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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0:59:09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역사
나미비아의 선사시대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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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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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령 남서아프리카
Deutsch-Südwestafrika
독일 제국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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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깃발 휘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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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8월 7일 - 1919년 6월 28일
<rowcolor=#fff> 성립 이전 해체 이후
나미비아의 선사시대[2]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
<colbgcolor=#000><colcolor=#fff> 위치 남서아프리카 나미비아
면적 835,100km2(1912)
인구 250,000명(1912)
정치체제 독일 제국의 식민지
국가원수 독일 황제
정부수반 식민지 총독
수도 빈트후크 (1891-1919)
통화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마르크
민족 독일인, 나미비아인
언어 독일어, 아프리칸스어
종교 기독교, 아프리카 토착 신앙

1. 개요2. 역사3. 식민 활동4.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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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84년부터 1915년까지 독일 제국남서아프리카(오늘날 나미비아) 지역을 식민 통치하던 시기.

2. 역사

1883년, 독일인 상인이었던 아돌프 뤼더리츠(Adolf Lüderitz)가 원주민 족장으로부터 앙그라 페케나(Angra Pequena) 인근의 땅을 구입했다. 이후 이 지역은 뤼더리츠의 이름을 따, 뤼데리츠로 개명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나미비아의 주요 항구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 뤼더리츠는 이곳에 무역 거래소를 설치하고 본토에 영국으로부터 자신의 땅을 보호해주길 요청했는데, 이가 바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시초이다.

1884년, 독일 제국은 자국의 영향력 하에 있던 나미비아 지역을 보호령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대영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술수였다. 1885년, 서양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하기 위해 개최된 베를린 회담을 통해, 독일 제국은 나미비아, 카메룬, 탄자니아, 르완다, 부룬디를 손에 넣었다. 이 중 나미비아는 '남서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독일 제국 식민지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3]

이후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는 1915년 대영제국에 속해 있던 남아프리카 연방의 일부로 편입되었다.[4] 남아프리카 연방에 합병된 이후 1920년에는 이곳이 남아프리카 연방 위임통치령으로 지정되었다.

3. 식민 활동

독일 제국은 다른 식민지에서 하듯이 원주민의 토지를 강매하고, 자국 민간 기업들을 남서아프리카에 진출시켜 식민지 경제를 본국에 종속시키려 했다. 1885년 4월 설립된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식민 회사(Deutsche Kolonialgesellschaft für Südwest-Afrika)'는 독일 제국으로부터 광산 개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 개발이 시작되면서 점점 더 많은 독일인들이 이곳에 정착했고, 독일 당국은 본토인과 식민지인들간에 차별적인 정책을 펼쳤다. 1886년 4월 17일 통과된 분리적용법에 따라, 본토인과 식민지인들은 서로 다른 법의 적용을 받았다. 토지 강매와 자원 약탈 역시 자행되고 있었다.

총독 중 한명이 그 헤르만 괴링의 부친인 하인리히 에른스트 괴링이다.

4. 헤레로족과 나마족 학살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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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 문장으로 제정하려 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무산되었다.[2] 우쾀비 왕국, 우콰루디 왕국, 우콴갈리 왕국.[3] 다만 월비스베이는 유일하게 영국령이었다.[4] 이 과정에서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와 남아프리카 연방(영국 연방 자치국)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지금의 상호 국력을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됐을 것 같지만, 1899~1902년까지 벌어진 보어 전쟁의 여파로 남아연방에서 기득권을 잃고 이를 갈던 보어인(네덜란드계 아프리카 거주자들)이 전면 나미비아를 지원했기에 어느 정도 싸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