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해병대의 수색부대에 대한 내용은 미합중국 해병수색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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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레이더연대 Marine Raider Regim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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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 2006년 (특수작전연대) 2014년 ('레이더연대'로 개칭) | ||
분류 | 해병 특수부대 | ||
국가 | 미합중국 | ||
소속 |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 ||
미합중국 해병특수작전사령부 | |||
본부 | 노스캐롤라이나 캠프 르준 캘리포니아 캠프 팬들턴 | ||
규모 | 약 1500명 | ||
별칭 | Raiders |
Always Faithful, Always Forward
언제나 충실하게, 언제나 전진
- 레이더연대의 구호
언제나 충실하게, 언제나 전진
- 레이더연대의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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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미 해병대가 창설한 해병대 특수작전사령부(MARSOC) 산하의 특수부대이다.미 해병대의 특수작전부대로, 통합 특수작전사령부(SOCOM)의 지휘를 받는다.[1]
비록 지휘체계가 다르고 다른 역사를 계승하지만, 사실 레이더연대는 기존의 포스리콘과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이다. 따라서 원활한 흐름을 위해 먼저 미 해병대 수색대(리콘마린) 문서를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2. 상세
2006년 처음 창설 당시에는 명칭이 해병대 특수작전연대(Marines Special Operations Regiment)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해병대 소속으로 존재했던 경보병부대인 '해병 레이더스(2차대전)'(Marine Raiders)에서 Raider라는 명칭을 따와서 2014년도에 해병 레이더 연대(Marine Raider Regiment)로 부대명을 바꾸었다. [2]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체계에 따라 티어2로 분류된다. 창설 당시 기존의 포스리컨 부대에서 선별된 에이스들로 특전대대(레이더 대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자체 선발과정을 통과하고 들어온 이들 중에는 해병 보병이나 기타 병과 출신자들도 있었다.
오늘날의 해병 레이더연대(해병특전단)는 육군 그린베레나 해군 네이비 씰과 유사한 성격의 완전한 특수부대인데 반해, 본격적인 특수부대라기보다는 정글전, 기습 상륙전에 특화된 정예 경보병부대였던 원조 해병레이더스(2차대전)를 생각하면 똑같은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2차대전 해병레이더스는 제4해병연대로 변경되었으므로 해병레이더스의 직속 후계는 4연대다. 하지만 이러한 두 부대의 성격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오래전에 잊혀진 옛 부대의 이름을 다시 살린다는 상징적인 취지에서 부대의 성격과 무관하게 그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3] 그래서 1944년도에 없어진 해병 '레이더스'라는 부대명이, 레이더스가 해체된 지 70년 만에 부활하게 된다.
현재의 해병대 특수작전사령부(MARSOC) 산하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는 창설 당시부터 육군 특전사(그린베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실제로 처음 만들 때부터 그린베레를 많이 참고하고 벤치마킹했고, MARSOC 창설 인원들이 포트 브랙의 미합중국 육군 특전단으로 파견 가서 Q-Course 등의 각종 그린베레 교육을 위탁교육받고 와서 새 부대의 전술교리와 교육체계 정립에 반영했다. 외관적으로도 비슷해서 사진을 보면 두 부대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많을 정도. 중동/아프간 파병 그린베레들의 상징처럼 되어있던 신원 노출 방지용인 덥수룩한 턱수염 역시 해병 레이더 연대 대원들도 많이들 따라하고 있다.
전직 대원들에 의하면 해병대 포스리컨과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실제 포스리컨에 있다가 레이더 연대로 옮긴 대원에 의하면 포스리컨도 해병대 전체에서 고르고 고른 인원들로 소규모 팀 단위 작전을 수행하고 특수부대 임무에 필요한 육/해/공의 주요 특수훈련을 이수한다. 그러나 포스리컨은 각 지역 통합전투사령부 산하 해병구성군인 해병 원정군(MEF) 사령부의 지휘 통제를 받고 해병 원정군의 작전지역에 대해 주로 선도적인 "정찰"을 중심으로 한 작전을 수행하는 반면, 레이더 연대는 기능별 통합전투사령부인 미 특수작전사령부(SOCOM)의 지휘 통제를 받고 전 세계에서 보다 "폭넓은" 특수전을 수행한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특히 직접타격, 게릴라 작전, 불안정한 상황인 외국에서의 미군측에 협조할 무장세력 양성과 지원 및 자국인(미국인) 방어와 구출, 대테러 임무 등의 비중이 높은 게 레이더 연대의 특징이라고 한다.
2010년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교전중인 MARSOC 레이더스 작전팀.[4]
원래는 미 해병대에서 제일 정예 취급받고 우선적인 지원을 받았던 마린리컨(디비젼, 포스리콘)이 레이더 연대가 생긴 뒤로는 위상과 대우가 전보단 밀려나서인지 특수부대 전역자 커뮤니티에서 리컨 출신들의 불만이 종종 올라온다. 해병대 지원자들에게 리컨으로 오지 말고 레이더 연대든 다른 군 특수부대든 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SOCOM 산하의 특수부대로 가라는 자조적인 글을 올릴 정도다. 그러면서도 해병대의 일반 땅개(grunts)로 갈바에야 리컨으로 오라며 일반 해병들에 대한 최소한의 우월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레이더 연대라는 부대명의 기원인 2차 세계대전 때의 미 해병대 레이더스가 만들어진 1942년엔 이 'Raider'(습격자)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름 지어진 부대들이 해병대 뿐 아니라 육군과 해군에도 비슷한 시기에 여럿이 생겼었다. 즉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적의 해안지역을 기습타격하는 미 해군/육군 합동부대였던 "Scouts & Raiders"도 같은 해에 창설됐고[5], 한국에선 둘리틀 특공대라고 번역하는 특별 폭격부대인 "Doolittle Raiders"도 같은 해에 미 육군 항공대에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미 육군에서 레이더스라는 명칭을 가진 임시 부대들이 비슷한 시기에 편성되어 각종 특공작전을 수행했었다.[6]
3. 역사
3.1. MEU(SOC) (1986년~)
1987년 미 통합특수전사령부(USSOCOM)[7]가 창설되면서 그동안 육,해,공, 해병대 각 군의 특수부대들이 통합특수전사령부 휘하로 들어가게 된다. 이로써 육군특수전사령부(USASOC), 해군특수전사령부(NSWC), 공군특수전사령부(AFSOC) 그리고 합동특수전사령부(JSOC)가 이에 합류한다. 이때 미 해병대의 포스리콘(Force Recon)과 이외 해병대의 특수작전 병력들 또한 SOCOM에 합류할 것을 요구받지만 당시 미 해병대 수뇌부 측에선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의 요구에도 합류하기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미 해병대는 자체적인 군종으로서 해상원정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인데 해병대 병력의 일부를 타군의 지휘를 받는 곳으로 옮긴다는 것은 해병대의 전통 측면에선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포스리콘의 경우 이미 함대해병군(FMF)[8] 직속으로 함대(FMF) 사령관 또는 해병공지기동부대(MAGTF)[9]의 최고 단위인 해병원정군(MEF)[10] 사령관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특수부대였다. 게다가 포스리콘과 같은 해병대의 특수작전 병력이라면 해병대 내에서도 장기간 복무한 고참급의 우수한 자원들인데, 해병대 수뇌부측에선 이들을 타군에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하였다.베트남전 시절의 제3포스리콘. (오늘날 포스리콘의 명성은 대부분 베트남전 시절에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1987년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창설 시점부터 이들과 미 해병대의 사이는 틀어진다. 하지만 해병대 수뇌부 측에서 해병대 내의 특수작전부대에 대해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SOCOM 창설 논의로 미 행정부와 의회, 국방부가 한참 시끄럽던 1983년도에, 당시 미 국방장관이던 캐스퍼 와인버거는 각 군에 특수작전부대 역량 파악 및 개선 요구 지침을 하달하였고, 이에 따라 당시 미 해병대 사령관 폴 X. 켈리 해병대장의 지시로 해병대 측에서도 자체적인 특수작전부대 파악 및 개선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1986년에 미 해병 대서양함대 사령관인 알프래드 M. 그레이 해병 중장[11]의 주도하에 이후에 탄생한 것이 바로 'MEU(SOC)' 프로그램으로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있을 SOCOM의 합류요청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이 MEU(SOC)는 미 해병대 내에 새로운 특수부대를 창설한 것은 아니었고 기존의 각 해병원정군(MEF) 휘하에 수개의 해병원정대(MEU)[12]에 '특수작전가능부대(SOC)'[13]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이것은 포스리콘과 이외 지상 병력들을 로테이션을 도는 방식으로 MEU(SOC)에 몇달간 배속시키고 포스리콘을 주축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해상' 관련 특수작전을 수행케 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위해 1987년에 제1, 제2, 제5 포스리콘 중대를 다시 부활시키는 한편[14], 각 해병원정군(MEF)에 사령부 직할로 특수작전훈련단(SOTG)[15]을 설립, MEU(SOC)로 로테이션 배속되는 포스리콘과 이외 지상 병력들의 '해상' 관련 훈련들을 담당케 하였다.
90년대 포스리콘의 해상훈련
또다른 사례로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캠프 리젼에 위치한 제2포스리콘 중대가 대서양통합사령부(USLANTCOM)[16]를 위한 CIF 특임대[17]역할을 한때 담당하였다. 이 시기 제2포스리콘 중대는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와 서로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부대였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육군의 특수부대인 그린베레와 레인저는 육군특수전사령부(USASOC)로, 해군의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은 해군특수전사령부(NSWC)로, 공군의 특수부대인 CCT와 PJ는 공군특수전사령부(AFSOC)를 창설하며 1987년에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로 합류하였으나, 해병대의 특수부대인 포스리콘은 MEU(SOC)에 배속되는 방식으로 해병대에 오늘날까지 남아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MEU(SOC)로 돌아와서, 이들은 90년대에 몇 차례의 (대부분 비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1990년 10월에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의 13th MEU(SOC)에 배속된 제1포스리콘 병력과 해군 네이비 씰 1팀 소속 병력들이 이라크 유조선 나포작전을 수행하였다.[18] 1991년에는 소말리아 미 대사관 철수작전에 참여하였고, 같은해의 이라크 걸프전 당시에는 4th MEB[19](SOC)에 배속된 제2포스리콘 병력들이 9명의 해군 SEAL 대원들과 함께 대사관 철수작전을 수행했다. 1993년 모가디슈에서는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15th MEU(SOC)에 배속된 제1포스리콘과 제2해병원정군(2nd MEF) 휘하 24th MEU(SOC)에 배속된 제2포스리콘 병력들이 작은 보트와 헬리콥터를 이용한 해안지역 습격작전을 몇차례 수행하기도 하였다. 1994년 보스니아에서는 제2해병원정군(2nd MEF) 휘하 24th MEU(SOC)에 배속된 제2포스리콘 병력들이 격추당한 미 공군 파일럿 구출작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측과 MEU(SOC) 소속 포스리콘 병력들의 드물게나마 존재했던 상호교류는 점점 더 단절되었고, 1996년에는 아예 제2포스리콘의 CIF특임대도 해체된다.
