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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20:33:39

너의 이름은./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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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믹스 | 무대탐방 | 패러디 | 비판 | 표절 논란 | 기타 사항
OST(夢灯籠 / 前前前世 / スパークル / なんでもないや)

1. 개요2. 스토리 관련 비판
2.1. 꿈과 현실의 인식문제2.2. 평면적인 캐릭터2.3. 부족한 감정묘사2.4. 무스비(結び)와 지나친 우연성
3. 연출 관련 비판
3.1. 지나친 생략3.2. 삽입곡 과잉 사용3.3. 고증, 현실성 오류3.4. 성 상품화 관련
4. 국내 개봉과 관련된 비판
4.1. 변칙 개봉 논란4.2. 자막 번역 문제4.3. 한국어 더빙 문제

1. 개요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대한 비판을 서술하는 문서.

작품 내적인 비판은 개연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1] 그 외에도 화제의 작품인 만큼 국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2. 스토리 관련 비판

映画とか演劇というのは、“ファンにだけ見てもらって“も商売にはならないんです。それはヒットした『君の名は。』で証明されています。実は、『君の名は。』は画面的な作りでいうとかなり意識しました。
영화라든지, 연극은 [팬들만 봐서는] 장사가 안됩니다. 그건 히트한 [너의 이름은]에서 증명됩니다. 실은 [너의 이름은]은 화면적인 만듦새를 꽤나 의식하였습니다.[2]
- 토미노 요시유키, 출처, 번역

너의 이름은.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은 극을 이끌어 가기 위한 뜬금없는 설정, 캐릭터들의 현실적이지 않은 행동들, 주된 전개가 억지스럽다는 점이었다. 스토리는 진부한데 연출이 멱살잡고 리드한다는 지적도 흔히 나온다. 그래서 엔딩이 끝나고 아쉬움과 공허함을 느꼈던 사람도 많은 듯.

대부분 비판은 큰 대주제인 "간절함"과 "인연"을 연출하기 위한 미디어적 허용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템포조절 과정에서 쳐낸 부분들을 납득을 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관객이 파고들어 해석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연성에 구멍이 뚫려 헷갈리게 되는 것.

2.1. 꿈과 현실의 인식문제

2.2. 평면적인 캐릭터

2.3. 부족한 감정묘사

2.4. 무스비(結び)와 지나친 우연성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무스비로 표현되는 인연이다.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도 무스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도 무스비라고 언급한다. 따라서 작중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무스비"로 이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 되는데 이 무스비로 인해 발생되는 우연성이 작품에서 꽤나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운명론적 세계관을 대사에서도 연출에서도 쭉 암시하기 때문에 이는 다른 비판점에 비하면 설명이 충분히 된 부분이다.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동아시아 전반에 퍼진 운명론적 관점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인데 중간중간 둘이 끈 같은 것으로 이어져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다 이것을 따르고 있기 때문. 이들은 어떠한 개연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운명적으로 이어진 관계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스파클의 가사 역시 둘의 관계는 운명, 미래, 시간 모든 것을 초월한 인연임을 말해준다. 라라랜드도 우연적인 전개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마지막 씬에서 운명적 사랑을 매우 높은 수준의 극적 연출로 표현하며 주제의식 역시 표출하는 데 성공했고, 걸작에 어울리는 연출이라는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운명론적 요소 그 자체에 못지 않게 연출의 호소력과 명확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문제는 신카이 마코토가 로맨스 장르에서의 운명적 전개보다 사건 진행의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들에게 전개를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우연성이라는 요소를 감독이 어떻게 납득시키냐에 따라 연출의 호오가 크게 갈릴 수 있는데, 실로 대표되는 인연의 지속적 환기, 연결과 단절이 강조된 연출과 미장센은 개연성이 희생되더라도 운명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이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갖춘 연출이 될 수 있지만 애초부터 그런 전개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들을 납득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사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주어지지 않고 운명으로 퉁치는 것은 불친절한 전개로 인식된다.

다만 '무스비'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도 불편할 수 있는데, 이 둘의 사랑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스미는 전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무스비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게 생판 남과 몸이 바뀌는데 그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다. 게다가 서로가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기 전까지 몸만 여러차례 바뀌었을 뿐 직접 서로를 만난 적이 없었다.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이 생략되어서 서로의 어디가 끌렸는지 묘사되지 않았다. 요약하면 잠에서 깨보니 사랑에 빠졌던 것. 운명에 의해 조작된 수동적 사랑이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다.

