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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8:18:09

닛세이가쿠엔

영상의 학교는 닛세이가쿠엔 제2고등학교(日生学園第二高等学校)다. 영상 제목의 '기지해(基地害)'라는 말은 일어 욕설 '키치가이'를 에둘러 음차한 것으로, 대놓고 정신 나간 학교라고 비꼬는 의미이다.

1. 개요2. 역사3. 학교4. 의도5. 엄격한 규율
5.1. 가혹행위, 인권유린5.2. 정말 도움이 되었는가?
6. 현재의 상황7. 출신 인물8. 여담

1. 개요

학교법인 닛세이가쿠엔(学校法人日生学園)은 일본 미에현 츠시 하쿠산초에 위치한 사립 학교법인이다. 설립자는 아오타 츠요시(青田強, 1907년~1986년). 산하 학교 네 곳과 유치원 한 곳은 지금은 나름대로 평범한 교육기관으로 운영되지만, 아오타 이사장 생전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빙자한 아동, 청소년 학대 및 인권유린으로 악명이 높았다. 당시에는 말이 학교일 뿐이지 사실상 학교라는 이름의 감옥이 현실화된 곳이었다.

2. 역사

1965년 법인이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66년에 닛세이가쿠엔 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1980년에는 닛세이가쿠엔 제2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기존의 고등학교는 닛세이가쿠엔 제1고등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2년에는 중학교와 유치원도 설립되었고 1983년에는 닛세이가쿠엔 제3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아오타 이사장은 소학교(초등학교)와 대학(대학교)까지 세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19년간 닛세이가쿠엔에서만 배우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허황된 야망까지 품었다.

1986년 설립자 아오타 이사장이 사망한 직후 닛세이가쿠엔 소속 학교들은 평범한 사립기숙학교로 전환되었다. 2015년에 재단 구조를 개편하면서 학교 명칭들을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3. 학교

닛세이가쿠엔 소속 학교들은 남녀 공학이지만 분반이었던 듯하다. 여학생 기숙사도 있는데 자료가 많진 않지만 남학생과 똑같이 생활했던 모양이다.
2021년 4월 지유가오카 고등학교(구 닛세이가쿠엔 제3고등학교)가 학생 모집을 정지하고 휴교에 들어가면서 아오야마 고등학교(구 닛세이가쿠엔 제2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4. 의도

닛세이가쿠엔 소속 학교들은 대학 진학이 목적이 아니라 히키코모리와 등교 거부아, 학교폭력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문제아 등을 '갱생'시키는 데 더 주안점을 둔 현재의 대안학교에 더 가까운 학교였다. 그러나 나름대로 과학적인 커리큘럼으로 돌아가는 현대의 대안학교 및 특수학교와 달리 "땀을 흘려야 인간은 마음이 깨끗해진다." 하는 설립자의 개똥철학 단 하나만으로 운영되어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가 일상화된 지옥의 학교로, 교육계의 삼청교육대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닛세이가쿠엔 부속 유치원조차도 똑같은 교육을 추구해 유치원생들에게 악랄한 걸레질을 시켰다.

그야말로 북한식 정치범수용소의 일본판으로, 인권유린이 가혹하다는 1970~80년대 중국,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미얀마, 적도 기니, 투르크메니스탄, 에리트레아 같은 가혹한 독재국가들조차 전국민에게 매일 이런 생활방식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1] 닛세이가쿠엔에선 '교육'이란 미명을 뒤집어쓴 인권유린 행태가 매우 심각했다.

5. 엄격한 규율

아오타 이사장 사후에는 학생들을 위한 평범한 기숙학교로 탈바꿈했지만 생존했을 때만 해도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설립자가 사망한 뒤부터는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지만 그래도 규율은 빡셌다고 한다. 설립자가 살아 있었을 때는 일본 제국 시절 일본군의 모습을 1960~80년대에 재현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는데 실상은 아래와 같았다.

본 문서 첫 번째 동영상의 1분 43초, 2분 시점에서 복도 기둥에 걸린 한자 액자를 확대해서 보여주는데 각각 격할 격() 자와 엄할 엄() 자다. 엄격한(嚴) 지도 아래 격렬하게(激) 생활하란 뜻으로 걸어 두었던 모양이다. 정상적인 교육기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글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당시 학교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준다.

5.1. 가혹행위, 인권유린

군대가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규율이 매우 빡셌으니 당연히 교내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도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위 영상 1분 28초 무렵에도 어느 학생이 주의를 주는 듯한 말투로 협박과 동시에 다른 학생의 얼굴을 벽쪽으로 밀치면서 괴롭히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온다. 선후배 사이의 기강도 꽉 잡혀 있어서 1학년은 노예, 2학년은 평민, 3학년은 영주라고 불리는 식으로 계급별로 나뉘어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학교를 탈주하는 학생들도 여기저기 속출했으며 만약 학교에 탈주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그 학생을 잡을 때까지 교내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키면서 학생들을 정좌시켰다고 한다. 탈주자 외에도 자살이나 의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난 학생들까지 상당히 많았는데 학교 측에서는 이런 사례가 나올 때마다 "학교가 24시간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라는 면피성 발언을 했다.

설령 탈주를 감행하더라도 완벽한 도피는 힘들었다. 영상에서 소개된 닛세이가쿠엔 제2고교(아오야마초)는 완전 첩첩산중에 있었으며 제일 가까운 철도역이 킨테츠 오사카선 히가시아오야마역이었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만도 산 넘어서 5km 이상을 걸어가야 해서 도망치기가 매우 어려웠다. 제1고교와 중학교는 아오야마초역이 그나마 가까이 있긴 했지만 그 거리가 2km다.

