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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23:12:10

스미토모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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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4대 자이바츠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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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자이바츠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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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게이레츠
(1991년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 이후 10년간 )
파일:스미토모 그룹 로고.svg 스미토모 · 파일:미쓰이 그룹 로고.svg 미쓰이 · 파일:미쓰비시 그룹 아이콘.svg 미쓰비시
후요 · 다이이치칸교 · 산와
현재의 기업 집단 파일:스미토모 그룹 로고.svg 스미토모 · 파일:미쓰이 그룹 로고.svg 미쓰이 · 파일:미쓰비시 그룹 아이콘.svg 미쓰비시 · 파일:Mizuho icon.jpg 미즈호
후지쯔 · 닛산 · 노무라 · 토요타
※자이바츠(財閥, 재벌)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게이레츠(系列, 계열)는 대전 이후 일본의 기업 집단을 각각 가리킨다.
※전후 미군정에 의해 해체 당하고 이후 1950년대부터 재결집을 했고 그것이 게이레츠가 됐다.
* 스즈키 자이바츠는 스즈키가 아닌 현재의 소지츠(Sojitz)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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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토모 그룹
[ruby(住友, ruby=すみとも)]グループ
SUMITOMO GROUP
파일:스미토모 그룹 로고.svg
국문 명칭 스미토모 그룹
정식 명칭 住友グループ
로마자 명칭 SUMITOMO Group
국가 일본
설립일 1590년, 1951년[1]
주소 도쿄도 주오구 신카와 2-27-1
창업주 스미토모 마사토모
대표
유형 기업 집단
시가 총액 3.808조 엔
웹 사이트 홍보위원회

1. 개요2. 창업3. 계열사
3.1. 주요 계열사3.2. 주요 과거 계열사3.3. 관련 기업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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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결속의 스미토모

미쓰비시, 미쓰이와 더불어 일본 전전을 이끌었던 3대 재벌 기업 집단 중 하나이다. 다른 재벌과 같이 2차대전 후 해체되었으나, 이후 스미토모은행,[2] 스미토모금속[3][4] 등을 중심으로 중역 모임이 구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업종 구성상 소비재가 적어[5] 셋 중에 가장 대외 인지도가 낮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업들이 속해있는 경우가 많다.

20세기말 불황에 따른 재계 재편에서는 스미토모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미토모은행, 스미토모금속 등 주요 계열사가 인수합병에 휘말리기도 했다. 묘하게 금융 계열사 다수가 미쓰이 계열 기업과 합병한 게 특징이다.

로고는 우물을 형상화한 CI로 스미토모 이름이 붙지 않은 기업[6]은 기본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2. 창업

창업자는 스미토모 마사토모로 에치젠 출신으로 원래 승려였으나[7] 직업에 큰 애정을 가지지 않았다. 스미토모는 1630년대 교토의 한 사찰에 책과 약을 파는 상점인 후지야(富士屋)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스미토모 가문은 오사카로 본거지를 옮기고 구리 제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제련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에도시대(1603~1867) 일본의 제련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8] 또한 에도시대부터 메이지시대(1868~1912) 초반까지 직접 구리광산 개발을 하여 관련 사업들을 키우며 성장하기 시작하며 기업의 틀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재벌 해체 정책에 의거해서 1946년 1월에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후 1949년 거꾸로 다른 재벌보다도 빠르게 비공개 사장 모임 백수회(白水会, はくすいかい 하쿠스이카이)를 결성해 재결집에 들어갔다. 1951년 4월 공식적으로 발족했으며 전전 마지막 스미토모합자회사 총이사 후루타 슌노스케, 스미토모 상사의 토우지 슌야, 스미토모화학공업의 도이 마사하루를 주축으로 재결집했다.

3. 계열사

일본의 기업집단이 대체로 그렇듯 엄밀하게 범위가 규정되지는 않으나, 일반적으로 스미토모그룹 홍보위원회 (33개사) 및 사장회인 학스이카이 (19개사) 소속 회사와 그 자회사 그룹을 계열사로 친다. 학스이카이 소속사는 모두 홍보위원회에도 들어 있다. 이들 기업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되고[9] 스미토모 집안의 경영철학인 ‘스미토모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공통점을 내세우고 있다.