무스비 자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청자들도 있는데 작중 나온 무스비 설명에 대한 해설글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3. 연출 관련 비판

3.1. 지나친 생략

작중에서 의도적으로 편집하거나 축소되었기 때문에 영화판만 봐서는 "뭐지?"라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 상당히 많다. 당장 이 문서에서도 "만화판에서는 ~" "소설판에서는~"이라 하며 보충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리즈가 계속 나오게 되어 나중에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영화는 시간 제약 안에서 모든 관객을 이해시켜야 하는 미디어인만큼 추가적인 해설이 필요하다는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3.2. 삽입곡 과잉 사용

일본의 애니메이션 오프닝과 엔딩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삽입곡을 통해 극의 주제의식과 캐릭터들의 심리를 묘사해서 좋다고 평한다. 하지만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삽입곡 연출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굉장히 당황스러운 연출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연출적인 비판으로는 인도 영화맛살라를 들 수 있다. 인도 영화에서야 당연하다 못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요소다. 그러나 인도 외 문화권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연출이다.[17]

이와 같은 연출방식이 TV 애니메이션 등에서 자주 쓰이니 비판점이 안된다는 반대 의견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단적으로 겨울왕국의 사례를 보아도 장면에 계속 노래가 들어간다.[18] 하지만 TV라는 매체는 태생부터 영화라는 매체와 경쟁관계로서 영화계는 TV와는 다른 연출을 통해 TV의 위협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다.[19]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에게는 극과 TV의 연결성의 차원에서 친숙한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겠지만, 영화적으로 보자면 비판받을 요소가 많은 연출일 수밖에 없다.

겨울왕국의 삽입곡이나 인도의 맛살라가 뮤지컬의 느낌이라면 너의 이름은에서의 삽입곡은 뮤직 비디오, TVA 오프닝, PV 같은 느낌. 전자의 삽입곡이 작품의 전개를 보조하며 극적 효과를 극대화 하는 부차적 요소라면, 후자는 '영화답지 않게' 이야기로부터 잠깐 떨어져 나온 컨셉 무비 때문에 몰입감이 방해 받는 느낌이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무비썸에서 삽입곡이 너무 과하게 사용된 것 같다고 평했고, 국내 영화평론가 중 <너의 이름은.>에 가장 호평한 씨네21 김혜리 기자마저도 영화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너의 이름은.>편에서 삽입곡이 과잉으로 연출된 점이 아쉽다고 평했다.

3.3. 고증, 현실성 오류

3.4. 성 상품화 관련

일부 관람객들 사이에서, 특히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타키미츠하의 가슴을 만지는 것, 또는 뜬금없이 바스트 모핑판치라가 등장하는 것, 타키보다 미츠하의 신체 부위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는 것 등을 이유로 여성혐오에 해당한다며 불만이 나왔다. 예시 이 이외에도 타키의 몸에 들어간 미츠하가 바느질을 잘 하는 것에 대해 여자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미츠하가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재난에서의 피해자를 모에화한 캐릭터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경우 억지 주장으로 여겨진다.

반면 미츠하도 타키의 그곳을 지속적으로 만진 점[24]을 지적하며 반박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미국의 여성영화비평가협회에서는 남녀가 몸이 바뀐 상태에서 서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이 성평등을 추구한다고 보았다.[25]

인피니트성규가 관람인증을 했다가 여성혐오로 몰린 사례가 존재한다. #

이는 후속작인 날씨의 아이에서도 똑같이 전개되었다. 단지 이의 경우에는 흥행력이 부족했기에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다.

4. 국내 개봉과 관련된 비판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닌 국내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혹은 개봉된 후에 발생한 여러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다.

