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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21:04:48

김상식/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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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2. 국가대표 경력3.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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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럽 경력

1.1. 성남 일화 천마

1999년 드래프트에서 일화로부터 지명받아 입단을 하고 입단 첫해부터 주전을 꿰차며 2003년 입대 전까지 단 한번도 주전을 놓치지 않으며 2001, 2002년 2년 연속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김상식이 입대한 2003년에도 우승하며 전무후무한 두번의 3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1.1. 광주 상무 불사조 (군 복무)

2003년 군 복무를 위해 당시 상무에 입대해 주전으로 뛰었으며 군복무 2년차인 2004년에 기록한 통합 8위는 2016년 상위스플릿 등극 이전까지 상무의 최고 성적이었다.

1.1.2. 전역 이후

제대 후 성남으로 복귀하여 2006 시즌 K-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며 2007년부터는 주장에 선임돼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K-리그 정규 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성남팬들은 김상식이 성남의 레전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2008년부터 김학범 감독의 무리한 베스트 일레븐 운영으로 부상자의 속출과 김상식, 김영철 등 노장 선수들의 체력 고갈로 인한 노쇠화가 겹치며 팀의 성적 부진으로 김학범 감독이 사임하게 된다.

이후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노장 선수와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동국, 김영철 등과 함께 방출 통보를 받는다. 다만 이는 신태용 감독 본인의 결정이 아니었다. 구단 측에서는 리빌딩에 착수하면서 이동국은 남기고 김상식과 김영철을 내치려고 했다. 이동국과 김상식을 남기고 싶어했던 신태용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반발하자 구단은 전무를 택해 버린 것이다. 이때 안 좋게 헤어지는 바람에 성남에서의 오랜 활약에도 불구하고 성남 레전드로 부르기엔 애매해졌지만 여전히 공로를 인정받는 선수다.

1.2.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으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은 김상식은 팀의 수비라인과 구심점을 잡아줄 노장 선수가 필요했던 전북의 최강희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당시 전북의 유망주였던 문대성, 홍진섭을 상대로 이동국과 함께 2:2 트레이드되어 전북 현대 모터스에 이적하게 된다.

입단하자마자 전북의 7대 주장에 오를 정도로 팀에서 굳건한 입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동국과 함께 성남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면서 동계 훈련에 착실히 열중한 후 재기에 성공, 2008년까지만 해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던 전북의 수비라인을 완벽하게 조율하며 정규리그 1위로 시즌을 마쳤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자신을 내쳤던 친정팀 성남을 상대로 승리하며 전북에게 창단 첫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2010년에도 주장에 연임되었으나 전북은 2연패에는 실패했고 2010년을 끝으로 전북 주장직에서 내려왔다.

2011년에도 팀의 2번째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으며 2012년 팀의 감독이던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해간 뒤에는 2007년 이후로 5년만에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하는 경사까지 맞게 되었다. 2012년 후반기에 조성환이 나오지 못할 때는 이동국, 임유환과 주장 완장을 나눠달기도 했다.

2013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를 겸임한다. 은퇴 이후 코치 합류를 대비해서라고...

2013년 11월 26일, 구단 측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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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3시즌 리그 최종전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나서 은퇴식을 치렀고, 후반 막판 직접 PK 키커로 나서 파넨카 킥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자신의 화려했던 커리어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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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2000년 5월 28일 유고와의 친선 경기에 국가대표팀에 첫 발탁되어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12개국 본선에도 출장, 이란과의 8강전에서 후반 44분 58초에 자신의 A매치 첫 골인 동점골을 넣으며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1]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부상 및 의욕 부족 등으로 경쟁에서 밀려나며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지 못했다.[2] 이후 본프레레호아드보카트호를 거치면서 꾸준히 대표팀에 차출되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선발되었다. 32강 조별리그 토고전과 프랑스전에 후반 교체 멤버로(각각 후반 83분, 69분) 투입되었다.