3.2. DET ONE (2003년 ~ 2006년)
3.2.1. 창설과정
시간이 흘러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당시 국방부 장관인 도널드 H. 럼즈펠드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며 당시 해병대 사령관인 제임스 L. 존스 해병대장에게 해병대도 SOCOM측에 협조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당시 미 해병대 사령부 본부의 MEU(SOC)부대 관리 총 책임자 자리에 있던 가일즈 카이저 해병중령[20]은 직속상관인 에밀 S. 버다드 해병중장의 지시를 받고 플로리다주 템파의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본부로 가서 관계회복을 도모하게 된다. 당시 9.11 사건 이후에도 SOCOM과 해병대 사령부측은 서로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고 교류에 대해서도 양측이 모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저 중령은 끈질긴 노력 끝에[21] 2001년 11월, 당시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L. 존스 해병대장과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사령관인 찰스 R. 홀랜드 공군대장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22]사실 이전에 9.11 사건 바로 직후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L. 존스 해병대장은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고 통합특수전(SOCOM)사령관 찰스 R. 홀랜드 공군대장에게 포스리콘 병력 일부를 SOCOM측에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이미 밝힌 상태였다. 해군특수전사령부(NSWC) 사령관은 같은 해상 관련 부대이니 제휴를 한번 고려해보겠다고 하였고, 육군특수전사령부(USASOC)측도 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는데, 당시 해병대 수뇌부 측에선 육군특수전사령부(USASOC)와의 협력을 좋은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가일즈 카이저 해병중령은 9.11 사건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GWOT)[23]에서는 앞으로 특수작전의 수요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고, 단순히 포스리콘을 파견하는 방식보다는 SOCOM내에 그 이상의 새로운 해병 특수부대의 창설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새로 창설될 특수부대의 능력은 기본적으로 직접타격(Direct Action), 특수정찰(Special Reconnaissance), FID(Foreign Internal Defence)[24], 합동지원(Coalition Support)[25] 4가지를 기본으로 중점에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카이저 해병중령은 조셉 G. 새틀렌 해병원사[26]와 트로이 G. 미첼 해병상사[27]와 함께 86명 규모의 새로운 해병 특수부대 창설 계획의 초안을 작성한다.
2002년 1월, 위 세 사람은 초안을 들고 SOCOM 본부에서 브리핑을 실시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해병대와의 협력에 관하여 SOCOM 내부의 거부감과 불신은 여전히 존재했는데[28] 특히 해군특수전사령부(NSW) 네이비 씰 측에서 반대하였다. SEAL은 이미 해상특수전 분야에서 자신들만의 전통과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놓은 상태였고, 해병특수부대의 창설은 아무래도 작전분야가 겹칠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분야가 겹치는 부대가 또 생겨나면 SEAL 측의 지원 예산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해병특수전사령부 창설 대신에 통합사령부(SOCOM)내에 (연락장교가 아니라) 작전, 지휘 보직에도 해병대 장교들을 임명시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29] 이렇게 해군특수전사령부(NSWC)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육군특수전사령부(USASOC)와 공군특수전사령부(ARSOC)의 지지 덕분에 카이저 중령은 목표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간에 해병대도 해군과의 연계성이 컸었기에 카이저 해병중령은 결국 해군특수전사령부(NSWC)와의 협력을 택하기로 한다.[30] 2002년 3월에, 카이저 해병중령과 일행들은 의견 조율을 위해 캘리포니아주 코로나도에 위치한 해군특수전사령부(NSWC) 본부로 갔다. 해병대 일행들이 도착하자마자 SEAL측에선 기초특수전교육과정인 BUD/S의 영상물을 먼저 보여줬는데, 이것은 "너희들은 특수부대가 아니다."라는 메시지 같았다고 카이저 중령은 회고한다. 해군측에서는 여전히 해병대 특수작전부대가 SOCOM에 대한 지원병력과 스텝 유닛으로 제한되어야한다고 생각했고, 중령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카이저 중령과 동료들이 해병대 사령부와 SOCOM, 국방부를 넘나들며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02년 가을이 되어서야 그들은 캘리포니아주 캠프 팬들턴 해병대 기지에서 해병특수전 병력의 초기 대원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 새롭게 생길 특수전 병력의 총 지휘관으로는 로버트 J. 코츠 해병중령[31]이 선택되었다. 또 카이저 중령은 새로 생길 특수전부대의 명칭을 2차대전 때 잠시 생겼다가 전후에 해체된 해병대의 경보병부대 '해병 레이더스(2차대전)'[32]의 부대명칭과 마크를 계승하기로 하였다. 2차대전 레이더스 전우회 측은 이를 허락하였다. 2002년 12월 해병대 사령관 제임스 L. 존스 해병대장은 다가올 해병대 SOCOM 작전부대의 설립을 공식화하였다.
전체적인 부대편성표는 대략 아래와 같이 계획하고 인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 MCSOCOM DET ONE[33]
- DET ONE 본부 및 정보병력 (29명)
- 라디오 정찰팀 (9명)
- 시그널 서포트 (3명)
- 휴민트 (6명)
- 정보 총괄 (12명)
- 정찰소대 병력 (30명) - 제1,2 포스리콘 출신 대원들로 사실상 이들이 실제 작전대원이었다.
- 화력지원 (7명)
- 그 외 4명의 해군 특수상륙수색 의무병(SARC: Navy Special Amphibious Reconnaissance Corpsman)과 기타 포지션 인원들까지 총 합 86명.
DET ONE의 수석 현장 지휘관으로는 크레이그 S. 코제니스키 해병소령[34]이, 그리고 참모는 매튜 H. 크레스 해병대위[35]가 맡았다. 훈련 담당에는 제임스 R. 루탄 해병상사[36], 작전 부분에는 토마스 P. 무라토리 해병상사[37], 통신을 담당한 이는 제임스 E. 와그너 해병중사[38] 였다.
DET ONE의 핵심 작전대원들인 정찰소대 병력은 30명 규모로 이루어졌는데, 정찰소대장은 에릭 N. 톰슨 해병대위[39]가 맡았다. 이 30명 규모의 정찰소대는 또 4개의 정찰팀으로 나뉘었는데, 1팀장은 테리 M. 와이릭 해병중사[40], 2팀장은 조셉 L. 모리슨 해병중사[41], 3팀장은 찰스 H. 파딜라 해병중사[42]가 맡았고 마지막으로 4팀장은 존 A. 데일리 해병중사[43]가 맡았다. 정찰소대 수석 상사로는 키스 E. 오크스 해병상사[44]가 맡았다. 그외에도 매튜 S. 프란카 미 해군 특수상륙수색 의무 하사[45]를 비롯한 해군 의무병 4명이 각자 1개 정찰팀에 한 명씩 배치되었다.
정찰소대 병력 30명의 평균 연령은 30세로, 모두가 해병 보병부대로 시작하여 이후 디비젼리콘(사단 수색대)과 포스리콘에서 수년간 복무한 자들로, 대부분이 해병대 산악전교육센터과 원정군(MEF) 휘하 특수작전훈련단(SOTG)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또 절반 이상이 정찰 저격수 교육 이수자였다. 정찰팀장을 비롯한 지휘관 급들은 모두 육군 레인저 스쿨 위탁교육을 수료한 이들이었다. 90년대 걸프전, 소말리아, 보스니아, 코소보 그리고 2001년 9.11 사건 이후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파병을 막 마치고 돌아온 자들도 있었다. 다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DET ONE의 병력 대부분이 포스리콘 출신은 아니었다. 전체 86명의 병력중에서 포스리콘 출신은 정찰소대 소속 작전대원 24명뿐이었다. 하지만 정찰소대 병력들 외에 정보, 화력지원, 통신, 라디오 정찰[46], 군수보급, 행정 등 지원 인력들도 역시나 수년간 해병대 보병이나 기타 보직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각 분야의 베테랑들이었다. 특히 이들은 부족한 예산과 낙후된 해병대 장비에도 불구하고 직접 뛰어다니며 발품을 팔아 DET ONE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등 부대 창설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미국 본토에서 훈련중인 DET ONE
이렇게 모양새를 갖추고 나서 2003년 6월 20일이 되어서야 드디어 MCSOCOM DET ONE이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 Del mar에서 창설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해병대 사령관과 수뇌부를 비롯해 SOCOM 지휘부, 해군특수전사령관, 그리고 대원들의 가족들도 참석하였다. 이후 DET ONE은 캠프 펜들턴 Del mar를 본부로 삼고 여러 지역에서 SOCOM의 추세에 따라 현대적인 특수전 훈련을 자체적으로 실시했다. 도중에 방출되는 대원과 새로 전입 온 대원도 있었고, 차량 훈련에서는 사고로 대원 한명을 잃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어쨋거나 상당한 수준의 자체적인 역량을 쌓고, 이후 SEAL 1팀[47] 과의 몇번의 (순탄치는 않았던) 연합훈련과 자체평가훈련을 마치고 2004년 4월, 드디어 이라크로 첫 파병을 가게 된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CQB의 경우 전통적인 보병식의 사격방식에서 벗어나서 현대적이고 전술적인 사격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전직 그린베레-델타 포스 출신의 사격강사 래리 빅커스를 영입해서 교육받았다.
DET ONE 정찰소대장이자 제1포스리콘 출신인 톰슨 해병대위는 래리 빅커스 강사가 가르쳐 준 CQB와 사격교육에 대해 "우리가 그때까지 해병대 포스리콘에서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방식은 아주 획기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포스리콘 정찰팀원 중 한명이었던 알렉스 N. 콘라드 해병하사도 "사격훈련장(House)에서 우리가 포스리콘에서 하던 기존 방식대로 방안에 진입하면 우리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고 래리 빅커스가 말했다. 그는 우리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그와의 훈련이 DET ONE 훈련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했다.
3.2.2. 파병
2004년 4월 DET ONE은 이라크 바그다드에 도착하였고, 당시 이라크는 팔루자사건[48]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들은 여러 특수부대들의 합동 태스크포스인 JOTF[49] 'Arabian Peninsula'에 합류하였다. 이 합동 태스크포스는 육군 그린베레 대령이 총 책임자였고 해군 제1특전단 네이비 씰 1팀[50]과 육군 그린베레 제5특전단 2대대[51]의 지휘 아래에 있었다. 휘하 작전 병력으로는 SEAL과 그린베레, DET ONE 병력 외에도 폴란드 특수부대인 '그롬'(GROM)[52] 병력도 있었다.-태스크 유닛 'Raider(레이더)'[53]
합동 태스크포스 'Arabian Peninsula' 아래에서 해병대측 특수전 병력인 DET ONE은 태스크 유닛 '레이더'(Task Unit 'Raider')를 이루고 크레이그 S. 코제니스키 해병소령[54]이 지휘하였다.[55] 그들은 해군 전투공병들의 도움을 받아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처에 본부를 짓고 캠프 '마일러'[56]라고 명명하였다. 군수물품과 통신장비, 차량(험비), 탄약 등 부족한 물품은 바그다드 곳곳에 위치한 미 육군부대에서 보충해서 자체적인 훈련을 마친 뒤, 4월 23일 작전준비를 완전히 마친다.
첫번째 작전은 단순한 체포작전이었다. 바그다드에 위치한 FBI 요원들로부터 DET ONE 소속 정보장교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미군 계약자로 일하고 있는 이라크 민간인 여성이 반군들에게 정보를 누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표물 여성을 'Rachel'로 명명하고, 체포를 위해 소규모의 작전팀이 꾸려졌는데 DET ONE 정찰소대 소속의 정찰팀 1개[57]와 정보장교, 그리고 해군 SEAL 대원 1명과 폴란드 특수부대 GROM 대원 1명[58]이 작전팀을 이루었다. 몇번의 허탕끝에 3번째 수색지에서 용의자 여성에게 밀린 임금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불러내어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해당 여성은 정보 누출 혐의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났지만 같이 와서 체포당한 이라크인 남성 경호원 1명이 뜻하지 않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5월 2일(2004년)에는 직접타격(Direct Action) 임무가 있었는데, 전날 생포한 이라크인 경호원 남성에게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바그다드에서 반군 남성을 체포하는 것이었다. 이 남성은 통역병 살해사건과 이라크 경찰서 폭탄테러 사건에 연루된 자로 목표물 'Racket'으로 명명되었다. 5월 2일 늦은 밤, DET ONE 정찰소대 병력 전부[59]와 화력지원, 정보인원, 라디오 정찰대, 해군 EOD 대원들이 작전팀을 이루어 험비를 타고 작전에 나섰다. 그리고 AC-130 건십과 HH-60 페이브 호크 헬리콥터가 공중에서 엄호하는 가운데 반군 용의자를 생포하는데 성공한다. 이후에 수행된 작전들도 이와 비슷한 규모로 이루어졌는데, 해군 의무병이 헬리콥터에 탑승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였고, 육군 제1기병사단 5기병연대 1스쿼드론 병력들이 신속대응군 역할을 담당해주었다.
