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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사업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 제조 이력 기준. (해체가 아닌 철수의 경우 가능한 당시 로고로 기입) |
한화/정보통신 Hanwha Corp. Telecommunications | |
정식명 | 주식회사 한화 정보통신부문 |
영문명 | Hanwha Corporation - Telecommunication Division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983년 10월 25일법인 설립일 |
해산일 | 1996년 10월 1일법인 합병일 2003년 11월사업부 해체일 |
업종명 | 유선 통신장비 제조업(등기상) |
기업규모 | 대기업 |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이제, G2와 내 몸의 경계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1999년 '한화 G2' 신문 광고 문구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인 한화 계열 옛 통신장비 및 휴대전화를 제조하는 업체이자 사업부였다. 1983년 기업으로서의 법인이 설립, 1996년을 기점으로 한화 정보통신부문으로 편입되어 2003년까지 존속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1999년 '한화 G2' 신문 광고 문구
1.1. CI
<rowcolor=#ffffff> 동양전자통신 (1983~1994) | 한화전자정보통신 (1994~1996) | 한화/정보통신 (1996~2003) |
<rowcolor=#ffffff> 한화/이동통신[2] 2001 ~ 2003 |
2. 역사
2.1. 설립 초기
1983년 4월, OPC로 알려졌던 동양정밀공업과 스웨덴 에릭슨의 합작법인 설립 계약이 체결되어 동년 10월에 합작사 동양전자통신이 설립된 데에서 비롯됐으며, 설립 초기엔 모기업이 쓰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제2공단을 토대로 했다.1984년 12월, 에릭슨과의 기술 제휴로 국내 최초 디지털 교환기 AXE-10을 개발하여 경기도 포천군, 경상남도 합천군, 충청남도 부여군 등지에 3만회선을 공급했고, 2년 뒤인 1986년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세계에서 10번째로 공동개발한 TDX시리즈의 첫 제품인 TDX-1을 첫 개통했다. 1987년에 개량형인 TDX-1A를 개발하여 1가구 1전화 보급 및 전국 전화 자동화시대 개막에 기여했고, 1990년에는 TDX-1B를 한국통신에 공급하여 해당 장비로 최초 ISDN망이 개통되었다. 1991년에는 TDX-10까지 개발해내는 등 독자 개발을 지속하여 AXE-10 1,800만 회선, TDX류 1,650만 회선 등 총 3,450만 회선을 공급/개통하는 한편, 1989년 전자 구내교환기 MD-100을 개발하여 사설교환기 시장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주력인 교환기 시장이 과포화되면서 성장이 둔화됐고, 매출액도 잘 오르지 않아 1980년대 후반부터 다른 유망 업종으로도 진출하려고 여러모로 강구했으나 에릭슨 측과의 이해 상충과 의사결정의 지연으로 무산을 거듭했다. 거기에 모기업 동양정밀공업의 자금난까지 겹쳐 1992년 3월 3일 한국화약그룹 계열사로 편입되어 에릭슨과의 제휴관계를 청산함으로써 순수 토종기업으로 변화, 1993년 HAN/B-ISDN ATM 교환기, 10Gbps 전송장치 공동 연구개발에 참여했고, 우간다 측과 TDX-18 수출계약을 맺기도 했다. 또한 인수 시부터 그토록 구상해 온 ISDN 및 무선통신 분야로의 진출을 모색하여 유선전화 일색에서 탈피코자 했다.
1994년을 기점으로 한국화약그룹이 한화그룹으로 그룹명이 변경됨에 따라 한화전자정보통신(주)로 사명을 변경했다.# 동년 10월에는 그룹 차원에서 정보통신사업추진본부를 두어 무선 서비스 부문 등 국내외 통신 관련 신규 참여가 가속화되었고, 12월에는 네덜란드 로힐(Rohill) 사의 지분 49%를 인수했다. 1995년에는 사업 강화를 위해 부실 무선전화기 업체 오트론을 인수하여 무선전화기 사업 진출의 포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그룹 측의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모기업인 한화에 흡수합병되었다. #
2.2. 사업부 편입 이후
<rowcolor=#ffffff> 1997년에 개발한 시티폰 단말기 톡톡 |
<rowcolor=#ffffff> 한화정보통신의 휴대폰 '한화 G2' 광고 |
한화 G2의 경우 시리즈화되어 한화 정보통신부문의 휴대전화 브랜드로 사용되었으며, 현대 걸리버[3]를 포함한 타사의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위 광고의 제품은 62g의 가벼운 무게와, 표준용량 배터리 기준 연속 대기시간 30~65시간으로 "작고 오래간다"는 장점을 광고문구로 내세웠다. 2001년 10월에는 부문 전문화를 위해 이동통신 사업부를 '이동통신사업본부'라는 독자 사업단위로 분리시켰다.
2.3. 해체
2003년 3월, 전송장비 사업부문이 미리넷에 매각되었고# 6월에는 이동통신사업본부가 세진전자에 매각되었으며# 11월에는 본업이던 교환기사업부마저도 조용히 매각 및 철수하면서 1983년부터 이어져온 정보통신부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그 후 2006년 이동통신사업부를 인수한 세진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한화 휴대폰의 역사도 사라졌다.[4]
3. 역대 경영진
- 대표이사 사장
- 이영만[7] (1983~1992)
- 신철순 (1992~1995)
- 공태근 (1995~1997)
- 김용구 (1997~1999)
- 최상순 (1999~2002)
- 수석부사장
- 케빈 케시[8] (1983~1992)
4. 제품 목록
- HHT-110(1996)[9]
- HT-100(1997)
- HT-110(1997)
- G2-F21(1998)
- G2-F31(1998)
- G2-F33(1999)
- G2-F61(1999)
- G2-S51(1999)
- G2-F83(2000)
- Microi75(2000)
- i Rover(2000)
- Microi S701(2001)
- Microi S88M(2001)
- Microi S88(2001)
- Na Truca(2001)
- CS-M330(2002)
5. 여담
- 1988년과 2011년에 설립된 (주)동양전자기계통신과 (주)한화정보통신이라는 동명의 기업이 각각 존재했는데, 이들은 본 문서에서 서술하는 곳과는 전혀 다르며 한화그룹과도 일절 관계가 없으니 혼동하면 안 된다.
6. 참고 자료
- 희망으로의 여정 한화 50년: 1952~2002 - 한화그룹. 2002. p298~304.
[1] 클릭하면 한화 홈페이지로 이동된다.[2] 한화 정보통신부문 이동통신사업부 한정 CI[3] 현대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 역사에 대한 내용은 팬택&큐리텔 문서 참고.[4] 세진전자가 휴대폰 사업을 중단하고 같은시점에 그의 자회사 SCD에서 휴대폰 사업에 진출하여 SCG-K1000을 시작으로 각종 휴대폰들을 내놓았다. 따라서 정황상 세진전자의 휴대전화 사업부가 이관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면 한화 휴대폰의 역사가 SCD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고.[5] 전 데이콤 사장. 1994년 한화그룹 산하 정보통신사업추진본부 발족 당시 고문으로 위촉.[6] 전 체신부차관, 한국통신 사장 및 이사장. 철학자 현안 김준섭(1913~1998)의 사위.[7] 전 동양정밀 부사장.[8] 전 에릭슨 사우디아라비아 지사장.[9] 시티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