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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노이즈팩토리 (株式会社ノイズファクトリー, 1998~2017)
합동회사 노이즈콜 (合同会社ノイズコル, 2022~)
https://en.wikipedia.org/wiki/Noise_Factory
공식 트위터[1]
1. 개요
1998년 1월 28일 오사카부 스이타시 에사카(江坂)에서 설립되었던 일본의 게임회사. 2017년 3월 31일에 사무실을 폐쇄했다.2. 역사
전 SNK 및 ATLUS 칸사이 직원이었던 이주 케이코(伊集 桂子), 다나카 토시카즈(덴츄)가 주요 인물[2]로, 당시 호혈사일족, 프린세스 크라운을 개발하던 ATLUS 칸사이의 제작진들이 독립하여 세운 회사이다.[3]명색이 게임회사지만 자체개발 및 발매작은 단 하나뿐이고, 2000년대 이후 아케이드 사업을 축소한 ATLUS나, 구 SNK 도산 이후 혼란기였던 SNK 플레이모어로부터 하청으로 개발을 맡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알려진 것이 신 호혈사일족과 메탈슬러그 시리즈[4], 그리고 저작권 문제로 말이 많았던 레이지 오브 더 드래곤이었다. 사실 참여한 작품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전반적으로 ATLUS나 구 SNK의 명성에 맞게 게임을 잘 만드는 편은 아니었다.
거기에 게임 음원을 발매하거나, 호혈사일족 일러스트를 넣은 달력을 만들거나, 코믹 마켓 같은 곳에서 무라타 렌지의 만화를 비롯한 굿즈를 복각해서 팔거나… 어째 게임 개발은 부업으로 보일 정도로 게임 회사와는 조금 동떨어진 행보나 커리어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작안의 샤나 디지털 액션 피규어라는 비범한 물건도 있었다.[5][6]
3. 해체
2010년대부터 노이즈 팩토리의 주요 개발진들이 퇴사하고[7] 개발 역량이 하락하면서, 당사가 제작해 왔던 메탈슬러그와 호혈사일족 시리즈를 사실상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여기까지였다면 새로운 개발자를 구인해서 제작을 재개할 수도 있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 아웃소싱을 주던 아틀러스는 경영악화를 겪으면서 여기저기 팔려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세가의 자회사로 편입이 되고, SNK는 카와사키 에이키치가 주식을 처분하고 은퇴하면서 더 이상 개발 수주를 따낼 수 없게 된다.[8]이후 스타피쉬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도쿄 신주쿠에다 개발 사무실을 확장하는 등 나름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2011년 '도그 스쿨 러블리 퍼피(ドッグスクール ラブリーパピー)'의 개발을 끝으로 2017년 3월 31일자로 문을 닫으면서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9]
사실 순서 차이만 있었다 뿐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은 곳은 노이즈 팩토리뿐만이 아니었다. 공동제작을 진행했던 에보가 엔터테인먼트와 메가 엔터프라이즈 모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으며, 휴대용 게임 유통사였던 스타피쉬와 파칭코 제작사 니시진도 2023년에 폐업을 하게 된다. ATLUS와 SNK가 그나마 2024년 현재도 살아남아 있지만, 이쪽도 둘 다 도산한 전력이 있는 등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다.
4. 이후
게임 회사로서의 노이즈 팩토리는 폐업했지만, 전 대표 이주 케이코는 오프라인 샵 및 유통사로 업종을 바꾼 뒤 이름을 유지한 채 이어나가고 있다. 폐업 전의 행보를 생각하면 사실상 게임 개발 사업만 손을 놓은 셈.2022년 7월 13일 공식 트위터에서 재설립을 알렸다. 홈페이지는 이곳.[10] 회사 블로그에는 사측의 역사나 호혈사일족의 설정, 메탈슬러그 4의 개발 이야기 등의 뒷이야기가 적혀 있으며, SNK에 입사했던 내용, 덴츄도 언급하고 있다.
게임 회사로서의 전망은 아직도 불투명하며 재무상태나 직원의 규모도 알 수 없다. 회사 설립 후 첫 작업도 게임 개발이 아닌 가이아 크루세이더즈의 사운드 복각을 진행하고 있는데, 결국 현재 시점의 사업 비전은 폐업 후 유지해온 오프라인 샵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5. 제작 게임
- 가이아 크루세이더즈 (1999) 유일한 자체 퍼블리싱 작.
