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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1:19:41

관지림

<colcolor=#fff><colbgcolor=#7f00ff> 관지림
關之琳
파일:관지림.jpg
본명 關之琳 (Gwaan1 zi1 lam4 관지람)광동어
关之琳 (Guān Zhīlín 관즈린)표준중국어
Rosamund Kwan (로저먼드 콴)영어
출생 1962년 9월 24일 ([age(1962-09-24)]세)
영국령 홍콩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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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만주족
직업 배우
신체 170cm
활동 1981년 ~ 2010년
종교 가톨릭
링크 파일:시나 웨이보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출연작
3.1. 영화
4. 여담
4.1. 결혼과 이혼4.2. 복잡한 사생활4.3. 가족사4.4. 부동산 재벌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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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www.mingpaoweekly.com/mingpaoweekly_2015-11-20_19-40-41.jpg[1]

홍콩의 배우.

1980년대 주로 활동했던 홍콩의 여배우이다.

2. 상세

특이하게도 부계가 만주족, 그것도 귀족인 팔기군 출신이다.[2] 더군다나, 강희제 때 4인의 보정대신 중 1명이었지만 황제를 능멸해서 숙청당했던 구왈기야 오보이가 속했던 구왈기야(과이가)씨 출신이다.[3] 구왈기야씨가 한족 성씨를 고르는 과정에서 독음이 비슷한 관씨를 택했기 때문이다. 모계는 광동인이다. 아버지1950년대~1960년대에 활동한 홍콩의 유명 배우인 관산(關山)이다.[4] 어머니는 홍콩장성전영공사(香港長城電影公司) 소속의 유명 여배우였던 장빙천(張冰茜)이다.

그래서 모어는 광동어이고 영국식 영어표준 중국어를 같이 쓴다.

원래 만주족은 화엄종 또는 티베트 불교를 주로 믿었으나, 청나라가 망하면서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례도 많았다. 그리하여 관지림도 세례명이 로자문드(Rosamund)인 가톨릭 신자이다.

파일:external/img01.imgcdc.com/r_2015110910454330838400.jpg
어릴 때부터 빼어난 미모여서,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도드라진다. 어머니가 대단한 미모를 가졌으며,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듯 하다. 어머니 장빙천은 1960년대를 끝으로 배우를 그만두었지만, 당시 사진을 보면 관지림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

1981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여적전시(麗的電視)[5]에 들어가 배우 수업을 받았는데,데뷔했을 때부터 성형의혹을 많이 받았으나 어릴 적 사진이 줄줄이 공개되면서 그런 의혹은 자취를 감췄다.

첫 TV 작업은 《첨첨입사미(甜甜廿四味)》로 당시 같이 출연한 남자배우들은 장국영(張國榮), 종보라(鍾保羅), 막소총(莫少聰) 등이다. 1982년에는 영화 《재견강호(再見江湖)》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1985년에는 성룡, 홍금보, 원표의 작품 《하일복성》(夏日福星: 국내개봉명 칠복성七福星)을 통해 유명세를 탔다. 좋은 몸매를 살짝, 그러나 과감히 노출한 것이 큰 반향을 얻어 이때 홍콩 내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남성팬들이 생겼다.

1990년에는 이연걸과 함께 공연한 《황비홍(黃飛鴻)》에서 십삼이(十三姨)[6] 역을 맡았는데 홍콩 영화 역사상 가장 고전적인 여성상이라 평가받았다. 그러면서도 서양 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여서 양장을 즐겨입고 기독교를 믿는 등[7] 전형적인 개화기 여성으로도 묘사된다.

유덕화와 함께 출연한 영화가 많은데 11편이나 된다.

3. 출연작

3.1. 영화

4. 여담

4.1. 결혼과 이혼

아버지인 관산은 아내와 이혼하고 딸인 관지림과 살아왔다고 한다. 관지림은 상술했다시피 만 18세[8]에 연예계에 데뷔했는데, 19세가 되던 그 다음 해, 1981년에 결혼을 발표해 연예계를 놀라게 했다. 신랑은 16세 연상인 부유한 사업가 왕국정(王國旌)이었는데, 아버지인 관산은 경악하여 반대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둘은 만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관산은 “나에게는 사위가 없다”며 언론과 회견하기도 했고, 결혼하면 부녀관계를 끊겠다고까지 했으나, 관지림은 고집을 꺾지 않고 끝내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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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안경(응?)을 낀 사람이 왕국정. 촌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시대가 한참 옛날인 1981년이라는 걸 명심하자. 그때는 제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짤없이 스타일이 촌스러워 보였다.

