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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8:12

마하포샤


1. 개요2. 역사3. 경영 수법
3.1. 광고
4. 에피소드5. 점포6. 요식업체 경영
6.1. 맛있고 저렴한 집(うまかろう安かろう亭)6.2. 메뉴6.3. 이외에 운영한 점포6.4. 지점
7. 무기 밀수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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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um-MinamiAoyama-Signs.jpg

옴진리교1992년 1월 14일 사업 진출을 위해 세운 조립 PC 판매 회사. 위치는 〒107-0062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 7-5-12 마하포샤 빌딩 1층이었다.[1]

자본금은 걷은 헌금 3,000만엔으로 시작해 70억엔의 매출에 20억엔의 순수익을 남겼다. 노다 나루히토(명목상의 책임자, 히라마츠 야스오(실질 운영자)가 주요 직원으로 있었다.

구호를 섞은 전단지 배부를 치요다구 소토칸다의 길거리에서 행인의 눈길을 끌도록 하여 타사와 비교하여 대폭적인 저가로 PC를 판매함으로써 아키하바라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199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계기로 영업을 정지하고 2002년 12월 3일에 공식 폐업했다.

2. 역사

사명은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직접 지었으며 산스크리트어로 '대번영(大繁栄, mahapoṣa)'이라는 뜻이다.

신도를 노동력으로 이용해 당시 일본에서 널리 쓰이던 DOS/V 기반의 조립 PC를 판매했다. 제품은 교단 측에서 신도를 수행시킨다는 명목으로 신도를 무급으로 노동시켜서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저렴한 대신 A/S서비스가 좋지 않았다고 하며 이것 때문에 부가 서비스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컴덕들이 싼 맛에 굴리려고 많이 구매했다고 한다.[2]

신도를 동원해서 도쿄, 오사카 등에서 구호가 들어간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를 했으며 당시 홍보를 하던 신도는 전자상가를 자주 찾던 컴덕 사이에서 일종의 명물 취급을 받았다.

대만 타이베이시에도 '대번영'이라는 상호명으로 지점을 세웠고 호주 서부에는 부동산 회사 '마하포샤 오스트레일리아'가 설립되어 있었는데 호주 지국에서는 이 회사 명의로 1993년 7월에 목장을 약 50만 호주 달러(약 3000만 엔)로 구입한 후 대량의 약품류를 반입해 화학 물질을 제조하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에 대한 독성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호주 경찰은 사건 이후 이 목장에서 양의 시체를 발견했고 토양에서 사린 잔류물인 메틸포스폰산을 검출했다.

"출가해서 속세를 버렸을 인간이 어떻게 실제 사회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들 수 있으나 당시 옴진리교에서는 "일도 훌륭한 수행이 될 수 있는 워크(work)다"라는 교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3] 훗날 츠치야 마사미[4]는 법정에서 그 모순을 추궁당했을 때 "처음에는 존사가 화학 관련 업무를 하라고 해서 1991년 11월 하순에는 학생반에 있었지만, 전화로 갑자기 불려가 아사하라에게 '내가 본 비전(vision, 환시)에 따르면, 1997년부터 일본의 붕괴는 시작된다. 그러니 너희들이 현세에서 배운 것을 무라이 히데오에게 빌려주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포교나 무보수의 봉사활동이 주가 되었던 '워크'는 그렇게 아사하라에 의해 예언과 구제의 이름으로 내용이 변화해 갔다. 츠치야와 같이 전문 지식을 가진 신자가 옴진리교 내부에는 다양하게 존재했고 아사하라는 교묘하게 이를 이용했는데 교단 의사였던 하야시 이쿠오에게도 의료비 부정 청구를 지시했다. 여기에는 "국가도 보시를 하게 한다"는 합리화가 따라붙었다. 츠치야, 무라이, 하야시를 포함한 교단 내 엘리트들이 세속에서 체득한 전문 능력을 발휘한 덕분에 교단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 지향은 아사하라의 체포 수감 후에도 돈벌이 시스템으로 계속 기능하면서 교단의 유지를 도왔다.

컴퓨터 부문의 실질적 관리자는 홀리 네임 '난디아'인 히라마쓰 야스오(平松康夫)였는데 장사 수완을 크게 발휘하여 교단 내에서도 주목받고 있었으며 옴진리교에 입교하기 전 후지쯔 기술직 사원이었던 S.T를 비롯한 직속 정예 부대인 "난디아 그룹"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 그룹이 컴퓨터 부문을 담당하는 실질상의 중추부가 되었다. 히라미쓰의 사업은 상품 관리, 통신판매 관리, 유지 보수, 공장이나 점포 등의 부문으로 더욱 세분화되어 유령회사도 몇 개 운영할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옴진리교의 컴퓨터 사업부는 아키하바라에 'PC 레보' '더 그레이스풀' 'NetBank'의 3개 점포를 두고 있었다. 당초 교단은 이 점포와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1999년 9월 29일의 '교단 휴면 선언'의 회견석에서 컴퓨터 숍의 영업을 계속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아라키 홍보 부부장이 "컴퓨터 사업은 대외 활동과는 별도로 영업을 계속할 것"이라는 취지를 명시하면서 그 연관성이 간접적으로 인정되었다.

3. 경영 수법

조립의 실제 작업은 카미쿠이시키촌과 야시오시에 있던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주문은 현금 선불로 납기 2~3주가 규칙이며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고객으로부터는 '크레딧 신청서'를 보관하고 PC 수령 시 현금과 교환하여 반납함으로써 대금 수령이 뒤떨어지지 않는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었다.

