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ビデオ問題
1. 개요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과 관련해 일본의 방송국 TBS 테레비가 저지른 희대의 사건. 글자 그대로 TBS가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이 옴진리교에 살해당하는 데 일조한 사건이자 TBS의 경영 구도를 뒤엎어 버린 희대의 사건이다.2. 내용
TBS는 와이드 쇼 '3시에 만납시다(3時にあいましょう)'[A]에서 1989년 10월 27일에 방영할 옴진리교 특집 방송을 위해 특집 방송 취재반(사회정보국, 이하 취재반)은 방송 하루 전인 26일 오전에 옴진리교를 탈탈 털고 있었던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를 인터뷰했다. 같은 날 낮에 취재반은 다시 '보도국 사회부' 기자들과 함께 후지산의 옴진리교 도장을 방문해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초능력(?) 시연을 취재했다. 보도국의 인터뷰를 마치고 취재반에서도 인터뷰를 하려고 하자 옴진리교측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취재반측은 묻지도 않았는데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터뷰를 교주의 초능력 시연 장면과 함께 방영한다는 것을 먼저 밝혀 버렸고, 촬영한 영상을 옴진리교측에 우선 보여주겠다고 제안하며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한 회유를 시도했다. 당일 밤 늦은 시각에 옴진리교 간부 3명이 TBS로 찾아와 방영 전에 변호사의 인터뷰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방송을 불허하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TBS측은 옴진리교에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게 된다. 이때 방문자 중 하나인 하야카와 키요히데(早川紀代秀)[2]는 비디오의 내용을 상세히 메모하였다. 보여주고 나서도 교단 측의 강한 항의 때문에 결국 옴진리교 특집 방송은 결방됐다. 당연히, 사카모토 변호사의 인터뷰도 묻히고 말았다. 이건 방송 언론사가 '취재원에 대한 기밀엄수 저널리즘의 원칙'을 모조리 엿과 바꿔먹은 그야말로 최악의 망나니짓이다. 더욱이 안 그래도 사카모토 변호사에게 가루가 되도록 때려 쳐 맞은 옴진리교에 이런 걸 보여줘 버렸으니...결국 1989년 11월 4일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다가 1995년 9월에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의 사체를 3개 현 지방 야산에서 찾아내면서 경찰은 수사를 재개했고 TBS에 협력을 요청했다. 여기서 그냥 협력해줬으면 욕은 덜 먹었을 것을 처음에 TBS는 옴진리교에 인터뷰 영상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그러다 1995년 10월 19일 닛폰 테레비에서 TBS가 임의로 영상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TBS는 자사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 사실을 반박했다.[3] 하지만 옴진리교 간부 하야카와가 TBS에서 비디오를 보여주었다고 진술했고 당시 그가 작성했던 메모도 공개되었다. 그런데도 TBS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1996년 3월에 하야카와의 메모의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자 결국 3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을 밝히고 당시 하야카와에게 테이프를 보여준 직원을 해고했지만 당연히 이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소자키 히로조 사장 등의 임원진이 사퇴했으나 상황의 파장은 이미 그런 식으로 끝나기에는 한참 모자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가 옴진리교를 비판하고 직접 신자들을 탈퇴시켜 데리고 나온 것만으로는 옴진리교와 정면충돌하지 않았는데, 민영방송국 TBS-TV가 취재원에 대한 기밀엄수 저널리즘의 원칙을 위반하고 사카모토 변호사와의 인터뷰 비디오테이프를 옴진리교에 보여줘 버린 후부터 문제가 시작됐고 그게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으로 터진 것이다. 다시 말해 TBS-TV가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
이 사건과 관련해 TBS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일본의 유명 진보 저널리스트 치쿠시 테츠야(筑紫 哲也)[4]는 TBS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한 3월 25일 TBS의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도중 "TBS는 오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라고 발언하며 사의를 표명하고 TBS 내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5] 해당 방송 영상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보도 기관에 대한 신뢰성이 엄청나게 흔들리게 되었으며, 때문에 이 사건은 일본 보도사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이후 1996년 4월 30일 저녁 이소자키 히로조 사장의 사과 및 재조사결과 보고 프로그램 '시청자 여러분께'와 자체 반성 옴부즈맨 프로그램 "증언" 을 제작해 방영하고#, 상술했듯이 다음날 5월 1일 이소자키 사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1996년 5월 20일 자숙 차원에서 24일까지 심야 프로 방영을 중단했다.당시 방송종료 영상
(자체 조사팀의 재조사결과를 보여준 후) 이상, 저희 TBS의 사카모토 변호사 테이프 문제에 관한 재조사 결과를 전해드렸습니다. 여러 가지 판단의 오류가 겹쳐 이번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거듭 사과드립니다.
