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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코즈킨 작가의 웹코믹 시리즈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의 작풍(作風)을 설명한 문서.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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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중 여러 바디 스내처 작품들의 오마주 요소 중 하나[1] |
제목이 긴 탓에 한국에서는 《괴물 여자친구》 또는 《괴물여친》이라는 약칭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신체 강탈자와 크리처(괴생명체) 장르에 속하는 한편, 호러와 고어, 범죄 요소가 가미된 순애물로 분류된다. 이러한 장르 혼합적인 인식은 한국과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구권에서도 공포(Horror), 성인(NSFW) 또는 에로틱한 요소(Erotica)가 포함된 일상물(Slice of Life) 및 순애물(Romance)로 분류되곤 한다.
본 작품은 작가 특유의 음울한 모노톤 화풍을 통해,[4] 주인공과 괴물 간의 배덕적이고 뒤틀린 애정을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에로틱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주요 내용엔 신체 강탈, 신체 변형(바디 호러), 직간접적인 이종간의 성행위 묘사, 살인 및 살인 방조, 식인 등 다소 충격적인 소재들이 포함되어 있다.[5]
이러한 설정과 더불어 강렬하고도 파격적인 전개 덕분에 인터넷상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는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 그리고 작품 내에 흐르는 배덕적이지만 애틋한 감정선이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⓮ |
이러한 관계를 대체한 괴물은 그녀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만, 그녀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본래 그녀는 표독스럽기 그지없는 인물이었지만, 그녀의 신체를 차지한 괴물은 주인공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표현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대단히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이, 본래의 그녀와는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주인공에게 신뢰에 기반한 깊은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물은 언제든 주인공을 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인공은 괴물보다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에 있으며, 그래서 괴물이 마음만 먹으면 공생 관계를 파기하고 그를 잡아먹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괴물은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며, 진솔하고 순수한 방식으로 그와의 공생 관계를 이어가고자 노력한다. 독자들은 이 과정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의 생사 여부가 전적으로 괴물의 호감도에 달려 있다는 점은 관계 자체에 비대칭성을 더하며, 괴물의 신뢰를 얻은 상태임에도 마냥 안전한 관계로 느껴지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 복잡한 감정선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괴물은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솔직하고 가식 없는 태도를 보인다. 괴물은 주인공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에게 의식주를 의존하며 살아가지만, 결코 자신을 사랑스럽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아첨하거나 교태를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무뚝뚝한 태도로 주인공에게 다가가며, 그에게 계산되지 않은 애정과 감사를 담담하게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행동은 괴물이 주인공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은 이처럼 주인공과 괴물의 관계를 단순히 로맨스의 틀에 가두지 않고, 더 복잡한 심리적,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접근한다. 본래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그녀는 이미 현실에서 사라졌고, 그녀를 대체한 괴물이 이제 그의 곁에 남아 있다. 그녀의 외형을 가진 괴물과 그녀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주인공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애틋하거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나지 않으며,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간의 사랑 이야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정선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본 작품은 그녀의 외형을 한 괴물과 그녀를 잊지 못하는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위태로움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윤리적 복잡성을 깊이있게 탐구하며 독창적인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작품은 주인공이 위험한 존재에게 일방적이지만 헌신적으로 사랑받는 유일한 인간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중심으로, 인간과 미지의 공포스러운 존재 간의 교류를 그려낸다. 주인공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괴물은 그러한 주인공에게'만' 맹목적인 애정을 쏟는다. 이 관계는 단순히 일방적인 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주인공이 괴물과 함께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들며 교류하고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있는 관계로 발전한다.
특히 주인공의 시점이 곧 독자의 시점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마치 현장에서 직접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한 시각적 효과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1인칭 시점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에 쉽게 이입하게 만들며, 괴물과 주인공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나 감정적인 흐름을 더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이러한 연출 방식과 구성에 있어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다. 가령 작중에서 괴물의 대사와 시선 처리는 표면적으로는 주인공을 향한 것이지만, 동시에 작품을 읽는 독자를 향한 중의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괴물이 주인공과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는 구도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괴물과 직접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한 현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과 서술 방식은 1인칭 시점의 장점을 극대화하며, 독자들에게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것의 연장선에서,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얼굴이 나오지 않으며, 또한 과묵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작중에서 직접적인 대사나 독백을 한 마디도 하지 않기에, 독자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추측하거나 상상해야 한다. 괴물이 대화를 주도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주인공은 그저 조용히 괴물의 말을 경청만 할 뿐이다. 이런 방식은 독자들이 주인공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내면을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를 제공한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주인공을 자신에게 투영하며 이야기에 더 깊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즉 주인공은 독자와 작품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때문에 괴물이 주인공을 향해 던지는 대사나 행동은 독자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곧 독자가 작품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강렬한 장치로 작용한다.
일찍이 작가는 에로그로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이 장르의 매력을 완벽히 구현해냈다.[6] 그래서 본 작품은 작화와 연출력 양면에서, 작가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른 작품으로 팬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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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회차와 후기 회차의 작화 비교[7] |
본 작품은 작가가 장기로 내세우는 이러한 연출 스타일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즉 역동적이고 화려한 작화를 선보이는 작품은 아니지만, 대신 굉장히 독특한 미장센과 간결한 대사 전달, 어둡고 기괴하며 작중 내내 불안감을 조성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얼핏 모순적으로 느껴질 따뜻한 느낌의 전개, 이 점을 더욱 극대화하는 몇몇 에피소드 말미의 애수(哀愁)적인 여운 등이 조화롭게 연출되어 다소 정적인 구도임에도 작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깔을 잘 표현해냈다. 가령 주인공과 괴물 간의 정사 장면은 관능적이라기보단 괴기스러움에 더 가까운 인상을 자아내나,[8] 의외로 그런 정사 도중에 나누는 대화들은 지극히 훈훈하고 때로는 가련함마저 느껴지기에, 소위 말하는 "괴상야릇함"의 극한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 바로 본작의 묘미이다.
