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NBA 드래프트/2000년대
NBA 드래프트 | ||||
1999년도 | → | 2000년도 NBA 드래프트 | → | 2001년도 |
1. 1라운드
<rowcolor=#ffc224> 순위 | 구단 | 선수 | 국적 | 포지션 |
1순위 | 뉴저지 네츠 | 케년 마틴 A | 미국 | 파워포워드 |
2순위 | 벤쿠버 그리즐리스 | 스트로마일 스위프트 | 미국 | 파워포워드/센터 |
3순위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다리우스 마일스 | 미국 | 포워드 |
4순위 | 시카고 불스 | 마커스 파이저 | 미국 | 포워드 |
5순위 | 올랜도 매직 | 마이크 밀러 R | 미국 | 포워드/가드 |
6순위 | 애틀랜타 호크스 | 더마 존슨 | 미국 | 가드/포워드 |
7순위 | 시카고 불스 | 크리스 밈 | 미국 | 센터/파워포워드 |
8순위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자말 크로포드[1] | 미국 | 가드 |
9순위 | 휴스턴 로키츠 | 조엘 프리지빌라 | 미국 | 센터 |
10순위 | 올랜도 매직 | 키온 둘링 | 미국 | 가드 |
11순위 | 보스턴 셀틱스 | 제롬 모이소 | 프랑스 | 파워포워드 |
12순위 | 댈러스 매버릭스 | 에탄 토마스 | 미국 | 센터/파워포워드 |
13순위 | 올랜도 매직 | 코트니 알렉산더 | 미국 | 가드 |
14순위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제이슨 콜리어 | 미국 | 가드 |
15순위 | 밀워키 벅스 | 제이슨 콜리어 | 미국 | 센터 |
16순위 | 새크라멘토 킹스 | 히도 터콜루 | 튀르키예 | 스몰포워드 |
17순위 | 시애틀 슈퍼소닉스 | 데스몬드 메이슨 | 미국 | 가드/포워드 |
18순위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쿠엔틴 리차드슨 | 미국 | 포워드/가드 |
19순위 | 샬럿 호네츠 | 자말 매글로이어 A | 캐나다 | 센터 |
20순위 |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 스피디 클랙스턴 | 미국 | 가드 |
21순위 | 토론토 랩터스 | 모리스 피터슨 | 미국 | 포워드/가드 |
22순위 | 뉴욕 닉스 | 도넬 하비 | 미국 | 포워드 |
23순위 | 유타 재즈 | 드션 스티븐슨 | 미국 | 가드 |
24순위 | 시카고 불스 | 달리보르 바가리치 | 크로아티아 | 센터 |
25순위 | 피닉스 선즈 | 제이크 차칼리디스 | 그리스 | 센터 |
26순위 | 덴버 너기츠 | 마마두 은디아예 | 세네갈 | 센터 |
27순위 | 인디애나 페이서스 | 프리모즈 브레젝 | 슬로베니아 | 센터 |
28순위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 에릭 바클리 | 미국 | 가드 |
29순위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 마크 매드센 | 미국 | 포워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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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라운드
<rowcolor=#ffc224> 순위 | 구단 | 선수 | 국적 | 포지션 |
30순위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 마르코 야리치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그리스 | 가드 |
37순위 | 마이애미 히트 | 에디 하우스 | 미국 | 가드 |
42순위 | 시애틀 슈퍼소닉스 | 올루미데 오예데지 | 나이지리아 | 센터 |
43순위 | 밀워키 벅스 | 마이클 레드 T A | 미국 | 가드/포워드 |
44순위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 브라이언 카디널 | 미국 | 포워드 |
45순위 | 새크라멘토 킹스 | 자바리 스미스 | 미국 | 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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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가
