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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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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영웅
共和國英雄
Hero of the Republic
파일:공화국영웅 메달.svg
파일:공화국영웅 약장.svg
제정일 1950년 6월 30일
국가
[[북한|]][[틀:국기|]][[틀:국기|]]
종류 영웅칭호
수훈자 6,116명
수훈 대상
상위 칭호 없음
하위 칭호 로력영웅

1. 개요2. 상세3. 수훈자 목록
3.1. 목록3.2. 외국인3.3. 중국인민지원군 수훈자3.4. 광명성 공로 수훈자3.5.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수훈자
4. 기타 수훈 대상
4.1. 무기

[clearfix]

1. 개요

파일:attachment/lgshrof.jpg
2013년 7월에 이 칭호를 받은 인민보안부 교통보안원 (現 사회보안성 교통안전원) 리경심. 칭호와 함께 수여된 국기훈장 제1급도 볼 수 있다.[1][2]

북한 최고 등급의 칭호이자 훈장으로,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이다. 소비에트 연방 영웅을 모방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데,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6월 30일에 제정되었다. 제정 당시에는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3]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공화국영웅 훈장이 가장 첫 번째로 수여된 날짜는 제정된 지 보름 뒤인 1950년 7월 15일이고, 12명이 동시 수훈하였다.

공화국영웅 메달은 김일성훈장이나 김정일훈장과 비슷한 금색 오각별 안에 원으로 둘러싸인 별이 들어가 있는데, 별 모양도 소련영웅의 그것과 똑같다. 옷에 달 때는 붉은 바탕에 왼쪽과 오른쪽 가장자리에 하얀 선이 들어가 있는 금속 핀을 연결해 상의 오른편(착용자 기준 왼쪽)에 단다.

2. 상세

제一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의 영예이며 국가 앞에서 개인적 또는 집단적으로 영웅적 위훈을 세운 자에 대하여 이를 수여한다.
제二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이를 수여한다.
제三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은 이 칭호와 동시에 국기훈장 제1급 금별메달 및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표창장을 수여받는다.
제四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의 칭호를 받은 자가 거듭하여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의 칭호를 받을만한 영웅적 위훈을 세운 경우에는 두 번째 금별메달을 수여하며 이와 아울러 그의 영웅적 위훈을 찬양 기념하기 위하여 그 영웅의 고향에 공훈사적을 새긴 동상을 건립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표창장을 수여한다.
제五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의 수여와 동시에 받는 국기훈장 제1급에 따르는 년금은 규정액의 2배로 한다.
제六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는 영웅적 위훈을 세운 자가 사망한 경우라도 이를 수여한다.
제七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자는 국기훈장 제1 제2 제3급에 관한 규정에 의한 모든 특전과 권리를 향유한다.
제八조.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는 조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만이 이를 박탈할 수 있다.
제九조. 금별메달은 왼편 가슴 상부에 패용한다.
조선 인민공화국 영웅 칭호에 관한 규정
공화국영웅칭호는 특별한 전공이 있는 군인들에게 주로 수여되는데, 군인 외에도 고위 정치인이나 철도 종사자, 안전원(경찰관) 등이 받기도 하고, 아주 가끔 사람이 아닌 단체나 기관, 건물, 물건 등에게 수여되기도 한다. 또한 남한의 무궁화대훈장 같은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 피델 카스트로호스니 무바라크, 폴 포트,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등 북한의 우방국 지도자들에게도 수여된다.

북한 측에 의하면 6.25 전쟁 당시의 공적으로 총 627명의 조선인민군 군인이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고 하는데,[4][5] 일반적으로는 적 50명 이상을 사살하거나,[6] 선전감으로 쓸 수 있는 특별한 공적[7]을 쌓으면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여받기가 어려운 칭호이니만큼, 이 칭호를 수여받은 군인들 중에서는 살아서 수여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사 이후 추서 형식으로 받게 된 경우도 매우 많았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아니었음에도 해당 칭호를 수여받은 군인들이 있었는데, 북한을 지원한 중공군 중에서도 수여받은 군인들이 있었다. 중국 측에 의하면 6.25 전쟁 당시 총 12명의 중공군이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종의 '국위 선양'에 대한 치하 차원에서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에는 군인 외의 수훈자가 급증하기도 하는데, 2012년 12월 인공위성 광명성 3호의 발사가 성공하자 무려 201명의 과학자와 위성 개발/발사 관련자들에게 동시 수훈된 예가 대표적이다. 이어 2014년 1월에도 제4차 지하 핵실험을 감행한 뒤 마찬가지로 200명의 관계자들에게 이 호칭을 수여했다.

이런 사례 외에 이 칭호가 주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세계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우승한 여성 마라톤 선수 정성옥의 경우 원래대로라면 공화국영웅이 아닌 로력영웅 칭호가 수여될 예정이었으나 경기 후 해외 언론들과 한 인터뷰에서 '내가 우승한 것은 모두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덕'이라며 김일성김정일을 열광적으로 찬양하게 되면서 이 칭호로 받게 되었다. 겨우 저 정도 말로 영웅 칭호를 받은 건 아니고,[8] 풀버전을 설명하자면 우승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결승지점에서 수령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고 말한 것에 김정일이 감동한 것이다. 또한 공화국영웅 칭호 외에도 벤츠 400, 평양의 고급 주택를 받았으며 우승 상금 5만 달러도 모두 가져갔다고 한다.[9]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6개나 딴 여자 유도선수 계순희도 로력영웅이고, 외화 상금도 딸라벌이에 혈안이 된 북한에 있어서 평소라면 상금을 몰수했으면 몰수했지 선수에게 그대로 줄 리 만무하니, 말 한 마디로 완전 특급 대우를 한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뒤 조선신보에 "애인이 직접 채워 준 손목시계를 보며 힘을 내 우승했다"라고 털어놓았다는데, 아무래도 립 서비스에 불과한 말에 위대하신 국방위원장께서 홀라당 넘어가 버린 모양이다.

