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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읍 구좌읍 舊左邑 | Gujwa-eup | |||
<colbgcolor=#939499><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 제주특별자치도 | ||
행정시 | 제주시 | ||
행정표준코드 | 5011025600 | ||
관할 법정리 | 12리 | ||
하위 행정구역 | 12행정리 220반 | ||
면적 | 185.93㎢ | ||
인구 | 15,243명[1] | ||
인구밀도 | 81.93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 국회의원 | 제주시 을 | |
| 김한규 (재선) | ||
제주특별자치도의원 | 구좌읍·우도면 선거구 | |||
| 김경학 (3선) | }}}}}}}}} | |
읍사무소 | 일주동로 3116[2] | ||
구좌읍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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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0년 12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제주도 동북부에 위치한다. 읍소재지는 세화리이다.
만장굴, 김녕사굴, 제주 용천동굴과 비자림, 해녀박물관 등의 명소가 있다. 세화리 뿐만 아니라 김녕해수욕장을 낀 김녕리도 제법 큰 마을이다. 읍의 동쪽 하도리에는 조선시대의 하도성지와 별방진이 있다.
제주도 읍면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쓰던 면 이름과 똑같다. 조선시대에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을 각각 좌(左)면, 중(中)면, 우(右)면으로 나눠서 면을 만들었는데, 고종 때, 제주목 좌면과 우면을 둘로 나누면서 신(新)과 구(舊)를 붙여 신우면, 구우면, 신좌면, 구좌면으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세 고을을 통합하면서도 면명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해서 휘하 면들이 이름이 비슷비슷한 카오스가 열려버렸다. 그나마 통폐합 당시 제주군 중면(현 제주시내)은 제주면, 대정군 우면(현 대정읍)은 대정면, 정의군 좌면(현 성산읍)은 정의면으로 바꿨고, 좌중우가 들어간 나머지 면도 1935년에 면소재지 등의 지명을 따서 구우면→한림면, 신우면→애월면, 신좌면→조천면으로 개칭 하였으나 어째서인지 구좌면만은 그대로 두었고, 그게 읍 승격 이후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른 곳과 비슷한 원리로 개칭했다면 세화면→세화읍이 되었을 것이다.[3] 구좌읍은 읍의 중앙부 해안마을인 행원리에 스마트그리드(풍력발전단지)와 구좌행원농공단지가 있고, 한동리에 제주용암해수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음을 볼 때 제주도 관내에서는 좀 드물게 제조업 및 발전산업 같은 2차산업 육성지가 될 확률이 높은 곳이다. 제주도의 총체적 여건으로 볼 때 2차산업 육성이 매우 힘들지만.
2019년 12월 26일에는 동복리에 있는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준공식을 가지면서 봉개동에 있는 매립시설과 소각시설을 대체하게 되었다.
2021년 7월에 블루보틀의 제주도 첫 매장인 제주 카페가 생겼다.
1.1. 관할 리
왼쪽은 법정리, 오른쪽은 법정리에 소속된 (행정리)로 정리하였다.- 김녕리(김녕리): 김녕초등학교 인근 제주동보건소가 위치해 있다.그리고 제주도 본섬만 따졌을 때 최북단이다. 김녕 김씨와는 한자만 같고 관계는 없다.
- 덕천리(덕천리)
- 동복리(동복리)
- 상도리(상도리)
- 세화리(세화리): 구좌읍사무소 소재지. 細花里.[4] 서귀포시 표선면에도 이름과 한자가 똑같은 세화리가 있으니 유의.[5][6]1932년 세화리 장터에서 해녀 1만 7천 명이 모여 항일운동을 벌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난 곳이다.[7]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주도의 항일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 송당리(송당리): 블루보틀 제주 카페가 있다.
- 월정리(월정리): 김녕리 다음에 위치한 리. 풍력발전소 건설 이후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당시 해안가 토지의 매매가가 50배 넘게 뛰었다고 한다. 해안도로 주변으로 해수욕장이 있고 카페와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서 청년층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 종달리(종달리):성산읍과 가까운 곳일 경우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가끔 종달 포구에서 우도 도항선이 뜨기도 한다.
- 평대리(평대리): 당근이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 하도리(하도리): 해녀박물관이 있다. 주소는 해녀박물관길 26이며 그것 때문인지 해녀박물관으로 가는 시내버스 번호도 260번이다(...).
- 한동리(한동리): 제주용암해수산업단지가 위치해 있으며 여기서 용암해수(염지하수)를 하루에 약 1만t을 취수하고 있다고 한다.
- 행원리(행원리): 광해군이 제주에 유배왔을 때 상륙했던 곳이 행원포구라고 한다.
2. 출신 인물
- 강관순
- 강금실(행원리)
- 고정식(1958)(한동리)
- 김경학(정치인)
- 김영훈(1945)
- 김우남(평대리)
- 김창호(1947)(송당리)
- 김택환(1936)(세화리)
- 김흥준(군인)(김녕리)
- 부덕량(하도리)
- 부동석(동복리)
- 부동흥(동복리)
- 부상일(평대리)
- 부석종(한동리)
- 부승림(하도리)
- 부승찬(하도리)
- 부좌현(하도리)
- 부춘화(하도리)
- 부항석(상도리)
- 안동우(김녕리)
- 우근민(종달리)
3. 기타
- 소울메이트에서 하도리 일대와 별방진성, 하도 해변, 체오름[8] 등이 촬영지로 쓰였다.
- 2024년 4월 26일 오전 10시 17분경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건물이 흔들린다는 신고가 접수됐으며 이후 약 1시간동안 성산읍, 구좌읍 등 제주 동부권을 중심으로 1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SNS와 제주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버지와 식사 중 창문이 흔들리고 땅이 흔들렸다", "저도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지진경보도 찾아봤다", "창문이 흔들렸다", "지진인 듯 한데 안전문자도 오지 않는다"는 등의 글들이 속출했다.
원인 파악에 나선 소방당국과 도 재난안전상황실은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한때 테러 대응 유관기관 합동훈련에서 발사된 폭음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거리가 먼 상황이며 해당 폭음탄은 화약이 아닌 물에 의해 발사된 '물대포'였고, 건물을 흔들 만큼의 위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오전 10시 50분 발사돼 최초 신고 접수 시간과도 30여분 차이가 난다고. 인근 채석장, 건설현장 등 민간에서의 발파작업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 #2 #3
[1] 2024년 8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2] 세화리 1561-7[3] 4.3사건 이전에 구좌면사무소는 평대리에 있었으나 4.3사건 당시에 무장대에 습격당해 불타서 경찰지서와 군대가 있던 세화로 이전 이후 다시 옮기지 않고 계속 세화에 남아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읍승격시 중심마을인 세화읍이라 하려고 하였으나 평대리에서 반대하여 조선시대 행정명칭인 구좌를 계속 사용한 것이다.[4] 세화리에는 세화해변에서 약 7㎞ 떨어진 아끈다랑쉬오름부터 마을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숲을 '가는 곶'이라 불렀는데(곶은 제주어로 숲을 뜻한다.), 이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곶을 꽃으로 해석해 ‘가는 꽃', 세화(細花)가 됐다고 한다.[5] 이 경우에는 세화1리, 세화2리, 세화3리라고 검색해야 나온다.[6] 참고로 이 버스 노선이 표선면 세화리와 구좌읍 세화리 두 군데를 경유한다.[7]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더불어 제주3대 항일운동으로 불린다.[8] 단, 이곳은 사유지라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