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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1 20:54:54

샬럿 호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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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창단 1988년 ([age(1988-01-01)]주년)
연고지 노스캐롤라이나샬럿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구단 연고지 변천 샬럿 (1998년~현재)
구단명 변천 샬럿 호네츠 (1988년~2002년)
샬럿 밥캣츠 (2004년~2014년)
샬럿 호네츠 (2014년~현재)
홈구장 샬럿 콜리세움 (Charlotte Coliseum, 1988년~2002년, 2004년~2005년)
스펙트럼 센터 (Spectrum Center, 2005년~현재)
저지 스폰서 렌딩트리 (LendingTree)
구단주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단장 미치 컵책 (Mitch Kupchak)
감독 제임스 보레고 (James Borrego)
G 리그 제휴 그린즈브로 스웜 (Greensboro Swarm)
로컬 경기 중계 Fox Sports Carolinas, Fox Sports Southeast
약칭 CHA
홈페이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63px-Charlotte_Hornets_%282014%29.svg.png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0회)
-
컨퍼런스 우승
(0회)
-
디비전 우승
(0회)
-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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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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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역사
2.1. 원조 호네츠2.2. 밥캣츠 시절
2.2.1. 2013-14 시즌
2.3. 호네츠로 귀환
2.3.1. 2014-15 시즌2.3.2. 2015-16 시즌2.3.3. 2016-17 시즌2.3.4. 2017-18 시즌2.3.5. 2018-19 시즌2.3.6. 2019-20 시즌
3. 2018-19 시즌 선수단4. 영구결번5. 명예의 전당자6. 기타7. G 리그 산하팀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샬럿. 호네츠라는 명칭을 가진 구단은 1988년에 창단되었으나 뉴올리언스로 연고지를 옮긴 다음 2013-2014 시즌부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변경되었다. 샬럿에는 2004년에 밥캣츠라는 구단이 새로 창설되어 10년을 보내다 뉴올리언스에 간 호네츠가 펠리컨스로 바뀌자 밥캣츠가 호네츠로 팀명을 부활시켰다.

팀명인 '호네츠'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 찰스 콘월리스가 노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이 영국군의 공격을 끈질기게 막아내는 것을 보고 "덤불 속에서 일어난 말벌 떼 같다"고 한 일화에서 유래됐다.

사실 원래 이 동네에 있던 호네츠 구단은 인기가 제법 많은 팀이었다. 그런데 고비에서 결국 우승 도전에 실패한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구단주인 조지 신의 성추문으로 지역에서 평판이 떨어진 것이 컸다. 이 때문에 새 구장 건립에 실패하자, 빡쳐서 그냥 뉴올리언스로 날라 버렸다 지 잘못한 건 생각도 못하고... 졸지에 NBA 팀을 잃어버린 샬럿 주민들은 "우리의 NBA 팀을 돌려줘" 라고 징징댔고, 결국 NBA 사무국이 30번째 팀을 만들면서 그 연고지를 샬럿으로 못박으면서 팀이 생기게 되었다.

팀의 특징은 초대 구단주가 사상 최초의 흑인 구단주였다는 점. 그리고 지금도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이니, 이 전통은 이어져 오는 셈이다. 샬럿 주민들도 새 팀을 맞으면서 과거 호네츠가 떠나는 한 원인이었던 새 구장에 대한 건립 약속을 지켜서 2005년 새 구장을 지어줬다.

2. 역사

2.1. 원조 호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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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호네츠
Charlotte Hornets
1988/89 ~ 2001/02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은 전통의 농구 라이벌 UNC,듀크를 비롯해 명문 대학 농구팀들이 밀집한 농구 열기가 좋은 곳[1]인데 정작 NBA 팀은 없었다. 다만 ABA가 존속했던 1969년에 휴스턴 매버릭스가 그린스보로로 연고이전해 '캐롤라이나 쿠거스'로 바꿔 활동했으나, 1974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전했다.

