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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22:13:29

대한항공 6316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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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1999년 4월 15일
유형 기체 결함(한국 측)[1]
조종사 과실, 당국 문제[2](중국 측)
발생 위치
[[중국|]][[틀:국기|]][[틀:국기|]]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 남쪽 10km 지점
기종 McDonnell Douglas MD-11F
운영사 대한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373
출발지
[[중국|]][[틀:국기|]][[틀:국기|]]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
도착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포국제공항
탑승인원 승무원: 3명
사망자 탑승객 3명 전원 사망
지상 인원 5명 사망
[3]
파일:45725645.jpg
사고 한 달 전, 시드니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진.
다큐9분의 사고 재현 영상[4]
1. 개요2. 사고기/사고기편3. 사고
3.1. 발단3.2. 전개3.3. 결말
4. 사고 경위
4.1. 기체 결함설4.2. 고도 착각설4.3. 복합 발생설

[clearfix]

1. 개요

사고 후 잔해 사진

1999년 4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일어난 화물기 추락 사고. 조종사들이 항공 고도를 제대로 환산하지 못한 데다 기기 결함의 문제가 더해져 일어났으며 이 사고로 기장 홍성실(54), 부기장 박본석(35), 정비사 박병기(48)와 인근 주민 5명이 사망했고 주민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 사고기/사고기편

사고 기종은 맥도넬 더글러스 MD-11로 도입되었던 5대 중 3호기였으며 1992년 2월 대한항공에 인계됐다. 처음에는 여객기였으나 1996년 화물기로 개조됐다.

사고기편인 KE6316편은 상하이발 차터 항공편으로 본편은 KE315/316편이다. 현재는 김포국제공항 대신 인천국제공항, 훙차오 국제공항 대신 푸둥 국제공항에서 화물을 처리한다.

3. 사고[5]

3.1. 발단

KE6316편은 비행 준비를 마치고 순조롭게 이륙했다. 그러나 이륙 절차를 거치던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수가 돌려지지 않았고, 기장이 기수를 돌리기 위해 애를 쓰다가 자동운항장치(오토파일럿)이 해제되었다. 놀란 조종사들은 자동조종장치를 다시 켜려고 하나 켜지지 않았다. 이후 조종사들은 출발 절차 확인을 위해 FMC(비행정보장치)를 확인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출발 절차에 따라 6316편은 3,000피트(914.4m)까지 상승했다. 기장은 여기서 내비게이션에 3,000피트로 고도를 넣었다. 상승 후 출발 절차에 따라 회전 지점을 찾던 6316편은 회전 지점이 보이지 않아 계속 좌선회를 하게 되었고 결국 경사각이 너무 높아졌다. 그 와중에 관제소에서 1,500미터(4,921피트)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3.2. 전개

기수각이 높은 데다 조종사들이 계속 비행기를 상승시키려 하자 기체 불안정이 찾아왔다. 조종사들은 이 시점에서 플랩스포일러를 접었고 직후 일시적으로 기체가 안정을 찾았으나 곧 심각한 실속에 빠졌다.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면서 기수가 왼쪽으로 심하게 돌아갔다. GPWS(대지접근경보장치)가 계속해서 울리게 되었고 조종사들은 VOR 항법시설을 찾던 중 갑작스런 실속으로 조종 불능을 선언했다. 그리고 조종사들이 뒤늦게 회복 조작을 하여 기수를 들긴 했으나 깊은 강하각과 빠른 속도로 인해 지상에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히듯이 추락하고 말았다.

마침 추락 지점에는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이 사고로 지상에 있었던 5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인부들이었다.참고 영상

3.3. 결말

추락 직후 CVR 판독을 통해 조종사들이 고도 환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사실 FDR(비행기록장치)가 파괴되어 당시 비행기의 운항 상황을 CVR로만 판독해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CAAC(중국 민항 총국)은 부기장의 "천오백 피트요!"라는 말을 문제 삼아 고도 환산을 잘못했다고 발표해 버렸다. 대한항공과 건교부 측은 기체 결함을 주장했으나 중국민항은 사고 보고서에서 "기체 결함도 배제할 수 없다."는 한 마디로만 일축해버렸다.