5월 18일에는 세 번째 직접타격(Direct Action) 작전이 있었다. 현지에서 작전 중인 육군 그린베레 제5특전단 2대대 소속의 특전팀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60] 바그다드 남동쪽의 티그리스강 주변 농장에 숨어있는 반군 일당이 이라크에 외국 지하디스트들을 유입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표물 'Rambler'로 명명된 이들을 잡기위해 DET ONE 병력과 그린베레 특전팀이 험비를 타고 합동으로 습격작전을 벌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많은 폭발물들과 수백 파운드의 중요문서, 50여개의 여권, 그리고 많은 나라의 화폐들을 압수하였다. 물론 HVT[61]도 생포되었다.
5월 20일에는 미국 통신회사 직원이었던 니콜라스 E. 버그를 잔혹하게 살해한 반군 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린베레 5특전단 2대대 소속 특전팀이 용의자들이 숨어있는 장소의 정확한 위치와 건물구조 정보를 제공하였다. 목표물 'Revenge'로 명명된 이 작전은 야밤에 이루어진 DET ONE과 그린베레 특전팀의 합동 습격작전이었고, HVT를 포함한 용의자 4명은 모두 생포된다. DET ONE 대원들은 가장 보람찬 일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5월 26일에는 'Ricochet'이라는 목표물에 대한 직접타격 작전이 있었다. 역시나 그린베레 5특전단 소속 특전팀의 정보에 의하면 목표물은 전직 이라크군[62] 정보장교 출신으로 바그다드 내부에 자리잡은 반군 지하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자였다. 역시나 DET ONE과 그린베레 특전팀이 합동으로 습격작전을 벌였는데, 이 작전에서 DET ONE 정찰대원 한명이 폭발물로 부상을 입었고, 해군 의무하사 한명은 다리에 총알을 맞았다. HVT(고가치 목표물)는 교전끝에 사살되었고 부상자들은 육군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태스크 유닛 'North'
DET ONE 소속의 지원 병력중 일부는 위의 태스크 유닛 'Raider'에 포함되지 않고 다른 태스크 유닛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태스크 유닛 'North'는 이라크 북부를 담당하였고 해군 SEAL이 주축이었다. DET ONE의 라디오 정찰대, 통역담당, 정보분석 인원들 일부가 'North'에 배치되어 활약하였고, 지원업무는 물론 작전현장에서도 보조로 참가하였다. 이 태스크 유닛 'North'의 SEAL 작전팀은 반군 간부급 용의자를 비롯하여 총 18회의 직접타격(Direct Action) 임무를 수행하였다.
-태스크 유닛 'West'
역시나 해군 SEAL이 주축인 태스크로써 광활한 이라크 서부 알-안바르 지역[63]을 담당하였다. 여기에도 DET ONE의 지원병력들이 배치되어 활동하였다. 'North'와는 다르게 이곳의 SEAL 대원들은 지원병력들을 아웃사이더로 취급하였는데[64] 다행히도 근처에 제1해병사단 7연대가 주둔해 있어서 그곳의 정보병력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태스크 유닛 'Raider', 'North'와 마찬가지로 이곳 이라크 서부지역 관할구역에도 작전중인 그린베레 특전팀이 현장에 있었고, SEAL은 그들로부터 휴민트와 타격작전에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외에도 태스크 유닛 'West'의 SEAL 작전팀은 팔루자에서 제1해병사단 1연대, 7연대와 협조하기도 하였다.
다시 태스크 유닛 'Raider'로 넘어와서, 5월 28일이 되자 DET ONE 부대의 상급 관리자인 해군 1특전단 SEAL 1팀장 윌리엄 W. 윌슨 해군중령은 더 이상의 타격작전을 중단하고 경호업무를 맡을 것을 지시한다. SEAL이 주축인 태스크 유닛 'North'와 'West'는 이라크 임시정부의 대통령과 수상, 부통령 1명을 경호하게 되었고, 해병 DET ONE이 주축인 태스크 유닛 'Raider'는 나머지 부통령 1명[65]을 담당하게 되었다. DET ONE은 그 당시에 개인 근접 경호 훈련을 받지 않은 상태여서 SEAL과 미 국무부, 그리고 국토안보부 산하 비밀경호국 파견 직원들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몇 주간의 개인 경호 업무 뒤, 해군 1특전단 SEAL 1팀장 윌리엄 W. 윌슨 해군중령은 직접타격(Direct Action) 작전을 재개하기로 결심한다. 다만 SEAL이 주축인 태스크 유닛 'North'와 'West'는 당분간 그대로 경호임무를 계속 맡고, DET ONE이 주축인 태스크 유닛 'Raider'가 타격작전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폴란드 육군 특수부대 '그롬'이 주축을 이룬 태스크 유닛 'Thunder'가 이들과 같이 작전을 하게 되었다. 'Thunder'의 경우 특수부대원 개개인의 작전능력은 뛰어났으나[66] 현지 정보 수집, 화력지원, 주둔중인 미군 정규부대 병력들과의 연락책 등이 부족했기에 DET ONE의 지원병력들과 SEAL 연락장교가 태스크 유닛 'Thunder'에 파견되었다. 이때 SEAL 측에서 태스크 유닛 'Raider'측에 M113 장갑차 몇대를 지원해 주었는데[67], 이는 DET ONE 병력들의 기동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6월 13일에는 목표물 'Radiate'에 대한 습격작전이 있었고, 반군 용의자 몇명을 체포하고 각종 장비와 반군 홍보용 비디오, 사진을 습득하였다.
6월 18일에는 차량폭발물 제조업자인 목표물 'Raven'에 대한 습격작전이 있었다. 역시나 그린베레 5특전단 소속 특전팀이 제공한 정보였다. 이 작전은 태스크 유닛 'Raider'와 폴란드 특수부대 태스크 유닛인 'Thunder', 그리고 미 육군 1기병사단 5기병연대 소속 병력 일부와 (새로 생길) 이라크 정부군 병력들의 합동작전이었다. AC-130 건십과 HH-60 헬리콥터의 지원 아래에 습격작전이 있었고, 목표물인 고가치 표적을 포함하여 17명의 반군을 체포했다.
6월 22일에는 역시나 그린베레 5특전단 특전팀의 정보를 통해 목표물 'Recoil'을 체포하였다. 이 작전은 정보를 입수한지 불과 4시간만에 급조된 계획이었으나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었다.[68]
위의 목표물 'Recoil'에 대한 작전이후 24시간도 채 안되어 바로 다음 목표물 'Relinquish'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반군들이 차량 2대로 신생 이라크 정부에 차량폭탄테러를 가하겠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작전 목표 지점을 살펴보니 차량 2대가 각각 서로 수백미터 떨어진 건물에 있었기에 한쪽은 태스크 유닛 'Raider'가, 나머지 한쪽은 폴란드 태스크 유닛 'Thunder'가 습격하기로 했다. 'Raider' 측 작전에서, 습격팀은 건물안에서 반군 2명을 체포하였고 이들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주차된 차량안의 폭발물은 아직 위험한 단계는 아니었고, 해군 EOD 대원이 해체하였다.
6월 23일에는 태스크 유닛 'Raider'의 DET ONE 병력들이 그린베레 5특전단 소속 특전팀의 주둔기지로 와서 수영장에서 하루동안 휴식을 취하며 DET ONE 창설 1주년 기념파티를 열었다.
6월 29일에 태스크 유닛 'Raider'는 목표물 'Recruit'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였다. AC-130 건십의 엄호 아래에 폴란드 특수부대 'GROM'과 합동으로 급습작전을 벌였고, 반군 용의자 8명을 체포하고 각종 장비와 차량, 폭발물을 압수하였다. 압수된 물품 중에는 미군 기지 배치가 표시된 지도도 있었다.
7월 2일에는 (역시나) 그린베레 특전팀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목표물 'Republican'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였다. 태스크 유닛 'Raider'와 'Thunder'(폴란드 측), 그리고 5특전단 소속 그린베레 특전팀, 그리고 그들(그린베레)이 훈련시킨 이라크 방위군 36대대 병력 중 일부도 동원되었다. 이라크 병력이 동원된 이유는 목표물이 모스크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반군 용의자 3명과 폭발물 제작도구, 컴퓨터, 이라크 여권 수백장을 압수하였다.
7월에 접어들어 통치권이 연합군에게서 신생 이라크 정부로 이양되자, 태스크 유닛 'Raider'는 잠시 직접타격 작전에서 물러나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처에 위치한 자신들의 본부인 캠프 마일러를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당시에는 미군 기지에 반군들에 의한 직,간접적인 로켓포 공격이 매우 빈번하였는데, SEAL 대원 한명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미 6월 30일에 태스크 유닛 'Raider'에서는 타격작전을 수행하는 DET ONE의 정찰소대 병력 30명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병력들로 저격수 팀을 구성하여 본부를 방어하게 하였다.[69] 정보 병력들은 또한 이 지역 관할을 담당하고 있던 미 육군 제5 방공포연대, 4대대와 협력하여 정보수집에 나섰다.
7월 6일에는, 태스크 유닛 'Raider'가 그들의 본부인 캠프 마일러에서 불과 5km 떨어진 곳에서 2개 건물을 동시에 급습하였고, 'Round Up'으로 명명된 로켓포 발사용의자를 포함하여 3명을 체포하였다.
당시 그린베레 5특전단 2대대 측에서는 작전명(Operation) 'Surpent Strike'를 고안하였다. 이것은 근처 지역에 숨어있는 반군들로 하여금 본부 기지쪽으로 로켓포 사격을 유도해서 그들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태스크 유닛 'Raider'와 폴란드 특수부대 태스크 유닛 'Thunder'가 험비에 타고 AC-130 건십의 항공지원을 받아 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의 일환으로, 7월 9일에 목표물 'Reform'으로 명명된 로켓포 공격 용의자에 대한 체포작전이 있었다. 3곳의 장소를 급습하였으나 결국 용의자는 체포하지 못했고 대신 현지 거주자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낸다.
몇몇 방어작전 이후, 태스크 유닛 'Raider'는 다시 HVT에 대한 직접타격 작전을 재개한다. 이번에 목표물 'Reflector'로 명명된 용의자는 전직 바트당 정권의 화학프로그램 책임자로 반군 네트워크에 폭발물과 화학무기를 공급하는자 였다. 7월 11일 새벽 3시, 목표 건물을 급습하였으나 용의자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1톤 가량의 화학물질과 관련장비들을 발견하였고, 당시 동행했던 미 정부의 관리가 샘플을 채취해 갔다.
7월 13일에는 반군과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인 목표물 'Run Down'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태스크 유닛 'Raider'와 그린베레 특전팀, 이라크 방위군 36대대 병력 일부가 합동 작전을 벌여 용의자를 포함, 3명을 체포하였다. 이때까지 태스크 유닛 'Raider'는 총 17회의 직접타격(Direct Action) 작전을 수행한 상태였다.