이에 착안한 향토사업가 조지 쉰은 NBA 팀을 창단하고자 노력했고, 1985년 NBA 프랜차이즈 확장 정책에서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마이애미, 올랜도와 공동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1986년 11월에 팀명 공모전을 열어 '스피리츠'로 하려 했으나, 1987년 4월 1일 창단 발표 후 6월에 팀명을 '호네츠'로 결정했다. 1988년에 신설구장 샬럿 콜로세움을 홈구장으로 하여 팀이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 단장은 덴버 너기츠의 단장을 10년간 지낸 칼 쉬어(Carl Scheer), 감독은 베테랑 지도자 딕 하터(1930~2012), 코치는 에드 배저와 진 리틀스로 했고, 선수는 쇼타임 레이커스 시절 조연이던 커트 램비스, 160cm짜리 최단신 선수 먹시 보그스, 리키 그린, 로버트 리드, 델 커리, 렉스 챕맨, 얼 큐어튼, 그렉 카이트, 켈리 트리퍼카 등이었다.


호네츠의 원년 시즌 당시를 다룬 하이라이트 비디오 (1989). 팀의 창단 과정과 당시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창단 초기에는 이 동네에 처음 들어선 NBA팀이라는 점 때문에 제법 인기를 모았다. 팀도 상당히 괜찮은 전력을 만들었다. 초창기에는 하위권을 전전해 오다가 1990년에 덴버 너기츠의 덕 모 감독 곁에서 코치를 맡았던 앨런 브리스토우(Alan Bristow)가 단장 겸 부사장으로 들어와 팀 기틀을 잡기 시작, 그가 감독까지 맡은 1991년에 UNLV 출신인 래리 존슨을 드래프트 1위로 영입한 뒤 199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위로 알론조 모닝을 뽑아 기존 멤버인 보그스, 델 커리와 융합되어 팀 전력은 점차 상승했다. 브리스토우 감독은 덴버에서 배운 런앤건 포메이션과 올 코트 프레스를 팀에 이식시킨 후 화끈한 공격 농구를 선보여 1992/93 시즌에 정규시즌에서 44승 38패를 달성, 마침내 창단 5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버드-맥헤일-패리시가 포진한 전통의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4전 3승으로 이겨 파란을 보여준 바 있었다.

1995년에 전 샌안토니오 스퍼스 단장 밥 배스를 단장으로 맞아들인 호네츠는 매 시즌 20-10을 해주는 엘리트 센터 알론조 모닝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우려 했고, 홈구장 앞에 무려 동상까지 세워주면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95-96시즌을 앞두고 벌였던 모닝과의 연장 계약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서 결국 시즌 개막을 단 하루(!) 앞두고 알론조 모닝을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마이애미 히트로 처분하면서 리빌딩에 들어갔다.[2] 대신 비교적 전력을 공백을 빠르게 메운 편이었는데, 모닝을 주고 받아온 당시 히트의 1옵션이자 3점슛 달인인 글렌 라이스를 축으로 한 끈적한 농구로 변신했고, 여기에 앤서니 메이슨같은 다재다능한 포워드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배런 데이비스자말 매쉬번을 축으로 하여 여기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온 에디 존스, 엘든 캠벨, 그리고 데이빗 웨슬리, 바비 필스 등이 가세해 끈적한 농구를 보여주며, 스타는 없어도 조직력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팀이었다.[3]

하지만 호네츠의 문제는 팀 전력에 있지 않았다. 꾸준히 팀을 갈아 엎으면서도 매번 일정 이상 전력은 만들어 냈지만, 정작 그들의 적은 외부에 있었다. 1999년부터 구단주인 조지 쉰의 성추문이 터지면서 지역 사회에서 조지 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졌고, 새로운 구장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졌다. 처음부터 UNC,듀크같은 강력한 경쟁자에 밀렸던 호네츠는 결국 이러한 갈등 속에서 새 구장 건설도 어려워지고, 자신들에 대한 분위기가 썩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식한 호네츠는 NBA를 그만두었[4]연고지를 옮겨 버렸다. 그러나 농구 열기 자체가 죽은 건 아니어서, 결국 10년이 지나기 전에 기적이 찾아왔다.

2.2. 밥캣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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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밥캣츠
Charlotte Bobcats

새로 만들어진 팀은 6개월 간의 공모전을 통해 '들고양이'를 의미하는 이름인 '밥캣츠'로 정했으며, 샬럿 구단측은 "활력 넘치고 용맹하며 열심히 일하자"는 의미로 팀 로고 역시 날카롭게 만들었다. 초대 감독은 시애틀 슈퍼소닉스덴버 너기츠, 워싱턴 위저즈에서 감독을 지낸 바 있는 베테랑 지도자 버니 비커스태프였다.

