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기타 정보 |
대한민국의 축구인 | ||||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김영근 Kim Young-Geun | |||
출생 | 1978년 10월 12일 ([age(1978-10-12)]세) 경기도 이천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코치 | |||
학력 | 이천초 - 이천중 - 이천실업고 - 경희대 | |||
소속 | 선수 | 대전 시티즌 (2001~2007) → 광주 상무 불사조 (2006~2007 / 군 복무) 경남 FC (2008) BCC FC (2011) 방콕 FC (2012) | ||
지도자 | 대전 시티즌 (2014~2018 / 스카우트) 대전 시티즌 (2015 / 2군 코치) 대전 시티즌 (2018 / 유소년 총감독) 대전 시티즌 (2019 / 스카우트) | |||
프런트 | 경남 FC (2020~2023 / 전력강화실장) | |||
국가대표 | 1경기 (대한민국 /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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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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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현재 경남 FC의 전력강화실장이다.현역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오랜 시간 대전 시티즌에서 활약했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경희대학교 97학번이고, 4학년에 주장을 맡아 2000 험멜코리아배 전국춘계남녀대학축구연맹전에서 경희대의 10년 만에 우승을 이끌며 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대학리그에서 제 2의 홍명보로 불리던 유망주였다.
경희대 졸업 후 2001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시티즌에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하였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팀을 떠난 서동원의 공백을 잘 메웠다.
2001년 부임한 이태호 감독 아래 리빌딩을 시도하던 대전 수비의 미래로 꼽혔고, 신인 시절부터 32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는 등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첫 FA컵 우승에 공헌하였으며, 이후에도 대전에서 뛰어난 헤딩과 대인방어 능력을 바탕으로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감초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상대보다 머리가 밑에 있던 적이 거의 드물었다는 말이 있을만큼 공중볼 지배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였다.
2003년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최윤겸 감독 아래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수비의 최일선에서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하며 강정훈과 함께 왕성한 활동량으로 대전의 에이스 이관우나 신진원의 수비부담을 줄여주며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는데 기여했다. 그렇게 김영근-강정훈-이관우 트리오가 버티던 2003년 대전 중원은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리그 6위를 이끌며 김영근은 구단이 가장 빛나던 시기에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부상에 시달리며 2년 간 29경기밖에 나서지 못했다.
대전에서 5시즌 동안 리그 110경기 3골 2도움을 기록했다.
결국 2006시즌을 앞두고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해 군복무를 해결했다. 2007 시즌까지 광주에서 리그 52경기에 나서며 1골을 넣는 등 주전으로 활약했다.
전역 후 당시 대전의 감독이었던 김호가 대대적인 팀 리빌딩에 나서면서 재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었으며, 결국 2008 시즌을 앞두고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경남에서는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채 단 1경기만을 출전하고 1시즌 만에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0년 LG컵 4개국 친선대회에 참가하는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며 처음 국가대표로 승선하였고, 마케도니아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날 경기가 국가대표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3. 은퇴 이후
이후 태국으로 건너가 배성재 감독과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병행하였고, 잠시 현역으로 복귀해 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강정훈의 축구교실서 유소년지도를 맡기도 하였다.3.1. 대전 시티즌 스카우트
2014년 대전 시티즌의 스카우트직에 취임하며 친정팀 대전에 복귀하였으며, 대전 시티즌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며 팀의 두번째 우승을 공헌, 김은중과 함께 대전의 두번의 우승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 되었다.[2]
2015년 한 해 동안 잠시 대전의 2군 코치를 맡기도 하였다.[3][4]
이후 2016년부터는 다시 스카우트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하지만 2018시즌 중반 갑작스럽게 스카우트에서 유소년 총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였는데, 이는 2018년 과거 감독으로서 자신을 방출시켰던 김호가 구단의 대표 이사로 새로 부임하면서 둘의 불편한 관계에 놓임에 따라 사실상 김영근 본인의 의지와는 거리가 먼 보직 변경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18시즌을 끝으로 대전 구단을 떠났지만 반년뒤 김호 대표 이사와 고종수 감독이 구단을 떠난 후 새로 부임한 최용규 신임 대표 이사가 부임하면서 신설한 선수단운영위원회에 합류해 스카우트로 재부임하였다.
3.2. 경남 FC 전력강화실장
2019시즌을 끝으로 대전이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재창단되면서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에 나섬에 따라 대전을 떠나 설기현 감독 체제로 새출발하는 경남 FC의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하였다.전력강화실장으로 있는 동안 티아고, 윌리안, 에르난데스, 글레이손, 원기종과 같은 리그를 씹어먹는 자원을 영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한 최준, 카스트로 등의 유망주 자원을 보충하기도 했다.
2023시즌, 설기현감독의 재계약 불가 통보로 모든 코칭스태프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3.3. 대한축구협회전력강화위원
2024년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부임하였다.4. 여담
- 2003년 당시에는 흰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도 하였다.
- 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당시 현지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을 만큼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 경남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대전 하나 시티즌 홈경기 때 자주 모습을 보인다.
- 유년시절 축구가 너무 좋아서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반에서 10등 안에 들지 못하면 축구부를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축구부를 하면서도 공부도 열심히 하여 우수한 성적을 항상 유지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