4.1. 변칙 개봉 논란

국내에서 1월 4일 개봉했고, 개봉 하루 전 날인 1월 3일을 기준으로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국내 흥행을 예고했으나 이전 12월 31일, 1월 1일 이틀간 진행했던 유료시사회, 즉 변칙개봉을 통해 이득을 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었다. 기사

변칙개봉이란 영화의 흥행과 적정 스크린 수 예상 등을 위해 정식개봉 이전 주말에 유료시사회 등의 명목으로 앞당겨 상영을 하는 것을 말한다. 꼼수 개봉 항목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4.2. 자막 번역 문제

번역이 잘못 되거나 매끄럽지 못하게 되어있는 부분이 종종 존재했다.[26]

물론 게임포커스에 자막제작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여러 가지로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일본어는 번역하기 까다로운 경향이 심한 언어이기도 하고[27] 영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내용의 빠른 이해를 돕고 가능한 화면에 집중하게 하려면 변형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는 하다. 영상에서 자막을 놓친다는건 곧 내용 이해를 못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기 때문에 긴 문장을 짧게 줄이거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조정하는게 현실이기도 하니 번역이 매끄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향이 크긴 하다.

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번역의 상태가 딱히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편이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작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인 카타와레도키. 이 단어는 영화 내에서 "게 뉘시여", "게 뉘여 할 황혼", "황혼 기적의 시간" 등 같은 단어를 두고 제각각으로 번역하였기에 관련된 내용이 매끄럽게 이어지질 못했다.[28]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르게 번역됐다는걸 모를 경우 "황혼, 기적의 시간!"으로 번역된 내용을 '아, 초반에 이야기가 나왔던 그거네. 복선이었구나.'가 아닌, '뭐야 이거. 극적인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기적이라니 너무 과장된 표현 아냐? 역시 일본영화네. 오글거려'식으로 반응하는 등의 큰 오해를 불러 자칫 작품에 대한 평가를 크게 깎아내릴 수 있는 문제를 낳게 만든다. 원 내용과의 차이가 있더라도 클라이맥스에서 사용할 단어를 정하고 수업시간의 내용에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했다면 훨씬 매끄러운 번역이 됐을 것이다.[29] 그래서인지 몰라도 소설판에서는 그냥 카타와레도키라는 원어 그대로 통일했다. 아래에 나올 구치카미자케도 ('무녀 입 술' 드립 부분만 빼고) 마찬가지.

미츠하 아버지의 직업을 이장으로 번역한 것도 여러모로 적절하지 못한 번역이다. 이는 이토모리마치에서 마치를 리(里)로 해석한 것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작중에서 미츠하의 아버지가 정치를 한다는 표현이 나오고, 지역의 재력가에게 로비를 하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유세를 하며, 행정건물 내에 개인실이 있고, 또 그 곳에서 양복입고 일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미 대중이 인식하는 이장의 모습과는 한참 동떨어진 상태다. 오히려 한국으로 놓고 본다면 군수 이상의 직책과 비슷한 상황. 애초에 한국에서는 이장이나 촌장을 정치인으로 인식하질 않기 때문에 일본 관련 지식 없이 이 번역을 접한 이들은 해당 직책에 대해 적잖은 어색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굳이 이런 인식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실제 일본 행정구역체계에서 마치(정,町)는 규모상으로는 정도에 해당하고, 지위로는 에 가깝다.[30] 여러모로 오역인 셈.[31]

미인주("구치카미자케"(口噛み酒, くちかみざけ))의 번역이 오락가락하는 부분도 문제. 미인주, 씹어만든 술, 구치카미자케 등 어느쪽으로 번역을 해도 생소한 단어[32]라는 점에서 큰 문제는 없으나 동일한 단어가 서로 다르게 번역되면 같은 단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 대사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쓰게 되면 다소 혼란을 줄 수 있었다.[33]

번역을 어떤 단어로 하느냐에 대한 논의도 있으나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체로 미인주 vs 구치카미자케로 의견 대립이 이루어지는 편으로, 미인주에 대한 지지는 이미 존재하는 한국어라는 점을 들고 있고, 구치카미자케에 대한 지지는 미인주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을 우려하는 것인데[34], 두 단어의 파생 원인에 따른 차이 때문에 어감 차이가 심하긴 해도[35] 작중에 나온 개그 요소[36] 덕분에 어느 쪽으로 번역하든 위화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할 수가 있다. 게다가 '구치카미자케'의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단어 이해에 대한 보강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느 쪽이든 뜬금없는 드립이 되진 않는다.[37]