그러나 성적은 전형적인 신생팀의 한계를 못 벗어난 약체였다. 나이가 40대인 구단주가 현역 선수들을 이기는 동영상도 나돌정도니...

안습한 나날을 보내다 2007년에 구장을 샬럿 콜로세움에서 타임워너 케이블 아레나로 이전하고 2008년에 부임한 명장 래리 브라운과 올스타 포워드인 'G-포스' 제럴드 월러스를 앞세워 2009-10 시즌에 팀 역사상 첫 위닝 시즌(44승 38패)과 PO 진출을 이룩했다. 그러나 PO에서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에게 0:4 떡실신. 그리고 브라운 감독이 떠나고, 월러스도 리빌딩을 이유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다시 긴 리빌딩에 들어갔다.

오히려 앞에서도 언급한 그 분이 구단주라는 점이 더 큰 화제거리고, 샬럿 밥캐츠를 아는 사람들은 이 팀에 어느 선수가 있는지는 잘 몰라도 조던이 구단주라는 사실은 안다. 2005년부터 지분에 투자하기 시작한 조던은 2010년 최종적으로 구단의 전체 지분을 매입하며 단독 구단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조던은 팀을 구하지 못했다. 마사장의 대표적인 흑역사중 하나인 콰미 브라운으로 대표되는 드래프트 삽질이 밥캐츠에서도 재현되었고, 신인들이나 중견급 선수나 하나같이 헤맸다.차라리 내가 뛸까

그렇게 헤매다가 맞이한 2011-12 시즌, 샬럿 밥캣츠는 NBA 역사상 최악의 팀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파업으로 인한 직장 폐쇄로 66경기만 치뤄진 2011-12 시즌에서 7승 59패라는 희대의 성적을 기록, 0.106의 승률로 NBA 역대 단일 시즌 최저 승률 기록 경신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5][6][7] 이미 언론에서는 2012년 NCAA 토너먼트 우승팀 켄터키 대학교와 붙을 경우, 샬럿이 진다는데 한 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조던도 열이 잔뜩 받았는지 이대로면 팀 팔거라고 징징을 시전중이다(...). 심지어 경기 수가 단축되지 않았다면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세계기록 32연패를 깰 수 있을 뻔했다는 소문도 퍼졌었다고

이 팀이 재건에 성공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드래프트 1순위를 뽑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래프트에서도 가장 높은 확률은 가지고도 2순위가 되었다. 2012년 드래프트가 인재가 많다고 해도 1위 유망주인 앤서니 데이비스와 2위 그룹간의 격차가 매우 컸기 때문에 사실상 리빌딩 시간은 최소 반년 이상 길어졌다고 봐야한다.

결국, 2012 드래프트에서 2픽으로 켄터키 대학 출신의 스몰포워드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를 골랐다. 단장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리빌딩 당시 프런트 출신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前 단장이었던 리치 초(Rich Cho)[8]를 선임하여, 조던이 원하는 리빌딩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2012-13 시즌의 최종 성적은 21승 61패. 시즌 내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과 함께 동부 컨퍼런스 탈꼴찌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2012년 11월 27일에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50점차까지 벌어지며 떡실신당했고 18연패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2012-13 시즌도 그다지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나마 후반에 조금씩 승을 챙겼고 같은 최하위 팀인 올랜도가 연패를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꼴찌를 면했다.

2.2.1. 2013-14 시즌

2014 드래프트 대어들을 위해 로스터를 약화시키면서 탱킹을 노리는 구단들이 많아졌으나 구단주님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반대 노선을 걷는다고 선언, 유타에서 공격력이 좋은 센터 알 제퍼슨을 영입하는 등 전력을 보강했다. 작년 전체 2픽이었던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와 올해 4픽이었던 코디 젤러는 아직은 갈 길이 멀었음을 보여주었지만 알젭은 동부 컨퍼런스 유일의 20득점-10리바운드 빅맨으로 활약하고 2011년 드래프티인 켐바 워커가 잘 성장해줌과 동시에 수비에 총력을 기울여 승점자판기 신세에서 탈출, 43승 39패로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마사장님 보고 계십니까

그러나 상대는 시즌 전적 0승 4패에 사우스비치에 머물고 있는 큰 재능에게 61점을 허용했던 마이애미 히트. 마이애미가 빅 3를 결성한 이후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완벽한 천적이었다.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팀의 핵심인 알 제퍼슨의 공백을 메우는데 실패했고, 플옵 진출 팀들중 유일하게 깔끔하게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다. 꾸역꾸역 플옵 올라갔더니 상대가... 안습

파일:attachment/Thanks_Bobcats.jpg
플레이오프 탈락 후 밥캣츠 홈페이지 대문. 10년의 안습한 역사가 끝났다.