완제품 외에 부품 단위로 판매도 하고 있었으며 A/S는 후술한 대로 미흡했지만 1993년부터 1994년까지 PC통신으로 게시판을 세웠다. 물론 일부 악평은 삭제되었고 주로 칭찬으로 가득한 글이 관리자에 의해 오르기도 했다.

3.1. 광고

전성기에는 10페이지 이상 있는 PR잡지인 'THE COMPUTER!(더 컴퓨터!)' 를 거리에서 무료 배포했는데 광고 외에 컴퓨터 관련 뉴스, Microsoft Windows 조작의 노하우, 업무상의 뒷이야기, 만화 'DOS/V 가면' 등의 내용이며 기사만 보기에는 종교적인 색채는 전혀 없었지만 광고 페이지에는 종교적인 독자 브랜드 이름을 붙인 숍 브랜드·PC의 선전이 있는 등 다른 일반적인 컴퓨터 광고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특이한 리듬의 CM을 부르며 DOS/V햇이란 이름의 컴퓨터 모양 모자를 쓰고 다니며 춤을 추고 전단지를 배부하는 특이한 활동을 했다.

4. 에피소드

5. 점포

모두 1995년까지 폐점했다.
그 외에 여명이라는 세타가야구를 본사로 하는 컴퓨터 운세를 하는 포장마차 점포가 시부야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6. 요식업체 경영

마하포샤는 주식회사로서도 있던지라 본 회사 이름으로 다양한 음식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6.1. 맛있고 저렴한 집(うまかろう安かろう亭)

돈코츠 라멘을 중점으로 팔던 점포로, 메뉴는 다른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본 메뉴(돈까스,카레)에 종교색이 강한 네이밍 메뉴를 더한 듯한 구성이었다.

또한, 교단 독자적인 음료인 '아스트랄 드링크'라는 것도 제공하기도 하였으며 '옴의 도시락 가게(オウムのお弁当屋さん)'라는 도시락 전문점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도시락 전문점에서는 홍보용으로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캐릭터를 썼으며 의외로 가성비와 서비스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다. 2017년 한 일본인이 집 정리 도중 우연히 발견한 '옴의 도시락 가게' 홍보 스티커.덧붙여서 도시락집은 아사하라가 말하길 '교단 내에서는 한직이었다'고 하는데, 아사하라가 일의 의의에 대해 설파하자 신자는 납득하고 일에 힘썼다고 전해진다.

룩룩 안녕하세요(닛폰 TV 계열)의 사회자였던 기시베 시로가 아사하라에게 인터뷰를 했을 때, 기시베가 스스로 옴 도시락 가게의 단골 손님이었다고 말했더니, 그때까지 교주의 풍모로 일관하던 아사하라가 갑자기 표정을 풀고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대했다고 한다.

식당들의 좋은 가성비는 당연하지만 직원들의 인건비가 공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여기서 일하는 신도들은 전원 무급으로 종사했다. 이후 노동법 위반 및 세금 납부 관련 문제가 생기자 교단 측에서 명목상으로 월급을 주긴 했지만, 신도가 이 월급을 도로 전액 기부하는 방식이었으므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6.2. 메뉴

6.3. 이외에 운영한 점포

6.4. 지점

7. 무기 밀수

컴퓨터만 만든 건 아니었는지, 러시아에도 지부를 두고 러시아 관료들을 매수해 Mi-17 헬리콥터를 구매해서 후지산 기슭에 밀반입했다고 한다. 원래 이 헬기는 11월 전쟁이라는 옴진리교의 대규모 사린 테러 계획에서 도쿄 상공에서 사린을 뿌릴 용도로 구매했으나, 일본 정부가 먼저 아사하라를 체포하면서 불발됐고, 이후 아사하라 탈옥 작전에 활용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그 전에 존재가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다.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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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옴진리교의 본부 사무소와 같은 빌딩이다. 옴진리교 해체 후 약 2009년까지 버려져 있다가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2] 처음에는 무급으로 노동시켰지만 노동법 위반 및 세금 납부 관련 문제가 생기자 교단 측에서 명목상으로 월급을 주고 신도가 이 월급을 전액 기부하는 식으로 눈속임을 하였다.[3] 선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하루 일 안하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잘 알려진 격언도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옴진리교가 이를 노동력 착취에 악용했다는 것이다.[4] 土谷正実. 홀리네임은 '보디사트바 크시티가르바'. 쓰쿠바대학에서 '탄화수소의 광화학반응'을 연구 주제로 물리화학 및 유기화학 석사를 취득하였으나 옴진리교에 입교하기 위해 박사 과정을 중퇴했다. 입교 이전부터 예지몽을 꾸는 등 신비체험을 자주 했으며 고등학생 시절 여자친구와의 불화로 괴로워하다가 자해하는 순간 마음이 기묘하게 후련해짐을 느끼고 '이 고통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종교'라고 여겨서 새로운 가치관을 설파하는 종교단체가 등장할 때까지 화학을 배우며 때를 기다렸는데 요가 교실을 통해서 옴진리교에 입교한 뒤 교단 내부에서 사린 가스 합성 성공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2011년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며 2018년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5] 아키하바라에서 처음으로 가전제품을 싸게 팔았던 가전 디스 카운터의 선구자격이다.[6] 실내흡연이 가능한 카페 혹은 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