결국 극 전체 자막을 '씹어만든 술'로 맞췄느냐, '미인주'로 맞췄느냐의 차이. 역자가 극 전체적으로 '미인주'로 번역해서 진행했다면 '미인주'가 더 어울렸을 것이고 '씹어만든 술'로 번역했으면 '씹어만든 술'이 더 어울리게 된다. 이런 문제를 적절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역자의 능력 중 하나이다.[38] 하지만 결국 극 내에서의 자막은 구치카미자케와 씹어만든 술 2개의 단어를 병용하여 이도저도 아닌 번역이 되어버렸다. 같은 단어에 다른 자막을 넣어버리니 자막을 봤던 관객들 입장에서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로 오해할 가능성이 높은 문제가 생겼던 것이었다.

엔딩 마무리 대사인 君の名前は。의 번역도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역자는 '기억을 잃고 나서 처음 만난 상대'에게 '한국인의 정서상 초면에 너라고 하는건 어색하다는 이유로 "당신의 이름은."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어에서도 성인 남녀가 초면에서 서로를 호칭하는 경우는 '키미'보다는 역시 '당신'에 해당하는 '아나타'나 '소치라' 정도가 자연스럽다.[39]두 사람이 서로를 '키미'로 지칭하는 것은 그들이 서로의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처음 본 순간 서로가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확신한다. 서로를 '키미'로 호칭하는 것 자체가 감독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이기 때문에 고지식하게 '당신'으로 번역하는 것은 작품의 주제 의식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역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작품 제목을 '너의 이름은'이라고 번역해 놓고 엔딩에서는 '당신의 이름은'으로 마무리가 된 꼴이 되어, 카타와레토키, 구치가미자케의 예와 마찬가지로 번역의 일관성이 결여된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 특히 이 부분은 앞의 두 예시와 다르게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어색함이나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에 더 눈에 띄는 오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츠카사가 혜성이 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는 중에 "재해"를 "화재"로 오역한 것이나, 초반에 요츠하가 단순하게 "이제 그만 화해했으면 좋겠다"라고 한 부분을 "이제 그만 아빠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는 형태로 번역하여 뜬금없이 가족관계가 먼저 드러나버리고[40], 굳이 표현을 바꾸지 않아도 될 부분을 바꿔서 뉘앙스가 바뀌는[41] 등의 자잘한 문제가 산재하다. 또한 미츠하가 가을 축제날 낮에 테시가와라에게 전화를 받고 "학교 땡땡이치고 있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뒹굴거리고 있었다"라고 번역해서 이후 시간을 돌리고 난 뒤 학교에서 테시가와라와 사야카가 미츠하의 단발을 보고 놀라는 부분에서 설정구멍이 발생한 것처럼 오해받기도 했다. (시간을 돌리기 전에는 미츠하가 학교를 땡땡이쳐서 밤이 되어서야 단발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땡땡이쳤다는 정보가 없으면 이 장면이 설명되지 않는다.) 의역하는 과정에서 역자의 주관이 포함되는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지만, 의미의 정확성을 해치는 번역이 되면 의역을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마이너스인 부분. 엔딩 곡인 'なんでもないや'에서도 자막 감수가 잘못된 건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후렴구에서 오역이 있다.[42]