사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작중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일반적인 도덕관이나 윤리관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작품 곳곳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듯 드러난다. 예컨대, 주인공과 히로인은 외부로부터 살인 행각이 발각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며 행동하지만, 히로인이 주기적으로 인간을 잡아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은 끝없이 위태롭다. 작가는 이를 두고, 주인공과 히로인 모두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주인공과 히로인 간의 교감에 초점이 맞춰진 순애물이기 때문에, 평온한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작품이 지닌 애틋하고 아련한 분위기는 위태로운 설정 속에서도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오히려 훈훈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선이 위태로운 긴장감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독자들로 하여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독특한 감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작중에서 주인공과 히로인은 서로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언제 범죄가 발각되어 단죄당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거니는 듯한 위태로운 유대감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들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머지않아 파국을 맞이할 것임을 끊임없이, 분명하게 암시한다. 작가는 작중 대사와 후기를 통해 이러한 불안을 지속적으로 고조시키면서, 주인공과 히로인이 연쇄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라는 신분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킨다. 그렇기에 작품 내내 느껴지는 현재의 애틋함과 아련한 감정은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오게 된다.
본 작품은 주인공과 괴물이 보내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싹트는 감정적 유대의 흐뭇함을 보여주면서도, 그 일상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면에 심어준다. 이러한 극적인 대비는 작품이 내포한 위태로움과 감미로움을 동시에 극대화하며, 독자들에게 둘의 관계가 단순히 범죄 행각이 아닌,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로 와닿을 수 있게끔 만든다. 비록 인간의 윤리적 잣대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저주받은 사랑이지만, 당사자인 두 사람만 놓고 본다면 그들의 관계는 누구보다도 절절하고 진정성 있는 사랑이다.
본 작품은 고어, 호러, 범죄 등 다른 일반적인 장르들과 섞여들며 양립하기 힘든 성질을 포함함에도 엄연한 순애물로 평가받는다. 본질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연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크나큰 리스크를 감수하며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지극정성 돌보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희생하려 할 만큼,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러한 관계는 훈훈하면서도 위태롭고 불안한 감정선이 교차하는 순애보적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쉽게 잊히지 않는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현대 SF, 위어드 픽션, 그리고 바디 스내처 장르의 실질적인 발상지로 평가받는 영미권은, 일찍이 이러한 설정이 친숙한 장르로 자리잡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간이 아닌 존재가 특정 인간의 존재성을 강제로 대체하여 인간 행세를 한다'는 발상은 전 세계적으로 신화나 민담 등 구전 전통에서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체인질링》이나 《손톱 먹은 들쥐》, 《옹고집전》과 같은 한국의 민담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중 오락 장르로서의 신체 강탈자 개념은, 현대적 장르 문학의 틀 안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정립된 것이며, 이는 20세기 초중반, 특히 1930~1950년대의 미국 문학에서 비롯되었다. 대표적으로 존 W. 캠벨의 단편 소설 《거기 누구냐?》는 현대 바디 스내처 장르의 시초로 팬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받는다. 이러한 장르적 특성은 이후 꾸준히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며 문화적 인지도를 쌓아왔다.
본 작품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고유한 색채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본래 작가는 소규모의 컬트 팬층을 보유한 작가로 알려져 있었으나, 본 작품을 통해 일본과 한국,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아시아권, 나아가 영미, 이탈리아, 브라질 등 서구권에서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는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팬메이드 번역본이 제작되어 퍼져나감으로써 작품이 국외적으로 확산된 것이 주요한 계기로 작용했다.[9] 이는 그만큼 본 작품이 가진 독특하고 뒤틀린 서정적 정서와 감성이 국적과 문화를 막론하고,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했음을 보여준다.
더욱 괄목할 만한 점은, 본 작품이 일반적인 연재 만화에 비해 에피소드당 한두 컷이라는 극히 짧은 분량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정서를 굉장히 밀도있고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이게 동양권은 물론, 정서적 코드가 상당히 다른 서양권에서도 폭넓게 통했다는 점에서 특히 놀라운 성취로 평가될 수 있다. 달리 말해, 극도로 제한된 묘사만으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독자들에게 복잡한 심리적 반응과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작가의 정교한 스토리텔링 능력과 표현력은 단연 돋보인다.
