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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28 10:32:57

휴인국



休忍 / 休忍國
휴인국
休忍
존속기간 4세기 경?
위치 미상
정치체제 미상
국가원수 미상
언어 불명
민족 불명
주요사건 380년 부락의 징병요청
???년 백제에게 병합

1. 개요2. 역사3. 위치4.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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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휴인(休忍) 또는 휴인국(休忍國)은 4세기경에 존속했던 국가다. 그러나 건국과 멸망시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국가다.

2. 역사

380년 전진의 황족인 행당공 부락(苻洛)이 유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선비, 오환, 고구려, 백제, 신라, 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를 징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두 부락의 편을 들지 않았으며, 결국 부락의 난은 전진이 파견한 두충, 여광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 휴인국이 어떻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연려실기술이 인용한 대명일통지[1]에 의하면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3. 위치

대청일통지를 인용한 동사강목, 해동역사에 의하면 휴인국은 신라의 동쪽에 있으며, 삼한의 무리라고 기록했지만 휴인국의 위치는 알 수 없다고 적었다.

4세기 후반 한반도 지역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도 아직 백제에게 복속되지 않은 마한계 소국이나 가야의 여러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2] 휴인국이 신라국 다음에 서술된 점을 미뤄보아, 한반도 동남부에 존재했던 소국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위치 관련한 문제가 휴인국이 신라 동쪽에 있다고 기록했는데, 경주시를 수도로 해서 영남지방을 영토로 두었던 4세기 신라 기준으로 동쪽은 동해 바다 뿐이고, 바다 건너 우산국이나 왜국 정도를 제외하면[3] 한반도 안에서 신라 동쪽에 다른 나라가 하나 더 있다기엔 딱히 비정 가능한 위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신라에 복속되지 않았던 가야권은 엄밀히 말하면 신라의 남쪽 내지는 서남쪽이지 도저히 동쪽으로 칭할 수는 없는 위치고, 진한 내에서 아직 독자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고분군을 조성하던 경북 북부 세력들도 북쪽이나 서북쪽이지 동쪽으로 보긴 힘들다.

휴인국이 결국 신라 서쪽에 있는 백제에게 멸망, 병합당했다는 서술을 감안하면 신라 동쪽이라는 방위 자체가 잘못 전해진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4. 관련 기록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선비·오환·고구려·백제·신라·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병사를 불러 모으고, 병사 3만 명을 파견하여 북해공 부중을 도와 계를 지켰다. 여러 나라가 모두 말하였다. "나는 천자를 위하여 울타리 노릇을 하고 있으니 행당공을 좇아서 반역할 수 없다."...
分遣使者徵兵於鮮卑、烏桓、高句麗、百濟、新羅、休忍諸國,遣兵三萬助北海公重戍薊。諸國皆曰:「吾爲天子守藩,〈爲,于僞翻。〉不能從行唐公爲逆。」
자치통감 권104(卷一百四) 진기26(晉紀二十六) 열종효무황제상지중(烈宗孝武皇帝上之中) 中
휴인국(休忍國)은 명나라 《통지(統志)》에, “신라의 동쪽에 있으며 또한 삼한의 속국이었는데, 후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하였다. 지금 그 땅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진(晉) 나라 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경진년에 진왕(秦王) 부견(符堅)이 부락(苻洛)을 정벌할 때에 휴인국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19권 역대전고 中
옛 휴인국은 신라의 동쪽에 있으며 삼한의 무리다. 동진(東晉) 시기에 휴인국(休忍國)은 연(燕)에 속하였다. 연이 부진(符秦: 전진)에 멸망하자 진에 속하였다. 부락이 용성(龍城)에서 모반하여 선비, 오환, 고구려, 백제, 신라, 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 그 후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古休忍國〈在新羅東亦三韓之屬. 東晉時有休忍國服屬於燕. 符秦滅燕遂屬秦及. 符洛以龍城叛徵兵於 鮮卑, 烏桓, 髙句驪, 百濟, 新羅, 休忍諸國.其後并於百濟.〉
흠정대청일통지(欽定大清一統志) 사고전서본 권421 中
휴인국(休忍國)은 《일통지》[4]에,“휴인은 신라 동쪽에 있으니, 또한 삼한의 무리이다. 동진 때에는 연(燕)에 속했더니, 진(秦)이 연을 멸망하자 결국은 진에 속하였다. 부낙(苻洛)이 반역할 때 선비(鮮卑)ㆍ오환(烏桓)ㆍ고구려ㆍ백제ㆍ신라ㆍ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를 징집했다 한다. 그 뒤에 휴인은 백제에 병합되었다.”하였는데, 지금 자세히 상고할 수가 없다.
안정복, 동사강목 부록 하권 中
휴인국(休忍國)은 신라의 동쪽에 있으며, 역시 삼한의 족속이다. 동진(東晉) 때 연(燕)에 복속하였다가 부진(符秦)이 연을 멸망시키자 드디어 진(秦)에 속하였다. 부락(苻洛)이 용성(龍城)에서 반란을 일으킴에 미쳐서 선비(鮮卑)ㆍ오환(烏桓)ㆍ고구려(高句麗)ㆍ백제(百濟)ㆍ신라(新羅)ㆍ휴인(休忍) 등 여러 나라에서 징병하였고, 그 뒤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통감》에는, “진 효무제(晉孝武帝) 태원(太元) 5년(380)에 진(秦)의 강북장군 유주자사 행당공(江北將軍幽州刺史行唐公) 부락(苻洛)이 스스로 진왕(秦王)이라 칭하면서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선비ㆍ오환ㆍ고구려ㆍ백제ㆍ신라ㆍ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는데, 모두 “우리는 천자를 위하여 번방(藩邦)을 지키고 있으므로 행당공(行唐公)을 따라 역적이 될 수는 없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휴인국의 지계(地界)를 지금은 알 수가 없다.
한치윤, 해동역사 제16권 세기 16

[1] 1461년에 제작된 명나라의 지리책이다.[2] 고고학적으로 마한계 소국들이 백제에 완전히 병합된 시기는 6세기 중반이고, 가야 또한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 사료에 의하면 6세기 전반 ~ 중반에 걸쳐서 신라에게 멸망하거나 흡수되었다.[3] 그리고 휴인국이 삼한의 무리라고도 기록했으므로 한반도 안에 있던 세력일 것이다.[4] 대청일통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