3.1. 주요 계열사

홍보위원회 33개사. 이 중에 백수회 소속은 ○로 표기한다. 미쓰이 그룹과 겹친 계열사는 ☆ 표기. 스미토모 그룹의 중핵기업은 볼드체.

3.2. 주요 과거 계열사

3.3. 관련 기업

스미토모 그룹에는 들지 않으나 금융 관계상 관계가 친밀한 기업이다(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준계열'로 표기되어 있으나, 근거는 불분명). 이 중에 실제로는 타 재벌기업의 계열사인 경우가 많다.

4. 기타



[1] 백수회(스미토모 주요 계열사 사장단)가 정식 발족한 해[2]미쓰이스미토모은행.[3] 현 일본 제철. 과거 신일본제철과 합병하여 신일철주금(新日鉄住金, 신닛테쓰스미킨)이 되었고 후에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현재 그룹에서 이탈했다.[4] 일제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그 회사 맞다.[5] 미쓰비시는 말할 것조차 없고, 미쓰이 또한 '미쓰이' 이름을 단 기업 중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는 건 은행밖에 없다시피 했으나 미쓰코시 백화점 하나만으로도 먹고 들어간다.[6] 예를 들어 합병한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라든가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이라든가..[7] 법명은 구젠(空禅)으로, 밀교 계통인 열반종(나중에 천태종에 흡수됨) 소속 사찰에서 수행했다.[8] 에도시대 당시 나가사키를 통한 국제무역에서 초창기에는 이 일본의 최대 수출품이었으나 은의 생산이 격감하면서 에도시대 내내 구리가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와 중국 상인들이 가져온 물품에 대한 지불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막부의 주요 수출품인 구리의 생산과 유통은 막부의 지대한 관심사였는데 일본의 대표적 구리 광산인 아키타 번의 인나이 광산 등 일본 전국에서 생산된 구리는 현지에서 일차적인 가공을 거쳐 불순물이 함유된 상태로 모두 오사카로 보내져 막부의 감독하에서 오사카의 제련업자들이 최종 제련하였다. 당시 일본 내에서 구리를 최종 제련해서 은과 기타 불순물을 분리하고 순도높은 구리를 생산하는 기술은 오사카의 제련업자들이 1600년대 이래로 100년 넘게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한 막부의 시책(구리제련업을 오사카로 집중시킴으로써 구리의 생산을 완벽히 통제하고 수출용 구리와 화폐주조용 구리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시책)은 오사카의 제련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줬는데 스미토모 가문은 일본 최대 규모의 제련업자로써 조합 전체 의결권 8주 중 3주를 보유하고 있었다.[9] 실제 상호 출자 관계는 극히 제한적이다.[10] 미쓰이스미토모트러스트 홀딩스 산하. 하기 SMFG 산하 SMBC신탁은행과는 경쟁 관계이다.[11] 영문 명칭은 Sumitomo Mitsui로 반대로 쓴다. 실제 일본 기업이 M&A를 할 때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12] MS&AD인슈어런스그룹 산하이나 기존 스미토모, 미쓰이 그룹 소속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13] 던롭 타이어 브랜드의 아시아, 러시아 지역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5위의 타이어 회사이다.[14] 자회사로 QUO카드가 있으며 CSK시절에는 한때 세가를 소유했던 회사.[15] 스미토모상사 46%,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그룹 34% 등.[16] 스미토모정밀화학[17] 62식의 차체형. 개머리판과 권총 손잡이 대신 M2 같은 손잡이를 달았다. M60DM240D와 같은 형식이다.[18] 정확히 말하자면 결함품 총들의 문제를 덮고 정상적인 무기로 표기하여 출고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일부 M2의 경우 발사 속도 규정 미달, 74식은 사격 도중 잼 걸림(K3와 비슷한 상황이다), FN 미니미는 명중률 규정치 미달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스미토모 중공업 생산한 주요 기관총들은 전부 고자화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점을 염두에 두어 국가 차원에서 전부 수거해 대대적인 정비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 꼭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