물론 이 작품은 범죄를 저지른 대상을 조력하고 비호하는 행위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10] 일부 독자들로부터는 작품이 선정적이거나 충격적인 묘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과소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이 독자들에게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천차만별의 감정을 교차하게 만들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고어 및 피카레스크 장르가 가진 특성상, 자칫 표현이 과도할 경우 대중의 호응을 얻기 어려운데, 이 작품은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도 장르적 특성을 살려냄으로써 코어 팬층의 충실한 지지를 얻었으며, 동서양 모두에서 다소의 화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11]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짧지만 강렬한 묘사, 느리지만 군더더기 없는 전개, 그리고 작가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의 접목을 통해 장르적 매니아들 사이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물론 대중성을 우선시하지 않는 작가주의적 성향은 특정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뇌리에 깊이 각인될 만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喋ってると普通に良い奴だし話も合うし、なんか分かり合えそうな気持ちになってくるけど、それはそれとしてどうしようもなく致命的な価値観の断絶がある』くらいの塩梅でバケモノを描いてるので嬉しい。 『이야기를 나눠 보면 무난하게 착한 녀석이고, 대화도 잘 통하고,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도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치명적인 가치관의 단절이 있다』는 정도의 느낌으로 괴물을 그려가고 있어서 기쁘네요. • 작가의 코멘트. # |
이 괴물은 비록 인간의 정서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식인을 행하는 극도의 야만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적인 사색과 독서를 즐기고, 인간 사회를 탐구하려 하는 고요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양극단의 성격적 괴리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자아내며, 괴물이 단순히 무자비한 포식자가 아닌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팬들 사이에서 이 괴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존재가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유아적 괴물이 아니라, 놀랍도록 성숙하고 정숙한 태도를 보이며 인간 사회와 상호작용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괴물이 자신이 비록 인간이 아닌 이질적 존재임에도,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배우려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12]
흥미롭게도, 이 괴물은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는 이질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외모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 타인에게 호감을 사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겉모습이 인간과 같고, 언어와 행동이 인간 사회의 틀 안에서 작동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어 결국 인간과의 관계에서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 작중에서는 이러한 괴물의 특징을 통해, 인간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질적 존재가 인간 사회에 섞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괴물이 단순한 악역이나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로 그려지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괴물의 설정은 단순히 표면적인 매력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괴물은 높은 지성을 통해 인간의 윤리와 도덕 체계를 이해하고 어느 정도는 이를 인정하지만, 종의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인간의 정서적, 도덕적 관점을 온전히 수용하거나 공감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괴물의 행동 원리는 철저히 합리적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유일한 가치로 여기고, 그 외 모든 존재에 대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이를 두고 '괴물은 인간의 사정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며, 괴물이 인간의 윤리와 정서를 벗어난 존재임을 분명히 한다.[13] 이러한 이질적이고도 일그러진 가치관은 괴물을 단순히 공포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연민과 매혹의 대상이 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또한, 인간인 주인공이 이처럼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괴물과 교류하면서 점점 괴물의 사고 방식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처음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괴물의 시각에 동화되어 가는 모습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양쪽 모두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주인공과, 반대로 점점 인간적인 모습을 갖춰가는 괴물 간의 대비는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자, 이종 간의 뒤틀린 사랑이라는 본작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히 드러내는 장치이다.
특히, 괴물이 주인공과의 첫 데이트에서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은, 괴물의 점진적인 인간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디테일로 작용한다. 괴물에게 인간의 얼굴은 단순히 정체를 감추기 위한 가면에 불과했지만, 주인공과의 교류를 통해 외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툴게나마 자신의 스타일을 바꿔보려 했다는 점은 괴물의 내면에서 싹트는 '자아'의 발현을 상징한다. 이후 다시 본래의 헤어스타일로 돌아간 장면을 통해, 괴물이 이 변화를 주인공과의 특별한 경험을 기념하기 위한 일시적인 시도로 여겼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세심한 설정은 작품이 지닌 서사적 깊이를 더하며, 괴물이 단순한 포식자가 아닌 감정을 가진 독립적 존재로 느껴지도록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몬무스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괴물과 인간 사이의 뒤틀리고도 복잡한 관계에 대해 고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이 작품은 작가의 이전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많은 에피소드가 연재된 기록을 세웠다. 현재까지 총 26편이 연재되었으며,[14] 이는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많은 회차 수를 자랑한다. 특히 작가가 2년 이상, 20편 이상 연재를 이어간 작품은 본작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특별한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이 독자들에게 특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로는, 작가가 인간 내면의 심리적 욕망과 판타지를 매우 정교하게 포착하여 반영했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은 특히 범접할 수 없는 우월한 존재로부터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심리, 즉 비범한 존재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동경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을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주인공 앞에서는 그저 애정을 갈구하는 지고지순한 소녀처럼 묘사된다는 점이, 독자들에게 크나큰 의외성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많은 독자들은 이러한 설정에서 강한 매력을 느끼며, 이는 단순한 캐릭터의 설정을 넘어 작품 전체에 긴장감과 몰입도를 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괴물이 가진 '포식자'라는 정체성과 '연인'이라는 역할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형성한다는 점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서사적 대비를 제공한다. 괴물이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위협적인 존재임에도, 주인공에게만은 유독 자상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보인다는 설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 이야기 속 주인공에 대입하게 만들고, '오직 나만 괴물의 특별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작품 내에서 괴물을 묘사할 때 의도적으로 강조한 '나만 특별 취급해 주는 존재'라는 설정[15]은 특히 남성 독자층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는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공포와 판타지를 결합한 것이 아니라, 독자들 내면의 욕망을 절묘하게 투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괴물은 독자들에게 판타지적 연인이자 위험한 존재로서 이중적으로 기능하며,[16]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서사가 작품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와 이야기를 즐기는 것을 넘어, 독자가 서사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끔 만드는 또 하나의 강력한 장치로 기능한다. 더불어 독자들에게 '왜 괴물이 주인공에게만 이렇게 특별한 태도를 보이는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한층 증폭시킨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단순히 경계하거나 혐오할 수만은 없게 된다. 괴물이 주인공에게는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이지만, 여전히 그 본질은 사람을 잡아먹는 포식자로 남아 있다는 설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괴물의 이중성을 마주하게 만들며, 동시에 이러한 설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투영하도록 유도한다.