- 다크 암즈: 비스트 버스터 1999 (1999) SNK 발매.
- 전국전승 2001 (2001) SNK 발매.
- 레이지 오브 더 드래곤 (2002) 플레이모어 발매.[12]
- 신 호혈사일족 투혼 (2002) ATLUS 발매.
- 더 킹 오브 파이터즈 네오웨이브 (2004) SNK 플레이모어 발매.
- KOF 맥시멈 임팩트 (2004) SNK 플레이모어 발매.
- 메탈슬러그 어드밴스 (2004) SNK 플레이모어 발매.
- KOF 맥시멈 임팩트 2 (2006) SNK 플레이모어 발매.
- 메탈슬러그 6 (2006) SNK 플레이모어 발매.
- 메탈슬러그 3D (2006) SNK 플레이모어 발매.
- 신 호혈사일족 번뇌해방 (2006) 익사이트재팬 발매.
- KOF 맥시멈 임팩트 레귤레이션 A (2007) SNK 플레이모어 발매.
- 온타마라마 (2007) ATLUS 발매.
- 메탈슬러그 7 (2008) SNK 플레이모어 발매.
- 호혈사일족 선조공양 (2009) ATLUS 발매.
- Doala de Wii (2009)
[1] 회사가 폐업한 뒤 사실상 개인용으로 쓰이고 있다. 덤으로 프로필 사진이 음양사…[2] 엄밀히 말하면 덴츄는 주축이 아니었다. 그는 회사 설립 후 얼마 안 있어 자체 스튜디오를 차리면서 프리랜서가 되었다. 물론 그 후에도 노이즈와 같이 일하면서 주축에 가까운 인물로 활약하긴 했다.[3] ATLUS 도쿄 본사는 여신전생 시리즈 중심의 콘솔 RPG 중심으로 개발을 하고, ATLUS 칸사이는 아케이드 게임 위주로 개발하였기 때문에 회사만 같고 사실상 따로 놀았다. 가끔씩 카네코 카즈마와 같은 본사인원이 와서 캐릭터 디자인을 도와주기는 했다.[4] 크레딧으로 확인 가능한 건 메탈슬러그 4와 7뿐이고 개발 실적도 공식적으로 4편만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5와 6 및 메탈슬러그 3D 등 사실상 구 SNK 도산 이후 출시된 거의 모든 메탈슬러그 시리즈 작품에 지속적으로 관여해왔다. 사실 마모토 히데나리가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모든 작품의 크레딧에 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확인할 수가 있다.[5]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의 픽시룸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MOE의 출시 시기와 비교해 보면 거의 10년을 앞서간 셈.[6] 사실 디지털 액션 피규어는 보편적인 이름이 아니다. 통상적인 명칭은 '데스크탑 마스코트(デスクトップマスコット)'라 하며, DAF라는 명칭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노이즈 팩토리의 괴팍한 네이밍 센스의 예시 중 하나.[7] 처우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호혈사일족은 바카게 특성상 구작 시절부터 저예산이었고, 메탈슬러그조차도 개발 예산은 구작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상을 넘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8] 노이즈 팩토리가 개발 의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산 후려치기와 더불어 이주 케이코가 아틀러스 및 SNK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인맥이라는 요소도 컸다. 문제는 일거리를 주던 곳이 경제적 입지가 달라지고, 경영진이 바뀌면서 더 이상 이를 내세우지 못하게 된 것.[9] 2012년부터 폐업 전까지 5년 동안 신작 개발 및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없었다. 실제로 개발 실적은 2012년, 홈페이지 갱신은 2010년부터 멈춰 있었는데, 그간의 공백기 동안 회사를 어떻게 유지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10] 홈페이지에 기재된 설립일은 2022년 4월 15일로 되어 있다. 대표가 다나카 케이코(田中 桂子)로 되어 있는데, 노이즈 팩토리의 대표이사 이주 케이코(伊集 桂子)와 동일 인물이다. 노이즈 팩토리 파산 당시의 대표 이름이 '다나카 케이코'로 되어 있다.(일본어)[11] 메가 엔터프라이즈와 공동제작.[12] 에보가 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13] 메탈슬러그 파치슬롯도 이 회사의 작품일 수 있다. 모델링과 연출 전반에 있어서 유사점이 많고, 제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파칭코 제작에 관여를 했었다는 다수의 기록이 개발 실적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