2013년[2]과 함께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로 평가받는다.위에 언급된대로 드래프트 수준이 낮아서 개인상을 받은 선수도 거의 없다. MVP와 파이널 MVP, DPoY, 퍼스트팀, 세컨드팀은 언감생심이고, 이 팀이 낳은 가장 큰 아웃풋이 올NBA서드팀 1회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인상의 경우 신인왕 (마이크 밀러), 기량발전상(히도 터콜루), 그리고 식스맨상(자말 크로포드/3회, 마이크 밀러/1회) 말고는 문자 그대로 전무하다. 심지어 올스타전에 나가본 선수도 세명인데 각자 딱 1회씩이며(마이클 레드/케년 마틴/자말 매글로어, 2004년)이며 올NBA팀은 단 한명, 마이클 레드가 04년에 써드팀에 오른 것 밖에 없다. 게다가 올디펜시브팀은 단 한명도 선정되지 못하였다. 이를 통해 명예의 전당 선정도 언감생심이리고 평가 받는다. 무엇보다 작년 1999년 드래프트와 다음 해 2001년 드래프트가 준척급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서 그 사이에 낀 2000년 드래프트에 대한 평가는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3]
이 때문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2007년 당시 '최악의 NBA드래프트 버스트'[4]를 뽑을 때 드래프트 클래스 전체를 6위에 올렸으며, 2009년에 ESPN에서 1985년 이후 모든 드래프트에 점수를 매겼을 때는 최하위이자 유일한 F성적을 받았다. WARP[5] 수치를 이용해서 계산할 경우 2000 드래프트는 평균적인 대체선수보다 총 17.3승을 적게 올리는 것으로 나왔으며, 드래프트 클래스가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한 것은 2000년이 역사상 유일하다. 이 말은 00드래프티들이 NBA에 데뷔하고 나서 전체적인 NBA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몇몇 예를 들면 제2의 케빈 가넷 얘기가 나왔던 3순위 대리우스 마일즈는 가넷 수준의 운동능력만 보이고 별 임팩트 없이 사라졌으며[6], 2순위 스트로마일 스위프트는 평생 100경기도 주전으로 못 나왔다.[7] 4순위 마커스 파이저는 NBA에서 뛴 경기가 총 300경기도 안되고 루키시즌 이후 단년계약→10일 계약 등 입지가 점점 떨어지다 NBA에서 사라졌으며, 7순위 크리스 밈은 코비의 원맨팀 시절 당시 '한심한 주전 동료들 중 하나'로 알려졌을 뿐이다.(커리어 하이 10.2점)
9순위로 뽑힌 조엘 프리저빌라는 그나마 13 시즌을 걸쳐 그럭저럭 쓸만한 백업급 빅맨으로 뛰어주었고 습자지 수준이던 2000년대 중반 포틀랜드의 골밑을 그나마 지켜준 주전 센터였는데, 이 선수는 당시 한국인 최초의 NBA리거이던 하승진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 유명할 것이다.[8]
한국인들에게 또 하나 친숙한 이름이 있을텐데 바로 전체 58위, 당시로선 꼴찌순위로 뽑힌 피트 마이클이다. 트래이드를 통해 댈러스 매버릭스로 합류한 마이클은 트레이닝 캠프 이후 정규시즌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데 실패했으며, 이후 자유계약 선수로 닉스, 휴스턴 로키츠 연습팀 계약으로 합류, 올랜도 매직 소속으로 서머리그에서 2004년에 뛰었으나 정작 정규시즌 경기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마이클과 더불어 총 8명의 선수가 드래프트되었음에도 NBA에선 전혀 뛰지 못했다. 2라운드에 뽑히는 선수들은 (기간은 2년 or 3년 조정 가능하지만) 연봉 수준은 리그 최소연봉 확정인데, 팀으로부터 리그 최소연봉/로스터 한 자리의 가치조차 없다고 평가받은 선수가 8명이었단 얘기다.
4. 그나마 잘한 선수들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라 언급되지만 그나마 그럭저럭 쓸만한 롤플레이어로 뛰어준 선수들은 있으며, 의외로 슈퍼스타의 싹수가 보이던 선수들도 있었다.세 명의 올스타 중 하나인 자말 매글로어는 사실 커리어 7.2점 6.5리바운드, 커리어하이인 04시즌만 해도 13.6점/10.3리바운드/평균 출장시간 33.9분으로 사실 올스타급 선수는 전혀 아니었으나 당시 벤 월러스 말고는 올스타 센터가 없던 허약한 동부의 센터진 덕분에 뽑힌 케이스였다. 주전센터였던 호네츠 시절 이후 급격히 위력이 떨어져 써드 스쿼드급 위상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12 시즌간 680경기를 뛰어주며 그럭저럭 괜찮은 롤플레이어로 꾸준히 뛰어준 선수.