그래도 아오야마초는 상대적으로 열차가 많이 서서 나은 편이다. 물론 닛세이가쿠엔 제3고교(현 지유가오카 고교)는 앞의 학교들을 다 씹어먹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격오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보로 갈 만한 철도역이 주변에 아예 없는 곳이다! 그나마 가깝다고 할 만한 곳이 13km 떨어진 반탄선 미조구치역이다.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서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까지의 거리에 필적한다. 그래도 자전거를 소지하고 있다면 탈주 후 2시간 동안 자전거로 도주하면 어떤 역이든 도착은 할 수 있다.

이러한 탈출 불가 수준의 막장 감옥이자 지옥을 기적적으로 벗어난 인물은 탈출 성공 후 자퇴하여 닛세이가쿠엔을 손절한 이마다 코우지가 대표적 사례.

5.2. 정말 도움이 되었는가?

그래도 고등학교인 이상 학생들을 무리 없이 취업시키거나 대학교에 잘 보낼 수 있을 만큼 교육체계가 적절했다면 최소한의 학교로서의 본분을 해 나갔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조차도 아니었다. 명문대는 고사하고 일반 대학 진학자조차 희박했을 정도로 대학 진학률이 굉장히 저조했으며 후술할 출신 인물 문단만 봐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손에 꼽는다. 그래도 해당 학교 출신 중에서 프로 스포츠 선수, 도호쿠대학에 합격한 학생도 있었다고 하지만 이들도 결국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끝내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렇게 노력해서 성공할 정도라면 어느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잘 나갈 인물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니 딱히 학교 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학교의 교육 환경이 정상화된 후에 입학한 이들이거나 한창 막장이던 시절의 학교에서 탈출하여 퇴학당했던 사람들이니 더더욱 학교의 특유의 교육체계 덕분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토록 대학 진학률이 처참한 이유는 당연히 학교의 교육 방식에 있었다. 잠도 4시간밖에 못 자고 밖에도 못 나가는데다 조금의 자유시간이나 여가 행위는 칼같이 통제하고 하루 종일 구타와 부조리가 여기저기 끊이질 않았다. 성인조차 버티기 힘든 환경 속에서 미성년자에게 이런 미친 방식으로 생존하라고 강요하니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를 풀려면 최소한의 응용력이나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력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 구조가 이래서야 효율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이 학교에 입학했던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기 또래들이 한창 공부를 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중요한 시기를 전부 군대놀이로 날리면서 인생을 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리사 몽고메리와 마찬가지로 구타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오죽하면 야쿠자 같은 범죄 조직에서 닛세이가쿠엔을 눈여겨본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는데 엄격한 상하관계를 요구하는 조직 속에서 닛세이가쿠엔 학교 출신은 금방 적응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6. 현재의 상황

1986년 설립자 사후에도 '닛세이가쿠엔'은 학교법인의 형태로 남아 있고 상기한 학교들은 여전히 '학교법인 닛세이가쿠엔' 산하에 있다. 현재의 이사장도 악명 높았던 아오타 츠요시의 가족이 이어나가거니와 교육 이념도 츠요시의 해괴한 철학을 어느 정도 승계하였다. 이 때문에 다른 평범한 학교에 비하면 학생지도가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아래는 극히 일부의 사소한 규정에 불과하다.
1. 기숙사 생활 시에 사적인 이유로 외출을 하는 행위는 일절 허가해 주지 않고 오직 응급상황이거나 방학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2. 스마트폰 등의 개인 전자기기는 취침 전 자습 및 자유시간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특히 SNS에 학교와 관련된 내용을 투고한 것이 밝혀지면 중징계를 내린다.
3. 선후배 간 상하관계를 중요시 여겨 선배에게 반드시 인사를 시키는 등 엄격한 규율이 있다. 특히 과거에 제2고등학교였던 아오야마 고등학교가 가장 악명 높은데 이런 문화라면 으레 그렇듯이 선후배 간 갑질 문화가 있다.

얼핏 봐선 ‘평범한 학교들도 비슷하지 않나?’ 싶겠지만 위 사항을 어길 시 단순히 훈계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징계 후 처벌인데 고등학교치고는 상당히 강력하고 무거운 징계에 속한다. 그래도 설립자 생전의 생지옥 시절에 비하면 교육 커리큘럼이 제법 잘 짜여지면서 공부란 이름의 폭행이 아니라 진짜 '공부'가 가능하긴 하다. 체벌도 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지메로 인한 자살 사건이 증가하고 SNS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일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문부과학성이 학교폭력에 대해선 눈에 불을 키고 모니터링하는 만큼 학교폭력을 상당히 경계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자행될 시 학생에게 강력한 중징계를 때려 철저하게 예방하고 있다.

7. 출신 인물

8. 여담


[1] 물론 국가 단위로는 저지르지 않아도 해당 국가의 사적인 곳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2] 두발규제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던 시절이지만 저만큼 완삭시키는 학교는 저때도 드물었다. 이사장 본인부터 완삭하고 다녔다.[3] 군대의 취침시간이 대한민국 육군 기준으로 오후 10시~오전 6시 30분이다. 그 힘들다는 군대조차도 하루 수면 권장량 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데 충분한 수면 시간이 중요한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그 절반도 안 되는 4시간밖에 주지 않으면 그 자체로 아동 학대다.[4] 그런데 경악스럽게도 화장실 변기를 맨손으로 청소하는 악습은 의외로 일반적인 기업이나 학교에서도 존재했었다. #[5] 입학 시점 기준으로 고작 2년 전에 평범한 학교로 전환되었는데 만일 3년만 더 일찍 태어나 이 곳에 입학했다면 지옥도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