대부분의 경기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으나 센터백으로 기용될 때가 있었다.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벡은 세계 축구의 주류였던 센터백의 공격 가담과 빌드업을 대표팀에도 적용시키려 했는데 당시 대표팀에는 현대적인 커맨더형 센터백이 없었다. 그래서 수비적인 롤을 맡은 선수중 공격 전개 능력과 축구 아이큐가 높은 김상식과 풀백인 김동진을 센터백으로 기용했는데 이 때마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안 먹어도 될 욕을 꽤 먹었다. 베어벡 취임 이후 펼쳐진 아시안컵 예선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90분 클리어링 미스로 바히드 하셰미안에게 동점골을 내주는 등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던 것이다.[3]

1 이운재
C
· 2 김영철 · 3 김동진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김진규 · 7 박지성 · 8 김두현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설기현 · 12 이영표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백지훈 · 16 정경호
17 이호 · 18 김상식 · 19 조재진 · 20 김용대 · 21 김영광 · 22 송종국 · 23 조원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딕 아드보카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스태프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기동




월드컵에서는 최진철김영철이 주전 센터백이었고, 둘 중 한 명이 빠지면 김진규가 들어갔고 김상식이 센터백으로 뛰는 일은 없었다.[4]

1 이운재
C
· 2 송종국 · 3 김진규 · 4 김동진 · 6 이호 · 7 최성국 · 8 김두현 · 9 조재진
10 이천수 · 11 이근호 · 12 이동국 · 13 김치곤 · 14 김상식 · 15 김치우 · 16 오범석 · 17 김정우
18 우성용 · 19 염기훈 · 20 손대호 · 21 김용대 · 22 강민수 · 23 정성룡 · 27 오장은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코치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 파일:브라질 국기.svg 코사



2007아시안컵 본선[5]에서는 김진규, 강민수가 주전 센터백으로 출장하고 김치곤이 이들과 경쟁했다. 김상식은 성남 동료 김두현, 손대호와 함께 4-3-3의 미드필더로 뛰었다.[6]

2005년부터 2007년까지가 김상식이 대표팀에서 가장 중용된 시기인데 1승 1무 1패 월드컵 17위로 아쉽게 16강 실패한 2006 독일 월드컵 때는 백업 멤버였기에 별다른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고 아시안컵 때는 예선에선 센터백으로 출전해 부진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제 포지션을 찾은 2007 아시안컵 16개국 본선에는 대표팀이 엄청난 빈공에 시달리면서 역대급 수면제 축구를 보여 재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편, 아시안컵 당시 김상식은 이운재, 우성용, 이동국과 함께 룸싸롱에서 음주가무를 벌여 국가대표 1년 자격정지 및 대한축구협회 주관 대회 2년 간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고 불명예스럽게 대표팀에서 퇴출됐다.

음주파문 이후 김정우기성용 같은 후배들이 대표팀의 주전으로 중용되었기에 그의 대표팀 경력은 이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2012년 2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최강희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 경기 및 쿠웨이트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 전북 시절 애제자인 김상식을 한국의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을 위해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대다수 K리그 팬들은 이 결정을 환영했다. 그리고 쿠웨이트전에서 나머지 미드필더들이 밀고 올라가서 휑하니 빈중원을 김상식 혼자 청소하는 활약을 선보였다. 대표팀은 이동국이근호의 연속골로 쿠웨이트를 2:0으로 꺾고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했고, 김상식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진가를 보여줌으로써 구겨진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팀 사정에 따라 센터백으로 뛰기도 했다.[7] 한창 젊은 시절에는 경이로운 활동량과 거친 수비로 상대를 지워버리는 플레이가 특기였으며, 이때 생긴 별명이 독사였다. 다만 이 거친 플레이 스타일 때문인지 카드를 많이 수집해 카드캡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뛰어난 축구 지능으로 상대방의 패스 줄기를 끊어버리는 스타일로 탈바꿈했는데 여기에 탁월한 위치 선정과 준수한 공중볼 장악 능력도 겸비하고 있어서 K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할 수 있었다. 유튜브 채널 꽁병지tv 에서 김형범이 말하기론 일반인 수준의 주력을 가졌지만 패스 길목을 죄다 예측해서 차단하고 바로 공격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좋았다고.[8]