역사상 가장 임팩트 적던 신인왕 중 하나인 마이크 밀러는 그랜트 힐이 드러누워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원맨팀이 된 올랜도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쏠쏠하게 활약해주는 살림꾼 스타일의 롤플레이어로 공헌하다가, 이후 멤피스에서도 괜찮은 롤플레이어로 활약했다. 06-07 시즌 당시 부상이 잦았던 파우 가솔 옆에서 뛰며 커리어 하이인 18.5점을 올리기도 했으며, 12, 13 시즌에는 빅3히트의 백업으로서 반지를 두개 챙기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외곽슛은 꽤나 뛰어나고 성실히 뛰며 많은 분야에서 공헌해주는 선수로 어딜가나 환영받았던 쓸만한 롤플레이어였다.[9]
케년 마틴의 경우 싹수가 보이던 선수가 부상으로 꺾여 아쉬운 선수. 마틴은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수비센스, 다소 투박하지만 득점감각이 있는 선수라 뉴져지 시절 제이슨 키드가 "마틴과 제이슨 리처드슨은 꼭 잡으라"고 프런트에 요구할 정도의 선수였다. 실제로 루키 계약 이후 04 시즌에 맥시멈 계약을 받고 덴버 너기츠로 이적했다. 문제는 은근히 부상이 잦은 몸인데다가 무릎에 고질적인 문제가 생겨서 덴버 이적 이후 하향세를 그렸고, 독자적인 득점기술이 딸리는지라 리그 최고의 PG의 패스를 받지 못하게 된 이후엔 득점원으로서 위력이 훨씬 떨어졌다. 결국 루키계약 시절 뉴져지에서 4년(커리어 하이 16.7점/9.5리바운드)이 전성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체격과 운동능력, 수비센스가 뛰어난지라 말년까지 수비력 하나만큼은 인정받았다. 조지 칼 감독은 09년 플레이오프 당시 마틴이 (포지션이 안 맞음에도 불구하고) 전성기를 달리던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붙혀서 꽤 효과를 본 적도 있다.
마이클 레드는 정말 아쉬운 케이스로, 탄탄한 플옵권 팀의 루키→키식스맨→주축들이 나가고 난 뒤 팀의 에이스→슈퍼스타란 루트를 탄 케이스였다. 실제로 04 시즌에 21.7점으로 올스타에 오르고 난 후 05 시즌에 23점, 그 다음에는 25.4점, 06-07 시즌에는 26.7점까지 데뷔 이후 무려 7년 연속 평균득점이 오르는, 싹수가 아주 푸르딩딩한 유망주에서 슈퍼스타급 선수로 거듭난 케이스였다.
문제는 그의 팀이 벅스였다는 것. 전국적인 주목도가 떨어지는 밀워키에서 30승(05 시즌), 1라운드 탈락(06 시즌)하는 팀은 스타 대접받기 어려웠다. 떨어지는 네임밸류 때문에 물을 먹었을 뿐 실질적으로 05~07 시즌 당시 그의 기량은 한때 벅스 에이스였던 레이 알렌에 비견될 만했다.
07 시즌 당시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저 평균 득점은 물론이고 무려 57점을 넣으며 카림 압둘자바가 세운 팀 기록을 깨운 것을 포함해 52점 경기가 한번 더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때 벅스의 팀성적은 28승에 그쳤고, 출장경기수도 53경기에 그쳐 올스타에도 못 올랐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상으로, 이후 30세 나이에 무릎이 나가서 아웃된 이후 계속 재발하는 부상에 결국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만다.
전체적으로 마이클 레드는 이 클래스에서 유일하게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던 선수였고, 실제로 이상할 정도로 못 따른 운이 아니었다면 올NBA세컨팀까지는 가시권에 둔 기량을 지닌 선수였다.[10] 빠른 릴리스, 뛰어난 클러치 능력, 정확한 외곽슛과 높은 득점력을 기반으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했으나, 유리몸 기질과 떨어지는 팀전력, 낮은 인지도 때문에 그리 많이 인정받지 받지 못한 선수.
결과적으로 이 드래프트 최고의 선수라고 불릴만한 자말 크로포드는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를 온몸으로 보여준 선수다.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천재형 선수로서, 엄청난 볼핸들링과 득점력, 빼어난 슈팅터치를 지닌 눈부신 재능을 지닌 선수였다. 문제는 초창기 당시 그는 팀플레이에 대한 이해도가 바닥이었고 노력을 거의 안하는 선수였기에 잘 될때는 경기를 접수하는 수준, 안될 때는 혼자 말아먹는 수준의 기복을 자랑했다. 이 때문에 국내 팬들은 '자태웅/자멸 크로포드'라고 번갈아 부르곤 했다.
닉스 시절만 해도 그는 득점력은 높지만 효율은 그렇게 높지 않은 득점원툴 플레이어였으나, 주전에서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하고 난 뒤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에이스가 아닌,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득점을 퍼붓고 오면 되는 식스맨 직은 크로포드에게 딱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그는 30대에 접어들어 오히려 리그에서 널리 인정받는 선수가 된다. '에이스 크로포드'는 비효율적이었지만, 벤치에서 나오는 크로포드는 리그 최고의 식스맨이었고, 실제로 10, 14, 16년 식스맨상과 2018년 올해의 팀메이트 상, 2019년에는 39세의 나이로 '리그 최고령 50+득점자'가 됨과 동시에 4개 팀에서 50점을 넘겨본 최초의 선수가 된다.