흥미롭게도, 많은 독자들이 괴물을 '완벽에 가까운 여자친구'로 인식하는 것은, 그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심리적 메커니즘 덕분이다. 괴물은 비록 식인을 하고, 잡아먹은 인간의 행세를 하는 기만적인 행위로 인해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인 요소를 집약적으로 지니고 있다.[17] 구체적으로, 괴물은 인간과 매우 닮은 외모와 행동을 보이면서도, 그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완전히 비인간적이며, 이로 인해 독자들에게 낯설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괴물이 주인공을 향해 보여주는, 사랑이라고밖에 해석될 수 없는 진심어린 감정들은, 그것이 설령 일그러진 형태일지라도 너무나 순수하고 진지하기에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괴물을 단순히 '악'으로 규정할 수 없게 되며, 괴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품게 된다. 이 점은 괴물이 단순히 주인공의 연인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다양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입체적인 존재로 자리잡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자들 사이에서 괴물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공통된 반응이 바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심정이 든다', '마음속의 무언가를 일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괴물이라는 캐릭터는 그 본질적 특성과 묘사 방식 덕분에 독자들에게 애증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이는 괴물이 단순한 공포나 혐오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로 다가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점은 또한, 작가가 의도적으로 괴물을 주인공의 기호와 편의에 최적으로 맞춰진 존재로 묘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수용 불가능한 치명적 위험성을 지닌 이질적 존재로 남겨 두고 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처럼 양립 불가능한 두 상반된 속성이 서로 팽팽하게 맞물리며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점은 작품이 단순한 몬무스 장르를 넘어 보다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으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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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를 먹어치우고 그녀로 변한 괴물과 사귀고 있다. ⓫[18] |
그러나 본 작품은 이러한 기존의 장르적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바디 스내처 계열의 기본 테마에 심리적 해석과 로맨스 요소를 결합하여 독자들에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는 단순히 괴물이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 사회에 퍼지는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괴물과 인간 간의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독특한 긴장감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호러와 로맨스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본 작품은 바디 스내처 장르의 기존 서사와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기존의 바디 스내처 장르가 괴물의 위협과 인간 사회 내부의 혼란에 초점을 맞췄다면, 본 작품은 괴물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관계의 심리적 긴장감과 감정적 교류를 부각하며, 한편으로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정서를 비인간적 존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본 작품의 초반부에서는 괴물이 인간 주인공을 단순히 자신에게 필요한 생존 자원으로만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 정서와 사랑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모습이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자들 중 상당수는 괴물의 태도를 보며, "괴물은 사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주인공을 잡아먹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쓸모가 많기 때문에 곁에 두며 필요할 때까지 살려두고 있는 것이다."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은 괴물을 단순무식한 야수가 아닌 교활하고 고도의 지능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이어졌다. 괴물이 생존을 위해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간을 만들어 유리한 관계를 형성하며, 그 과정을 통해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는 계산적인 생명체라는 해석이 등장한 것이다. 즉 괴물이 주인공에게 보이는 다정함과 사랑스러운 행동들은 모두 인간을 교묘히 조종하려는 가식적인 연기일 뿐이라는 해석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독자들이 처음에 가졌던 의심과 오해는, 기존의 바디 스내처 장르에서 정립된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반한 것이었다. 바디 스내처 계열 작품에서는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비인간적 존재가 인간 사회에 침투할 때, 그것이 진정한 감정을 가질 리 없다는 것이 장르적 전제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작품은 그러한 장르적 관습을 뛰어넘어, 괴물이 단순히 교활하고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순수하고 선한 면모를 지닌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작가는 독자들의 이러한 오해와 해석에 대해 작품 내외에서 직접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작가는 괴물에 대해 괴물은 주인공을 단순히 도구로 이용하거나 변덕과 가식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괴물은 틀림없이 착한 녀석이며, 흑심을 품지 않는 존재라 언급하며 이러한 해석을 명확히 부정했다.[19] 이는 본 작품이 단순히 기존 바디 스내처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러한 스테레오타입을 의도적으로 전복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괴물은 인간을 자신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교활한 포식자가 아니라,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점점 더 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결국, 본 작품은 기존의 장르적 관습과 독자들의 편견을 뛰어넘어, 바디 스내처라는 전형적인 호러 테마에 심리적 해석과 로맨스를 결합하는 신선한 접근 방식을 통해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괴물이 단순히 인간을 위협하거나 침투하는 존재로 그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적 갈등과 애정을 품고 있다는 점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요소는 본 작품이 단순히 공포와 긴장을 넘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가치를 지닌다.
時々人を喰ったりすることはあるけどそれ以外は超いい奴。 가끔 사람을 잡아먹긴 해도, 그것 외에는 정말 착한 녀석이에요. • 작가의 코멘트. # |
작품은 이러한 괴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에 놓인 존재가 어떻게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변화를 겪는지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괴물은 식인이라는 본능적 행위를 통해 인간 사회의 규범과 윤리를 정면으로 위반하지만, 동시에 인간 세계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품고 있으며, 이는 작품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작가는 이러한 괴물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특성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히 공포나 혐오의 감정을 넘어서, 괴물이라는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도록 유도한다.
