 관중들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으며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한국 해설진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 시기 K-1은 자금난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단체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상태였고 자체적인 흥행력도 거의 상실해 2010년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의 포스터는 MMA 선수인 알리스타 오브레임이 지면의 8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K-1을 상징하는 파이터인 피터 아츠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투혼을 불태우며 모든 K-1 팬들에게 거대한 감동을 선사한 것이다. 4강에서 너무나 많은 데미지를 입었기에 아츠는 반대편 블록 알리스타 오브레임 vs 구칸 사키 경기에서 치열한 시합이 나와주어야만 우승을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브레임이 비교적 손쉽게 사키를 KO시키며 결승에 진출했고,[7] 아츠는 만신창이인 몸상태로 상대적으로 멀쩡한 오브레임을 상대하게 되었다. 결승에서 아츠는 누적된 데미지와 오브레임의 화력에 무너지며 TKO패를 당했고 준우승으로 K-1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이 결승전은 경기 시작 후 아츠의 펀치와 킥에 파워가 전혀 없었다는게 보이며 1분도 안돼 다운당한 경기를 속개할 의지가 없이 항복 비슷하게 끝나버린다. 이미 본인은 슐트와의 준결승에서 모든 걸 쏟아부어 결승에서 뛰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70년생인 아츠가 만으로 40이 넘은 나이에 그 정도 경기력을 보여준 것 자체가 기적이긴 했다.

역대 K-1 파이터들 중에서도 한국 격투기 올드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파이터다.

그 이후엔 주로 중소단체나 Glory에서 현역으로 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했다.

4. 파이팅 스타일

20세기 최강의 킥복서라는 별칭에 걸맞은 전설적인 킥복서. 일격 필살의 위력을 지닌 하이킥을 보유했다. 이 하이킥을 맞으면 상대가 나무토막마냥 쓰러진다고 하여 럼버잭(나무꾼)이라는 링네임을 지녔으며, 킥과 펀치 등 위력과 센스를 보유한 킥복서이다.
전성기때는 광폭하게 상대를 몰아붙이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임팩트 있는 하이킥으로 유명하지만 하이킥뿐만이 아니라 로우킥, 미들킥, 펀치, 무릎, 팔꿈치 등 모든 공격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어떤 공격이든 묵직하고 강력한데다가 패턴까지 다채로워 KO율이 매우 뛰어난 킥복서였다. 신체 조건도 우수한데다가 스피드, 체력, 내구성, 펀치력, 수싸움 모두 우수한 완전체 킥복서. 그러나 너무 공격적이다 보니 이를 노린 상대의 카운터 펀치에 역전 KO패를 헌납하는 경우도 종종 나오긴 했다.[8]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반 허리부상으로 고생하고 나이도 들면서 다소 스타일이 변화했다. 강력한 왼발은 여전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젊은 시절처럼 광폭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그래도 노련한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상대를 타격으로 압박하면서 주도권을 잡고, 상대의 체력과 집중력을 갉아먹으면서 수싸움을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나쁘지 않은 내구력과,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베테랑의 경험을 통해 세미 슐트 같은 난적을 꺾어내는 성과를 올리면서 자신의 건제함을 과시하였다. 또, 상대적으로 폭발력이 줄어들었다곤 해도 가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라 체격 차이가 있는 떡밥 선수 정도는 무자비하게 하이킥으로 몰아붙이며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커리어 말기로 갈수록 스피드가 상당히 느려진 모습을 볼 수 있다. 2010년에 들어와서는 신예들한테도 당하고 스트레이트를 잘 치는 젊은 파이터들에게 약해졌고, 허리 부상 탓에 폭발력도 낮아졌다. 사실 허리 때문이 아니래도 어느새 나이가 50세가 넘었고 수많은 경기를 치러 몸 전체가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로 과거와 같은 모티베이션을 기대하는건 무리다.

5. 여담


[1] 단, 슐트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체급빨 이라는 지적이 항상 따라다녀서 재미 없는 플레이와 더불어 과소평가 받곤 한다. 물론 슐트가 가진 기량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최적화하는 전략을 짠것이니 억지로 까이는 부분이 있다.[2] 레미 본야스키는 WGP 3회 우승으로 아츠와 동률.[3]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미르코 크로캅을 소개할 때 제롬 르 밴너의 펀치와 피터 아츠의 하이킥을 가진 선수라고 했다. 또한 크로캅과 아츠는 태권도로 격투기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4] 아무도 깨지 못할 기록이라 했지만 2009년에 세미 슐트가 이 기록을 갱신한다.[5] 이후 페이토자는 4강에서 무사시를 플라잉 니킥으로 KO시켜 결승에 진출하지만 세미 슐트에게 실신 KO패를 당한다.[6] 한국 팬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김민수 vs 김경석 경기가 치러진 대회였다.[7] 구칸 사키도 오른팔에 부상을 입어 사실상 왼팔만 가지고 경기를 했다보니 경기를 제대로 치르기 힘들었다.[8] 대표적인 케이스가 99 WGP 제롬 르 밴너전과 96년 마이크 베르나르도전 3연패. 패배 이후엔 약점을 보완하여 리벤지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