수훈자는 제1급 국기훈장을 동시에 받도록 되어 있고, 소련영웅 훈장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에게도 수여할 수 있다. 동시에 수훈자의 고향이나 묘지에는 반신상 동상이 기본적으로 세워지고, 그 외에 수훈자의 이름을 딴 학교나 공장이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군인이 수훈하였을 경우에는 해당 수훈자가 속한 부대의 명칭에 그 수훈자의 이름과 영웅 칭호를 추가로 넣기도 한다.[10]

다른 북한의 훈장도 마찬가지지만, 전공도 별로 없으면서 정치적인 배려로 쓸데없이 수상하는 똥별이나 여타 높으신 분들이 늘어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화국영웅+영예군인 콤보의 가족 중에서도 '맥주표' 되팔이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이베이에서는 2500달러에 팔린다고 한다

3. 수훈자 목록

3.1. 목록

공화국4중영웅
공화국3중영웅
공화국2중영웅
공화국영웅

3.2. 외국인

3.3. 중국인민지원군 수훈자

3.4. 광명성 공로 수훈자

2012. 인공위성 광명성 3호 발사 성공 공로로 수훈한 명단

3.5.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수훈자

김영일을 제외한 전원 총살 및 전사했으며 김영일은 행방불명 되었다. 이 중 김동원만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김동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원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안장되었다.

4. 기타 수훈 대상

사람이 아닌 무기에도 이 칭호가 붙는 경우가 있다.

4.1. 무기



[1] 평범한 교통경찰이 어떻게 공화국영웅이 되었는지 의문점이 있었다. 길가에 있던 김씨 일가의 이름이 들어간 선전판에서 발생한 화재를 막은 공로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김정은의 자가용을 향해 달려오는 차량을 막아 교통사고를 막았다는 공로였음이 밝혀졌다. 이 사람은 공화국영웅칭호 수여 후 인터뷰를 하였는데, 눈물을 글썽이고 울면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뭔가 슬퍼보이는 표정을 짓는 것도 바로 이 때문.[2] 공화국영웅 칭호 덕분에 계급도 소좌(소령)로 승격되었다.[3] 여기서 말하는 '조선인민공화국'은 이 나라가 아니라, '조선의 인민공화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조선과 인민공화국 사이에 띄어쓰기 표기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4년이나 지나서야 정정했다. 다만 전쟁중에 제정된것을 감안하면 전쟁통에 정신이 없어서 한낯 훈장 이름 잘못쓰인거 하나 수정할 여유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조선인민공화국 영웅’ 제정·수정 ‘해프닝’ 특히 이 훈장 이름이 정정되기 1년전인 1953년에는 6.25 전쟁으로 정권 자체가 존망위기에 걸려있던 때라 훈장 이름따위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4] 훗날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서훈이 취소된 사람들도 있었기에 실제로는 최소 630여명 이상이 수여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5] 다만 627명이라는 숫자는 전후 수훈 및 추서된 경우를 포함한 숫자이고, 6.25 전쟁 기간 동안 수훈 및 추서된 인원은 118명이다. 휴전 이후 전후수훈 및 추서가 진행되면서 한동안 533명으로 유지되었다가 뒤늦게 받은 인원이 다시 늘어 현재는 627명이다.[6] 당시 북한에서는 사살한 인원수 대로 급을 맞추어서 훈장을 지급하였다. (낮은 순서대로 군공메달-10명, 영예훈장 2급-15명, 영예훈장 1급-20명, 국기훈장 2급-25명, 국기훈장 1급-30명, 공화국영웅-50명이었다.)[7] 지휘를 잘 한다던가, 특공을 한다던가 등등.[8] 저 정도 수준은 신격화의 정점에 오른 김씨왕조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안 붙일래야 안 붙일 수가 없는 일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북한에서 이런 수사는 빼고 해석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9] 정성옥 관련 일화 출처 정성옥의 정신력.[10] 예를 들어, 근위 제6 보병사단 관하의 '한계렬 영웅중대' 라던지, '근위 제56 김지상 영웅추격기비행련대' 와 그 예하 부대 중 하나인 '리문순 영웅대대' 라던지. (다만, 근위 칭호는 공화국영웅 칭호와는 별개의 칭호이다.)[11] 지만원은 김동원이 광주사태에 참가한 공으로 공화국 영웅에 수여되었다고 우기고 있으나 실제로 김동원에게 공화국 영웅에 수여된 날짜는 1980년 3월 28일5.18 광주 민주화 운동보다 2개월이나 전의 일이다.[12] 1996년 강릉에서 사망했으므로 사후 추서.[13] 해당 인물은 특이하게 첫 수훈을 한 후 겨우 보름만에 두번째 수훈을 한 경우이다.[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7] 후에 김책공군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EC-121 격추 사건을 주도[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1호수훈자] [26] 피랍된 푸에블로함은 북한 평양에 정박되어 박물관화 되어있는데, 이 푸에블로함 박물관(?)이 개방되면 항상 박인호가 해군 군관 피복을 입고 안내를 위해 나온다고 한다.[1호수훈자] [28] 4사단에서 10사단으로 배속 전환됨[29] 여담으로, 오늘날 북한에서 '근위 6사단 출신 영웅' 이라고 하면 이 사람이 주요 인물로 언급되며, 당시의 6사단장이자 공화국2중영웅이었던 방호산보다도 더 인지도가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방호산은 8월 종파사건을 기점으로 숙청 당해 등한시되었기 때문에...[A] 진위 여부 불명[A] 진위 여부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