더불어, 작가는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단순히 인간과 비인간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사회에 적응하려는 과정에서 괴물이 겪는 내적 변화와 성장에 주목한다. 괴물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심지어 인간의 행동양식을 흉내 내면서도, 여전히 인간이 아닌 본질적 특성 때문에 그들과 완전히 융합할 수는 없는 존재다. 이러한 괴물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려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모는 공포와 혐오를 넘어서 동정과 연민을 자아낸다. 이로써 독자들은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인간을 위협하는 외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외로운 존재로 느껴질 수 있게 된다.
작품에서 괴물이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겪는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은, 이 작품이 단순히 엽기적이고 기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만화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작가의 의도는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작가의 코멘트와 작품 속에서의 설정을 종합해 보면, 괴물이라는 캐릭터는 단순히 기괴하고 비윤리적인 존재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괴물이라는 캐릭터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그와 연관된 복합적인 서사를 통해 인간 사회의 본질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본 작품은 바디 스내처 장르의 핵심적인 공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는 점에서 매우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바디 스내처 장르의 기본적인 설정은 '나와 똑같이 생긴 무언가가 나를 대체한다'는 공포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개인의 정체성과 존재성의 파괴를 다루며, 자신이 타의에 의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두려움과 긴장감을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본 작품은 이러한 장르적 전제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노골적인 성애 묘사를 결합하고, 여기에 이종간의 순애적 사랑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독특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기존의 바디 스내처 장르가 주로 공포와 서스펜스에 초점을 맞추며, 로맨스나 성애적 요소를 서사의 주된 축으로 삼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본 작품이 얼마나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바디 에이리언》(1993) |
사실, 인간과 인간의 천적인 신체 강탈자나 식인 괴물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기생수》와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같은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본질적으로 이종간의 사랑이나 우정을 부차적인 소재로 다뤘을 뿐이며, 이를 서사의 핵심 요소로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예컨대, 《기생수》는 인간과 기생 생물 간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며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그 관계는 사랑이나 로맨스보다는 상호 공존과 갈등의 서사로 귀결된다.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역시 초월적 존재와 인간 간의 관계를 탐구하지만, 이는 서스펜스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을 뿐, 로맨스를 핵심으로 삼지는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작품은 기존의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나, 이종간의 순애적 사랑을 주요 서사로 삼아 전개된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했다.
특히, 본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괴물 쪽에서 먼저' 인간에게 호감을 품고, 교감을 시도한다는 설정이다. 기존의 많은 바디 스내처 및 호러 장르 작품들에서, 비인간적 존재는 인간에게 위협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먼저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본 작품에서는 이러한 관례를 깨고, 괴물이 인간에게 순수한 애정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교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설정으로 끝나지 않고, 괴물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매력을 배가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러한 설정 덕분에 본 작품은 단순히 바디 스내처의 새로운 변주를 넘어, 이 장르가 가진 기존의 틀을 확장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감정적 깊이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처럼 독창적인 시도를 감행한 본 작품은, 이 장르에 속한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폭넓은 인지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바디 스내처와 이종간 사랑을 다룬 작품군 중에서 본 작품만큼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화제성을 확보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서사를 제시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 속에 녹여낸 감정적 서정성과 심리적 긴장감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작품이 대중성과 독창성을 모두 확보하는 데 기여했으며, 작가가 스스로 작품의 정체성을 럽코물(라부코메)이라고 농담 삼아 코멘트할 만큼,[20] 본작의 특유의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성이 팬들로부터 크게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본 작품은 바디 스내처 장르의 전통적인 공포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이종간의 순애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중심에 두는 과감한 시도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동시에, 이 장르에서 흔치 않은 괴물의 '능동적 교류'와 '감정적 성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기존의 바디 스내처 및 호러 장르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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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하는 와중 주인공을 배려해주는 괴물[21] |
작품 속에서 괴물이 미적 기준을 충족하는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은 외형적인 아름다움 그 자체를 넘어, 괴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긴장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주인공의 관점에서 보면, 설령 상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괴물이라 할지라도 그 외형이 인간의 심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면, 그 괴물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이는 괴물이 단순히 인간적 매력을 지니고 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매력이 주인공에게 복잡한 감정적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괴물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임과 동시에 외형적으로도 아름다움이 결여된 존재였다면, 주인공은 괴물과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어떤 매력이나 이유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결과적으로 이를 주저 없이 외면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작품에서 괴물이 가진 외형적 아름다움은 단순히 미적 요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간적 심미적 기준과 관계를 맺는 데 따르는 리스크 간의 균형을 상징하는 대단히 중요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본 작품의 독특한 매력은 괴물의 외면적인 아름다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독자들은 괴물의 내면적인 매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적 서사에 더욱 깊이 매료되었다. 괴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긋난 존재로서의 이질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주인공과 교류하며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태도와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독특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괴물이 보여주는 담담한 어투와 태연한 표정은 단순한 미형의 존재가 아니라, 이지적이고 지적인 캐릭터라는 점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설정은 괴물이 주인공의 연인이나 동반자로 기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의 정서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특히, 괴물은 물질적으로는 주인공에게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주인공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마치 부모에게 보살핌을 받는 아이처럼 의존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괴물은 주인공이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하며, 주인공을 육체적으로 품어주는 성숙하고 상식적인 조력자 역할을 한다. 이는 괴물이 주인공에게 단순히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때로는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관계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괴물은 자신이 주인공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러한 자각은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있어서 항상 조심스럽고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게 만든다.
