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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7:46:19

괭이부리말 아이들

파일:attachment/_MOMSS~1.jpg

1. 개요2. 구성3. 등장인물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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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창작과 비평사(현재 창비)가 주최한 '좋은 어린이책'에서 수상을 받은 김중미가 동년 7월 15일 출간한 장편 창작동화로 삽화는 어린이책 그림 작가인 송진헌이 그렸다.

2. 구성

2000년 7월에 발간한 초판은 2권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01년 10월 30일 1권짜리 양장본으로 재출간했다. 2권짜리 초판은 어린이청소년용이었는데 성인용 판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의해 양장본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원래 2권짜리 초판은 1권이 157페이지, 2권이 164페이지로 모두 321페이지였는데 양장본은 274페이지로 줄어들었다. 초판과 양장본은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으나, 대신 양장본은 삽화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런데 2013년 양장본이 다시 출간되었는데 이번에는 320페이지로 초판과 거의 동일한 페이지로 늘어나 삽화가 다시 늘어났다.

작가 본인[1]1987년부터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에 거주한 체험을 바탕[2]으로 지역주민들의 진솔한 삶을 그려낸 소설로, 1990년대 후반[3]인천광역시, 특히 괭이부리말이 위치한 동인천과 만석부두 일대를 배경으로 쌍둥이 자매인 숙자와 숙희 자매, 그리고 영호와 영호가 데리고 사는 아이들인 동준과 동수 형제, 명환 등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MBC 특별기획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으며[4] 2013년 아동문학 최초로 판매량이 200만부를 돌파하였다. 기본적으로는 어린이 및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책으로 2002년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다. 현재는 청소년필독서로 자리잡아 꾸준히 읽히고 있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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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1] 실제 작가인 김중미는 1963년생으로 인천(당시는 경기도 인천시) 출신이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2] '괭이부리말'이라는 명칭은 작품의 배경이 된 만석동의 별칭으로, 속칭 '아까사끼촌(赤崎村)'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곳이다. 마을 명칭이 유래된 섬 묘도(猫島)는 구한말에 일본인 지주에 의해 간척이 진행되어 없어진 곳으로, 한반도 최초의 해수욕장인 묘도해수욕장이 있던 곳이며, 현재 북성포구가 있는 곳 근처이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일본군 잠수함 건조에 동원된 노무자들이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고 있었던 곳이었으며, 6.25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가난한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빈민촌이 형성된 동네이고 2009년 MBC 무한도전에서 방영했던 철거지역을 주 무대로 한 여드름 브레이크 특집 마지막 부분에도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3] 정확히는 1998~1999년 경으로 추정된다. 작중 내용을 보면 영호가 영종도 신공항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든지(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3월에 개항했다.), 당시 인천에 공장을 두고 있던 대우중공업(현 HD현대인프라코어 인천공장)을 살짝 비튼 대영중공업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든지, 숙자 아버지의 고향인 당진(당시 당진군. 현재의 당진시로는 2012년에 승격되었다.)까지 가는 서해안고속도로가 공사 중이라던지(서해안고속도로는 2001년 완전 개통되었고 고속도로법 개정 이전에는 서울특별시 금천구의 금천IC가 아닌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위치한 서창JC가 시점이었으며, 현재 영동고속도로 구간인 서창-안산 구간이 당시에는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이었다. 그리고 고속도로법의 개정 이후 서해안고속도로가 된 금천-안산 구간은 당시만 해도 서울안산고속도로라는 별개의 고속도로로 존재하고 있었다.), IMF 외환위기로 인해서 일감이 거의 없고 백화점에서 IMF 관련 특별 상품을 판매한다던지, TV에서 당시 인기가수였던 유승준(2002년 미국 시민권 취득으로 인한 병역비리 사건으로 대한민국 법무부로부터 국외추방되면서 가요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국내 입국이 불허되고 있다.)이 나온다든지, 작중 숙자와 숙희 자매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가는 병원이 인하대학교병원(인천 최초의 대학병원으로 1996년 5월에 개원했다.)이라든지 하는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4] 이 책이 해당 방송에서 처음 선정된 도서였다.[5] 부채춤 연습 때 입을 한복이 없다고 고민하는 선에서만 그친 언니와는 달리 이웃집 언니에게 한복을 적극 빌려 응원단장까지 했다.[6] 자기 엄마의 임신 소식을 급우 하나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숙희에게 공개 패드립을 당했다(...)[7] 처음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버티던 동수가 야간수업이라고 해도 학교에 다니기로 마음먹고 야간 공고에 지원서를 넣었다고 하자 영호가 무척 기뻐하는데 이때 레슬링 하는 시늉을 하자 말리는 명희에게 동준이 레슬링 시늉은 영호가 기뻐할 때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8] 본래는 요리학원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걸 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었으나, 학원 수강비가 너무 비싸서 포기하려다가 동수의 추천으로 영세민들에게 제빵, 미용 등 여러 기술을 가르쳐주는 강좌를 통해 제빵을 배우게 된다.[9] 사실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의 부모들 대부분이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가출하는 등의 막장 행태를 보이는 부모이긴 하지만 절대 아이들을 폭행하지 않는데 비해, 명환의 아버지는 이들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심각한 막장 부모다. 