2.3. 호네츠로 귀환

2013 시즌 이후부터 원조였던 뉴올리언스 호네츠가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라는 이름으로 바꾸자, 이 팀이 과거의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샬럿 호네츠가 훨씬 인지도가 높은게 원인. 구단주 마이클 조던도 호네츠 이름을 다시 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결국 NBA 구단주 전체 회의에서 호네츠 이름 사용이 허가되어, 2014-15 시즌부터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으로 시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래 호네츠의 프랜차이즈였던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의 협의를 통해 현 호네츠는 샬럿 시절의 호네츠 역사를 가져가고, 원래 호네츠 프랜차이즈였던 펠리컨스는 뉴올리언스로 연고지 이전을 한 후의 역사만을 가져가기로 합의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개족보가 될 뻔한 관계를 어느 정도 교통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을 알리는 샬럿 호네츠 트위터

2.3.1. 2014-15 시즌

2014년 드래프트 순위 추첨식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픽을 차지하면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9픽으로 밀려났는데, 이 픽은 2012년 벤 고든과 코리 메거티 트레이드 당시 8픽까지라면 디트로이트가 그대로 쓰지만 9픽 이하부터는 샬럿이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샬럿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2014년 드래프트에서 9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거저 얻은 9번픽으로 최소 8픽 안, 매체에 따라서는 5픽 안쪽으로도 예상했던 인사이더 노아 본레를 뽑으면서 2014 드래프트 최고의 승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디트로이트 감사합니다. 새크라멘토 감사합니다.

가드 포지션의 보강이 필요했기에 유타 재즈의 제한적 FA 고든 헤이워드에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맥시멈을[9] 질러서 욕을 먹었는데 헤이워드를 놓치기 싫었던 유타가 울며 겨자먹기로 샬럿의 제안에 매치하면서[10]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써니, 크리스 보쉬 등 대형 FA들에게 가려 관심밖이었던 준척급 FA들이 너도나도 맥시멈을 부르면서 에어컨 리그를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3년 $27.5M 이라는 싼 가격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젊은 슈팅가드 랜스 스티븐슨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팬덤에선 남의 팀은 혼란으로 몰아넣고 자신들은 알짜영입을 한 마갈량을 찬양하는 분위기(...) 사실 단장인 Rich Cho의 능력이다.

야심차게 시작한 2014-15 시즌이었지만 첫 20경기 성적은 5승 15패로 상당히 실망스럽다. 켐바 워커와 랜스 스티븐슨이 둘 다 볼을 가지고 플레이해야 하는 선수라 모아놓고 보니 그다지 좋지 않은 조합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외곽슈팅과 볼배급능력이 좋았던 조시 맥로버츠의 이탈 때문에 알젭의 위력이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결국 플레이오프권에는 들어갈거라는 시즌 전 예상하고는 달리 33승 49패로 동부 11위에 그치고 말았다.

2.3.2. 2015-16 시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랜스 스티븐슨를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드래프트 9픽으로는 위스콘신 대학교의 4학년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를 선택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주전 스몰포워드 니콜라스 바툼과 썬더의 벤치 멤버였던 제레미 램을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FA가 된 제레미 린을 영입했다.

개막 전부터 MKG가 어깨 부상을 당하며 시즌아웃을 당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슈팅가드로 전업에 성공한 바툼과 벤치멤버인 제레미 콤비의 선전에 힘입어 동부 상위권까지 치고 올라가는 듯 했지만...주포 알젭의 부상이 길어지면서 12월과 1월에 접어들면서 연패가 길어져 10위 밖으로 내려앉아버렸다.

그나마 2월 시점에서 호재인것은 시즌아웃인줄 알았던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2월에 복귀했다는 것과 부상 전력이었던 알 제퍼슨, 코디 젤러등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 복귀후 선전으로 5할을 맞춰 플레이오프 가시권에 다시 들었는데 마이클 키드 길크리스트가 시즌 아웃되었다. 다시 부상 악재로 고생하게된 셈.