삽입곡 '스파클'의 가사에서도 "아름답게 발버둥칠게"를 "멋지게 벗어나줄게"로 바꾸어버렸다. 이 표현은 소설판에서 해당 절의 부제이며 작품의 주제와 이어지는데 어떤 판단에서인지 전혀 다른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사투리[43]를 거의 다 표준어로 번역해 놓은건 다소 아쉬운 부분. 작중에서 미츠하가 살고 있는 이토모리마치는 깡촌이라 여겨질 정도로 시골인데도[44] 그 지역에서 쓰는 말이 모두 표준어로 되어 있다. 물론 작중의 사투리 비중이 높거나, 알아듣기 어려울정도로 써대는 것도 아니고, 표준어로 번역한다고 극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니[45] 이를 두고 크게 깔 필요는 없긴 하다. 작중에서 이토모리마치 사람들이 쓰는 단어는 표준어 기반에 사투리가 조금 가미된 수준이기 때문[46]. 다만 사투리/표준어의 차이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부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편이다. 사실 사투리 적용 문제에 대해선 자막을 번역한 강민하씨 본인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위 게임포커스 인터뷰 참고) 그래서 처음엔 대사를 사투리로 처리해보았으나, 우리나라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 사투리는 멜로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결국 사투리 처리를 배제하는 쪽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TV 코미디프로그램 등에서 사투리를 희화화 용도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영화의 코믹한 장면에서는 괜찮지만 진지한 장면, 낭만적인 장면에서까지 원문이 의도치 않은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가 나타나버려서 감정의 몰입을 막을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4.3. 한국어 더빙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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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지만 개연성이 재미와 직결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답을 한 적이 있다.[2] 그렇다고 토미노는 화면적인 만듦새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 의미는 개연성도 충분히 있어야한다는 의미다.[3] 네이버 영화 베스트 댓글: 왜 날짜를 볼때 연도를 안보니?라고, 부기영화에선 달력이 사라진 일본의 어두운 사회상이 드러난 영화라고 비꼬았다.[4] 이토모리라는 이름을 스스로 떠올리지 못해서 풍경만으로 알음알음 찾아야만 했다. 참고로 스스로 떠올리지 못할 뿐 기억 속에는 남아있다는 묘사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나온다.[5] 그런데 이토모리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미츠하의 몸으로 가문의 신지(神地)에 미츠하의 절반이 깃든 쿠치카미자케를 공양한 것과 무스비에 대한 것은 기가막히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6] 특별판인 어나더 사이드에서는 타키가 좀 더 직설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부각시키지만 주변 반응은 비슷한 수준이었다.[7] 미츠하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을 언급한 내용이 있긴 한데 성격과는 무관하게, 운석이 떨어진다는 말에 대한 대꾸여서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격에 대한 부분을 눈치챘을 때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넌 누구냐?'라는 질문을 했다.[8] 비슷한 포지션의 날씨의 아이스가 나츠미는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과 대비된다.[9] 전전전세 OST가 나오는 동안 나왔던 장면들이 과정이 여기에 해당한다.[10]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사랑이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하고 있다고 깨닫는 것이며,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이유는 없다" 라고 설명했다.[11] 사실 직접 만나지 않았음에도 남에게 얘기만 듣고 좋아하게 된다는 전개가 있는 작품도 있기는 하다.[12] 이를 보강하기 위해서인지 만화판에서는 타카야마 라멘집에서 미츠하가 남긴 고백에 가까운 문자를 하나 더 발견하기도 하고, 미츠하가 타키에게 던져준 머리끈은 미츠하의 어머니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해주라며 남긴 물건인데 쿠치카미자케를 마시고 몸이 바뀐 타키가 그런 미츠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장면 등이 있다. 어나더 사이드에서는 타키가 미츠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서 살게 되고 자연스럽게 호감을 쌓는 식으로 묘사된다.[13] 하지만 의외로 대화 횟수 자체는 많은 편이다. 일주일에 2~3회 몸이 바뀐다고 하였는데 이 경우 자신의 몸일 때 적는 12회 분량과 상대방 몸일 때 적는 12회 분량이 있어, 대화 자체로만 놓고 보면 24회정도가 오고간다. 