자녀들을 패는 건 기본이고 아내에게 학대를 심하게 한 걸로 봐서... 가정폭력을 상당히 심하게 일삼은 듯. 참고로 이는 현재 형법상으로는 아동 학대에 해당되며 중형에 준하는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데, 소설의 배경이던 1998년 당시는 아동복지법이 개정되기 전이었고(아동복지법은 2000년에 개정되었다.) 이 해에 일어난 영훈이 남매 사건과 이듬해 신애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후 영호가 명환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겨우 하지만 명환을 완전히 버린 자식 취급하는 걸로 봐서 말 다했다.[10] 여동생은 부천의 한 전자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11] 작중 중반부에 영호가 겨우겨우 명환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만, 명환의 어머니가 명환이가 아버지와 살게 하느니 차라리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12] 작중 언급을 보면 90년대 중반에 개발되기 시작한 연수택지개발지구로 보인다.[13] 언급된 바로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신문배달과 우유배달부터 시작해 악착같이 일했고, 돈을 차곡차곡 모아 슈퍼를 인수하고 아파트로 이사해서 지금은 식당을 운영하신다고 한다. 명희의 언니도 선생님이 되었다고 한 것과, 오빠가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괭이부리말에 살았던 걸 모른다고 할 정도라는걸 봐선 괭이부리말 주민 치고는 상당히 성공한 셈.[14] 학교 교사들이 괭이부리말 아이들 같은 막장들은 처음 봤노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고 한다.[15] 그나마 숙자는 똑똑하다고 신경을 써주는 편이었지만 숙자 역시 그녀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얻진 못했다.[16] 숙자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둘이 오랜만에 대면했을 때부터 영호가 명희를 보고 정말 선생님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칭찬이 아니라 학창 시절 친구들도 일절 사귀지 않은 채 괭이부리말을 벗어나려고만 했던 자신 역시 영호 눈에는 괭이부리말을 무시하던 그 교사들과 별 다를 게 없어보였다는 의미.[17] 그렇게 자신이 답이 없다고 느꼈던 괭이부리말의 현실에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예전엔 숙자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괭이부리말을 벗어나려고만 했던 자신이 헛산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18] 집안 형편상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하고 중장비 학원을 다녀 기술을 배웠고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도중에 일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에서 일자리 제의가 들어오는 걸 봐서는 상당히 착실하고 실력이 있는 듯 하다.[19] 작중 동수가 구치소에서 봤던 26살짜리 본드 중독자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는데 "스물여섯이면 영호 삼촌보다 한 살이 더 많다." 라고 말한다. 참고로 동수가 풀려난 지 이틀 만에 본드를 했다고 친어머니에게 신고를 당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20] 영호의 외가는 가난한 딸부자집이다보니 차녀였던 어머니를 노총각이지만 제법 먹고 살만했던 어부인 영호의 아버지에게 시집보냈다. 하지만 그 역시 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결혼한 뒤에도 열심히 일해야했고, 어머니는 영호를 낳기 전날 및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도 어린 영호를 업고 일을 해야 했다고 나온다. 더욱이 고향에는 배 있는 사람에게 도시로 시집가서 경사라고 소문이 다 난 상태였다고(...)[21] 마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매우 부지런하고 철저했지만 이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날 밤 쳐놓은 그물이 엉킨 것 같다며 비닐 옷과 장화도 벗지 않은 채 들어갔다가 이틀 뒤에 퉁퉁 부은 주검으로 떠올랐다고.[22] 여름 무렵 일을 하던 중 어머니의 급작스런 하혈 증세 소식으로 급히 병원에 가나 이미 자궁암이 말기 상태인데다 암이 몸 전체에 퍼져 치료마저 불가능한 상태였다. 거기다 어머니 역시 더 이상의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가자고 얘기했다.[23] 나중에 명희에게 구치소에서 나온 동수를 바로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녀와 단둘이 얘기를 나눌 때 영호가 동수 형제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데 자신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남은 후 공허함을 느끼다가 살갑게 지내는 가족을 만들고 싶어서 데려온 것이라고 한다. 이때 영호는 명희에게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해서 집에 데리고 왔다고 말하며 학교 동창생인 나를 위해서라도 동수의 갱생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24] 아버지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인 듯.[25] 숙자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비디오 가게에 갔는데 손님은 한 사람도 없고 어머니는 카운터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26] 작품 초반부에 보면 숙자 자매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 너무 위험한 일이라 그런지 보험도 불가능하다고 나온다. 그런데 작품 후반부에서 영호가 숙자 어머니를 대신해 사고 보상에 관해 관계자들과 타협하는 장면이 나오고, 숙자 자매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망 보상금으로 비디오 가게를 인수했다는 걸 봐서는 어떻게든 타협해 보상을 받은 듯 하다. 참고로 하역 작업 도중에 일어난 사고의 경우에는 보험법에 의하여 해상보험에 적용된다.[27] 여기서나마 훼손이라 나왔지, 실제 책에서는 아주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다고 나온다.[28] 1990년대 중후반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관광 비자를 받은 뒤 막노동이나 식당 일 등으로 불법 취업하는 일이 잦았다.[29] 다만 영호가 호용이를 거둔 이후 동네에서 떠도는 말로는 아무래도 호용의 부친은 일본으로 가지 않았다는 듯하다. 그러나 영호는 호용이를 먹이고 가르치는데 바빠 신경도 쓰지 않았다.[30] 초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