이러한 괴물의 모습은 작품 속에서 여러 장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괴물은 자신이 주인공에게 큰 위험과 부담을 안기는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미안해하며 주인공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인다. 구체적으로 괴물은 식사할 때마다 주인공에게 망을 보게 하는 행위가 주인공에게 얼마나 큰 리스크를 동반하는지 알고, 이를 감수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한다. 이는 괴물이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더불어, 괴물이 주인공을 향해 보여주는 일편단심의 태도는 괴물을 더욱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자리잡게 만든다. 괴물은 오직 주인공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관심과 애정을 모두 그에게 집중한다. 괴물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연인 관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괴물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식인괴물이라는 본능적 특성과,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지극히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모습은 서로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대비는 괴물이 단순히 무서운 존재나 비현실적인 판타지적 연인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입체적 캐릭터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만든다.
결국, 본 작품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괴물이 미형의 외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괴물은 인간적 아름다움과 초월적 이질성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존재로, 주인공에게 감정적 혼란과 서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괴물의 성숙한 태도와 헌신적인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괴물이 단순히 외적인 매력만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적인 깊이를 지닌 존재로 느끼게 만든다. 이는 본 작품이 기존의 몬무스 장르를 넘어 독창적이고도 감성적인 매력을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강렬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본 작품은 인간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전개한다. 즉 인간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존재, 그것도 단순한 폭력이나 협박의 수준을 넘어선 식인괴물이라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존재와, 그 괴물을 향한 개인적인 감정과 집착, 혹은 사사로운 애정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는 인간 사이에서 형성된 일그러지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관계, 즉 '사련'(邪恋)[22]이라는 개념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소재는 인간 본연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며 동시에 금기시되는 욕망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강한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작품은 이러한 극단적인 관계를 단순히 충격적인 요소로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고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서사를 전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식인괴물을 다룬 작품들이 액션, 호러, 서스펜스 등의 장르적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긴장감을 극대화하거나, 극적인 전개를 통해 독자에게 공포와 불쾌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본 작품은 오히려 감정적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즉,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도 지나치게 과장된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공포를 조성하기보다는, 비교적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과 괴물 간의 감정선이 전개되도록 함으로써,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절묘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이로 인해, 본 작품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이 공존하는 형태를 띠면서도 단순한 판타지적 요소에 머물지 않고, 묘하게 현실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동 장르 내의 여타 작품들과 확연히 차별화된 색채를 띤다. 예컨대, 같은 장르군에 속하는 《기생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등의 작품들이 보다 강렬한 액션 요소, 다크 판타지적 분위기, 혹은 어반 판타지적인 색채를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과 달리, 본 작품은 그러한 격렬한 전개 대신, 보다 조용하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본 작품이 다루는 관계의 본질이 일반적인 로맨스 서사에서 기대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비일상적 캐릭터, 즉 일반적인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윤리적, 도덕적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 이를테면 식인 괴물과 그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고도 이를 비호하며 함께 살아가는 인간 종범(從犯)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극히 평범한 일상적 잡담에 불과하다. 주인공과 괴물 모두 인간 사회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정작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한 대비가 형성된다.