골든스테이트와의 홈경기에서 샬럿 호네츠의 레전드이자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인 델 커리[11]를 위해 Dell Curry's Night 행사를 열어 그의 팀을 위한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스테판 커리는 아버지의 행사로 들뜬 샬럿을 초토화 시키면서(...) 골든스테이트의 연승을 이어나갔다.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 마이클 조던은 이 행사를 계기로 델 커리의 호네츠 구단내에서의 비중을 점점 늘려갈 생각인 듯 하다. 국내 농구팬들은 마사장이 스테판 커리를 포섭하기 위한 물밑작업이 아닌가라며 반농담조로 추측하는 중.

3월 5일까지 좋은 성적으로 팀순위가 6위까지 올라갔다!! 다만 9위 시카고와 경기차가 2.5경기차 이기에 안심하기엔 이르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8승 34패. 동부에서 3~6번시드 다툼을 하던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 애틀란타 호크스가 모두 똑같은 성적을 거두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타이브레이커에서 밀려 6번시드가 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3번시드 마이애미 히트. 상대전적은 동률이지만 마이애미가 디비전 리더자격으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간다.

원정 1,2차전을 압도당하며 플레이오프 연패기록이 12연패로 늘어났지만 홈에서 열린 3차전부터 신예 빅맨 프랭크 카민스키의 기용, 제레미 린이 잘해주면서 내리 3,4,5차전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6차전 홈에서 끝낼 분위기였다. 하지만 부상을 달고 뛰던 니콜라스 바툼이 6차전 경기 도중 다시 부상이 악화되어 경기를 전부 뛸수 없었고, 켐바 워커와 알 제퍼슨이 잘해줬지만 제레미 린이 부진에 빠졌으며 드웨인 웨이드의 클러치 샷이 연속으로 작렬하는 바람에 7차전 원정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7차전에서 완패하며 아쉽게 2라운드 진출에 대한 꿈을 접어야했다.

이 경기에서 드웨인 웨이드는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오프 블록 기록을 그의 눈 앞에서 갱신했고, 7차전 도중 조던이 깊게 화가난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내가 뛸까

오프시즌에는 니콜라스 바툼과 5년 1억 2000만 달러 재계약을 맺었고, 제레미 린과 알 제퍼슨이 각각 브루클린 네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한다.

2.3.3. 2016-17 시즌

켐바가 완전히 올스타급 포인트가드로 성장했고 전반적인 조율을 담당하는 바툼과 눈에 띄는 선수는 없어도 실속있는 프론트코트 조합, 새크라멘토에서 죽을 썼지만 샬럿에 와서 반등한 마르코 벨리넬리 등 안정감있는 전력으로 2016년까지 19승 15패를 기록했다. 린과 알젭의 공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모습.

그러나 최근 13경기에서는 7연패와 5연패를 포함해 고작 1승 12패에 그치고, 원정에서는 최근 12연패를 당하는 등 현재 성적은 24승 33패. 2017년 성적은 고작 5승 19패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최근 모습으로만 보면 브루클린 못지 않은 2017년 최악의 팀 중 하나다. 빅맨 코디 젤러와 마일스 플럼리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빅맨진은 전멸. 캠바 워커의 분전 만이 빛나고 있지만, 이전에 샬럿을 대표하는 칭호였던 "4쿼터 안방 극장"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결국 올해도 창단 후 최초로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시즌 최종성적은 36승 46패로 동부 11위를 차지했다.

2.3.4. 2017-18 시즌

드와이트 하워드를 데려왔으나 시즌 절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성적은 이번에도 중하위권을 전전하는 중. 15-16 시즌의 선전을 전후해 맺은 베테랑들과의 재계약이 악성계약으로 변했으며, 특히 니콜라스 바툼은 너무나도 빠르게 기량이 떡락하면서 팀에 거대한 짐덩이가 되었다. 에이스인 켐바 워커를 비롯한 여러 선수들을 트레이드 블록에 올리며 판을 다시 짤 의향도 보였으나 실패했고, 리치 조 단장은 프랜차이즈 최고 스타 켐바를 푸대접한 것에 대한 욕만 더럽게 먹었다.

