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34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903호 904호 905호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김성일 종가 전적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보물 제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古代 그리스 靑銅 冑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국립중앙박물관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청동용구
수량/면적 1개
지정연도 1987년 3월 7일
제작시기 기타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64303_STD.jpg
1. 개요2. 양도 과정3. 학술적 가치4. 기타5. 외부 링크6. 보물 제904호
[clearfix]

1. 개요

古代 그리스 靑銅 투구. 대한민국 보물 제904호.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설명

1936 베를린 올림픽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이 우승의 부상으로 받은 청동투구. 한국 보물 중 외국에서 제작된 것으로는 4번째 보물[1]이자, 한국의 국가 지정문화재 중 서양에서 제작된 문화재로는 유일하게 구체적 유입 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2] 손기정이 1994년 국가에 기증해서 국립중앙박물관 2층 기증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서구의 유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2. 양도 과정


본래 마라톤은 마라톤 전투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40㎞를 달려온 병사 페이피데스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종목이다. 그래서 1900 파리 올림픽부터 마라톤 우승자에게 고대 그리스의 유물을 부상으로 주는 관행이 있었다. 이 관행은 그리스 당국에서 고대 유물의 반출을 금지한 후에 폐지되었는데, 이것이 베를린 올림픽 직전에 폐지되었기에 대놓고 수여하기가 머쓱한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IOC에서도 아마추어 우승자에게 메달 이외의 부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적극적으로 손기정에게 전달할 생각이 없었고,[3] 일본 역시 식민지 출신의 인물이 본토 선수들보다 더 유명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통지를 안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손기정 본인도 이 투구가 자신에게 수여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냥 귀국해버렸고, 수여되지 못한 투구는 베를린의 한 박물관으로 옮겨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75년, 베를린 올림픽 제패 40주년 기념 전시회를 열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던 손기정이 우연히 베를린 올림픽 이후에 일본 임원으로부터 받은 사진첩을 보면서 자신에게 수여되었어야 했던 투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에 당시 독일에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노수웅이란 사람이 1년 6개월의 탐문 끝에 이 투구가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이후 10여 년의 협상을 거쳐 1986년에 이르러서야 유물을 기증했던 그리스의 언론사 '이 브라디니(I Vradyni, Η Βραδυνή)' 측의 주선 하에, 이 투구는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려고 그리스 정부가 반출 허가를 해준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어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을 맞아 손기정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파일:1116_12.jpg

돌려받았을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손기정이 투구를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 머쓱한 장면이 있다. 장두형인 서양인과 단두형인 동양인의 두상 차이도 있겠지만 이 투구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8세기로 추정되는데, 학자들이 기원전 7세기에 조성된 고대 공동묘지의 유골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시절 그리스인 남자의 평균 키는 162~165㎝ 정도로 손기정의 키 170㎝(흔히 160㎝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보다 훨씬 작았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장식적인 목적에서 처음부터 머리 위에 얹게끔 만들어진 거라는 의견도 있긴 한데 코린토스 투구가 방어구에서 장식용으로 변화해간 것은 후기의 일이고, 이 투구는 코린토스 양식 중에도 극초기에 해당한다.

손기정의 외손자인 이준승(現 손기정기념재단 이사장)에 의하면 당연하게도 손기정은 이걸 자택에 두고 아주 끔찍이 아꼈는데, 이를 보던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국가에 기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022년에 기증관을 새로 열면서 그 안에 별도의 전시 공간을 조성하여 단독으로 소중히 전시되고 있다.

3. 학술적 가치

파일:curator_17_1.jpg
이 투구는 기원전 8세기 경의 코린토스 양식으로 제작된 투구로, 제우스를 모신 신전 유적지에서 1875년에 출토된 진품 유물이다. 현존하는 코린토스 양식 투구들 가운데 가장 초기 시기에 제작된 것 중 하나로 학술적인 가치도 대단히 높고, 보존상태도 매우 뛰어나다.[4] 그래서 고대 그리스 전쟁사를 연구하는 외국 역사학자들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서 이 투구를 조사하기도 한다.

4. 기타

5. 외부 링크

6. 보물 제904호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경기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받은 높이 21.5㎝의 그리스의 청동투구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해 올림피아에서 발굴되었다.

형태를 보면 머리에 썼을 때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리도록 만들어졌으며, 머리 뒷부분은 목까지 완전히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눈과 입의 노출을 위해 도려낸 부분과 목과 접촉하는 부분에는 윤곽선을 따라 실을 꿸 수 있도록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투구 안쪽에 천을 대어 머리에 썼을 때 완충 효과를 생각했던 것 같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수여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않고,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그리스 부라딘 신문사의 주선으로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되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378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378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첫번째는 보물 제393호 전등사 범종. 해방 후 부천 병기창에서 발견되었다. 명문을 통해 1097년 주조되어 중국 허난성에 있는 인 숭명사의 종이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냈지만 어떻게 한국까지 건너왔는지는 알 수 없으며(태평양 전쟁일본 제국이 녹여서 사용하려던 철제품으로 추측만 할 뿐), 2019년 현재 전등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두번째 보물은 보물 제440호인 통영 충렬사 팔사품 일괄이다. 명나라만력제이순신 장군 사후 하사했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 수군 도독이던 진린이 이순신의 가족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일단 어느 쪽이든 명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세번째 보물은 보물 제668-4호인 권응수 장군 유물 장검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장수를 죽이고 노획한 일본도.[2] 물론 보물 제635호인 경주 계림로 보검 역시, 동로마 제국 시기의 트라키아 지방(오늘날의 불가리아 일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만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확실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국보 제193호로 지정된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보물 제620호 천마총 유리잔, 보물 제624호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등은 정확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지만 로마 제국 치하의 레반트 지역에서 수입했다는 것까지는 확실하다.[3] 지금도 IOC는 아마추어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메달 이외에는 그 어떤 부상도 주지 않으며, 때문에 본문의 투구를 포함해서 여태껏 선수들에게 주어진 부상은 개최국에서 수여한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옥메달이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의 운석 금메달, 그리고 본문의 청동 투구도 모두 각각 중국, 러시아, 독일 정부에서 수여한 것이다.[4] 청동은 녹슬 때 2가지 테크트리가 있다. 하나는 염기성탄산구리, 다른 하나는 염화구리(Ⅰ)이다. 염기성탄산구리 녹은 추가적인 부식을 방호해 주지만, 염화구리(Ⅰ) 녹이 생성되면 끝장이다. 저 상태로 수분이나 산소가 닿으면 형태를 잃고 바스라지기 때문. 이것 때문에 청동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물건이라도 보존 상태가 심히 운을 많이 탄다. 금속 유물이 2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형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