특히 본 작품에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 또한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는 단순히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짝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지 못했다는 상실감과, 그것을 어떻게든 이루고자 발악하는 욕망을 품고 있을 뿐이며, 괴물 또한 인간을 습격하고 잡아먹는 끔찍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에게 있어서만큼은 그의 이상적인 연인이 되기를 자처하며, 그저 자신을 거두어 준 존재에게 충성하고 보은하고 싶다는 단순한 감정을 품고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범죄와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르는 등장인물들이 정작 그 동기와 욕망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고 순진하다는 점이 작품의 주요한 서사적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비윤리적 행위의 끔찍함과,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소박함 사이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강하게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엽기적이거나 기괴한 장르적 요소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관계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랑조차도 일종의 감정적인 결속으로 형성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본 작품이 단순한 고어물, 혹은 성 도착적인 괴기물로 치부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식에 있다. 물론 본 작품이 다루는 관계는 현대 사회의 도덕적 기준에서 볼 때 절대적으로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윤리적으로 정당한 방식으로만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단순한 충격 요소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인간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오래된 클리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때로는 개인의 욕망과 집착을 넘어, 윤리와 도덕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으며, 심지어 동족 사회 전체를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테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 속에서 변주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품은 단순한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고, 우리는 사랑의 형태에 선과 악, 정당함과 부당함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테마는 동종 장르 작품들과도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하나, 본 작품은 특히 비상업적이고, 정기 연재가 아닌 인디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며 높은 인지도를 획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자극적 요소를 넘어,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지만' 동시에 '이해하고 싶어지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본 작품이 단순한 기괴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3. 기타
[1] 상단 좌측 사진(에피소드 3화)에서 괴물의 직립 자세는 우측 사진의 《유성에서 온 물체X: 퍼스트 컨택트》(遊星からの物体X: ファーストコンタクト)의 포스터 구도를 오마주했으며, 또한 《유성에서 온 물체X》는 에피소드 11화에서 괴물이 시청 중인 영화 중 하나로 등장한다. 상기한 바 《기생수》 외에도 본작의 또 다른 모티브 중 하나인 《더 씽》의 외계종족 크리처를 연상시키는 여러 요소 때문인지 서구권 팬덤에선 괴물(Monster), 식인귀/식인 괴물(Man-eater), 괴물 소녀(Monster Girl)란 호칭 말고도 편의상 외계인(Alien) 혹은 외계 생명체(Alien Creature)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2] 혹은 이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2019년작 애니메이션.[3] 인간의 신체를 차지하고 인간들 틈에 숨어서 몰래 인간을 먹으며 연명한다는 설정인 괴물의 디자인 골조는 틀림없이 《기생수》의 패러사이트, 《더 씽(1982)》, 《더 씽(2011)》의 괴물(The Thing)(3화, 13화)에서, 사고 및 행동양식(대사 포함)은 《기생수》의 타미야 료코(4화), 시마다 히데오(14화), 오른쪽이(작가 코멘트), 죠(1화, 작가 코멘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만티코어(0화, 2화, 작가 코멘트)에게서 골고루 영감을 받은 것임이 확실하며, 그중에서도 작가가 가장 많은 영감을 얻은 것은 만티코어였다고 한다.("메타발언을 하자면, (인간을) 대체하는 장면(シチュ)에서 제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メタな話をすると成り代わりシチュで一番作者が影響を受けているので…))[4] 작가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로서, 본래 채색 일러스트도 수 차례 그린 바 있으나(#수녀명부(#修道女名簿) 캐릭터 일러스트) 본 작품의 경우는 퇴폐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함인지, 유혈 묘사와 괴물의 붉은색 눈동자를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유채색 사용을 절제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사한 작풍을 지닌 박수봉 작가의 네이버 웹툰 《먹이》가 연상된다는 의견도 있다.[5] 다만, 연재처인 트위터와 픽시브의 업로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표현 수위는 아주 높지 않다. 일본법에 따라 성적인 묘사가 포함된 경우 성기 모자이크 처리가 필수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도 흑색 박스형 모자이크로 민감한 부분을 가렸다. 이로 인해 작품은 청년만화와 성인만화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6] 작가는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픽시브 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투고된 수많은 일러스트와 단편 만화들은 그의 작품 세계의 토대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는 독자들에게 큰 충격과 양가적 감정을 안겨준 《온당한 료나》와, 《옛 친구와의 재회를 그린 순애 이야기.》가 있으며, 작화 실력은 그가 활동을 시작한 초기부터 꾸준히 발전해왔는데, 특히 2015~2020년 사이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작가 고유의 그림체가 확립되었고, 본작의 연재 시점에서는 그것이 거의 완성형에 도달했다. 이러한 변화는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으며, 작품의 몰입감과 감정적 깊이를 한층 더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7] 각각 1화(좌측 사진)와 14화(우측 사진)에서의 괴물의 모습이며, 윗 문단에서 전술하였듯이 그간 작가의 기량 상승과 팬들에게 익숙한 고유의 현재 화풍이 완성에 다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풍이 정립되지 않았던 활동 극초기인 2010년의 작화와 2020년대 이후의 작화를 대조해 보면 지난 약 10년간 장족의 발전을 이뤘으며, 본작도 처음 1~2화는 러프하게 그렸으나 작가가 인기를 실감했는지 3화를 기점으로 나중 회차로 갈수록 비교적 깔끔하게 작화가 다듬어졌다.[8]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던 '그녀'의 몸을 빼앗은 괴물과 성관계를 맺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간의 얄팍한 외형에 대한 집착과, 성관계를 대가로 그녀의 죽음과 괴물의 악행을 묵인했다는 죄책감을 동시에 건드린다.[9] 실제로 각국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접한 뒤 작가의 팬이 되었다고 후기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며, 현재도 각국의 독자들이 작가의 팬으로 유입되는 데에는 본 만화의 공이 매우 크다.