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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성준
출생 1964년 3월 4일 (만 [age(1964-03-04)]세), 서울특별시
학력 경기고등학교
워싱턴 대학교 정치학, 경제학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소속 SBS 보도본부 논설위원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1]

1. 소개2. 상세
2.1. 도발적인 클로징 멘트
2.1.1. 2013~2014년2.1.2. 2016~2017년
3. 기타

1. 소개

SBS의 기자. 1964년생이다. 보도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방송사의 보도부문을 진두지휘하고 직접 메인뉴스 진행까지 맡는다는 점에서 현재 JTBC손석희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2]

2011년 3월 21일부터 2014년 12월 31일까지 SBS 8 뉴스 평일 앵커를 맡았으며, 2016년 12월 19일부터 약 2년만에 다시 SBS 8 뉴스 평일 앵커로 복귀하여 2017년 5월 19일까지 진행했다.

2. 상세

1991년 SBS에 기자 공채 1기로 입사하였다. 91년부터 2004년까지 사회/정치/경제부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2000년 나이트라인, 2002년~2004년, 2009~2011년 출발 모닝와이드(現 모닝와이드) 앵커로 활약하였다. 2004년~2007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2011년 보도국 부장에 취임함과 동시에 SBS 8 뉴스의 앵커자리에 올라 2011년 3월 21일부터 2014년 12월 31일까지 3년 9개월 동안 진행하였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SBS 국민의 선택의 진행을 맡았다. 이때 SBS선거방송 사상 처음으로 시청률로 다른 지상파 방송사를 제쳤다. (2014 국민의 선택)

2016년 8월 24일 보도본부 뉴스제작국장으로 승진하였고, 동년 12월 9일에는 보도본부장으로 승진하였다. 파워승진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승진을 할수 있었던 이유는 리우 올림픽때 SBS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면서 조직도를 개편 및 축소하였고, 또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JTBC 뉴스룸 시청률이 10%를 돌파하면서 종편이 지상파를 시청률에서 제끼는 바람에 쇄신성 인사로 승진하였기에 가능했다. 승진은 좋은데 어깨가 무겁다
그리고 2016년 12월 19일 SBS 8 뉴스 평일 앵커로 복귀하였다. SBS 뉴스를 살려야한다 앵커 복귀는 좋은데 하필 상대가...[3]아 물론 K본부-M본부 대비 그나마 정상이었다는 건 함정] 김성준 본인도 8시 뉴스 개편 기자간담회에서 손석희와 JTBC를 언급했던 점을 보면 JTBC 뉴스룸과 비교받는 데에 대한 압박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

2017년 5월 SBS 8 뉴스에서의 19대 대선 세월호 여론몰이 의혹 사건으로 인해 5월 18일 '회사명예 훼손' 사유로 감봉 6개월에, 보도본부장보도본부 미래부 선임기자로 직급까지 내려가는 징계를 받았다.[4] 결국 5월 19일 방송을 끝으로 앵커자리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한동안 쉬다가, 7월 중순부터 팟캐스트, 골룸의 방송을 하며 선임기자를 맡았으며, 이후 8월 1일부로 논설위원으로 보직이동, 9월 1일부터 시사 전망대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

2.1. 도발적인 클로징 멘트

뉴스 말미 클로징 멘트에 그날의 기사에 대한 자신의 내용을 재치있게 설명한다. MBC신경민[5]이 있었다면, SBS에는 이 분이 있다고 할 정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앵커 본인은 이 클로징 멘트를 매일 직접 작성한다고 밝혔다.