7월 27일에는 목표물 'Relapse'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용의자는 아군 측 기지에 로켓포를 발사하던 반군으로, 그에 대한 정보는 태스크 유닛 'Raider'의 정보담당팀이 현지에서 이라크인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얻어낸 것이었다. 습격작전은 AC-130 건십의 지원과 폴란드 특수부대 태스크 유닛 'Thunder'와 합동으로 이루어졌다. 태스크 유닛 'Raider' 측에선 용의자를 포함한 반군 2명을 체포하고 미군기지 위치가 표시된 지도들을 압수하였다. 폴란드 특수부대 'Thunder'측은 그들의 목표물 반군을 체포하는것 외에도 추가로 10여 개의 로켓포 발사대를 발견하여 제거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작전이 벌어진 장소가 제2해병사단 2해병연대 2대대의 담당 관할구역 이었는데, 대대장이 바로 DET ONE의 '대부'인 가일즈 카이저 해병중령이었다. 그는 만일의 경우 자신의 부대가 신속대응군으로 지원할 것임을 약속해주었다.
8월 5일에는 역시나 이라크 현지인 정보원에게 얻은 정보로 목표물 'Roadster'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목표물은 자리를 떠난 상태였지만, 그의 친척을 포함한 반군 일당 몇명이 체포되었다.
8월이 되자 시아파 반군들의 반격이 거세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라크 동부의 도시인 알쿠트에서는 이들 반군들이 대거 유입되어 (신생)정부군 경찰과 대규모로 충돌하였다. 당시 도시의 서쪽에는 우크라이나군 여단과 미 그린베레 특전팀 1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던 미 해병대 항공함포연락중대(ANGLICO)와 미 육군 헌병대 병력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여단은 개입할 여건도 의지도 없었고, 그린베레 특전팀 1개와 공군 전술항공통제관[70]이 AC-130 건십의 지원을 받아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8월11일, 태스크 유닛 'Raider'에서는 지원인원을 포함 16명의 병력과 M113 장갑차를 끌고와서 이들과 합류한다. 그린베레 특전팀은 작은 보트를 이용해서 티그리스 강을 건너 알쿠트시 시장을 탈출시켰고 이때 'Raider' 측 병력도 일부가 참여하였다. 이후 벌어진 도시 탈환전에서 'Raider' 측 지원병력의 실수로 이라크 정부군 경찰들에게 AC-130 건십 오인폭격이 있었으나 다행히 부상자만 발생하였다. 총격전이 치열한 가운데, 다음날이 되자 미 육군 스트라이커 대대가 지원을 왔고,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대대적인 도시 탈환전을 벌였다. 8월 15일 되자 도시는 안정을 되찾았다.
8월 12일에는 미 육군 제9기병연대 1대대가 그린존[71]안에서 치렀던 하이파 거리 시가전이 있었다. 이때 해군 SEAL의 태스크 유닛 'North'에서는 SEAL 대원 몇명을 육군측에 지원해 주었고, 태스크 유닛 'North'에 파견되어 있던 DET ONE 지원담당 병력 2명도 SEAL 대원들과 함께 지원을 가게된다. 이날 전투는 20시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미 육군 제9기병연대 1대대는 3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하였다.
8월 16일에는 다시 직접타격(Direct Action) 임무로, 목표물 'Roulette'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용의자는 바그다드 남쪽 도시인 마무디야에서 활동하는 반군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해당 지역은 DET ONE의 대부인 가일즈 카이저 해병중령이 지휘하는 제2해병연대 2대대의 관할이었고, 카이저 해병중령은 역시나 신속대응군 지원을 약속하였다. 제2해병연대 2대대에게서 정보를 제공받아 태스크 유닛 'Raider'와 폴란드 특수부대 태스크 유닛 'Thunder'가 몇군데를 동시에 습격하였으나 목표물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8월 19일에는 목표물 'Resistor'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용의자는 거대 반군 지하조직을 이끄는 거물로, 전직 후세인 정부의 군 장성 출신이었다. 심지어 그는 알카에다의 수장 알 자르카위와도 연계되어 있었고, 그의 개인 경호원들은 후세인 정부 시절 이라크 특수부대에서 복무한 자들이었다. 이 자를 체포하기 위해 (새로 생긴) 이라크 정부의 특수부대와 미군의 티어1급 특수부대가 주축이 된 태스크포스626[72]이 추적하고 있었다. 처음에 태스크 유닛 'Raider'는 미 육군 제1기병사단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태스크포스626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스크포스626이 작전을 개시하기 24시간전에 반군에 심어놓은 아군측 정보원들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태스크 유닛 'Raider'와 'Thunder'(폴란드)는 태스크포스626 측 병력이 지금 수행하는 작전에 바로 참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일 새벽, 각자 맡은 지역으로 합동 급습 작전이 있었으나 용의자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태스크 유닛 'Raider'의 수석 지휘관인 코제니스키 해병소령은 '작전이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졌다. 비록 목표물을 놓쳤지만 상위 티어1급 부대들과 함께 작전해서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8월 9일 바그다드 남쪽 160km 떨어진곳 나자프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 육군 1기병사단 휘하 3개 대대 병력을 중심으로 미 해병대 11th MEU 소속 4해병연대 1대대 병력, 그리고 폴란드, 스페인, 우크라이나의 다국적 연합군, (신생) 이라크 정부군까지 동원된 대규모 전투로, 이후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큰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는 전투였다. 이에 합동 태스크포스 'Arabian Peninsula' 측에서도 휘하의 특수부대 병력들을 나자프 전투에 지원 보낸다. 8월 17일에 태스크 유닛 'Raider'의 DET ONE 병력 일부와 이외 다른 태스크 유닛의 SEAL, 폴란드 특수부대 '그롬' 병력들은 그린베레 5특전단 소속 특전팀의 험비를 얻어타고 함께 나자프에 도착한다. 이들은 미 육군 제7기병연대 2대대의 담당구역을 지원하기로 하고 8월 20일부터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전, 이후 벌어진 몇몇 작전에서 DET ONE 저격수들은 큰 활약을 하게된다. AC-130 건십 뿐만 아니라 육군 AH-64 아파치 와 해병대 AH-1 코브라까지 동원된 대규모 전투는 8월 27일 밤 10시가 되어서야 종료된다. 태스크 유닛 'Raider'는 병력들은 며칠간 더 주둔하고 있다가 8월 30일이 되어서야 험비와 헬리콥터를 타고 본부로 귀환하였다.
8월 30일에는 목표물 'Rifle'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Z'라고 불리기도 한 해당 용의자는 반군 조직의 지도자로 암살과 폭파사건에 연루된 자였다. 나자프 전투에서 먼저 본부로 귀환해 와있던 대원들을 중심으로 작전은 수행되었다. 주로 야밤에 험비와 공중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던 이전의 직접타격(Direct Action)작전과는 달리, 이번 작전은 백주대낮에 번화가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육군 특전사에게서 현지 이라크 승용차와 트럭을 빌린 뒤, 태스크 유닛 'Raider'와 폴란드 측 'Thunder'는 현지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결국 이라크 현지인 협력자를 활용하여 레스토랑에서 용의자 'Z'와 일당들을 아무런 저항없이 체포하였다.
9월 15일에는 목표물 'Ruby'에 대한 작전이 있었다. 용의자는 블랙리스트에 자주 올라온 거물급 고가치 목표물로, 전직 이라크 군 장성이자 사담 후세인의 사촌이기도 했다. 목표장소 건물을 급습하였으나 용의자는 그곳에 없었고 대신 폭발물 장치만이 발견되었다. 건물을 비운 뒤 EOD가 장치를 폭파시켰고, 이후 거리에서 방향을 알수 없는 총격이 몇번 이어졌으나 결국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기지로 복귀한다.
9월 중순이 되자 태스크 유닛 'Raider'의 일부 병력들은 파병을 마치고 철수를 시작하였다. 9월 27일부터 주병력들도 철수를 시작하여 10월 2일에는 DET ONE의 모든 병력들이 캘리포니아주 캠프 팬들턴으로 귀국한다.
하지만 스티븐 V. 피스커스 해병대위[73]는 폴란드 특수부대 태스크 유닛인 'Thunder'가 마지막 작전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해 바그다드에 홀로 남게 된다. 피스커스 해병대위의 역할은 연락장교이자 작전계획자였다. 그는 작전지역 내 미 육군 부대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해당 육군 여단장을 만나 신속대응군으로써 협력을 부탁하였다. 이 여단장은 육군 특전사 출신이라 특수작전에 대해 아주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해줬다고 한다. 이라크 특수부대와 폴란드 특수부대는 각자 목표지점을 야밤에 기습하였는데, 도중에 통신문제로 폴란드 특수부대 병력들이 15분 이상 연락두절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임무를 수행해서 목표물을 체포해왔고 본부에서 이를 지켜보던 육군 여단장과 SEAL 1팀 사령관 윌리엄 W. 윌슨 해군중령은 이들을 극찬하였다. 이 작전이 끝나고 난뒤 피스커스 해병대위는 폴란드 특수부대 'GROM' 대원들과 송별식을 가졌다. 폴란드 특수부대 'GROM' 대원들은 피스커스 해병대위를 명예 'GROM'대원으로 추대해 주었으며, 미국으로 귀국하는 그에게 DET ONE 병력 인원 만큼의 기념 코인[74]을 건네주었다.
피스커스 대위(좌)와 폴란드 GROM 대원(우).
3.2.3. 해체
2004년 10월 2일, 모든 DET ONE 병력은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부대 정비와 각종 브리핑이 있었으나 DET ONE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였다. 윌리엄 코츠 해병대령과 코제니스키 해병중령[75]11월 17일 해군특수전사령관과의 브리핑을 거쳐, 12월에는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사령관과 해병대 사령관이 참석한 컨퍼런스가 있었지만 논의 결과 SOCOM과 해병대 양측 모두 더 이상 DET ONE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2005년 1월에 SOCOM 사령관과 해병대 사령관은 위의 내용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도널드 H.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제출하였다.한편 DET ONE 병력들은 2004년 12월부터 다시 자체적인 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으로는 2005년 1월 18일부터 약 한 달 넘게 진행된 그린베레 제5특전단 제2특전대대 B지역대와의 합동훈련이었다. 이들과는 이라크에서 이미 깊은 교류관계를 맺은 사이로, DET ONE 정찰대원뿐 아니라 지원병력들까지 함께 합동훈련에 참가하였다.