[10] 즉, 주인공 커플의 사랑은 일견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이면엔 결국 빼앗은 몸으로 하는 어두운 사랑이며, 또한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해치며 이뤄낸 지독하게 뒤틀린 사랑인 셈이다. 이는 《사야의 노래》가 잔혹성과 범죄자 미화 논란으로 작품성과는 별개로 혹평을 받은 것과 일맥상통한다.[11]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대체로 과격하고 엽기적인, 료나물 혹은 피폐물에 가까운 내용이 많았던 반면, 본 작품은 그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기존의 호러와 고어 요소를 대폭 떨어뜨린 대신 순애와 일상적인 요소를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는 본 작품에 대한 시각적, 심리적 거부감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했으며,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넓은 독자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12] "괴물은 『인간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물질이 인간 사회에 섞였을 때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공부 삼아 자주 접하고 있어요."(バケモノは『人間とは決して相容れない異物が人間社会に紛れたとき、どうなるか、どうするか』みたいな話を勉強も兼ねてよく摂取してる。))[13] "인류의 사정을 별로 봐주지 않는 모습이에요."(あまり人類の都合には寄り添ってくれない様子。)[14] 본편 17편, 외전 9편.[15] "나만 특별 취급해 주는 식인 괴물 주세요."(僕のことだけ特別扱いしてくれる人食いのバケモノください。)[16] "나에게 있어 인간이란 음식이라서, '먹었다' 이상의 감상은 없는데."(おれにとって人間は食べ物で、だから喰ったという以上の感想はないな。)
"네가 특별할 뿐이야."(お前が特別なだけだよ。)[17] "친구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녀석이니까요..."(友人としてはメチャクチャいい奴ですからね…)[18] 괴물의 외형을 숨기지 않은 채로 책장에 책을 꽂아넣고 있는 모습을 보아 아마도 괴물이 주인공의 방에서 독서를 마치고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으로 짐작되며, 식사 패턴에 변화를 주려는 것은 수사 및 퇴치 기관으로부터 덜미를 잡힐 확률을 줄이기 위함인 듯하다. 사건이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다면 수사관들은 범인의 범행 장소와 대략적인 활동 반경을 파악할 수 있지만, 흩어져 있으면 범인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범인의 위치를 좁히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 또한 주인공과 괴물이 거주 중인 지역이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지방 중소도시임을 감안하여 주민들을 과잉 사냥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여기엔 괴물이 군경 등 조직화된 대규모의 무장 병력 집단을 당해낼 수 없는 입장임도 한몫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몰래 매복해 있다가 홀로 있는 비무장한 인간을 표적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며, 애당초 현재의 몸도 그렇게 빼앗아 동화하다가 주인공에게 들키게 된 것. 그리고 상기 대사를 통해서도 괴물이 제법 신중한 성격임을 재차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을 감쪽같이 의태할 수 있는 능력 하나만 믿고 마구잡이로 인간을 잡아먹으며, 식사 후에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사 기관에게 꼬리를 밟힐 여지를 남기는 부주의한 모습을 보인 《기생수》의 기생 생물들에 비하면, 괴물은 주인공의 협조를 받을 수 있기에 좀 더 여유로운 처신이 가능함에도 스스로 몸을 사린다는 면에서 확실히 현명한 대처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괴물이 차지한 현재의 몸은 애인인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하는 몸이기 때문에, 그의 취향에 가능한 맞춰 주기 위해서라도 몸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까닭도 있다. 저들이야 여차하면 다른 몸으로 갈아타버리면 그만이지만, 괴물은 그게 안 되니 저렇게 신중하게 신상 관리를 하려는 것.[19] "그런 속셈이 있을 리 없어요! 분명 진짜로 착한 녀석일 뿐이에요!"(そんな下心ないはずだもん!きっとマジいい奴なだけだもん!)[20] "인제 이 시리즈는 러브 코미디라 해도 무방할듯 하네요."(もはやこのシリーズ、ラブコメと言って差し支えないかもしれない.)[21] "나는 (네가 보더라도) 상관없지만,(おれはいいが)
네 입장에서는 동족이 잡아먹히는 꼴을 보면 기분이 나쁠 거야."(お前からしたら同族が食われるところなんて気分がよくないだろう。)[22] じゃれん. 사악할 사, 마음 연(련).
"네가 특별할 뿐이야."(お前が特別なだけだよ。)[17] "친구로서는 무척이나 좋은 녀석이니까요..."(友人としてはメチャクチャいい奴ですからね…)[18] 괴물의 외형을 숨기지 않은 채로 책장에 책을 꽂아넣고 있는 모습을 보아 아마도 괴물이 주인공의 방에서 독서를 마치고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상황으로 짐작되며, 식사 패턴에 변화를 주려는 것은 수사 및 퇴치 기관으로부터 덜미를 잡힐 확률을 줄이기 위함인 듯하다. 사건이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다면 수사관들은 범인의 범행 장소와 대략적인 활동 반경을 파악할 수 있지만, 흩어져 있으면 범인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범인의 위치를 좁히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 또한 주인공과 괴물이 거주 중인 지역이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지방 중소도시임을 감안하여 주민들을 과잉 사냥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여기엔 괴물이 군경 등 조직화된 대규모의 무장 병력 집단을 당해낼 수 없는 입장임도 한몫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몰래 매복해 있다가 홀로 있는 비무장한 인간을 표적으로 삼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며, 애당초 현재의 몸도 그렇게 빼앗아 동화하다가 주인공에게 들키게 된 것. 그리고 상기 대사를 통해서도 괴물이 제법 신중한 성격임을 재차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을 감쪽같이 의태할 수 있는 능력 하나만 믿고 마구잡이로 인간을 잡아먹으며, 식사 후에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사 기관에게 꼬리를 밟힐 여지를 남기는 부주의한 모습을 보인 《기생수》의 기생 생물들에 비하면, 괴물은 주인공의 협조를 받을 수 있기에 좀 더 여유로운 처신이 가능함에도 스스로 몸을 사린다는 면에서 확실히 현명한 대처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괴물이 차지한 현재의 몸은 애인인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하는 몸이기 때문에, 그의 취향에 가능한 맞춰 주기 위해서라도 몸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까닭도 있다. 저들이야 여차하면 다른 몸으로 갈아타버리면 그만이지만, 괴물은 그게 안 되니 저렇게 신중하게 신상 관리를 하려는 것.[19] "그런 속셈이 있을 리 없어요! 분명 진짜로 착한 녀석일 뿐이에요!"(そんな下心ないはずだもん!きっとマジいい奴なだけだもん!)[20] "인제 이 시리즈는 러브 코미디라 해도 무방할듯 하네요."(もはやこのシリーズ、ラブコメと言って差し支えないかもしれない.)[21] "나는 (네가 보더라도) 상관없지만,(おれはいいが)
네 입장에서는 동족이 잡아먹히는 꼴을 보면 기분이 나쁠 거야."(お前からしたら同族が食われるところなんて気分がよくないだろう。)[22] じゃれん. 사악할 사, 마음 연(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