2.1.1. 2013~2014년

박근혜정부가 무엇보다 소통에 성공하기 바랍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지을 때는 국민과 야당이 반대를 해도 우선 추진하고 역사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통 없이는 역사를 기다릴 여유도 없습니다.
-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일 클로징 멘트. # 그러나 이 말이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읽고 쓰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들었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우매한 백성이 다스리기 편할 텐데, 깨우칠 수단을 일부러 준 겁니다. 단소리든 쓴소리든 귀를 여는 지도자가 자기 편을 더 많이 얻는다는 걸 세종대왕은 아셨나 봅니다.
- 2013년 10월 9일 한글날 클로징 멘트. #
'선주의 눈먼 상혼과 인명경시, 당국의 허술한 운항관리와 무사안일이 불러온 후진국형 참사다.' 요 며칠 귀에 익숙하시죠. 이게 지난 93년 서해 페리 참사 당시 기사를 요약한 겁니다. '책임질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묻고 잘못된 관행을 모두 뜯어 고치겠다.' 이것도 그 때 대통령이 한 약속입니다. 21년 동안 바뀐 게 없는 겁니다.
- 2014년 4월 22일 클로징 멘트. #
국민 4천100만 명에게 참여기회를 주고, 전국 방방곡곡 1만 3천 군데 행사장이 설치되고, 또 홍보 벽보를 펼쳐 놓으면 월드컵 경기장 26개 넓이에 이르는 이벤트가 있다면, 더군다나 그게 휴일에 벌어진다면 굳이 외면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게 내일입니다.
- 2014년 6월 3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날 클로징 멘트. #
전쟁을 금지한 평화헌법에 대한 1947년 일본 문부성의 공식설명을 들어보시죠. "일본은 옳은 일을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한 겁니다. 세상에 옳은 일만큼 강한 건 없습니다.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맙시다" 일본이 이걸 휴지조각 만들지 않기 바랍니다.
- 2014년 7월 1일 클로징 멘트. #
윤 일병의 마지막을 직접 목격한 국군병원장이 이번 사건을 마녀사냥이라고 말했는데 마녀사냥은 죄 없는 사람을 마녀로 몰아세우는 걸 뜻합니다. 후임병을 때려서 숨지게 한 선임이나 그걸 은폐한 상부는 죄 없는 사람보다는 진짜 마녀 쪽에 좀 더 가깝습니다.
- 2014년 8월 11일 클로징 멘트. #
왕권에 대항해서 국민의 대표를 지키려고 만든 불체포 특권이 한국에 와서 국민에 대항해 자기들 신변을 지키는 용도로 변질됐습니다. 잠깐 욕 먹을 각오로 국회의원 전체의 이익을 지키자는 계산이 얄밉습니다. 그래서 잠깐 욕하고 말면 안 됩니다.
- 2014년 9월 3일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소식을 전한 후에 말한 클로징 멘트. #
2014년 우리는 조금 전진했고 조금은 후퇴했습니다. 원칙이 무너졌고, 소통이 모자랐고, 배려가 줄어든 게 후퇴고, 그런 문제들을 통해서 고칠 점을 배운 게 전진이라면 전진입니다. 배움의 결과는 희망입니다. 희망의 2015년 기대합니다.
- 2014년 12월 31일 SBS 8 뉴스 앵커직을 하차하면서 말한 클로징 멘트. #