해병대 사령관인 마이클 W. 하기 해병대장을 비롯한 해병대 수뇌부가 더 이상 DET ONE이 필요없다고 보고 소속 병력들에게 SOCOM 파견을 마치고 해병대(Corps)로 복귀하라고 명령하려는 찰나, 2005년 2월 4일에 럼즈펠드 국방장관으로부터 답신이 왔다. 답신 내용은 '과제: 해병대 특수작전 사령부'로써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병특수작전사령부 창설을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SOCOM 산하 특수전대학교에서 해병대 수뇌부 측과 SEAL측이 DET ONE의 파병결과에 대해 분석하고 미래방향에 대해 논의하였고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해군 분석센터[76]에서 연구가 뒤따라 2005년 12월 12일에 해병특수전사령부에 대한 최종계획본이 탄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윌리엄 코츠 해병대령과 코제니스키 해병중령을 비롯한 DET ONE의 주요 지휘관들은 새로운 해병특수전사령부 창설 과정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2005년에, DET ONE은 더 이상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지도 않았고, 파병 계획도 없었고 그냥 계속 훈련을 실시하며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라크에 파병된 DET ONE 병력들의 총 지휘관이었던 코제니스키 해병중령(진급)은 해병대(Corps)로 복귀, 제1해병사단 제5해병연대 2대대장으로 파병을 나갔고 그 자리는 프랜시스 L. 도노반 해병중령[77]이 맡았다.2005년 가을 즈음에, DET ONE을 제1해병원정군(1st MEF)과 함께 이라크로 파병해서 바그다드에서 독립적으로 작전시킨다는 제안이 있었다. 해병대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월레스 C. 그레그손 해병중장은 이 제안 외에도 DET ONE의 다른 파병 옵션을 해병대 수뇌부 장군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발표하였으나 결국 이후에 추가 파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1월 30일, 윌리엄 코츠 해병대령은 DET ONE을 해산시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듬해인 2006년 2월, 추가 공문이 내려와 4월 1일까지 DET ONE을 완전히 해산시키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이외에도 해병대(corps)로 복귀하여 일선부대에 배치되는 인원들은 곧 이라크로 파병가게 될것이며, DET ONE의 정찰소대 병력 중 일부는 새로 창설될 2개의 해병특전대대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2006년 3월 10일, 태평양 해병대 사령관 존 F. 굿맨 해병중장과 제1해병사단장 리차드 F. 나튼스키 해병소장,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DET ONE의 해체식이 열렸다. DET ONE 병력들은 모두 해병대(corps)로 복귀하여 장교들은 일선 보병부대 지휘관으로, 이외 병력들도 각자의 주특기를 살려 자리를 찾아가 대부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되었다. 고참 부사관들의 경우 해병대 군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는 이들도 있었고, 예비군으로 전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DET ONE 정찰소대의 포스리콘 출신자 중 20여명은 새로 창설되는 해병특수전사령부의 해병특전대대로 발령나게 된다.
3.3. 해병특전사령부의 창설 (2006년~)
3.3.1. 창설 및 개요
2006년 2월 24일,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캠프 리젼에서 해병특전사령부(MARSOC)[78]가 창설된다. 2006년 창설 당시 휘하에는 해병특전연대(MSOR)[79], 해병특수전학교[80], 해병특수전지원단[81]으로 구성되어 있었다.창설 당시 해병특전연대(MSOR) 휘하에는 2개의 해병특전대대(MSOB)[82]가 존재하였다. 서부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 위치한 제1포스리콘 중대가 제1해병특전대대(1st MSOB)로 바뀌었고, 동부 노스캐롤라이주 캠프 리젼에 위치한 제2포스리콘 중대가 제2해병특전대대(2nd MSOB)로 바뀌었다.(밑에 편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1개 해병특전대대와 1개 포스리콘 중대는 둘 다 해병대 중령이 지휘하며 규모도 (대략) 비슷하다.) 여기에는 DET-ONE에서 복무했던 포스리콘 24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제1, 2 포스리콘 대원들중 많은 이들이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의 JFK 육군특수전학교로 가서 그린베레의 선발과정인 Q코스를 이수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9년에는 서부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 제3해병특전대대(3rd MSOB)가 추가된다.
이 해병특전대원의 명칭은 'CSO'(Critical Skills Operator)라고 불렸다. 2015년에 해병특수전사령부(MARSOC) 측에서는 과거 2차대전에 잠깐 존재했던 경보병부대인 '레이더스(Raiders)'의 이름을 계승하기로 함에 따라 '해병특전연대(MSOR)'는 '해병 레이더 연대'[83]로 개명하였고, 휘하의 해병특전대원의 명칭도 '마린 레이더스'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해병특수전학교'의 경우 '해병레이더 트레이닝 센터'[84]로, '해병특수전지원단'의 경우 '해병 레이더 지원단'[85]로 이름을 바꾸었다.
3.3.2. 레이더스(해병특전단) 편제
- 해병레이더연대(Marine Raider Regiment)
- 연대본부 및 본부중대(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
- 제1 해병 레이더대대(1st Marine Raider Battalion)
- 제2 해병 레이더대대(2nd Marine Raider Battalion)
- 제3 해병 레이더대대(3rd Marine Raider Battalion)
- 해병레이더지원단(Marine Raider Support Group)
- 지원단본부(Group Headquarters)
- 제1 해병 레이더 지원대대(1st Marine Raider Support Battalion)
- 제2 해병 레이더 지원대대(2nd Marine Raider Support Battalion)
- 제3 해병 레이더 지원대대(3rd Marine Raider Support Battalion)
- 해병 레이더 훈련소(Marine Raider Training Center)
SOO - 팀장(Team Leader), 계급 대위(O3)
CSO - 부팀장(Team Chief), 계급 상사(E8)
CSO - 작전 부사관(Operations SNCO), 계급 중사(E7)
CSO - 통신 부사관(Communication SNCO), 계급 중사(E7)
CSO - 제대장(Element Leader), 계급 하사(E6)
CSO - 제대장(Element Leader), 계급 하사(E6)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병장(E5)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병장(E5)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상병(E4)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상병(E4)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상병(E4)
CSO - 제대원(Element Member), 계급 상병(E4)
CSO - 의무병(HM2), 해군 특수상륙수색 의무병(SARC)
CSO - 의무병(HM2), 해군 특수상륙수색 의무병(SARC)
최소 작전 단위인 해병특전팀(MSOT)[86]은 14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병대 대위를 팀장으로 하며 상사가 부팀장을 맡는다. 중사는 각자 작전 주특기와 통신 주특기를 담당하고 이들이 해병특전팀의 HQ를 이룬다. 그 밑으로 각자 전술 주특기를 지닌 하사, 병장, 상병이 배치되어 하사가 이들의 제대장이 되며 해군 특수상륙수색 의무병(SARC)[87]들이 의무주특기를 담당한다.[88] 그렇게 HQ를 제외한 10명을 5명씩 나누어 두개 제대를 이룬다.
이러한 해병특전팀 4개를 관리하는 해병특전지역대(MSOC)[89]가 있으며 해병대 소령이 지휘한다. 또 해병특전지역대(MSOC) 4개를 관리하는 해병특전대대(MSOB)[90]가 있고, 해병대 중령이 지휘한다. 해병특전대대(MSOB) 3개를 관리하는 지휘관은 해병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의 연대장(특전단장)이며 계급은 해병대 대령이다. 한마디로 해병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는 그린베레(육군 특전사)나 네이비 씰(해군 특전단)과 비교했을 때 1개 특전단 규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편제상 똑같은 대령계급이 지휘하는 1개 특전단 규모를 기준으로 해병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와 육군특전단, 해군특전단을 비교해본다면, (본부병력과 훈련담당, 지원병력을 제외하고 편제상 '작전팀'을 기준으로만 볼때)
해병특전대대는 4개의 해병특전지역대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은 총 16개 '작전팀(MSOT-14명)'으로써 1개의 해병특전대대에는 224명의 해병특전대원이 존재한다. 그리고 해병특전대대 3개가 해병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에 존재하니 약 672명의 병력이다.
육군 그린베레의 경우 육군특전대대는 3개의 육군특전지역대로 구성되어 있고, 이것은 총 18개의 '작전팀(ODA-12명)'으로써 1개의 육군특전대대에는 216명의 육군특전대원이 소속된다. 그리고 4개의 육군특전대대가 육군 특전단 1개를 구성하니 약 864명의 병력이다.
해군 SEAL의 경우 1개 SEAL'팀'(해군특전대대-중령)에는 8개의 대(16명. 대위가 팀장)로 총 128명의 해군특전대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4개의 SEAL팀(해군특전대대)이 해군 특전단 1개를 구성하니 약 512명의 병력이다.
3.3.3. 선발과정
해병 '레이더스' 대원이 되기 위해서는 민간인에서 바로 입대하여 모집하지 않고 해병대에서 최소 2~3년 이상 복무한 부사관(NCO)[91] 계급 이상의 현역 해병대원이어야 한다. 지원자의 보직은 제한은 없지만 주로 해병 보병 소총수(Rifle Men) 출신들이 선호된다. 또는 디비젼 리콘이나 포스리콘 같은 수색대에서 복무하다가 넘어가기도 한다. 다만 미 해병대 전역자들은 레이더스가 리콘보다 더 상위급 부대다 이런건 아니고, 해병대에는 레이더스와 리콘이라는 2가지 특수작전부대가 존재하는데, 레이더스는 'SOCOM의' 지휘를, 리콘은 '해병대(Corps)의' 지휘를 받는다로 인식한다고 한다.
레이더스의 선발과정에서 우선 지원자들은 해병 레이더 트레이닝 센터(해병특전학교)에서 실시하는 3주간의 선발과정인 A&S(Assessment and Selection)에 지원하여 체력부분(달리기, 수영, 하이킹 등)을 통과해야 한다.[92] A&S 과정을 통과한 대원들은 본격적인 개별 훈련과정으로 돌입하는데, ITC(Individual Training Course)라고 불리는 이 개별 훈련 과정은 생존술 과정(S.E.R.E)-level C를 포함하여 9개월 동안이나 진행된다. 그린베레의 Q코스나 SEAL의 SQT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개별 훈련(ITC) 과정에서도 교육생들은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다. ITC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해병특전대대로 배치받지만 끝난 것이 아니고 특전대대의 18개월 훈련과정에 돌입하게 된다.
또한 6개월 이상의 외국언어 교육과정을 받고,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위치한 육군 공수학교에서 3주간 공수기본교육,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해군 잠수 교육 센터(NDSTC)로 가서 8주간의 해병대 전투 스쿠버다이버(MCDC) 과정[93][94],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의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고공강하(HALO)과정도 이수한다. 일부 대원들은 필요에 따라 육군 레인저 스쿨, 육군 패스파인더 스쿨, 육군 수색/감시 리더 과정[95] 등의 위탁교육을 추가로 받기도 한다. 이외에도 자신의 병과주특기(MOS)에 따라 추가 위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4. 오늘날
함대해병군(FMF)에 남아있는 '포스리콘'과는 달리 '레이더스'는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소속인 만큼 이들로부터 예산과 임무를 하달받는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OEF 작전[96]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해병특전대대가 돌아가며 계속 파병을 가고 있으며, 이라크 모술 탈환에도 레이더연대 제1레이더대대와 제2레이더대대가 함께 참가했다.이외에도 아프리카에 제3레이더대대가 대테러 임무에 참가한 적도 있으며 OEF-P 작전[97]으로 필리핀에도 파병을 가고 있다. 최근에는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ISIS를 상대로 한 연합특수부대 태스크포스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모두 철수했기 때문에 현재 미 해병대의 정규 사단 병력들과 리콘부대(포스리콘, 디비젼리콘)들은 거의 전투 파병없이 기지 주둔과 훈련만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레이더스(해병특전단)는 SOCOM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에서 실전을 치르며 계속 활약하였고 소말리아에도 파병되고 있다.[98]
2019년 2월, Marin Corps Times에 따르면 해병특전사령부(MARSOC)가 2006년에 창설된 이래 13년동안 해병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 소속 병력들이 17개 이상의 해외 국가에 약 300회 이상 파병되었으며, 그동안 레이더스 대원들이 받은 훈장은 전부 합쳐서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또한 창설이래 41명의 레이더스 대원들이 훈련사고나 특수작전 도중 순직했다고 발표했다. 기사링크(영문)
MARSOC 창설이후에는 미 해병대 내의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로 몰리게 되었지만, 창설 초기에는 해병특전대원들의 MOS번호가 여전히 Recon이었고 지식전파, 부족한 리콘마린들의 인원 보충을 위해 이 때문에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에서 최대 5년간 복무한 뒤에는 다시 일선부대(보병)로 복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로인해 특수작전 부대에서 복무하길 희망하는 많은 현역 해병대원들이 레이더 연대(해병특전단)에 지원하기보다 델타 포스에 지원하거나 아예 해병대를 전역하고 나와서 육군으로 재입대하여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으로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미 육군 특전단으로 재입대하는 미 해병대 수색대(번역)'를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나중에 대원들이 이 문제로 전역하는 일이 늘어나자 CSO MOS번호가 만들어지면서 5년이 지나도 부대를 떠날 필요가 없어졌고 리콘마린처럼 평생 레이더연대에서 복무할 수 있게 되었다.