저희들이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보도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이소자키는 내일 5월 1일을 기해서 사장을 사임하고 TBS가 경영진을 쇄신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스나하라 유키오(砂原幸雄) 사장이 조직이나 프로그램의 본연의 자세를 포함해 과감한 개선책을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실행하고 새로운 TBS로 다시 거듭나는 길을 전 회사가 하나가 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노력을 지켜봐주시고 의견, 조언을 보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소자키 히로조 사장의 사과 및 재조사결과 보고 프로그램 '시청자 여러분께' 마지막 맺는 말
저희들이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보도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이소자키는 내일 5월 1일을 기해서 사장을 사임하고 TBS가 경영진을 쇄신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스나하라 유키오(砂原幸雄) 사장이 조직이나 프로그램의 본연의 자세를 포함해 과감한 개선책을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실행하고 새로운 TBS로 다시 거듭나는 길을 전 회사가 하나가 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노력을 지켜봐주시고 의견, 조언을 보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소자키 히로조 사장의 사과 및 재조사결과 보고 프로그램 '시청자 여러분께' 마지막 맺는 말
1980년대부터 벌이는 프로그램마다 실패를 거듭하며 이미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던 TBS의 신뢰도는 이 사건 탓에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고 한참 뒤까지도 이 여파가 사라지지 않았다가 최근 들어서야 그럭저럭 회복 중인 추세이다. TBS가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니혼 TV와는 관계가 험악해졌다.
언론 관련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일본 내에서 TV 아사히의 '야라세 린치 사건'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3. 기타
- 알레프에 옴진리교 성향의 실태를 잠입 취재한 후 보도한 방송 VOD 3개가 나오는데 3번째 VOD의 9분 36초에 그 방송국 이름이 나온다. 바로 본 사건을 저지른 TBS 맞다. 일종의 병주고 약주는 꼴이며 자신의 동료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와 그 가족과 이별한 게 아직도 잊히지 않았을 법한 타키모토 타로(滝本太郎) 변호사는 2007년에 이 TBS 방송국에 출연해서 발언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자신이 출연한 비디오를 만든 TBS 방송국이 1989년에 비디오테이프를 함부로 유출시키는 사고를 저질러 자신의 동료와 그 가족을 잃게 만드는 데 일조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타키모토 본인도 옴진리교에게 테러를 당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더욱 그렇다.[6]
-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보도가 있으니 4분 50초까지를 참고로 봐보자.[7] 초반의 'TBS는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가족을 죽였다(TBSは坂本堤弁護士一家を殺した)'라는 멘트가 시청자의 뼈속까지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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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략 | 초월세계 · 존사마치 | |
관련 인물 | 사카모토 츠츠미 · 타키모토 타로 | |
후계 단체 | 알레프(Aleph) · 케로욘 클럽(ケロヨンクラブ)[키타자와] · 빛의 고리(ひかりの輪)[조유] · 야마다들의 집단(山田らの集団)[야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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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재 저작권 침해로 삭제되어서 다른 유튜브 링크 첨부.[2] 이 사람은 아사하라의 가르침을 맹신해서 오체투지를 6백 시간 동안 하거나, 히말라야에서 소화도 안 되는 흙덩이를 먹어가며 1주일 동안 명상수행을 하거나, 24시간을 자지 않고 양 무릎을 벨트로 묶은 채 결가부좌로 수행을 하는 등의 극한적인 고행을 했다.[3] 그리고 그 뉴스 프로그램은 후술한 자체 반성 옴부즈맨 프로그램 '증언'에 출연한 스기오 히데야(현 입헌민주당 소속 나가노현 선거구 참의원 의원) 기자가 진행한 'JNN 뉴스의 숲'이었다.[4] 당시 치쿠시 테츠야 뉴스 23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고 중립적인 논조와 주변 이웃 나라들에 대해서도 개념 있는 자세를 취해서 대한민국에도 쿠메 히로시와 함께 양심적인 언론인으로 자주 소개되곤 했다. 2008년 폐암으로 사망.[5]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후 2007년 11월까지 계속 프로그램에 출연했다.[6] 물론 조사에 협력하기 위해 출연했을 가능성이 높다. 덮어놓고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인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더욱 조사를 하고 싶었을 듯.[7] 방송 자체는 사쿠라 TV의 보도라 국제정세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당장 업로더의 계정명부터가 '(재일한국인은) 반도로 돌아가라'이다. 해당 사건 자체가 누가 봐도 명백한 좌파 언론의 실책이기 때문에 극우파들이 인용하기 딱 좋은 떡밥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