이 사건은 사실 조종사들이 어떤 기기를 작동하였는지 기록하는 FDR이 완전히 파괴돼 오로지 목소리가 기록된 CVR로만 유추해야 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은 앞으로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고 이후 4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한항공 사명을 직접 언급하면서 "섬뜩한 사고였다. 화물기였으니 망정이지 여객기였으면 수백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대한항공이 성장 위주의 경영을 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오너 경영의 잘못된 표본이다. 건설교통부는 오너 경영이 이익과 권위 위주의 경영이 되면서 소홀하게 된 점들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우라."고 실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즈음 대한항공에서는 실제로 사건 사고가 많았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정확히 한 달 전에는 대한항공 1533편 활주로 이탈 사고가 있었고 8개월 전에는 대한항공 8702편 활주로 이탈 사고, 그리고 2년 전에는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가 있었다. 어쨌든 대통령의 이 질책성 발언은 당시 시대의 화두였던 족벌, 세습 경영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에 대한 개혁과도 맞물려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결국 4월 22일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직을 조양호 사장에게 넘겨주었고 대한항공 사장 자리에는 심이택 부사장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오너 경영을 중단했다. 그러나 조중훈 회장은 대한항공 회장직에서만 물러났을 뿐 한진그룹의 다른 계열사의 회장직은 유지했고 조양호 사장은 오히려 회장으로 승진하게 된 셈이어서 소극적인 개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이 사고 이후 건설교통부가 법원에 대한항공 운항 금지 신청을 냈으나 대한항공의 사고 대책위원회가 고소, 법적 공방 끝에 운항 금지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대한항공 8509편 추락 사고가 일어났으니...[6]

4. 사고 경위

일단 중국민항에서는 사고 원인을 조종사들의 고도 착각이라고 단정지어 버리고 한국 건교부와 대한항공 측 주장이었던 기체 결함설은 보고서에서 한 줄로 일축해 버렸다.

아래 3가지(기체 결함설, 고도 착각설, 복합 발생설)를 추론해 볼 수 있는데 FDR이 영영 사라져 버렸고 탑승자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재조사를 하더라도 정확한 원인은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양측의 주장이었던 고도 착각설과 기체 결함설, 많은 언론들이 추론했던 복합 발생설에 대해 정리하자면...

4.1. 기체 결함설

부기장은 고도를 1500미터로 정확히 입력했으나 기체에 결함이 왔고 부기장은 당황한 나머지 말로만 1500미터 대신 1500피트(457.2m)라고 외쳤을 가능성.

실제로 DC-10 계열의 경우 안정성이 좋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맥도넬 더글러스에서 MD-11을 만들 때 그나마 있었던 안정성을 대부분 날려 버렸다. MD-11의 조종 계통이 너무 예민했던 것도 사실이고 비행 컴퓨터는 완전한 글래스 콕핏이 도입된 첫 여객기인 바람에 초기형들은 오류와 고장을 자주 일으키기도 했다.[7] 실제로 경쟁사인 보잉의 747보다도 사고율이 높았다.

비행할 때 여러 번 미터라고 정확히 말했다. 또 사고 당일 해당 기체는 브레이크 냉각 계통에 문제가 있었고 위에서도 기수가 돌려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출발 당시부터 갑자기 기수가 돌려지지 않더니 너무 힘을 줘 자동조종장치가 해제되는 등의 내용이다. 그리고 죽으려는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 조종간은 과격하게 전방으로 밀지는 않을 것이다. 조종사들은 CVR에서 기기 고장을 증언하고 있다. 또 조종 중 스로틀과 스포일러 같은 장치들이 갑자기 먹통이 되면서 불안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기체 결함설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결정적인 근거는 유사 사고의 존재이다. 1993년 중국동방항공 소속 동일 기종인 MD-11은 비행 도중 갑작스러운 슬랫의 급전개로 인해 기수가 급격히 들리고, 이로 말미암은 실속으로 5000피트를 급강하한 끝에 가까스로 회복해서 회항한 일이 있었다. 대한항공 6316편의 조종사들도 문제 상황 와중 슬랫에 대해 지적하며 왜 안 먹히느냐고 혼란을 드러냈고, 그 직후 급강하 끝에 추락했음을 볼 때, 동방항공 사고와 마찬가지로 슬랫의 오작동에 따른 반중력과 이로 인한 실속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4.2. 고도 착각설