2.1.2. 2016~2017년

저희가 뉴스를 새로 바꾸면서 이런 고민을 해봤습니다. 대통령 권력을 감시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정부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증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는지. 또 국정농단 사태의 경고음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결론을 말씀 드리면은, 소홀했고 부족했고 외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의 책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이번에는 국가 시스템이 침몰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새로 선보이는 SBS 8 뉴스의 출발점은 반성입니다.
- 2016년 12월 19일 SBS 8 뉴스 앵커직에 복귀하면서 말한 클로징 멘트. #
김영란법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입법됐는지 기억나십니까? 국회가 법안을 묵혀두고 시간만 끌다가 세월호 참사가 터졌습니다. 그걸 본 국민이 부패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국회의원들 압박해서 가까스로 빛을 보게 된 겁니다. 시행이 되고 나서 농어민 상인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는다고 하니까 이젠 법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법은 지키고 부작용은 치유하면 됩니다. 부패로 성장하는 나라는 없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거듭 곱씹는 말입니다.
- 2016년 12월 21일 클로징 멘트. #
최순실을 등에 업은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 씨는 억대 정부 돈을 받아서 원데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었지만 이름처럼 원데이, 하루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반면에 정부가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면서 통제하려던 표현의 자유는 순실 말고 진실, 하야 크리스마스 그리고 경찰버스에 붙은 평화의 꽃처럼 추운 광화문 길바닥에서 오히려 빛을 더했습니다. 춥고 배고파야 예술이 나온다는 말이 물론 이런 데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요.
- 2016년 12월 26일 클로징 멘트. 참고로 이 날 첫 머릿기사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입수 단독보도였다. #
이상호 선수는 어릴 때 강원도 정선의 눈 내린 배추밭에서 미끄럼을 타면서 스노보드를 배웠습니다. 윤성빈 선수는 5년 전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스켈레톤에 입문해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메달 유망주가 됐습니다. 내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부디 좋은 성적을 거둬서 누구처럼 부당한 권력을 동원해 기업 돈을 뜯어내지 않고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해 주기 바랍니다.
- 2017년 1월 4일 클로징 멘트. #
특검의 기업수사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심지어는 SBS가 관련 뉴스를 많이 보도하는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옵니다. 네, 저희는 의도가 있습니다. 권력이 기업더러 돈 갖다 바치고 무슨 재단 같은 것 세우라고 요구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겁니다. 기업이 그럴 돈으로 열심히 투자하고 생산해서 청년실업 해소하고 경제 발전시킨 공로로 박수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 2017년 1월 16일 클로징 멘트. #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 안된다고 했더니 묵묵부답이었다죠. 오히려 장관이 물러나야 했습니다. 저희는 시민들에게 비판적인 일일 뉴스 모니터를 부탁합니다. 쓴소리로 지적받으면 억울하기도 하지만, 뉴스 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뉴스나 국정이나 국민 상대로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대통령도 쓴소리에 귀 기울였으면 좋았을걸. 너무 늦었습니다.
- 2017년 1월 23일 클로징 멘트. #
"아이고 선물도 주시고. 와이프한테 점수 많이 땄는데 덕분에."
"사모님 점수 딸 일이 더 많은데."
"제가 추석 선물도 준비했는데 어떡하나."
"고맙습니다."
"지나서도 받을게요."
'지나서도 받을게요', 이게 대통령 수석 비서관업체 대표와 나눈 대화라고 생각하니 하도 기가 막혀서 한번 다시 읽어봤습니다.
- 2017년 2월 1일 클로징 멘트. # [6]
SBS 뉴스는 검찰과 특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알권리라는 한가지 관점만을 염두에 두고 취재 보도해왔습니다. 대통령 대면조사가 9일로 확정됐다는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청와대의 발표를 듣고나서, 노출된 외부장소도 아니고 청와대 경내 일정을 전한 보도가 대통령의 특검 조사 대응에 어떤 차질을 빚게 했는지, 어떤 불법이나 혼란을 유발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2017년 2월 8일 클로징 멘트. # 이 날 머릿기사가 청와대가 특검이 대통령 대면조사를 2월 9일에 실시한다는 SBS 보도를 문제 삼아 대면조사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저희 SBS 취재진을 비롯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멱살을 잡히고, 옷이 찢기고, 태극기 봉으로 머리를 맞은 경우도 있습니다. 폭행에 가담한 분들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기자는 집회현장을 지킬 때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외칠 자유도 함께 지키게 됩니다. 손에 촛불을 들었든 태극기를 들었든 다를 게 없습니다.
- 2017년 2월 13일 클로징 멘트. #
예산이 모자라서 보육원 아이들 배를 곯게 한답니다. 국회는 법 고칠 생각도 없습니다. 한 해에 68억 원짜리 예산 얘기입니다. 몇 가지 사례만 들죠. 적게는 쓸모가 불분명해서 폐지하기로 하고도 6년째 살아있는 국회 특수활동비 한 해 81억 원. 많게는 수요가 없어서 애문단지 빈집이 돼버린 공공임대주택 1만 채 6천 9백억 원. 예산 낭비 사례는 책으로 써도 여러 권입니다. 이런 것들이 부모 없는 아이들 배고프지 않게 해 주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 2017년 2월 22일 클로징 멘트. #
올해 육사 졸업생 1,2,3등이 모두 여성이라는 뉴스는 놀랍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혹시라도 우리 양성평등의 현실에 대해 착시를 부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나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세계 112위, 여성 경제활동지수는 OECD 33개 회원국 가운데 32위, 특히 남녀간 임금격차는 꼴찌. 우리 여성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성차별의 장벽은 육사 1,2,3 등의 영예 정도로 뚫기에는 여전히 버거워 보입니다.
