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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DDFF><colcolor=#000> 트란실바니아 제13대 공 라코치 페렌츠 1세 I. Rákóczi Ferenc | ||
이름 | 라코치 페렌츠 (Rákóczi Ferenc) | |
출생 | 1646년 2월 24일 | |
트란실바니아 공국 줄러페헤르바르(현재 루마니아 알바이울리아) | ||
사망 | 1676년 7월 8일 (향년 31세) | |
트란실바니아 공국 즈보로(현재 슬로바키아 즈보로프) | ||
재위 |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 | |
1652년 2월 24일 ~ 1660년 6월 7일 | ||
배우자 | 옐레나 즈린스키 (1661년 결혼) | |
자녀 | 라코치 죄르지, 라코치 율리언너, 라코치 페렌츠 2세 | |
아버지 | 라코치 죄르지 2세 | |
어머니 | 바토리 조피아 | |
종교 | 칼뱅파→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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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제13대 공동 공.2. 생애
1646년 2월 24일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수도 줄러페헤르바르에서 라코치 죄르지 2세와 바토리 조피아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1652년 2월 18일, 라코치 가문이 트란실바니아 공위를 세습하기를 원한 라코치 죄르지 2세의 의향을 받아들인 트란실바니아 의회에 의해 공동 공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660년 6월 7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자신들에게 대적한 그에게 반감을 품었던 오스만 궁정이 "라코치 가문 인사는 다시는 트란실바니아 공이 될 수 없다"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그는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이후 라코치 가문 영지로 돌아갔고, 1661년 8월 15일 어머니 바토리 조피아와 함께 가톨릭으로 개종했다.1666년 1월 1일 합스부르크 제국의 레오폴트 1세에 의해 사로스 카운티의 세습 영주로 선임되었고, 사로스 카운티의 이슈판(Ispán, 군사 지도자)도 맡았으며, 그 해 3월 1일 크로아티아 반(Ban) 페테르 즈린스키의 딸인 옐레나 즈린스키와 결혼했다. 그러나 1670년 장인이 레오폴트 1세를 축출하고 크로아티아를 독립시키려는 음모를 주동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는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수감되었다가 어머니와 예수회의 개입 덕분에 큰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되었다. 1671년 2월 21일, 그는 성 대부분을 합스부르크 왕실에 넘기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이후 남은 영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676년 7월 8일에 사망했다.
3. 가족
- 엘레나 즈린스키(1649 ~ 1703): 크로아티아 반(Ban) 페테르 즈린스키의 딸.
- 라코치 죄르지(1667): 요절.
- 라코치 율리안너(1672 ~ 1717): 아스프레몽-린덴 백작 페르디난트 고베르의 부인.
- 라코치 페렌츠 2세(1676 ~ 1735):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마지막 공.