75레인저연대와 그린베레를 거쳐서 델타 포스에서 원사 계급으로 전역한 John Mcphee가 인스타그램에서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질문에 Q&A를 가졌을 때 레이더 연대를 DEVGRU까지는 아니지만 네이비 씰보다는 높게 평가하였다. 다만, 존 맥피는 자기 출신 부대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 반면에 타 부대는 농담삼아 까내리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느정도는 감안해야 한다.[99] 특히 SEAL에 대해서 철저히 비하적인 답변으로만 일관했던 것으로 보아 SEAL에 대해 좋지 않은 개인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는 점을 유의하자. 심지어 캐나다의 JTF-2는 SEAL에서 훈련받았기 때문에 별로라고 디스했을 정도다. 물론 SEAL뿐 아니라, 영국 SAS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타 특수부대들에 대해서도 비하 발언들을 했지만 특히 SEAL에 대해서 가장 악평을 내렸다. 참고로 SEAL은 너무 대외적인 허풍성 홍보를 많이 하고 대중매체 타는 걸 밝힌다는 등의 이유로 특수부대 쪽 커뮤니티에선 따가운 눈총과 질시를 많이 받는 부대이기도 하다. 반면 해병 레이더 연대는 탄생때부터 육군 그린베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후로도 합동훈련 등 상호 교류가 활발해서 서로 가까운 관계다. 아무튼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다 개인적인 호오감정과 편견이 있을 수 있는 한 인간의 의견일 뿐이므로 그 한 사람의 코멘트를 마치 절대적인 기준이자 정답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5. 출신 인물들
5.1. 해병특전단(MARSOC) 출신자
이 항목은 해병특전단(MARSOC)에서만 복무한 사람들의 목록이다.- 닉 케팔리데스 - 2004년에 미 해병대에 입대해서 총 12년간 복무하였으며 하사(E6)로 전역. 입대하고 첫 3년간은 제2해병사단 제2해병연대 2대대에서 보병으로 복무했고 이 시절 이라크 전쟁에 한 차례 전투파병 다녀오며 전투 중 부상도 입음. 나머지 9년간은 해병특전단(MARSOC)에서 특전대원으로 복무함. 12년간 해병대 복무시절 동안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합쳐서 5회 전투파병을 다녀옴. 전역후에는 전우들과 함께 '워리어 투 베스'라는 낚시 가이드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닉 케팔리데스의 모습 |
닉 케팔리데스의 팟캐스트 영상 |
- 조쉬 혼스버거 - 2001년 8월에 미 해병대에 입대해서 보병으로 제2해병사단 제8해병연대 3대대에서 복무하며 이라크 전쟁 전투 파병. 2007년 6월부터는 콴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소화기(small arms), 외국 무기, 개인 경호술, 저격 교육 수석 교관을 지냄. 2009년 12월에 해병특전단(MARSOC)에 지원하여 선발 셀렉션을 통과하고 제2해병특전대대에서 복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로테이션 전투파병을 다녀오다가 2014년 5월에 전역함. 총 13여년간 복무하고 하사(E6)로 전역후에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으로 학사 학위도 받고 제대군인들을 위한 멘토링, 자선사업도 하다가 현재는 '보디 벤처스'라는 회사를 운영 중.
조쉬 혼스버거의 모습 |
조쉬 혼스버거의 해병특전단 Q&A 영상[100] |
- 벤지 매니보그 - 고교 졸업 후 2005년 8월에 입대해서 보급(Logistics) 병과로 2006년,08년에 2차례 이라크 전쟁에 전투파병을 다녀옴. 2009년에는 제15해병원정대(15th MEU)에서 복무. 2011년에 해병특전단(MARSOC)에 지원하여 선발 셀렉션을 통과하고 특전대원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수 차례 로테이션 전투파병을 다녀온 뒤 2021년 2월에 전역함. 총 15년간 해병대에서 복무하였고, 중사(E7) 계급으로 전역함. 이후에는 참전군인들을 돕는 재단에서 일하고,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MBA 과정도 졸업한 뒤 현재는 '스래쉬 앤 레이드'라는 스케이트보드&의복류 판매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 중.
벤지 매니보그의 팟캐스트 영상 |
- 데렉 헤레라 - 대대로 공군 집안, 아버지는 공군사관학교 졸업한 파일럿이었음. 데렉 헤레라 본인은 2006년에 아나폴리스(미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임관해서 제3해병사단 제9해병연대 1대대 보병소대장이 됨. 2008년 3월~9월에 이라크 전쟁에 전투 파병 다녀옴. 2010년 1월~6월에는 제9해병연대 1대대 상륙팀 참모장교로 제24해병원정유닛(24th MEU)에 로테이션 근무하며 아이티에서 원조활동도 하고 지부티, 요르단, UAE, 카타르,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에서 훈련함. 2010년 9월에 해병특전단(MARSOC)에 지원하여 선발과정을 통과하고 제1해병특전대대의 해병특전팀장(대위)으로 배치됨. 2012년 5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되었는데 이때 적군과의 교전 도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 미 본토로 이송됨. 참전군인 병원에서 6개월간의 치료끝에 이를 극복하고 다음해인 2013년 1월 제1특전대대 작전 장교로 복귀, 2014년 11월에 최종적으로 의병제대함. 전역후에는 꾸준히 재활치료도 받으며 UCLA에서 박사학위도 받고 TV에 출연하여 강연활동도 하고 각종 재단의 이사로도 근무하는 등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또한 '스피널 싱귤러리티'라는 의료기구를 제작,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CEO로 재직하고 있음.
데렉 헤레라 |
데렉 헤레라의 팟캐스트 영상 |
5.2. 리콘마린-해병특전단(MARSOC) 출신자
이 항목은 리콘마린(디비전리콘 or 포스리콘)과 해병특전단(MARSOC) 두 곳에서 모두 복무한 사람들의 목록이다. 리콘마린의 출신 인물 항목과 중복되는 이들이 있다.- 찰스 C. 파딜라 - 1982년에 미 해병대에 보병으로 입대해서 교육훈련단 수료 뒤 미 해병대 필리핀 주둔기지(82년~84년), 제3해병사단 제9해병연대 3대대(84년~85년), 제1해병사단 제1해병연대 2대대(86년~88년)에서 복무. 이후에는 수색대(리콘마린)에 지원해서 제1리콘대대(89년~93년)에서 복무하다가, 중간에 잠시 제1신병교육대대(93년~95년)에서 훈련교관으로 복무함. 다시 수색대로 복귀해서 제5포스리콘중대(95년~98년)에서 복무하다가 다시 해병대 산악전 훈련센터에서 교관(98년~2001년)으로 복무함. 이후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로열 마린(영국 해병대)의 제3코만도여단에 파견되어 있었음. 이듬해 귀국해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 해병대 특수부대인 DET-ONE[101]에 소속되어 이라크 전쟁 참전. 2006년에 미해병특전사령부(MARSOC)에서 초기 창설 멤버로 합류하여 2009년까지 복무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수차례 파병. 2009년부터는 해병수색교육(BRC) 훈련교관으로 복무하다가 2011년에 최종계급 해병대 원사(E9)로 전역함. 총 29년간 미 해병대에서 복무했으며 영국 해병대 코만도 스쿨, 프랑스 네이비 코만도 교육 과정, 미 육군 레인저 스쿨, 그리고 미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Q코스 교육 수료자임. 전역후에는 마라톤 완주도 하고 리콘마린 전우회에서 참전군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음.
찰스 C. 파딜라 원사 |
- 닉 쿠말라쵸스 - 19살이던 2000년도 10월에 미 해병대에 입대하여 2003년도 1월까지 교육훈련단에서 복무하였음. 이후 수색교육에 지원하여 제2포스리콘중대에서 2005년도 1월까지 복무하였고, 그 다음에는 제3리콘대대에서 2007년도 12월까지 복무함. 2007년도 12월에 해병특전단(MARSOC)에 지원하여 셀렉션을 통과하고 2012년도 12월까지 제2해병특전대대에서 복무함. 총 12년간 복무하였고 전역후에는 '서바이벌 택티컬 시스템즈'라는 총기 전술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2013~17년) 지금 현재는 '레이더 프로젝트'라는 전역군인을 돕는 자선사업, '조니 슬릭스'라는 유기농품(ex 오가닉 오일) 회사, 'A Coffee Company'라는 커피회사[102], 그리고 'Agoge'라는 군사관련?회사, 그외에 여러 다른 회사에서도 근무하는 듯.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발간하고 유튜브 개인채널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중.
닉 쿠말라쵸스의 책 |
닉 쿠말라쵸스 유튜브 개인 채널 영상인 '리콘 마린 vs 마린 레이더스(해병특전단)' |
- 코디 알포드 - 2004년에 미 해병대에 보병으로 입대해서 제1해병사단 제1해병연대 2대대에서 저격팀장(2004년 8월~2006년12월), 이후 2007년 1월에 수색대에지원해서 제1포스리콘중대에 배치되었으나 그 해 해병특전단(MARSOC)의 창설로 얼마지나지 않아 해당부대가 제1해병특전대대로 변경됨[103]. 2008년 8월까지 제1해병특전대대에 있다가 그 다음엔 해병특수전훈련센터 스나이퍼, CQB 교관(2008년9월~2011년12월), 제3해병특전대대 특전팀 수석참모(2011년12월~2015년10월), 제2해병특전대대 특전지역대 수석참모(2015년10월~2017년03월), 2017년 3월부터는 해병특수전훈련센터에서 근무 중. 현재는 해병대 상사 계급으로 은퇴하고 '위 디파이 더 놈'이라는 의류 회사를 설립하여 경영 중. 전역 후 대학을 다니며 학사 학위도 받았으며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음.
코디 알포드의 인터뷰 영상 |
- 돈 트란 - 베트남계 미국인으로[104] 고교 졸업 후 2006년에 미 해병대에 보병 입대, 제3해병사단 제4해병연대 1대대(2006년~2010년)에서 복무하며 이라크 전쟁에 2차례 전투파병을 다녀옴. 이후 미 해병대 수중 생존술 교관으로 잠시 몇달간 있다가 이듬해 2011년에 곧바로 해병특전단(MARSOC)에 지원하여 셀렉션을 통과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필리핀에도 파병을 다녀옴. 해병특전단(MARSOC)에서 복무하면서 동시에 미 해병대 태평양 원정 전투 훈련단(EWTGPAC)[105]의 해병대 항공지원작전단(TACP)에서 합동최종공격통제관(JTAC)으로 복무하기도 하였음(2014년~17년). 총 12년간 현역으로 복무하였고 2017년 12월에 은퇴한뒤에는 미 해병대 예비군인 제4포스리콘중대에서 1년간 복무하기도 하였음. 현재는 '딥 엔드 피트니스'라는 피트니스 트레이닝 회사와 '언더워터 토피도 리그'라는 수영 강좌&레크리에이션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유튜브 개인채널도 운영중.