- 2017년 2월 24일 클로징 멘트. #
지난 겨울 이 땅의 누구는 촛불을 들고, 누구는 태극기를 들고 각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손가락질하기도 했습니다. 길고 고통스러운 여정 끝에 2017년 3월 10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촛불을 든 다수의 의견과 법의 판단이 일치했습니다. 법을 무시한 대통령이 파면됐다는 건 법치의 승리이지만,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다는 건 정치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결과를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자양분으로 승화시키는 과제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한 손에 촛불을 밝히고 다른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갈 길이 어둡고, 험하고, 바쁘기 때문에 끼리끼리 따로 갈 여유가 없습니다.
-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일 클로징 멘트. #
세월호에 탔던 허다윤 양은 다문화가정 아이들 돌보는 재미에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세월호가 바닥까지 모습을 드러낸 어제는 마침 천안함 폭침 7주년이었습니다. 천안함의 막내 장철희 이병은 철도기관사가 꿈이었지만 그 꿈은 배를 처음 탄 지 8일 만에 바다에 묻혔습니다. 여고생이든 해군 병사든 젊은이의 꿈은 똑같이 소중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허망하게 꿈을 잃지 않도록 헌신하는 지도자가 나와야겠습니다.
- 2017년 3월 27일 클로징 멘트. #
오늘 '영어의 몸' 그리고 '머그샷'이란 표현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습니다. 안타까운 건 이 용어들이 '대통령'이란 단어와 함께 관심을 모았다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저희 편집회의에서는 '사상 세 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란 말을 쓰지 말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부끄럽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 2017년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사건 당일 클로징 멘트. #
요즘 SNS에는 지지 후보가 다른 분들끼리 편 갈라 싸우는 모습이 흔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시죠. 같은 편이 돼야 하는 쪽은 유권자들입니다. 함께 느긋하게 앉아서 후보들의 구애 경쟁을 즐기면 되는 겁니다. 유권자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면 느긋해지는 건 후보들입니다. 유권자가 알아서 대리 싸움을 해주는 데 어느 후보가 열심히 뛰겠습니까?
- 2017년 4월 14일 클로징 멘트. #
오늘 뉴스를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일 투표합시다. 짧고 굵다
- 2017년 5월 8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전날 클로징 멘트. #
현실에서 통합과 개혁은 서로 충돌할 수도 있는 개념입니다. 통합을 하려면 뭘 바꾸기가 힘들고 개혁을 하려면 반발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통합과 개혁은 야심 차지만 쉽지 않은 비전입니다. 열쇠는 하나입니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59%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내 대통령이라는 믿음을 주는 겁니다.
-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일 클로징 멘트. #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빈틈을 파고드는 질문으로 진실을 캐내야 합니다.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을 아프게 만든 질문의 100분의 일만큼이라도 너는 혹시 빈틈이 없냐고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던가…. 아쉬웠습니다. 앞으로 진실을 찾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질 SBS 뉴스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2017년 5월 19일 SBS 8 뉴스 앵커직을 하차하면서 말한 클로징 멘트. #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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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활동을 자주 하지 않는 듯 하다.[2] 사실 보도본부장이 직접 앵커를 맡았던 사례는 1988년 KBS 뉴스 9박성범 앵커가 최초다.그외에도 kbs의 신동호앵커가 부국장직책을 맡았고,mbc의 이득렬앵커는 보도국장대우라는 호칭을 사용했다.[3] 물론 공중파 3사 메인뉴스 중에서는 SBS가 그나마 양반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SBS 사측이나 노조나 JTBC를 다소 심각한 경쟁자로 보고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4] 일반적인 회사의 경우 진급없이 밑바닥에서 버티던가 사표 쓰고 나가던가 하라는 수준의 징계이다. 예를 들면 이 사람. 다만 방송국은 일반 회사와는 차이가 있으므로 실질적인 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5] 최일구와도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지만, 최일구는 날카로운 스타일이 아닌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멘트를 선보이는 전혀 다른 스타일인데다가, 이런 멘트를 클로징 멘트 뿐만 아니라 뉴스 진행 중간에도 종종 선보인다. 오히려 김성준과 가장 흡사한 스타일이라면 평일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평소에는 무난한 진행을 하면서도 클로징멘트에서만큼은 날카로운 멘트를 서슴치 않으며 주변 권력(MBC 경영진, 청와대 등)의 집중 견제를 받았던 신경민이 더욱 가깝다.[6] 이 날 보도 중 안종범 전 수석과 박채윤씨(김영재 원장의 부인)간의 통화 녹취록을 입수한 보도를 했는데 위의 김성준 앵커가 인용해서 읽은 부분은 실제 녹취록의 내용이다. 그리고 다음날 첫 뉴스 보도때도 녹취록의 내용을 인용하며 뉴스를 시작했다.[7] 사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심경의 변화가 있을 때 머리를 자른다고 한다. 전임자를 잊고 신동욱 앵커와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생각되어서 서운했던 듯. 하지만 정미선 아나운서는 원래 1월 2일에 이발을 할 생각이었으나 미용실 주인이 빨리 하라며 보챘다고 한다.[8] 사실 뉴스데스크에서 사고 당시 앵커였던 박상권 기자가 현장 바로 앞에서 책상 하나 덜렁 놓고 진행을 했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