켐바를 제외하면 미흡한 팀 전력, 베테랑들이 포진한 팀인데도 형편없던 클러치 상황에서의 집중력, 스티브 클리포드 감독의 보수적인 선수 기용, 무리한 재계약으로 전력 유지를 꾀했던 리치 조 단장의 실패 등 총체적인 실패였던 시즌이었다. 하워드는 개인의 스탯만 따지자면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여전히 본인 위주의 게임을 했고 이타적인 팀플레이에서 미흡함을 드러냈다. 특히 샬럿은 켐바를 위한 스크린 세팅이 공격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팀이기에 그런 결점은 더욱 뼈아프게 작용했다.

최종 성적은 작년과 똑같은 36승 46패.

2.3.5. 2018-19 시즌

결국 2018년 5월 9일 스티븐 클리포드 감독과 결별한 후 제임스 보레고 前 샌안토니오 스퍼스 코치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했다. 신임 단장으로는 과거 레이커스를 이끌었던 미치 컵책이 전격 선임되었다.

저니맨이 되어버린 하워드는 1시즌만에 워싱턴으로 떠났고, 샌안토니오에서 토니 파커를 데려왔다. 켐바 워커는 트레이드 소문이 많았는데 팀에 남았다.

10월 17일 홈 개막전에서 클래식 코트+클래식 져지를 착용하고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도 112 : 113으로 패했다. 마지막에 니콜라스 바툼이 오픈 3점슛을 놓친 것이 꽤나 아쉬울 듯.

10월 19일 올랜도 매직 원정에서 120 : 88로 무려 32점차 대승을 거뒀다! 1쿼터부터 몰아붙이더니 결국 4쿼터는 무난한 가비지 타임으로 마무리.

10월 20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30점 가까이 가져갔던 리드를 추월당하는(...) 추한 경기력을 보이기도 했으나 켐바 워커의 하드캐리로 재역전에 성공, 결국 113 : 112로 승리를 거뒀다. 켐바 워커가 이 경기로 통산 10000득점을 달성한 것은 덤.

10월 22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127 : 106으로 대패했다, 패배도 패배지만 니콜라스 바툼의 부진에 대한 팬들의 원성이 점점 높아지는 중.

켐바가 득점왕급 폭발력을 선보이며 대활약하고 있지만, 그를 도와줄만한 2옵션 득점원의 부재가 뼈아프다. 켐바 팔았으면 정말 어떻게 됐었을까...

12월 2일 기준, 11승 11패로 5할 승률을 기록중인데, 5할이 넘어가면 연패하고 5할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연승을 달리며 어떻게든 5할을 딱 맞추는 기행(...)을 보여주고 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에 말릭 몽크+만기계약선수+1라운드 지명권으로 마크 가솔을 데려온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결국 마크 가솔은 토론토 랩터스로 가버렸다. 빅맨의 영입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였는데 다들 아쉽다는 평.[12]

2월 11일, 애틀란타에서 웨이버 공시된 쉘빈 맥을 데려왔다. 전반기 성적은 27승 30패로 동부 7위.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 팀이 부진에 빠지고, 시즌 막판에는 서부 원정 3연전에서 전패하며 사실상 플레이오프행이 좌절되나 싶었지만, 이후 잔여경기를 연승하며 시즌 최종전까지 동부 9위로 플레이오프행 가능성을 이어갔다. 최종전에서 8위 디트로이트가 패배하고 샬럿이 홈에서 올랜도에게 승리하면 디트로이트와의 상대전적이 우월한 샬럿이 8위를 차지하게 되지만 디트로이트의 상대가 전체 꼴찌 뉴욕인지라 쉽지 않은 상황. NBA판 131005의 기적을 바라야 하든가...[13]

아니나다를까 동시간대에 펼쳐진 최종전에서 뉴욕이 디트로이트에게 홈에서 시종일관 끌려다니다 115-89로 떡발렸고, 이에 샬럿도 의욕을 잃은 것인지 올랜도에게 122-114로 패배하며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었다.

2.3.6. 2019-20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12픽으로 파워포워드 PJ 워싱턴을 지명했다. "무난하게 잘 뽑았다는 반응"과 "또 켄터키 출신 망픽 아니냐?" "그래도 키 큰 백인이 아니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라며 팬들 사이에서 평가가 극히 갈리고 있다. 더 실링이 높은 유망주에게 도박을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명문 대학팀 출신에, 좋은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는 최근 샬럿의 드래프트 철학과 부합하는 지명이다.