돈 트란의 트레이닝 영상 |
돈 트란의 팟캐스트 인터뷰 영상 |
- 브라이언 버클리 - 대학 졸업 후 2004년에 미 해병대 장교로 입대, 해병대 보병 장교과정 훈련을 마친뒤 제2해병사단 제8해병연대 2대대에서 보병 소대장(2006년1월~2007년5월), 이후 수색대에 지원해서 제2리콘대대에서 수색소대장(2007년5월~2009년6월), 그 다음에는 대위로 진급해서 해병특전단(MARSOC)에서 해병특전팀장(2009년6월~2013년10월)으로 복무하고 은퇴함. 현재 인빅터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사이버 보안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헬만드 밸리 그로워스 컴퍼니라는 대마초 판매 회사도 세웠음. 그리고 배틀 브라더스 파운데이션 이라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재단도 운영하고 있음.
브라이언 버클리의 인터뷰 영상 |
- 론 홈즈 - 1989년 11월에 미 해병대에 입대해서 보병 라디오 주특기로 1990년 8월 오키나와 제3해병사단앵글리코에 배치됨. 배치되자 2달만에 걸프전쟁에 파병되었고 이후 소말리아, 예멘에 다녀온 뒤 수색교육에 지원해서 제5포스리콘중대에서 복무. 그 다음에는 제2포스리콘중대를 거쳐서 해병특전단(MARSOC)에서 복무하고 2010년 4월에 은퇴함. 총 20년 6개월간 복무하였고 은퇴 당시 계급은 해병대 상사(E8) 였음. 현재는 '라이커 USA'라는 총기 그립 제작 전문회사를 설립해서 운영중이며 전술 사격 강사로도 활동하는 중.
론 홈즈의 팟캐스트 인터뷰 영상 |
- 피터 페리 - 고교 졸업 후 2003년 7월에 미 해병대에 입대하여 제3해병사단 제3리콘대대에서 복무. 2005년 3월 이라크 전쟁 팔루자에 전투파병 다녀옴. 2005년 12월부터는 제1포스리콘중대에서 복무하였고 2006년 초에 해병특전단(MARSOC)의 창설로 부대가 제1해병특전대대로 바뀌자 거기에서 계속 복무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수차례 로테이션 전투파병을 다녀온 뒤 2015년 7월에 전역. 전역후에는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도 따고 경호 전문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마인드럼 프리시전'이라는 특수물건 제작회사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근무 중.
피터 페리의 인터뷰 영상 |
- 벅 도일 - 총 21년간 미 해병대에서 복무하였으며 그 중에서 17년간 해병대 특수전부대(제1리콘대대, 제1포스리콘중대, 그리고 해병특전단MARSOC)에서 복무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중동지역과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많은 파병을 다녀옴. 2010년에 해병대 상사(E8) 계급으로 전역하고 '팔로우 쓰루 컨설팅'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미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훈련도 맡았음. 2014년부터는 사업을 확장시켜 민간 경호 & 총기 전술 강좌 회사로 운영하고 있음.
벅 도일의 트레이닝 영상 |
6. 레이더스와 BDU
우드랜드 전투복을 입은 레이더연대 대원 (좌)와 타이거 스트라이프를 입은 그린베레 대원(우) |
레이더스의 외관적 특징으로는 전투복 위장무늬로 BDU(우드랜드) 패턴을 고수하고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미 해병 소속이면서 MARPAT이 아닌 BDU를 고수했던 이유로는 일반 해병부대나 다른 특수부대와 구별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레이더스가 주로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현지인 군인들이 입는 옷이 주로 우드랜드 패턴의 전투복이어서 이들과의 유대감 강화 및 원활한 합동작전을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탈레반 역시 BDU 패턴의 전투복을 입기 때문에 아무래도 레이더스 라는 이름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전자의 이유가 컸다.
BDU는 미군의 주 활동 지역인 수풀이 없는 아프간에서 멀티캠보다 위장력이 떨어지지만, 멀티캠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멀티캠 보급이 특수부대 위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탈레반에게는 멀티캠=특수부대 라는 인식이 있어 최우선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육군 일반 보병에게도 멀티캠과 거의 동일한 스콜피온 W2 패턴이 채택되었고, AOR1,2를 고집하던 DEVGRU에서도 멀티캠을 쓰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으로 구별되는 유니크함도 갖기 위해 BDU를 채택하였다.
또한, 위장무늬만 다르지 Crye Precision이나 DRIFIRE 등에서 제작한 최신형 컴뱃 유니폼의 기능과 같다. 임무와 지역에 따라서 MARPAT이나 멀티캠을 착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 레이더스들도 모두 멀티캠으로 갈아타면서 BDU를 입는것도 옛말이 되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이 멀티캠으로 갈아탔지만 아직 NWU의 파생형인 AOR1/2와 혼용을 하고있는 네이비 씰과는 다르게 레이더스는 순식간에 우드랜드를 버리고 멀티캠으로 교체하였다.
그런데 2024년 10월 MARSOC 사령부가 멀티캠 사용을 금지시키면서 일반 해병들처럼 MARPAT 전투복과 군장을 착용할 것으로 보인다. #
7. 대중 매체
- 배틀필드 4/캠페인과 소설 배틀필드: 카운트다운 : 주연인 호출부호 "툼스톤" 분대원들(던, 레커, 아이리쉬, 팩) 과 소설 도입부에서 라즐로 W. 코빅의 지휘를 받던 팀장 올슨의 작전팀 대원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2019) - 프롤로그 미션의 알렉스와 함께 러시아 영내에서 작전을 하는 호출부호 히트맨(암살자)팀.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2022) - 사살 또는 생포 미션에서 태스크 포스 141 대원 소프, 고스트와 같이 테러 조직 알카탈라가 주둔하는 곳을 공격한다. 이 후 격전을 펼친 끝에 141대원들과 함께 임무를 완수하고 사후처리를 한다. 필립 그레이브즈도 PMC CEO 이전 현역 시절 이 부대 출신이였다고 한다.
- 아바타 시리즈의 빌런 마일스 쿼리치 대령이 이 특수부대 출신이다.
- 존윅이 여기 출신으로 보인다.
- Broken Arrow에서 미국 진영 특수작전군 특성화 보병으로 등장한다.
8. 관련 문서
[1] 수색대(리콘)는 미 해병대(Corps)의 지휘를 받는다.[2] 부대명뿐 아니라 부대 마크도 따와서 부활시켰다.[3] 이렇게 현재는 없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집단의 이름을 다시 되살려 쓰는 방식은, 그 집단의 정통성을 바로 우리가 계승한다는 정신적/상징적인 명예심 고취와 역사적 전통성을 먼 옛날까지 확장시키려는 목적으로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미 육군의 역대 레인저 부대들도 그런 방식으로 새로 창설된 육군 정예부대들에게 계속 '레인저'라는 이름을 붙여온 것이다. 왕건이 건국한 고려도 고구려의 당시 이름인 고려를 우리가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그대로 국가명으로 채택된 것이다. 고조선-조선도 마찬가지다.[4] 영상 초기의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레이더스 이외에도 육군 특전사, 82공수사단, 아프간 정부군 코만도의 합동작전이라고 나온다.[5] 이후 육/해군의 Scouts & Raiders는 해군의 NCDU[106]와 함께 해군 UDT로 흡수통합되었고, 이 UDT를 바탕으로 해서 1962년에 창설한 부대가 바로 네이비 씰이다.[6] 2차 세계대전 뿐 아니라 한국전쟁 때에도 Raiders라는 이름의 부대들이 미 육군에 한시적으로 존재했었다.[7] United States Special Operations Command. 통합보직으로 육,해,공군의 4성장군 대장이 지휘.[8] Fleet Marine Force.[9] Marine Air Ground Taskforce. 지원사령부, 지상병력, 항공병력, 군수지원병력으로 구성되는 미 해병대만의 전투부대 구성 방식을 말한다. 해병원정군(MEF), 해병원정여단(MEB), 가장 작은 규모인 해병원정대(MEU)가 있다.[10] Marine Expeditionary Force. 해병중장이 사령관이며 휘하에 1개 해병사단에 항공단, 군수지원단, 해병원정여단(MEB) 1개, 해병원정대(MEU) 3개를 가지고 있으며 총 병력은 4만명이 넘는다. 제1, 2, 3 해병원정군이 존재한다.[11] 훗날 폴 X. 켈리 해병대장의 뒤를 이어 해병대 사령관 역임.[12] Marine Expeditionary Unit. 해병대 대령이 지휘한다. 해병공지기동부대(MAGTF)의 최소 부대 구성단위로 '해병대의 꽃'이라고 불린다. 1개 MEU의 총병력은 1개 해병보병대대와 전차, 장갑차, 항공병력을 포함한 2000명 이상 규모로 상륙모함과 2척의 상륙지원함과 함께 1개의 상륙전단을 구성한다. 1개 MEU가 상륙함정에 탑승하여 전세계를 돌며 대기하다가 상황 발생시 바로 투입된다. 현재 미 해병대에는 7개의 MEU가 편성되어 태평양과 대서양 함대 사령부에 나뉘어져 있고, 이중 3개 MEU가 전세계를 상시 순찰중이다.[13] Special Operation Capable.[14] 당시에는 예비군 소속인 제3, 제4 포스리콘 중대만 있었고 현역이었던 제1, 제2, 제5 포스리콘 중대는 베트남전 종전뒤인 1970년대 중반에 일시적으로 해체되어 사단 수색대대(디비젼리콘)의 장거리(Deep) 수색 중대로 흡수된 상태였다.[15] Special Operations Training Group[16] 1947년부터 1999년까지 존재한 미 국방부의 대서양 통합군 사령부. 냉전시기에 미 유럽 사령부의 관할구역을 넘어 대서양에 들어온 소련군의 공격에 대비하는 임무를 수행.[17] CINC's In-extremis Force. CINC는 '사령관'의 영문명칭인 Commander IN Chief의 약자. 육군 그린베레도 70년대 후반부터 특전단마다 특전단장 직할의 CIF특임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뜻임.[18] 참고로 이때 포스리콘과 네이비 씰의 합동 부대를 총 지휘했던 SEAL팀 장교가 바로 훗날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사령관이 되는 윌리엄 H. 맥레이븐 해군제독이다. 2011년 빈라덴 사살작전 당시 바로 그 SOCOM 사령관.[19] Marine Expeditionary Brigades. 해병원정여단. 지금은 해체.[20] 해병 보병부대와 해병 항공함포연락중대장(ANGLICO), 그리고 제2포스리콘 중대장 역임. 유럽특수작전사령부(SOCEur) 스텝 파견근무.[21] 카이저 중령 본인이 과거 유럽특수전사령부(SOCEur) 파견경험과 제2포스리콘 시절 육군 특수전 대원들과의 개인적인 교류를 통해 특수전 분야에 있어서 SOCOM 소속 부대들의 전문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해병대 수뇌부 측의 반대에 대해 '열정만 가지고 그들(SOCOM)과 같은 능력을 가지는게 아니다'는 마인드로 설득에 임했다고[22] 그 외에도 카이저 중령이 유럽특수전사령부 파견시절 보좌했던 엘던 A. 바그웰 육군 소장이 2001년 11월 당시 SOCOM에 근무 중이었던 점도 도움이 컸다.[23] Global War On Terror[24] 해외내부방어 임무.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외나라(주로 분쟁국가)에 주둔하며 대민지원, 군사훈련 제공, 정부군과의 협력을 통해 각종 전투에도 참가, 등등[25] 타군 특수부대 또는 정규군과의 합동작전 수행. 다른나라의 연합군들과도 함께.[26] 1980년에 해병대 보병으로 시작하여 1987년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사단 수색대대, 제2포스리콘 중대 등에서 복무.[27] 제2포스리콘 출신.[28] 카이저 해병중령이 '해병대에도 이런저런 특수 작전 능력을 가진 부대(포스리컨)가 있다.'라고 브리핑을 하면 SOCOM장교들은 '아니. 어쨌든 너희는 특수작전부대가 아니야. 너희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없어.'