다만 거친 수비로 인해 따라오는 불필요한 파울과 카드는 나이가 든 이후로도 여전했다. 특히 한 수 위의 강호와 싸워야 하는 국대에서 이 문제가 심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한창 욕을 먹을 때는 '카드캡터 김상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공격 가담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수한 롱패스 능력을 갖고 있어서 말년에 몸을 담았던 전북 시절에는 최강희 감독이 추구한 닥공 축구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최강희 감독은 루이스, 에닝요 등을 활용한 패싱 게임이 상대의 적극적인 압박에 저지당할 경우 차선으로 정성훈이나 로브렉 같은 장신 공격수를 투입해 미들을 생략하고 한방에 찔러주는 전술을 사용했기에 그의 롱패스는 귀중한 공격 자산이었다.[9]
국가대표팀 커리어는 김남일에 비해 뒤지지만 K리그 커리어는 김상식이 더 우위에 있다.[10] K리그에서의 활약과 커리어를 종합하면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봐도 무방하다.


[1] 동점골 직전 알리 다에이가 클리어링 미스로 볼을 헛발질하면서 김상식 앞에 공이 떨어졌고, 이를 발리슛으로 득점해 패배 직전으로 가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다. 이후 연장전 이동국의 극적인 골든골로 2-1로 이겼다.[2] 히딩크 감독 부임이 확정된 직후 열린 한일전에서 김상식은 전반 PK를 헌납하고 퇴장당했다. 정작 리그에서는 안정적인 수비를 보였는데 반해 대표팀에서는 그러지 못했기에 점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3] 선수 입장에선 아쉬운 일이었지만 아집에 불과한 슈틸리케의 장현수 오른쪽 풀백 기용이나 조광래의 김영권 왼쪽 풀백 기용과는 달리 세계 축구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 납득할 만한 실험이라서 무작정 베어벡 감독을 비판할 수도 없다.[4] 토고전은 김진규, 김영철, 최진철을 3백으로 썼다가 전반에 선제골을 허용하고 후반에 김진규를 빼고 포백으로 전환했다. 프랑스전은 김영철과 최진철이 나섰고, 스위스전은 김진규와 최진철이 나섰다.[5] 16개국 본선[6] 대표팀은 골키퍼 이운재, 주전 포백에 김치우-강민수-김진규-오범석, 중원에 김상식-김정우(김두현)-손대호(오장은), 3톱에 염기훈-조재진-이천수였다. 프리미어리거 3명(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은 부상으로 모두 참여하지 못했다.[7] 12시즌 전북의 주전 센터백인 조성환, 임유환, 심우연 등이 돌아가며 부상당하는 바람에 김정우와 함께 센터백 알바를 뛰었다.[8] 이에 김상식은 김형범과의 통화에서 일반인 수준 주력까진 아니고 100m를 12초 후반까진 뛰었다고 했으며 그래도 머리 회전이 10초대(진짜 머리 굴리는 데 10초가 걸렸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머리 회전이 빨랐다는 뜻)라 선수로 뛰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답했다. 까마득한 후배가 디스하는데 현명히 답하며 본격 대인배 인증을 했다.[9] 구단 후배로 같은 포지션에 터프한 수비로 유명한 정훈과 교체 횟수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꽤 많이 난다.[10] K리그에서의 김남일은 그때도 지금도 약팀인 전남과 인천에서 전성기 대부분을 보낸 반면, 김상식은 해당 시기 최강팀이었던 성남과 전북에서 커리어를 보냈다. 당연히 K리그에서의 커리어는 비교가 될 수 없다. 단 김남일 역시 K리그 마지막 커리어를 전북에서 보냈다. 김남일이 뛰어난 실력에 비해 약팀에 머무른 기간이 길긴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전성기 김상식의 실력 역시 우승권 팀 주전을 차지할만큼 뛰어났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