부기장이 CVR 기록 마지막 부분에 1500미터를 1500피트(457.2 m)라고 외친 게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1500피트를 입력해 넣어서라는 설. 기체가 순간 3000피트(914.4 m)에서 1500피트로 급강하해서 추락했을 수 있다.

이것을 블랙박스에서는 FDR(비행기록장치)에 저장해 놓는데 이 사고에선 FDR이 파괴되어 CVR(음성기록장치)만 남았기 때문에 CVR에만 의존해서 사고 경위를 밝혀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설이 퍼졌다.

하지만 신빙성은 있다. 지금도 중국에서 비행하는 비행기들의 조종사들은 고도 단위를 피트 대신 미터로 환산해야 한다.[8] 게다가 이런 사고도 한둘이 아니라는 것. 그나마 준사고로 끝났으면 다행이지, 실제로 고도를 잘못 계산해 추락한 사례들도 있다.

게다가 블랙박스 녹취록에 따르면 이륙 직전부터 부기장은 단위를 혼동하였다. 출발 절차 브리핑 단계부터 부기장은 900미터를 900피트(274.3 m)로 바꿔 말하기도 했다. 기장도 단위를 혼동했음이 암시되었다. 기장이 출발 절차에서 900미터와 900피트가 같은 단위인 줄 아는 뉘앙스의 말을 하는 스크립트가 있다.[9]

기체 불안정도 1500피트로 내려가려는 비행 컴퓨터와 잘못 입력했지만 그것을 미처 몰랐던 조종사들이 비행기를 올리려고 조작하다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CVR 스크립트에서 추락하면서 스로틀이 먹히지 않는다고 기장과 부기장이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컴퓨터가 고도를 1500피트로 내리기 위해 오토스로틀이 켜진 상태에서 추진력을 줄였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러면 조종사가 조작해도 스로틀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

4.3. 복합 발생설

기체도 결함이 와서 기체가 기울고 말을 안 듣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기장이 고도까지 1500미터 대신 1500피트로 잘못 입력해서 추락했다는 설이다.

블랙박스 녹취록에 따르면 두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스로틀과 스포일러가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서 부기장은 1500미터를 1500피트라 말했고 여기서 조종 계통에 1500피트가 그대로 입력되어 기체가 내려가려고 하는데 조종사들은 올라가려고 하는 상황이 충분히 나올 개연성 또한 있다. 기체가 당장 수리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잘못 조종하여 추락했을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FDR이 없이 CVR로만 유추한 내용이고 대부분이 '~했을 것이다.' 하는 상상적 가설이기 때문에 위 설은 일단은 사양된 듯하다.

[1] 다만 이에 대한 문제 해결 방법으로 우선회로 출발지인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으로 회항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것이 가능한지는 모른다.[2] 중국이 고도단위로 미터법을 강제함.[3] 하교하던 아동 1명 역시 이 사고로 사망했다.[4] FDR이 망가졌기 때문에 실제 상황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5] 이는 신지수 저 "나의 아름다운 비행 - 기억 편(34~49쪽)"에서 더 알아볼 수 있다. 또 저자의 블로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6] 여담이지만 우연찮게 3년 후 똑같은 날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인근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7] 이런 고장들은 나중에 보잉이 인수되기 직전에야 수정됐다.[8] 소련의 잔재인데 공산권 국가들은 고도 단위로 미터법을 썼다.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 등 구 소련권 국가들은 쓰고 있으며 일부 동구권 국가들도 아직 존치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북한이 아직 유지한다.[9] 대충 무슨 상황이냐면 기장이 출발 절차에서 900미터를 900피트라 알아듣고 고도가 너무 낮은 것 같다고 하고 부기장은 미터로 환산하라는 말을 하다가 자신도 말실수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