6월 30일 켐바 워커보스턴 셀틱스와 계약하겠다고 통보했다는 뉴스가 전해지며 샬럿 팬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제시 금액은 슈퍼 맥스는 커녕 맥스[14]조차도 안됐다고 한다, 물론 스몰 마켓에 속하는 구단의 특성상 슈퍼 맥스까지는 무리였어도 구단에 남은 유일한 프랜차이즈 스타한테 맥스 계약조차 안 준 건 말도 안된다는게 샬럿 팬들의 반응.

그 외에도 지난 시즌 2옵션으로 활약한 제레미 램, 시즌 막판 부활의 여지를 보였던 프랭크 카민스키가 좋은 조건으로 각각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피닉스 선즈로 FA 이적했다. 토니 파커는 은퇴. 이전에 비해 전력이 확연히 약화된 셈이다.

켐바의 대체자로 보스턴 셀틱스에서 활약한 가드 테리 로지어를 3년 57M의 금액으로 영입했다. 로지어는 셀틱스의 17-18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대활약을 펼쳤으나, 전반적인 활약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만큼 오버페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FA 시장 최악의 계약이라는 평도 나온다. 어차피 향후 2시즌간은 탱킹 전력이기에 로지어의 활약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는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관점. 다만 로지어 역시 준수한 수비력과 운동능력을 갖춘 선수이고, 컵책이 새롭게 팀을 리빌딩해 가는 과정에서 어울리는 영입이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로지어는 코트 위에서는 1옵션, 코트 밖에서는 라커룸 리더(마빈 윌리엄스와 함께)의 역할을 맡을 예정.

0-82 시즌을 달성할 유력후보(...)라던 세간의 평가와 달리, 5할승률도 찍어보는 등 생각보다 순항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작년 드래프트 2라운더인 디본테 그레이엄의 MIP급 활약이 돋보이는 중.

다행히도 1월 26일 기준으로 8연패와 함께 12위까지 떨어져있다. 다시 탱킹레이스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중.

3. 2018-19 시즌 선수단

2018-19 시즌 샬럿 호네츠 선수단
감독 제임스 보레고
코치 제이 에르난데즈, 제이 트리아노, 더치 게이틀리, 채드 이스키, 로날드 노레드
가드 3. 테리 로지어 4. 디반테 그레이엄 1. 말릭 몽크
가드-포워드 5. 니콜라스 바툼 7. 드웨인 베이컨 11. 코디 마틴
포워드 2. 마빈 윌리엄스 0. 마일스 브릿지스
포워드-센터 25. PJ 워싱턴
센터 40. 코디 젤러 9. 빌리 에르난고메즈 8. 비스맥 비욤보

4. 영구결번

샬럿 호네츠의 영구결번
번호 이름 포지션 재적년도
13 바비 필스 슈팅 가드 1997년-2000년

5. 명예의 전당자

샬럿 호네츠의 명예의 전당자들
선수
이름 소속년도 헌액년도
로버트 패리시 1994년-1996년 2013년
블라디 디박[16] 1996년-1998년 2010년
알론조 모닝 1992년-1995년 2014년
감독
이름 소속년도 헌액년도
데이브 코웬스 1996년-1999년 1991년
래리 브라운 2008년-2010년 2002년

6. 기타

샬럿 호네츠라는 이름의 팀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들과 인연이 있는 팀이다. 마이클 조던이 현재 구단주로 있고,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패트릭 유잉이 코치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과거 전신 호네츠 시절 코비 브라이언트를 드래프트에서 선택했었고[17], 스테판 커리의 아버지 델 커리가 오래도록 뛴 팀이기도 하다. [18]

팀보다 구단주가 더 유명한 팀으로 유명하다. 신인 선수가 샬럿에 드래프트로 뽑히면 마이클 조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꼭 받는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1순위로 뽑힌 말릭 몽크[19]는 자신이 낮은 순번으로 드래프트된 실망보다 조던이 있는 팀으로 드래프트되었다는 기쁨이 더 크다며 싱글벙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부터 나이키에서 NBA 스폰서쉽 계약을 맺으면서 유니폼에 나이키 로고가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샬럿은 구단주 빨로 나이키 로고가 아닌 조던의 상징인 점프맨 로고를 새겼다. 그러나 조던의 구단주로서의 평가는 좋지 않다. 일단 조던이 NBA 구단주 치곤 가난하다는것도 있지만[20], 선수에 대한 안목이 부족해서 좋은 픽을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마사장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듯