파일:external/static.apple.nextmedia.com/1446621511_9de1.jpg

그러나 이 결혼은 9개월 후 둘의 결별로 끝났다. 결혼 후에도 연예계 생활을 하고 싶어한 관지림과, 가정주부로 있어주길 바라는 남편 사이에서 갈등이 컸다고 하며, 관지림은 그때 자신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영화계로 다시 관지림이 돌아왔을 때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였다. 당시 유덕화(劉德華, Andy Lau)와 공동출연이 잦았기에 사람들은 둘을 스크린 커플로 보기도 했다.

2014년에는 대만의 재벌인 천타이밍(陳泰銘)과 결혼했다가 2015년에 이혼했다.#

4.2. 복잡한 사생활

한국에서는 왕년의 미녀 배우 정도로만 기억하지만 고향인 홍콩이나 전 남편의 고향인 대만중화권에서는 현재 인식이 나쁜 여배우 중 한 명인데 홍콩 갑부들과 두 번이나 결혼했다 1년을 채 넘기기도 전에 두 번 다 이혼해서 골드디거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는데다 그 외에도 계속되는 불륜 루머 때문에 가정파탄범 이미지가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9]

특히 2017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불륜 루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내가 주도한 게 아니라면 괜찮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참기 힘들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중화권에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다른 토크쇼에 나와서는 싱글, 유부남 가리지 않고 여러명 관계를 맺어 보았다고 말해 사실상 여러 불륜을 저질렀음을 시인했다.

안 좋은 루머도 많은데, 변태적인 성향의 재벌 유난웅(劉鑾雄, Joseph Lau)을 만나다가 골프공(高爾夫球 關之琳) 응급 수술 루머가 중화권에 널리 퍼지면서 여배우로서 상당히 수치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10]

4.3. 가족사

관지림의 아버지 관산은 젊은 시절 홍콩영화계에서 대단한 입지를 가졌던 영화인이었으며 영화 아Q정전으로 1958년 제11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거물배우였었다. 국제 영화제에서 홍콩배우가 수상한 일이 관산의 경우가 처음이라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한국의 배우 강수연이 그랬었듯이 홍콩영화계에서의 관산의 명성은 높았다.

관산은 여배우 장빙천과 결혼을 한 후에도 바람을 많이 피웠다고 한다. 대(代)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11] 남편 관산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고 생각한 장빙천은 관산과의 사이에서 늦둥이 아들을 낳게 되지만 아들을 낳았다고 관산이 가정적인 남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계속된 가정 불화 속에 장빈천은 결국 이혼을 택하게 되었다.

늦둥이 어린 아들은 장빙천이 미국에서 키우고 관산은 새 애인과 함께 대만으로 건너가서 사업을 키웠다. 관지림은 홍콩에서 생활을 하지만 이후 관산의 사업이 기우는 등의 재정적인 문제가 생기자 관지림은 홍콩에서 연예계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영제(影帝 영화 황제) 관산의 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화려한 미모의 관지림은, 연신 스캔들을 만들어냈고 그 스캔들에는 같은 작품 출연 배우 사이의 연애 범위를 넘어 재벌 사업가와의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졌고 연상의 돈많은 바람둥이 재벌과 서둘러 결혼한 뒤 얼마 못 가서 이혼해버리는 과정이 이어졌다.

성룡 홍금보 등이 만든 영화에 출연했을 때는 갓 임봉교와 결혼했던 성룡과 뜬금 없는 스캔들이 생기면서 임봉교를 힘들게 하기도 했으며 이연걸과 황비홍 시리즈를 찍을 때 이연걸과 사귀고 있던 여배우 이지(利智)가 관지림 때문에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리지는 자신을 향한 이연걸의 마음이 여전히 단단함을 확인한 뒤 자신과의 사랑을 끝까지 지켜준 이연걸과의 결혼을 택하게 된다.