무엇보다도 20년 동안 꾸준히 뛰어주면서 역사상 최악인 2000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오랫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뛰어준 선수가 되었는데, 위에 언급했다시피 크로포드는 초창기에 재능에만 의존하다가 곧 사라질 선수란 전망이 많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1]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2] 다만 2013년은 하위픽에서 야니스 아데토쿤보, 루디 고베어의 포텐이 제대로 터지면서 약간의 재평가는 받았다. 1라운드 15순위인 아데토쿤보는 우승 1회, MVP 2회, 파이널 MVP 1회, DPOY 1회, 기량발전상 1회에 NBA 75주년 기념 75인에 선정되기까지 하는 농구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 선수가 되었고, 27순위인 고베어도 DPOY 4회 최다 수상자에 ALL NBA팀 4회, 올스타 3회,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7회에 선정되는 등 2010년대부터 최고의 수비수로 거듭났다. 다만 이 둘을 제외하고 상위픽 선수들 중에서는 스타로 성장한 선수가 전무하여 역대 최악의 드래프트 중 하나라는 평가는 지워지지 않았다.[3] 당장 1999년과 2001년 드래프트는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도 배출했는데 1999년은 마누 지노빌리, 2001년 드래프트는 토니 파커, 파우 가솔이 선정되었다. 당장 지노빌리는 올스타 2회로 2000년 드래프트 전체 올스타 횟수인 3회에 단 한 개만 모자르며, 심지어 올NBA팀은 써드팀 2회에 선정되면서 2000년 드래프트 전체 올NBA팀 선정 횟수인 써드팀 1회를 넘어섰다., 파커는 올스타 6회, 올NBA팀도 세컨드팀 3회, 써드팀 1회 선정되었고, 가솔도 올스타 6회, 올NBA팀도 세컨드팀 2회, 써드팀 2회에 선정되면서 두 선수는 개인 통산 올스타와 올NBA팀 선정 횟수가 2000년 드래프트 전체 통산 올스타와 올NBA팀 선정 횟수를 아득히 넘었다.[4] 높은 기대치를 받고 NBA에 입성했으나 기대치에 못 미친 선수들.[5] wins above replacement players. 이 수치는 '리그 내에서 최하위의 투자로 얻을 수 있는' 가상의 선수인 replacement players를 상정해 이 대체선수가 뛰는 대신 특정 선수가 뛰어서 얼만큼 팀이 추가로 승수를 챙겼냐를 계산하는 2차 스탯이며, 한 선수가 팀에 얼만큼의 공헌도를 했는지 계산할 때 많이 쓰인다.[6] 가넷, 브라이언트 등 고교 졸업 후 NBA 직행 성공 사례에 힘입어 클리퍼스가 야심차게 지명했던 선수로 206cm, 107kg의 체격을 가진 포워드였다. LA 클리퍼스('00~'02), 클리블랜드('02~'04), 포틀랜드('04~'08), 멤피스('08~'09)에서 뛰었으며 루키 시즌에는 제법 활약했으나 기량이 좀처럼 늘지 않았고 이적하는 팀마다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가 됐다. 결국 부상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고 대부분 실패한 고졸 선수들이 그렇듯 멘탈이 좋지 않았다.[7]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가 포지션이며 LSU 선배 샤크의 뒤를 잇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데뷔했으나 운동능력과 덩크만 갖췄을 뿐 수비, 슈팅, 리바운드, 센스, BQ 등은 갖추지 못했다. 마일스처럼 저니맨이 됐다가 NBA를 떠나 중국 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8] 그나마 쓸만한 선수인 프리저빌라도 사실은 백업급인데 뛸 센터가 없어 주전으로 나오고 있었고, 은근히 부상이 잦던 프리저빌라가 쓰러져야 하승진이 뛸 수 있었기 때문에 국내 팬들이 꽤나 의식하던 선수였다. 실제로 포틀랜드는 가비지 멤버급이던 하승진이 4경기 주전으로 나와야 할 정도로 센터진이 약했다. 파워포워드는 잭 랜돌프가 지켜줬지만, 사실 이 팀은 실력보다 사고치는게 문제였고 랜돌프는 실력은 뛰어났지만 Jail Blazers 오명에 꽤나 지분이 있는 문제아였다.[9] 사실 월리 저비악이 2옵션급이 되어서 욕을 많이 먹었지만 마이크 밀러와 비슷한 타입이었다. 외곽슛은 잘하고, 나머지는 잘하는게 없지만 열심히 뛰면서 팀에 해를 끼치지 않고 전반적인 공헌도가 괜찮은 롤플레이어. 이런 선수들이 3,4옵션이나 키식스맨이 되면 정말 좋지만, 팀내 비중이 늘어나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욕 먹을 수도 있다.[10] 물론 전성기 기량으로 봐도 드웨인 웨이드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에 비할 수준은 아니고 07 시즌 당시 길버트 아레나스의 임팩트에도 못 미치지만, 만약 그와 원투펀치를 이룰 선수가 있어 팀성적이 좋았다면 한 시즌 정도는 노려볼만하단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