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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9:36:13

기황후(드라마)/원작과의 차이점



파일:기황후 로고.png
[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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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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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기황후_기양(기승냥).jpg
파일:기황후_타환.jpg
파일:기황후_왕유.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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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기황후 OST Part 1.jpg
||<width=33.3%>
파일:기황후 OST Part 2.jpg
||<width=33.3%>
파일:기황후 OST Part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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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가시사랑
포맨
2013.10.28
Part 2
사랑 바람
왁스
2013.11.18
Part 3
사랑합니다
XIA(준수)
2013.12.10
파일:기황후 OST Part 4.jpg
파일:기황후 OST Part 5.jpg
파일:기황후 OST Part 6.jpg
Part 4
한번만
소유
2014.01.07
Part 5
바람결
박완규
2014.01.27
Part 6
The Day
지아
2014.02.24
[ 관련 문서 ]
||<tablebgcolor=#EDD68F><tablealign=center><tablewidth=100%><width=10000> 등장인물 ||<width=20%> 방영 전 논란 ||<width=20%> 방영 후 논란 ||<width=20%> 원작과의 차이점 ||<width=20%> 오류 ||


1. 개요2. 공통점3. 차이점

1. 개요

파일:36811_25266_712.jpg
드라마 기황후는 엄연히 원작소설이 있는데 해당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장영철, 정경순[1]이 집필하였다. 구상 자체는 2008년부터 했다고 하며, 2013년 10월 21일에 초판이 발부되었다.[2] 드라마의 원작인 만큼 구성 자체는 비슷하나 세세하게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특히 소설의 경우는 시간과 사건의 흐름이 중구난방인 드라마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맞게 흘러간다. 하지만 극후반부로 갈수록 소설 쪽도 만만찮게 시간과 사건의 흐름이 심하게 꼬인다.

2. 공통점

3. 차이점


[1] 장영철의 아내이자 드라마 작가이다.[2] 드라마 방영 시작일이 2013년 10월 28일이었다. 즉 일주일 전이다. 드라마 방영일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3] 이 쪽은 아예 백안이 당기세와 동문수학한 사이라는 설명까지 붙어 있다.[4] 연철 일당이 황태제 타환을 죽이고 그 죄를 고려에 전가하기 위해 일련의 사건을 일으킨 뒤 그 죄를 황태제를 호위하던 고려 측 인물인 기자오에게 뒤집어 씌웠다. 물론 이 사건은 픽션이다.[5] 기자오가 짐승처럼 강하게 살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6] 공녀로 차출된 여인을 숨겼다는 이유로 당기세의 칼에 등을 베이는 등 치명상을 입었다.[7] 고려에서 내린 시호는 '헌효대왕(獻孝大王)'이다.[8] 물론 대도로 유배 왔을 때, 타환 앞에서 자신을 왕정이라고 소개하기는 한다.[9] 기자오는 연철 일당이 사건을 날조하고 증인을 제거하기 위해 눈과 혀를 뽑아버린 상태였다.[10] 기자오의 정실부인으로 보인다. 만약 정실부인이 맞다면 부원배로 악명이 높은 기철과 기원의 어머니인 영안왕대부인 이씨가 된다.[11] 충혜왕은 기양이 자신을 도왔는데 자신이 도울 수 없다고 한탄하면서 몰래 박불화와 함께 석방하였다.[12] 드라마 상으로는 22회에 해당한다.[13] 더 비참한 것은 박불화의 아내는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염병수와 동침을 한 뒤 치료약을 받아냈고 그걸로 박불화를 치료한 뒤 다음날 새벽에 소나무에 목을 매고 자결했다. 그 앞 장면이 박불화의 꿈 속에서 아내가 한 번도 차려주지 못한 밥과 나물로 이뤄진 밥상을 차려주는 장면이라 더욱 애절하다.[14] 예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몽골 제국과 원나라에서 초야권을 실시했다는 낭설이 있었는데 그 낭설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나라의 초야권에 대해 기술한 서적인 『신여록(燼餘錄)』은 위서라서 공신력이 없다. 이후 원나라에 악감정을 갖고 있을 명나라에서 집필한 원사에서도 초야권의 내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15] 상처로 인해 궁녀가 못 될 뻔했는데 독만이 나서서 무수리로 넣었다.[16] 초반에 궁녀가 된 기양을 혹독하게 대하는데 그게 심양왕 왕고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리고 궁에서는 독만이 돈을 받고 궁녀들에게 남자를 소개시켜 주고 돈을 챙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17] 연철의 명령으로 액정궁에서 남몰래 혈서를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조급해진 당기세가 군사를 휘몰아 액정궁에 들어왔을 때는 무장한 환관들과 함께 당기세에 맞섰다. 이 때 연철에게 크게 혼이 난 인물은 독만이 아닌 당기세였는데, 군사들이 액정궁에 난입한 일로 혈서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18] 기양이 후궁이 되어 천하를 쥐락펴락할 것을 마음먹은 계기를 준 게 바로 현빈 박씨인 셈이다.[19] 이 때 독만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고백하였다.[20] 원래는 명종 황제를 모셨던 환관으로 명종 황제의 혈서와 관련되어 있었다.[21] 타나실리의 부친인 연철이 지었다.[22] 몽골어로 읽을 경우 아얀가(АЯНГА)가 된다. 아이를 발견했을 때 천둥이 쳤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23] 이는 죽은 현빈 박씨와 자신은 차원이 다름을 타나실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24] 다 쓰기 전까지 음식이나 물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다.[25] 손가락에 발라뒀고 그 손가락으로 대추를 집어 먹으면서 독을 함께 먹었다.[26] 약을 조사하면 굳이 독약이 아니더라도 불임약이라는 게 밝혀지기 때문에 타나실리의 입장이 나빠지는 건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