단지 각자의 몸으로 보게 되는 주된 내용이 다를 뿐.[14] 지리적인 거리(도쿄와 히다 산맥)와 경제적인 형편, 일본의 교통비를 고려하면 고등학생인 둘에게 직접 찾아가는건 상당한 부담이 된다.[15]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까워졌으나, 소중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 같다는 독백을 한다.[16] 일단 미츠하의 설득->혜성의 충돌까지 걸린 시간은 약 50여분 정도로 1시간의 텀이 있다. 혜성이 분리된 시점이 19시 49분(영화에서 혜성이 분리되었을 때 가정집의 시계)보다도 이전이며 이때 미츠하가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늦어도 작은 동네였기에 약 10여분 정도 소요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시청에 도착한 시간은 약 20시 5분 혹은 20시 10분 정도로 추정. 그리고 외전에서 이미 토시키도 혜성 충돌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설득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혜성 충돌 시각인 20시 42분(작중 신문에 언급)까지는 최대 30여분 정도의 시간밖에 없는 셈이다. 당연히 30분 만에 모든 마을 주민을 마을 바깥으로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어린아이는 더 어렵다. 게다가 외전에서 이미 토시키도 혜성 충돌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는데, 그렇다면 혜성이 둘로 갈라지는 상정 외의 이변을 확인하자마자 미츠하가 올 것도 없이 즉시 대피시켰을 것이다.[17] 그래도 인도 영화는 뮤지컬처럼 노래를 해 놓은 게 많아서 처음 보는 사람도 내용 이해만 할 수 있다면 신나게 즐길 수 있다.[18] 등장인물이 직접 부른다는 점에서 일본식 연출과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19] 이런 노력의 성과물 중 대표적인 것이 시네마스코프가 있다.[20] 스파클 MV에서 확인이 가능하다.[21] 비단 사건이 일어난 일본 뿐만 아니라 많은 외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했을 것은 안봐도 비디오다. 불과 몇년 전에 한 지역이 운석에 의해 증발했다는 미증유의 사건이라면 마치 후쿠시마 사례처럼 한국인들 조차 마을 이름을 알고 있을 공산이 크다.[22] 타키는 미츠하의 몸속에서 살 때 이토모리 마을이 '3년 전에 멸망한 마을'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이토모리'라는 마을 이름 자체는 미츠하의 몸속으로 살때도 들은 적이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나중에 이토모리 마을 그림을 본 이토모리 마을 출신 사람이 '이토모리'라는 마을 이름을 직접 알려주었을때도 타키는 운석 충돌 사건이나 이토모리 마을에 대해서 완전히 모르고있는 것으로 나온다. 미츠하 또한 마찬가지로 타키의 몸에 들어갔을때 정보공유가 활발한 도시라면 이토모리에 대한 소식을 주변에서 접하거나 직접 이토모리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을텐데 운석으로 자기 마을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내내 전혀 알지 못했다. 비단 세월호 뿐만이 아니라, 대구 지하철 참사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이 수백명이 흔치 않은 재난상황으로 사망하는 대사건은 수십년이 지나도 회자되기 마련이며 단순한 인재로 인한 재난을 넘어 운석충돌과 같은 세계사적으로 특기될만한 천재지변이라면 인구에 오르지 않을리가 없고, 당장 타키가 다니는 학교의 수업시간에도 나올 내용일것이다.[23] 일본에서는 지진, 태풍 등의 재난에 대비하는 지역사회 기반 각종 훈련이 잦아서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라면 모를까, 이토모리같은 작은 마을에서 마을단위 훈련에 불참하면 수일에서 수주동안 동네의 화제거리가 될 수도 있다.[24] 타키가 미츠하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보다는 그 분량이 확실히 적긴 하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덤덤한 타키와는 다르게 미츠하는 그런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부끄러움을 피력한다. 물론 이는 캐릭터 간 성격의 차이라고 생각해도 되긴 하지만..[25] 성 관련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이를 표현한 점에 있어서도 높이 샀다.[26] 전체적인 맥락과 상관없이 단어만 가지고 번역이 개판이라고 지적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는 단순 직역의 결과물은 아무리 언어간의 어순이 같다해도 '발번역' 이상의 물건이 되지 못한다는걸 간과한 부분이다.[27] 단적으로 1인칭에 대해서도 미츠하가 와타쿠시, 와타시, 보쿠, 오레라는 네 가지 변화를 보여줬던 장면이 있다. 게다가 독특한 문화가 많고, 언어조합이 다소 자유로운 경향이 있는 탓에 이런 요소가 끼어들면 번역 난이도가 수직으로 상승한다. 엔딩곡에 있던 かくれんぼ はぐれっこ도 이러한 예시 중 하나다.[28] '타소가레'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을 위해 '게 뉘시여', '게 뉘여 할 황혼' 등의 번역을 한 것으로 보이나, 황혼의 시간이라는 기준을 두고 바리에이션을 만들어 처리하는 게 일관성에서나, 내용 이해면에서나 더 나았을 번역이다.