바람둥이 아버지 관산과의 갈등으로 인해 일찍 아버지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 돈 많은 남자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끊임없이 찾아다녔던 관지림은 본인의 일생에 큰 악영향을 줬던 아버지 관산의 죽음[12]을 맞이한 이후 현타가 왔는지 자신의 사후 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관산의 말년에는 어느정도 부녀가 화해를 했는지 관지림이 종종 관산을 모시고 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4.4. 부동산 재벌

전성기의 홍콩영화에서 활동했던 홍콩 배우들은 개런티로 안정적인 투자처인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홍콩이 중국에 귀속된 이후, 중국 재벌들이 홍콩의 부동산에 몰려들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음에 따라서 대부분 재벌이 되었다. 성룡, 주윤발 등의 A급 배우들이 현재 수천억~수조원의 거부가 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13] 관지림도 마찬가지인데, 부동산 투자에서 많은 재미를 봤다는 소식이 있었다. 2007년에는 리펄스 베이(Repulse Bay), 2010년에는 홍콩에서도 좀 외곽인 클리어워터 베이(Clear Water Bay/淺水灣. 한국 한자음으로는 천수만)[14]의 더 노틸러스(The Nautilus) 저택 등을 매입하였는데, 관지림이 매입한 것들은 이후 두 배 이상 오른 것도 있는 등, 그녀의 재산은 5억 홍콩달러의 가치로 추정되었을 정도였다.

2010년에는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자선이나 공익활동 등에 치중했다.

한편 세간에 따르면 고급시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 #

5. 기타



[1] 황비홍(영화) 출연 당시.[2] 관지림의 부친인 관산은 홍콩이나 광둥성 출신이 아니고 동북 3성 중 하나인 랴오닝성 선양 출신이었으나, 국공내전 당시 중국본토에서 홍콩으로 피난 온 케이스다. 랴오닝성은 현재 한족화되긴 했지만 만주족이 굉장히 많다.[3] 다만 같은 가문은 아니다. 일단 구왈기야 부족을 뿌리로 두고 있으니 아주 멀리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조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보이는 양황기 출신이고 관지림 가문은 양람기 출신이다. 최소 수백년 전부터 이미 서로 남남이라는 것.[4] 국내에서는 영웅본색 2의 고영배나 1960년대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그 유명한 영화 <스잔나> 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청(리칭)의 아버지 역할로 유명한 배우다.[5] 지금의 아주전시유한공사(亞洲電視有限公司), 줄여서 아시(亞視)로, 영어식으로 아시아 텔레비전(Asia Television Limited)으로 알려졌다.[6] 13번째 이모라는 뜻이다.[7] 실제로도 관지림은 가톨릭 신자다.[8] 한국식 세는 나이로는 19~20살이라 좀 더 많다.[9] 후배 배우인 이가흔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는 추억의 여배우 정도 이미지이지만 중화권에서는 비호감 스타이다. 관지림과 외도하고 이가흔과도 외도를 했던 재벌 유난웅의 본부인은 관지림, 이가흔 두 상간녀 중 이가흔을 더 혹평했었다고. 관지림은 조용히(?) 불륜을 했지만 이가흔은 본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히는 등 악질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전 관지림이 마청위(馬淸偉)와 불륜을 저지르던 시절에는 관지림이 마청위의 본처 진미기(陳美琪)에게 전화로 조롱을 퍼부어 진미기가 스트레스로 유산하게 되는 일까지 있었다. 마청위는 60년대 홍콩 5대 부자 마금용 아들이었으며 여배우 진미기와 결혼 후 관지림과 외도를 하고 이혼 후 여배우 설지륜과 결혼했다가 이혼하기도 했던, 여배우 전문 호색가였다.[10] 루머의 내용은 변태인 유난웅이 골프공을 관지림의 몸안에 넣었다가 안빠져서(...) 관지림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내용인데, 거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내용이니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말자.[11] 임청하가 재벌 남편과 뒤늦게 이혼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둘 사이에 딸만 있기 때문에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이혼을 택했다는 얘기도 있다.[12] 2012년 10월 1일이 관산의 기일이다.[13] 홍콩영화 전성기에 A급이라고 볼 수 없었던 임달화조차 현재 수천억대의 자산을 가진 부동산 재벌이다.[14] 홍콩과기대학이 이 쪽에 있다.[15] 알란 탐, 성룡, 오맹달, 임달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