7. G 리그 산하팀

파일:GreensboroSwarm.png
그린즈브로 스웜
Greensboro Swarm
설립년도 2016년 ([age(2016-01-01)]주년)
역사 그린즈브로 스웜 (2016년~현재)
연고지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브로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홈구장 그린스브로 콜리시엄 파빌리온


[1] 단, 이들 대학은 주의 동쪽 끝에 위치한 주도 레일리와 채플힐,더럼,윈스턴-세일럼 등에 위치해있다. 샬럿은 정반대인 주의 서쪽 끝에 위치.[2] 이 과정에서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는데 94-95시즌을 앞두고 샬럿은 팀 건물 벽에 향후 팀의 미래가 될 거라 생각한 모닝-존슨-보그스의 벽화를 큼지막하게 그려놨다. 그런데 한 시즌만에 모닝이 떠나버린 것. 결국 그 위로 다시 그릴 선수를 정하기 위해 팬투표를 했는데 정해진 것은 선수가 아닌 팀 마스코트. "마스코트가 팀을 떠날리는 없으니까..."란 생각이었는데 어이없게 10년도 못되어 도시 자체를 팀과 함께 떠나버렸다(...).[3] 안타까운 것은, 이때 호네츠의 주전 슈팅가드이고 팀의 리더로써 활약했던 바비 필스가 시즌도중인 2000년 1월 30일 눈길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4] 2014년 샬럿과 뉴올리언스간 합의에 따라 공식 역사상으로는 탈퇴가 맞다.[5] 종전 기록은 1972-73 시즌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9승 73패 승률 0.110[6] 역대 최저승수는 1947-48 시즌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가 기록한 6승으로 11-12 시즌 샬럿도 간발의 차이로 이 기록만큼은 깨지 못했다.(...) 참고로 이시즌 프로비던스는 6승 42패로 승률은 0.125였다.[7] 오히려 단축시즌이 아니었으면 승률 1할 아래로 내려갔을 뻔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나올 정도였다.[8] NBA 최초의 아시안계 출신의 단장이다. 이름을 봐선 언뜻 재미교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얀마계 이민 2세다.[9] NBA는 연차별로 연봉 한도가 정해져 있는데 각 연차별 최고로 받을 수 있는 연봉액을 맥시멈이라 칭한다.[10] 제한적 FA는 타 구단이 제시한 조건과 동일한 조건으로 현 소속 구단에서 매치하면 현 소속팀에 남는 제도이다.[11] 전국적인 스타는 되지 못했지만 선수변동이 심했던 90년대의 샬럿에서 가장 오랫동안 뛰었고, 팀 내 득점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다. 현재도 샬럿에 머무르면서 중계 등을 통해 구단과 관계를 맺고 있다.[12] 더군다나 AD 영입에 실패했던 레이커스처럼 팀 분위기도 깨졌다고...[13] 2위 경쟁에 가장 유리한 히어로즈가 원정에서 꼴찌 한화에 패하는 바람에 LG vs 두산 경기에서 승자가 2위로 올라서는 상황이었다. 여기서는 매디슨 스퀘어에서 전체 꼴찌 뉴욕이 이기고 샬럿이 올랜도에 승리하면 샬럿의 대역전 8위로 마감.[14] 4년 1억 4100만 달러, 실제로 보스턴과도 이 금액으로 계약 예정.[15] 이게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이 교통사고가 하필이면 불법 자동차 레이싱(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그 자동차 경주를 생각하면 된다.)을 하다가 사망하게 된것이다. 원래 필스는 사생활이 깨끗한 선수로써 이런 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당시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주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공동주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웨슬리가 레이싱을 제안했을 때 안타깝게도 필스는 수락하고 말았고, 결국...이 일로 필스에게 자동차 경주를 제안했던 웨슬리 본인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16] FIBA(국제농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17] 드래프트 이후 바로 LA 레이커스의 디박과 트레이드 되었다. 코비가 호네츠의 모자를 쓴 드래프트 당시의 사진들은 남아있다.[18] 델 커리가 스테판 커리가 어린 시절 샬럿에서 오래 머물러서 스테판 커리의 고향은 보통 샬럿으로 표기된다.[19] 가드 포지션으로 시즌 중반 현재 평균 5.5점 1.4어시스트 1.0리바운드로 벤치멤버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20] 조던은 역대 스포츠 선수들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선수임에도 구단주간의 부유함 랭킹에서는 최하위권이다. 여기서 대기업 자본의 힘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