[29] 역자의 번역 스타일은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내용 이해를 잘 할 수 있게 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수업시간에 언급되는 타소카레 = 황혼, 타소카레토키 = 황혼의 시간, 카타와레토키 = 혼황의 시간으로 번역한 후 클라이맥스에서의 카타와레토키를 황혼의 시간이라고 번역했으면 단어 번역에 대한 일관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자막을 보는 이들에게 개연성을 맞추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번역이 될 수 있다.[30] 일본의 기초자치단체 분류인 시정촌에서 정에 해당된다. 참고로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와카마츠정(神奈川県横須賀市若松町)'과 같이 시정촌 아래의 하위 행정구역 중에도 정(町)이 있는데, 표기는 같지만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후자 쪽의 정은 한국의 과 비슷한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31] 이를 반영하듯 OCN에선 읍장으로 번역했다.[32] 테시가와라가 구치카미자케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해주는 분량이 할애되어있다.[33] 어떤 장면엔 구치카미자케로, 어떤 장면엔 씹어만든술로 자막이 나오긴 하나 자막만 보는 경우에는 내용상으로 비교적 매끄럽게 이어지기는 했다.[34] 해당 술이 작중에선 제사용 술이면서 동시에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점이 히토하의 설명으로 부각되며, 극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이어주는 매개체(무스비)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35] '구치카미자케'를 직역해보면 '입으로 씹은 술'로 제조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단어고, '미인주'는 제조하는 이들이 보통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36] 사야카는 "저런 거"라고 말함으로서 '입으로 씹은 술'에 맞춰 말하고 테시가와라는 "당연히 좋아하지!"로 '여자가 입으로 만든 술'에 초첨을 맞춰 드립을 친다. 요츠하의 드립도 두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있는 드립(여고생+입)이라 어느 쪽 번역이든 포용이 가능하다.[37] 요츠하의 드립에 대한 재치있는 번역(여고생 무녀 입 술)은 괜찮긴 했으나 극 전체를 놓고 본다면 애매한 편이다. 그나마 개그성 장면이라 이런 드립이 가능했던 것.[38] 물론 일관성을 유지하는 번역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면 한국어에 맞게 번역하기가 까다로워지기가 쉽고, 일관성을 포기하면 번역은 편해지나 다양한 상황에 맞춰 번역하기가 힘들어진다. 초월번역이 괜히 칭송받는 게 아니다.[39] 일본 웹에서도 주위의 반응을 극히 신경쓰고 만사에 소극적인 성격의 미츠하가 처음 보는 사람을 '키미'라 지칭하는 것에 대해 위화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보인다. 물론 아래에 설명한 바와 같이 이미 미츠하는 앞에 선 남자가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며 운명적인 인연으로 이어진 사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처음 보는 사이에서 서로를 지칭하는 대명사로서 굳이 '키미'를 사용한다는 것이 일반적 상황에서는 부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애초에 일본어에서 2인칭 대명사는 자신보다 지위가 동등하거나 낮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용법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선생님, 아버지와 같은 직위, 친족명을 쓰거나 혹은 이름+さん과 같은 식으로 호칭하는 것이 보통이며,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쪽(소치라) 같은 둘러서 말하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이다.[40] 이런 종류의 번역이 꽤 많은 편이다. 역자로서는 빠른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 단어를 넣은 것이지만 이 때문에 원문으로 봤을 때의 감상과 자막으로 봤을 때의 감상 차이가 미묘하게 발생한다.[41] 토시키가 미츠하(타키)에게 병에 걸린 것이니 차 타고 병원에나 가보라고 했을 때 "바보 취급한다"고 화내는 대사를 "날 뭘로 보고!"라고 번역했다.[42] 후반부 후렴구인 '時のかくれんぼ, はぐれっこはもういいよ' 부분의 번역을 전반부 후렴구 구절인 '時のかくれんぼ はぐれっこは'もういやなんだ와 동일하게 번역해놨다.[43] 이토모리마치는 기후현의 사투리인 미노벤(美濃弁)을 쓰고 있다.[44] 기차 같은 건 2시간에 한 번 오고, 편의점은 9시에 문 닫고, 서점이나 치과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45] 타키의 친구들이 딴지를 거는 장면은 한 번 뿐이다. 심지어 텟시나 사야카는 미츠하(타키)의 말투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46] 사실 이게 현실적인 시골 젊은이들의 말투에 가깝다. 공교육의 보편화, 미디어의 보급, 외부 유입(ex. 공무원) 등으로 표준어의 비중이 부쩍 늘고 여기에 사투리가 조금 끼어있는 형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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