하는 식으로[29] 물론 제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30] 사실 카이저 중령 본인은 해군특수전사령부측이 자신들의 계획을 도와주기는커녕 끝내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31] 제1포스리콘 중대장,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특수작전훈련단(SOTG) 단장 역임.[32]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2차대전 당시의 '해병 레이더스(2차대전)'는 영국군 코만도나 2차대전 당시에 존재했던 미 육군 레인저 대대와 흡사한 경보병 강습부대였다. 물론 현재 다시 창설된 해병특수작전사령부(MARSOC)의 해병레이더연대는 과거 2차대전 때의 해병레이더스같은 경보병 강습부대 타입이 전혀 아니고 미 육군 그린베레와 더 비슷한 부대라고 할 수 있다.[33] Marine Corps SOCOM DETachment ONE[34] 해병대 보병장교, 산악전 훈련센터 교관, 98~2000년 제1포스리콘 작전장교, 영국 해병대 교환 장교[35] 해병대 보병장교,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특수작전훈련단(SOTG) 교관, 제1포스리콘 보급장교[36] 1983년 해병대 보병입대. 1988년부터는 수색대 관련부대에서만 복무[37] 해병 1사단 수색대대로 2003년 이라크 파병을 마치고 막 돌아온 상태였다.[38] 20여 년간의 해병대 생활중 9년간 제1포스리콘에서 복무. 역시나 이라크 파병을 마치고 막 돌아온 상태였다.[39] 13th MEU(SOC), 제1포스리콘, 아프간 파병을 마치고 막 돌아온 상태였다.[40] 해병 1,2사단 수색대대, 네덜란드 해병대 교환복무, 제2 포스리콘 중대가 CIF특임대이던 시절 복무.[41] 제1해병사단 수색대대,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특수작전훈련단(SOTG) 사격교관, 제1포스리콘, 제2포스리콘.[42] 보병으로 해병1사단 1연대 2대대, 해병3사단 9연대 3대대, 이후에는 해병1사단 수색대대, 제5포스리콘, 해병대 산악전 교관, 영국 해병대 코만도에서 교환복무 중 모집됨[43] 제1포스리콘,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MEU(SOC)로 아프간 파병, 특수작전훈련단(SOTG) 교관 근무 중 모집.[44] 제1해병원정군(1st MEF) 휘하 특수작전훈련단(SOTG) 사격교관, 제1포스리콘 근무, 육군 레인저스쿨 수료자라면 소속 군을 막론하고 참가할 수 있는 베스트 레인저 선발대회(Best Ranger Competition) 우승,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위치한 육군 레인저 훈련 여단에 파견 교환 근무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45] 미 육군 특수전 의무병 과정 이수. 플로리다 세인츠 피츠버그 병원 응급실에서 로테이션 근무. 해병 보병대대와 수색대대, MEU로 이라크 2회 파병. 제1포스리콘으로 이라크 파병 후 돌아온 상태.[46] Radio Reconnaissance. 라디오 정찰대. MEF(해병원정군) 소속 라디오 대대(Radio Battalion) 소속이며 통신신호와 정보를 담당하는 대원들이다. 이들은 DET ONE으로 전입 가기 전에 기본수색입문과정(Basic Reconnaissance Primer Course: BRPC)을 이수했다. 이 기본수색입문과정은 기본 수색 과정(BRC) 입교 전에 받는 체력강화 및 부적격 테스트 과정이다.[47] 해군 제1특전단 SEAL 1팀.[48] 2004년 3월 31일,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의 민간 군사기업의 보급 호송 차량에 총격을 가해 호송차량에 탑승한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사 직원 4명이 사망한 사건. 저항세력은 사망한 민간계약자 전투원들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가 하면, 차량에 메달고 길에 끌고 다니다가 유프라테스 강 다리에 메달아 전 세계적인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49] Joint Special Operations Task Force[50] 윌리엄 W. 윌슨 SEAL 중령이 지휘하였고 DET ONE 역시 그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51] 역시 그린베레 중령이 지휘한다.[52] JW GROM. 각종 비정규전과 특수정찰, 인질구출작전을 담당하기 위해 1990년에 창설된 폴란드의 육군 특수부대로 'GROM'은 폴란드어로 '천둥'이라는 뜻이다.[53] 나중에 해병특전단의 명칭이 된다.[54] 해병대 보병장교, 산악전 훈련센터 교관, 98~2000년 제1 포스리콘 작전장교, 영국 해병대 코만도 교환 장교[55] DET ONE을 사실상 지휘, 통제하는 해군 제1특전단 SEAL 1팀 지휘관 계급이 해군중령이라서 DET ONE의 총 지휘관을 해병소령 계급으로 임명. 사실상 SEAL의 텃세였다.[56] 2003년 9월에 훈련 도중 목숨을 잃은 DET ONE 정찰대원 크리스티안 W. 마일러 해병병장을 추모하기 위해 명명함[57] 약 4~5명 규모[58] 여성대원이었다고 한다.[59] 총 30명의 DET ONE 정찰소대 병력을 또 6개의 작은 정찰팀으로 나누었다.[60] DET ONE 지휘관인 코제니스키 해병소령은 이들 그린베레 팀을 '미군 전체에서 최고의 정보 수집가들'이라고 회상했다.[61] High Value Target. 고가치 목표물. 생포된 반군 용의자를 말함.[62]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을 말함.[63] 이곳은 관할 구역이 매우 넓은데다 길거리 사제폭탄이 난무하는 곳이었다.[64] 심지어 원래 자신들의 SEAL 부대에서 근무하던 해군 소속의 지원병들도 선원(sailor)들이라며 아웃사이더로 취급했다.[65] 부통령이 2명이었다.[66] SEAL 1팀장 윌슨 중령은 이들을 미국을 제외한 최고의 특수부대라 치켜세웠다.[67] 물론 일부 SEAL 대원들이 투덜거렸지만[68] DET ONE 수석지휘관 코제니스키 해병소령은 정보를 제공해준 그린베레 특전팀과 엄호를 제공해준 해군 조종사들을 치하하였다.[69] 모든 해병대원들은 소총수(rifle men)라는 것이 미 해병대의 신념이다. 어차피 지원병력들도 모두가 똑같이 보병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고, 지원 보직중에도 현장에서 작전에 참가하는 역할도 많았다.[70] Air Force Tactical Air Controller[71] 바그다드 시내에서 미군이 특별관리하는 (안전한)구역.[72] Task Force 626. 육군 델타포스, 해군 DEVGRU, 공군 24특수전술대대, 육군 75레인저 연대에다가 CIA SAD(특수작전국), DIA(국방정보국), FBI(연방수사국) 인원들까지 소수 포함된 티어1 태스크포스로 이라크에서 HVT(고가치 목표물)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73] 제4해병사단(예비군) 제4상륙돌격장갑차대대, 제1해병사단 제1해병연대 1대대, 제1포스리콘[74] 서방권 특수부대원들은 함께 작전을 하고 해어질때 자신들의 부대 기념 코인(주화)를 건네주는 풍습이 있다.[75] 아라크에서 DET ONE을 총 지휘할때는 소령이었으나 파병 끝나고 귀국하자마자 중령으로 진급.[76] Center For Naval Analyses. 비영리단체이다.[77] 역시나 제1포스리콘 출신으로 DET ONE 창설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했었다. 2022년 현재 중장 진급 후 특수작전사령부 선임부사령관 취임 예정.[78] Marine Corps Forces Special Operations Command. 해병소장을 사령관으로 함.[79] Marine Special Operations Regiment. 해병대 대령이 지휘한다.[80] Marine Special School.[81] Marine Special Operations Support Group.[82] Marine Special Operation Battalion.[83] Marine Raider Regiment.[84] Marine Raider Training Center. 이전에는 Marine Special School이었다.[85] Marine Raider Support Group. 이전에는 Marine Special Operations Support Group이었다.[86] Marine Special Operation Team[87] Navy Special Amphibious Reconnaissance Corpsman[88] 해병대는 의무병과나 의무주특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예속된다.[89] 'Marine Special Operation Company'. 정확히는 '해병특전중대'인데 우리나라의 편제에 비교하면 특전지역대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육군 특전사(그린베레)의 'Special Forces Company'도 '특전지역대'로 번역한다.[90] Marine Special Operation Battalion[91] 미군은 상병 계급 중에서 'Specialist'와 'Coporal' 중에서 Coporal 부터가 부사관이다. 취소선의 경우에는 미 육군식 계급 체계고 미 해병대는 Specialist가 없다.[92] 그린베레의 선발과정 중에 24일간 실시하는 SFAS(Special Forces Assessment and Selection) 과정과 약간 흡사하지만 수영(Swimmimg) 부분이 더 빡세다고 한다.[93] 미 해병대의 자체 스쿠버 교육과정이 없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는 리콘마린들이 해군의 전투 스쿠버다이버 교육과정에 입교해서 미 해군 교관들에게 위탁교육으로 배우거나 일부 대원들은 육군 특전사의 전투 스쿠버다이버 교육과정에 입교하여 육군 특전사 교관들에게 위탁교육으로 배웠었다. 그 후 해병대의 자체 전투 스쿠버 교육과정이 생긴 1995년경 이후부터는 교육시설은 해군 잠수교육 센터를 빌리지만 해병대원(리콘마린과 레이더스)에게 직접 가르치는건 해병대 스쿠버 교관들이 교육시키고 있다.[94] 플로리다 해군기지에는 미 해군 잠수교육센터 뿐 아니라 미 육군 그린베레의 전투 스쿠버다이버(CDQC) 학교도 있다. 상호교류차원에서 육군과 해병대가 서로의 전투 스쿠버 교육과정에 입교하기도 한다.[95]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Leaders Course[96] Operation Enduring Freedom.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말한다.[97] Operation Enduring Freedom – Philippines. 필리핀 공산반군과의 전투로 미군측에서 필리핀 정부군에 군사고문단 제공뿐 아니라 전투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린베레 제1특전단의 주요임무였으나 해병특전단 대원들도 이에 합류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7년에 있었던 필리핀 마라위 전투에서는 레이더스와 그린베레, SEAL까지 군사고문단으로 참가했다.[98] 바로 이것이 SOCOM 소속 부대의 장점이다.[99] 그런데 이런 성향은 비단 존 맥피 뿐 아니라 특수부대 출신들의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100] 리콘-해병특전단 출신인물 항목에서 소개한 닉 쿠말라쵸스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것이다.[101] 해병특전단(MARSOC)의 전신. 설명은 해병특전단(MARSOC)의 창설역사부분 참고.[102] 전역 군인들이 세운 회사로 회사명이 진짜로 'A Coffee Company'다.[103] 이때는 아직 해병특전단 맨 처음 창설 초기라 특전대원 선발 셀렉션 과정이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아서 자체적인 테스트를 실시해서 포스리컨에서 특전대대로 올 사람을 뽑았다고 함. 나머지 인원은 사단수색대와 타부대에서도 뽑았다고.[104] 부모님 두분이 모두 남베트남 출신 난민으로 아버지는 남베트남 해군장교였다고 함.[105] USMC Expeditionary Warfare Training Group Pacific (EWTGPAC)
[106] Naval Combat Demolition Un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